역시 공무원들이었다.
10시 약속이었는데 그들은 1분도 틀리지 않았다. 한국의 약속시간은 <Korean Time>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데 시간약속을 하면 이, 삼십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비단 외국 뿐 아니라 꾼이 다니는 어떤 모임에서도 제때 시작하는 일이 드물었다.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공무원이여.>
그러나 어떻게 1분 차이도 나지 않게 정확히 시간을 지킨다는 말인가? 미리 예행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굉장한 실력이다. 젊은 사람과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사내였다.
“왜 그렇게 뵙기가 힘들죠? 인증신청을 한 지가 두 달이 넘는데 그동안 한번도 나와 보시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생각할수록 우스운 꾼이다. 공무원들의 간섭이 덜할수록 좋은 게지, 적반하장 격으로 농관원 직원들이 농장을 답사해 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릴 게 뭔가.
“금년 친환경 인증 신청하신 곳이 640 농가입니다. 혼자서 다니려니 이제야 차례가 되었네요.”
“아하 그렇군요. 전 답사오시면 농사에 대하여 문의하려고 했었지요. 헤헤.”
멋쩍은 웃음을 허공에 날렸다. 어쩐지 토양검사할 때 결과통보가 늦더라니.
“우선 영농일지사본을 주십시오.”
“예, 여기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훑어보고 있었다. 바쁜 일에 쫓기는 것 같은 것이 건성인 것 같았다. 영농일지를 쓰느라고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데 건성으로 본다는 것은 꾼의 성의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반은 벗겨진 과장이라는 사내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호밀을 뿌리셨네요. 호밀에 살균제 처리가 되어있는 것을 아시죠? 무농약 인증에서는 살균제를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살균제 처리되지 않은 호밀을 구할 곳이 있는지요?”
“글세요.”
“녹비용으로 호밀을 심었는데 그게 어렵다면 대안을 마련해 주셔야죠.”
“원래 전작이 인삼이라면 무농약 인증은 곤란하지요. 살균제를 다량으로 뿌리기 때문이죠.”
<이 양반이 무농약 인증을 안 해 주려고 그러나 까탈스럽긴.>
“예, 그렇긴 한데 먼저 인삼 재배하신 분이 별 재미를 못 봤다고 하더군요. 제때 살균제를 뿌리지 못한데다 병충해 관리를 잘하지 못하여 6년근으로 수확하려다 일년 앞당겨서 5년근 인삼으로 캐가고 말았답니다. 그 후로 지난 가을에 호밀 뿌리고 콩심어 일체 약뿌리지 않고 정직하게 무농약으로 농사지었지요.”
“알았습니다. 풍년농사 지으세요.”
“한 분이 640농가를 다니시려면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공무원 숫자를 늘려 달려고 청원해 보아야겠는걸요. 도움드리고 싶군요.”
홀가분했다.
언젠가는 농관원 직원들이 보러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왔으니 한번 더 올 것이라 짐작했다.
꾼의 콩밭은 한결 깨끗해져 있었다. 딸래미와 티격거리던 그저께와는 달리 날이 좋았다. 구중중한 날씨 때문에 황금햇살을 바랬는데 꾼의 간절한 소원을 알았는지 하늘에서 쨍쨍한 햇살을 내려주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날도 오겠지 흐린날도 날이새면 해가뜨지 않더냐>
노래가사가 중얼거리며 입으로 흘러 나왔다. 경쾌한 예초기의 시동소리를 들으며 신나게 일했다. 콩포기 사이로 솟은 작은 돌멩이에 칼날이 닿는 소리마저 장단으로 들렸으니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다.
<그래 작은 예초기를 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어. 무거운 것으로 밭을 누비려면 곱절은 힘들었겠지.>
휴우~ 힘들다. 시계를 보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팔월의 햇살은 뜨겁기도 하지만 습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아직 비오는 날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쉬겠다고 아까시 나무 그늘에 앉았다.
찌익 찌익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저께 둑이 무너지도록 많이 왔는데도 어느새 도랑의 물은 많이 줄어 있었다.
“얘야 여기서 자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자야지. 몸 망가질라.”
돌아가신 아버지 목소리였다. 다정한 목소리가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곤 흔적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아, 아버지를 뵙다니. 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발요.”
그러나 꾼이 찾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무척 덥다고 느꼈다. 아버지를 찾아 헤맸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눈이 부셨다. 분명히 잠들 때는 아까시 나무그늘이었는데 해가 돌아와 양지가 되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땀이 범벅이었다. 벌써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몇달 전에 돌아가셨다. 막국수와 홍시를 너무도 좋아하셔서 고향집에 갈 때면 사시사철 막국수를 사드려도 싫단 말씀없이 맛있게 드셨다.
“홍시 좀 사와라. 오늘은 간호원 한테 얻어먹었다.”
“드러운 늙은이 같으니 죽을 때가 되어서도 애들한테 감을 빼앗아 먹는단 말야?”
