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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크지 않은 작은 공원의 한 쪽 구석에 자동판매기는 서 있었다. 그 공원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깨끗하고 조용했다. 이른 아침이면 나이 드신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새벽 운동을 나왔다 갔다. 오전에는 아기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고, 오후에는 어린이들이 와서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다 갔다. 저녁이면 가족들이 삼삼오오 몰려 나와 돗자리를 깔고 과일을 먹거나 앉아 쉬다 돌아갔다.
자동판매기의 하루는 대체로 심심했다. 일요일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음료수를 마시느라 자신을 두드려댔고, 평일 저녁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복닥거렸으나, 긴 밤과 비오는 낮, 그리고 매우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날엔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새들의 가벼운 지저귐과 나뭇가지의 조용한 산들거림을 듣고 볼 뿐이었다. 그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이 공원에서 살게 된 지 일 년쯤 된, 어느 여름밤 힘들고 지루한 자판기 생활을 견디다 못해 그가 우울증에 걸리려고 할 무렵이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더웠다. 자동판매기는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가끔씩 산들거림을 보여주던 나무들도 나뭇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고, 새들도 다들 제 보금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자동판매기는 공원 방송에서 자주 나와서 외고 있던 노래를 세 번 부르고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까무룩 쿨. 까무룩 쿨쿨. 그런데 갑자기 쾅 하는 충격에 자동판매기는 깜짝 놀라 잠이 깼다. 공원을 가끔 들르던 깡패 청년이 자동판매기에 동전도 넣지 않은 채 몸을 발로 계속 차고 있지 않은가? 자동판매기는 순간 화가 났다. ‘저 녀석 혼내 주고 싶어!’ 라고 생각한 순간 몸에서 콜라 하나가 발사하듯 튀어 나가 깡패 청년의 이마를 맞췄다. “아얏!” 깡패 청년은 콜라 깡통에 이마를 맞고 쓰러졌다. “어휴! 아파.” 깡패 청년은 이마를 어루만지면서도 콜라를 집어 들더니 저 멀리로 가 버렸다.
자동판매기는 깜짝 놀랐다. ‘어라, 내 생각이 이루어졌어.’ 하지만 자동판매기는 이후 한참 몸이 아팠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맑고 상쾌한 기운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후 자동판매기는 자신의 신기한 힘을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신기한 힘을 사용할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그 후 한참 몸이 아파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결심은 지키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에는 공원 생활이 너무 심심하였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렸다. 사람들도 찾지 않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 여름 저녁이었다. 노란 우산을 든 소녀가 공원을 찾아왔다. 소녀는 밤늦게 자주 자판기 앞 작은 벤치에 한참씩을 앉아있다 가곤 해서 낯이 익었다. 자판기는 말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벤치에 앉을 수 없어.’ 소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자판기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자판기는 주룩주룩 내리는 장맛비를 소녀와 함께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노란 우산이 자꾸만 앞으로 숙여지는 게 아닌가? 주룩주룩 빗소리 사이로 흑흑흑 소녀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녀가 우니 자동판매기는 마음이 참 안 좋았다. 공원의 작은 호수에서 며칠간 머무르던 눈처럼 하얀 몸에 목이 길던 두루미 한 마리가 영영 떠나가 버린 그날처럼 마음속에 언짢은 기운이 퍼져나갔다. 자동판매기가 ‘울보야, 울지 마.’라고 말한 순간 탱그르르 하더니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하나 떨어졌다. 자동판매기도 울보 소녀도 깜짝 놀랐다. 울보 소녀는 자동판매기에서 떨어진 시원한 식혜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에 호기심 어린 표정이 가득 퍼져 자동판매기를 자꾸만 살펴보았다. 자동판매기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때 울보 소녀가 갑자기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깡통을 따서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소녀가 음료수를 마시자 자동판매기는 마음속에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자동판매기는 몸이 영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돈을 넣어도 음료수를 제대로 내놓지 못하거나, 돈을 그냥 내놓거나 해서 사람들에게 자꾸만 걷어차였다.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은데 걷어차이기까지 하니 더 힘들었다. 울보 소녀에게 어젯밤 음료수를 준 것을 후회하는 마음과 뿌듯해하는 마음이 하루 종일 싸우느라 마음도 한참 부대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몸은 나아졌고, 시원한 저녁 바람을 느끼고, 호수에 핀 연꽃을 바라보며 행복한 기분에 젖었다.
더운 여름밤이 한참 지났다. 서늘한 바람이 한참 불었다. 자동판매기가 제일 싫어하는 겨울이 찾아 왔다. 겨울엔 사람들이 공원을 잘 찾지 않는다. 공원의 작은 호수는 꽁꽁 얼어서 오리들이 종종거리며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나뭇가지들에서 툭툭 떨어지는 이파리도 다 사라진다. 신문지를 덥고 잠을 청하는 노숙자 아저씨마저 볼 수 없다. 자동판매기의 마음이 더욱 쓸쓸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어느 일요일 자동판매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덥히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성큼 성큼 다가오더니 자동판매기 앞 작은 벤치에 앉았다. 허름한 차림이라 노숙자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표정이 맑고 진지해 보였다. 그는 벤치 앞에 다리가 달린 커다란 나무판을 펼쳐 놓더니 그 위에 큰 도화지를 펴고 연필로 쓱쓱 그림을 그렸다. 청년은 공원의 모습을 아주 천천히 세밀하게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자동판매기가 서 있는 곳에서 그림은 아주 잘 보였다. 청년의 그림은 참 신기했다. 공원을 똑같이 그리는 것인데도 청년의 그림 속 공원의 겨울은 쓸쓸하지 않고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그림을 보는 자동판매기의 마음에도 쓸쓸한 기운이 가시고 따뜻한 기운이 생겨났다.
화가 청년은 매일 공원에 나와 두어 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항상 늦은 시간에 나와 그림을 그렸다. 낮에는 다른 일을 하러 다니는 눈치였다. 한 시간 정도 그림을 그린 후에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천천히 마시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지우기도 하였다. 한 시간여 동안 커피를 들고 있는데도 커피가 식지 않음을 깨달은 것은 공원에서 그림을 그린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였다. 화가 청년이 그 사실을 깨닫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동판매기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때 자동판매기는 민망해서 할 수만 있다면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화가 청년은 다시 그림에 몰두했다.
다음날 호수 너머 보이는 높은 아파트 단지 뒤편 하늘의 장밋빛 노을을 감상하면서 자동판매기는 화가 청년이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동안 공원을 찾지 않던 울보 소녀가 왔다. 울보 소녀는 작은 벤치에 앉더니 힘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 돼, 화가 청년이 그림을 그리러 올 거야.’ 자동판매기는 이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소녀의 어깨가 또 들먹인다. “흑흑흑.” 자동판매기는 또 마음이 안 좋아졌다.
화가 청년이 화구를 메고 뚜벅뚜벅 걸어오다 울보 소녀를 발견했다. 화가 청년의 마음도 자동판매기의 마음과 같았나 보다. 화가 청년은 울보 소녀를 방해하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더니 도화지를 꺼내 무언가를 쓱쓱 그렸다. 자동판매기로 와서 백 원을 넣더니 커피를 한 잔 뽑으려 했다. 피슝! 피슝! 자동판매기는 백 원으로 두 잔의 커피를 내어 놓았다. “어랏!” 화가 청년은 깜짝 놀라 자동판매기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씨익 웃으며 커피 두 잔을 들고 울보 소녀에게로 갔다.
쓰윽! 화가 청년이 울보 소녀에게 커피 한 잔과 그림을 밀어보였다. 소녀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들어 화가 청년이 내민 커피와 그림을 얼떨결에 받았다. ‘어두워서 잘 안보이잖아.’ 라고 소녀가 생각한 순간 자동판매기 앞의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밝아졌다. 울보 소녀는 그림을 보았다. 화가 청년이 그린 그림은 천사 날개를 가진 예쁜 소녀의 그림이다. 만화 세일러 문처럼 소녀는 드레스를 입고 있고, 머리와 옷에는 수많은 리본이 레이스가 달려 있다. 소녀의 얼굴은 울보 소녀다. 울보 소녀는 그림을 보고 피식 웃었다. ‘뭐야, 이건 초등생이나 좋아하는 유치한 그림이잖아.’ 그래도 천사의 날개를 단 자신의 모습이 재밌어서 자꾸 자꾸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자동판매기는 소녀를 단번에 웃게 만든 화가 청년이 부러웠다.
이주일이 지나자 화가 청년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청년은 밤늦게까지 그림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하면서 잔손질을 계속 해 나갔다. 자동판매기는 그림도 보고 싶고, 화가 청년의 작업도 돕고 싶어, 최대한 가로수의 불빛을 밝게 유지하려는 소망을 마음속으로 계속 간직했다. 몸이 계속 안 좋았지만 자동판매기의 소망을 무척 간절한 것이어서 불빛은 그림을 그리기에 충분히 밝았다. 화가 청년의 그림은 참 아름다웠는데도 자동판매기는 뭔가 마음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화가 청년의 공원 그림에는 나무도 있고, 호수도 있었는데 가로수도 있고 벤치도 있었는데 자동판매기는 없었던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쓰레기통도 그림 속에는 없잖아.’ 라고 마음속으로 위로하고 있었지만 자꾸만 자꾸만 안 좋은 마음이 생겨났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계속 생각했지만 자동판매기의 마음은 자꾸만 안 괜찮아졌고 그러자 가로수의 불빛은 희미해졌으며 화가 청년이 마시던 커피도 식어버렸다. 불빛이 희미해지자 화가 청년은 “음, 시간이 많이 늦었네.” 하고 혼잣말을 하더니 화구를 챙겨서 공원을 떠났다.