“가만 계세요 엄마. 얼마나 좋아하시면 그러시겠어요.”
병원으로 달려가는 꾼의 손에는 말랑말랑한 홍시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
“얘, 이젠 그만 사와라. 이젠 변비 때문에 못 먹겠다.”
"막국수가 먹고 싶구나 얘야."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먹고 싶은 것을 원없이 드셨을 것이다. 병원에서 일반 음식을 드리지 말라고 했으나 꾼은 근처에 가서 막국수를 사왔다. 아버지는 죽도 넘기지 못하도록 중환이었으나 꾼이 사온 막국수를 드시고 그 날 돌아가셨다. 예초기의 기름이 떨어질 때 알피엠이 올라가 마지막 힘을 다하고 푸르륵 꺼지는 것과 비슷하리라.
타죽기 직전의 꾼을 깨워준 것이 아버지의 고마움의 표시였을까?
“내가 얼마나 잔 게야. 세 시간을 자다니 말도 안돼. 아버지가 깨워 주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햇빛에 타죽을 뻔 했다. 그런데 이 늠의 마누라는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왜 전화를 하지 않는 게야.”
꿈속에서 아버지를 놓친 심술기였을까. 꾼의 입에서 불평이 거침없이 툴툴거리고 나왔다.
쪼르륵 끼리릭 꾸륵꾸륵
별 희한한 소리가 났다. 꾼의 심술은 마누라 때문이 아니었다. 허기 때문이었다. 허기만 생기면 꾼의 입술이 댓발 나왔다. 그러다 뭔가가 거슬리기만 하면 꾼의 밥이 되었다. 먹이대신 심술기 있는 말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이다.
꾼의 그런 습성을 아는 아내는 어딘가를 가게 되면 과자며 사탕이며 음료수를 잔뜩 준비했다.
“이거 누가 먹으라고 이렇게 많이 준비해?”
“누구긴 누구요. 바로 이 구멍을 틀어막아야지요.”
아내가 가리키는 구멍은 꾼의 입이다.
“당신 허기가 돋으면 그 심술을 내가 어찌 당하라고요.”
“내가 그랬던가. 하하하. 역시 부창부수라더니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당신이 있으니 행복이군 고맙소.”
“엄마는?”
“회사에 일할 게 있다고 가셨잖아요. 아빠도 같이 들었잖아요.”
“어, 그렇구나.”
그 넘의 티비. 큰 놈은 공휴일인데도 학교갔고 작은 놈은 티비 앞에 있다. 뭐라고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입을 가리고 주방으로 갔다.
<남자가 쪼잔하게 딸년에게 자꾸 잔소리하면 못 쓰지.>
태교, 무슨 심령과학 같은 거지만 무시할 수 없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큰 애가 뱃속에 있을 때 아내가 소설<장길산>과 잔잔한 김도향의 <명상>음악을 듣더니 아이의 부교감신경이 발달하여 자기학습을 곧잘 했다. 이에 반하여 둘째 녀석을 뱃속에서 키울 때 아내는 티비를 켜 놓고 잠잘 정도로 티비만 보더니 둘째 딸년도 제어하지 않으면 똑같이 했다. 티비 켜놓고 공부하고 밥먹고 잠을 잤다.
<그래 그게 네 팔자다. 나중에 철들면 나아지겠지.>
아욱 된장국을 데워 밥을 퍼먹는 꾼의 손길이 바빴다.
79부에 계속합니다.
잡초의 왕은 누구?
도랑가에 쑥이 한길 정도 큰 것을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한삼덩굴이 쑥을 깔아뭉개는군요.
그렇다면 잡초의 왕은 한삼덩굴!
첫댓글 한덩굴......./울 신랑이 저걸보고 어디서 듣긴들었는데 자세히 못들었는지 깜빡했는지글쎄덩굴이라고....
아
산
시장하시면 입이 안나올 사람이 어딨겠어요. 생짜증이 나는게 당연지사지요.새참도 많이 지참하시고 일가세요.
산삼이나 환삼이나 같은 삼이지요. 삼은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쓰이는 풀이니 산삼은 귀한 것이니 만큼 비싼 것이고 환삼덩굴은 약효는 귀하지만 너무 흔하니 값이 없는 것이지요. 서정남님 동창회모임 좋은 시간 되셨겠군요.
저도 얼마전에 한번도 뵌적없는 결혼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품에 안겨 우는 꿈을 꾸었는데 몸이 아플때라 시어미니가 나를 데리로 오셨는지 아님 날 살게 해주실려고 오셨는지 궁금 했어요...그래서 시어머니 산소에 가서 왜 오셨냐고 여쭤보니 아무 말씀도 안하시더라구요..
조이님 건강이 좋아지셨는지요?
시어머님이 자애로우셨던 가 보죠. 꿈속에 나타나실 정도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