그날 밤은 마음이 많이 우울했다. 가로수 불빛을 밝히느라 힘도 많이 써서 몸도 더욱 아파왔다. 깡패 청년이 그를 다시 찾은 것은 그때였다. 깡패 청년은 조금은 술에 취해 있었다. “어라! 너 지난번에 날 때렸지?” 라고 말하더니 깡패 청년은 또 자동판매기를 펑 하고 발로 찼다. 순간 너무나 화가 난 자동판매기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폭발함을 느꼈다. 그 순간 자동판매기에서 부바바방 음료수가 마구마구 튀어 나왔다. 그러나 깡패 청년은 이를 예상했던 것처럼 옆으로 재빨리 비켜나 버렸고, “헤헤헷.”하고 웃더니 음료수 깡통들을 주섬주섬 주워 가방에 넣었다. 그중 하나를 마시면서 자동판매기를 툭툭 치더니, “그 자식 참 성깔 있네. 고맙다. 이 자식아!” 라고 말하더니 휙 가 버렸다. 자동판매기는 분하고 속상했다. 무엇보다 슬펐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자동판매기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식은 커피를 내 놓거나 컵을 내놓기 전에 커피물을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빈 종이컵을 내놓았다, 자동판매기는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계속 비난을 받거나 발로 걷어차이고 주먹으로 얻어맞기도 했다. 자동판매기는 이렇게 망가진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가 청년과 울보 소녀가 공원을 찾지 않은 것이었다. 적어도 그들에게만은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그러던 어느 날 공원 관리인과 매점 아저씨가 함께 와서 자동판매기를 툭툭 치고 커피도 뽑아보고 하더니, “안되겠지?” “갈아치워야겠어.”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어. 이제 이 공원을 떠나는 거야. 난 여기를 싫어했잖아.’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자동판매기는 무섭고 우울했다.
그때 마침 울보 소녀와 화가 청년이 함께 공원을 찾았다. 둘은 공원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동판매기 앞 벤치에 왔다. 화가 청년이 백 원을 넣고 커피를 뽑으려 하자 지나가던 공원 관리인 아저씨가 “청년 그 자판기 고장 났어. 내일 바꿀 거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화가 청년은 단추를 눌렀다. 그때 자동판매기는 아픈 몸을 추스르며 힘을 냈다. ‘내 마지막 선물이야.’ 라고 말하며 백 원에 커피 두 잔을 내어놓았다. “흐음 분명 고장은 고장이지만…‧….” 화가 청년은 아쉬운 마음이 들어 한참을 서 있었다. 화가 청년과 울보 소녀는 이야기를 잠시 더 주고받더니 공원을 일찍 떠났다. 자동판매기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잘 가.’
그랬는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울보 소녀와 화가 청년이 다시 찾아 왔다. 화가 청년은 페인트통 몇 개와 그림 도구를 들고 왔고, 울보 소녀는 손전등 두 개를 들고 왔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화가 청년은 자동판매기에 슥슥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동판매기는 몸이 간질간질했지만 재밌었다. 그러더니 페인트를 붓에 묻혀 자동판매기의 몸에 슥슥 바르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칠하고 멀리고 지켜보고 한참을 칠하고 멀리서 지켜보고 그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울보 소녀는 손전등을 들고 화가 청년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비춰주었다. 자정이 넘어 달이 까무룩 회색 구름 속으로 얼굴을 숨길 때쯤이었다. 화가 청년의 작업이 끝이 났다. 화가 청년이 울보 소녀에게 말했다. “자 어때?” 울보 소녀가 말했다. “음 좋아요.” 화가 청년과 울보 소녀는 만족한 듯 웃으며 공원을 떠났다.
다음날 아침 관리인과 매점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 있었다. “누가 여기다 그림을?” “음, 그런데 그림이 참 멋있긴 한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야, 그림 참 잘 그렸네.” “아, 그런데 이 자판기 고장 나서 교체하려던 건데.” “커피가 잘 안 나와요.” 그때 마침 길을 지나던 깡패 청년이 다가왔다. “무슨 소리에요 아저씨 이 자판기가 얼마나 좋은데요.” 깡패 청년이 백 원을 넣자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된 자동판매기가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내어놓았다. “봐요. 잘 나오잖아요.” “음 이상한데.” “이거 바꾸지 마요. 그림이 너무 좋은걸.” 결국 공원 관리인과 매점 관리인은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며칠 후 깡패 청년이 다시 찾아왔다. 깡패 청년은 커다란 리어카를 끌고 오더니 오자마자 자동판매기의 몸을 툭 하고 쳤다. “야, 이 자식아. 나 네가 공짜로 준 음료수 배 터지게 마시고 술 끊고 정신 차렸다. 하핫.” 깡패 청년은 자동판매기 앞에서 군밤 장사를 시작했다. “군밤 사세요. 군밤.” 예쁜 그림이 그려진 자동판매기 앞에서 깡패 청년은 신나게 군밤을 팔기 시작했다. 봄이 되니 달콤한 솜사탕을 팔았고, 여름이 되니 달콤 시원한 팥빙수를 팔았다. 가을엔 다시 솜사탕을 팔았다. 장사는 잘 되었다.
깡패 청년은 장사 요령이 갈수록 늘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자동판매기 보이시죠? 이 그림 우리 고장 출신으로 유명한 화가가 된 그 양반 아시죠? 바로 그 사람이 그린 거라니깐요. 무명 시절에 바로 이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거 아닙니까? 헤헤헷.”
사람들은 깡패 청년의 말을 듣고는 자동판매기의 그림을 더 유심히 보면서 봄가을엔 솜사탕, 여름엔 팥빙수, 겨울엔 군밤을 사 먹었다. 깡패 청년은 계절에 따라 솜사탕 청년 팥빙수 청년 군밤 청년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그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공원에 도착하면 자판기를 한 번 툭 치며, “이 자식아! 나 왔다.”라고 인사했고, 집에 갈 때면 또 한 번 자판기를 툭 치며 “이 자식아, 나 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혹여 자동판매기를 발로 차기라도 할라 치면 자신이 먼저 화를 내며 못 그러게 막았다. 그 이후로 자동판매기는 사람들에게 잘 걷어차이지 않게 되었다. 자동판매기는 여름엔 깡패 청년의 머리 위의 열기를 식혀주려 애썼고, 겨울엔 깡패 청년의 손발을 따뜻하게 덥혀 주겠다는 소망을 항상 생각했다.
자동판매기는 옛날보다 더 행복해졌다. 자동판매기는 그 후로도 오래오래 깡패 청년과 함께 공원을 지켰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람들이 그토록 칭찬하는 화가 청년의 그림을 정작 그 자신은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자동판매기는 깡패 청년이 예쁜 소녀와 데이트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날이면 깡패 청년은 바지 뒤 호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자주 비춰보곤 했는데, 그때 자동판매기는 깡패 청년의 얼굴 뒤로 비치는 자신의 몸에 그려진 그림을 아주 조금씩이나마 볼 수 있었다.
공원을 잠시 머물다 떠난 두루미와 공원에 제일 먼저 스며들던 아침 햇살, 비 그친 후 연잎에 매달려 있던 작은 이슬과 그 연잎 위에 올라가 몸을 비비던 잉어가, 자신의 몸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자동판매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자동판매기가 사랑하는 공원의 일상이었다.
첫댓글 1.장점
-우선, 이글의 소재가 아주 참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가 자동판매기에게 감정을 불어넣어 희로애락을 표현할까라는 생각을 했죠. 또, 계절의 변화를 감정과 대비시키며 더욱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죠.
그럼 당근을 줬으니 채찍도....
2.아쉬웠던 점
-대체적으로 이 글의 서술은 좀 단순합니다.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드네요. 접속사를 활용한다면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을 해서 독자들이 읽기에 편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지금 시점을 보면 3인칭인데 자동판매기의 1인칭 시점이었으면, 조금 더 감정표현을 잘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쉽네요.
이상입니다.
자동판매기를 사람처럼 썼다고 해서 유치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이 너무 가볍지 않고 희망적이여서 좋습니다!
자동판매기가 사람처럼생각하고, 행동 하는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이고 마지막에 뭔가 따뜻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훈훈하게 해피엔딩이라서 좋은것 같고 깡패 청년과 소녀의 이야기도 더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자동판매기의 시점에서 사건을 전개한다는게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판매기의 시점이라서 그런지 약간 내용이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네요.
어린이들이 읽기보다 청소년을 위한 동화같네요ㅎㅎ .내용은 참 좋은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