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이야말로 <직관>의 현장입니다. 버펄로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5분 만에 걸음마를 하고, 하이에나에게 사지가 찢겨 발겨지는 능지처참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물의 왕 사자 새끼나 최상위 포식자 호랑이 새끼가 똑같이 당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 나는 소시오패스일까요? <직관>이냐 <지성>이냐를 놓고 아주 오랜 시간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와 칸트에게서 <지성>을 배워 성경 신학으로 확인했다면, 프로이트-라캉-니체-들레즈-베르그손을 통해 <<직관의 열린 사회>>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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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지성>만으로 닫힐 것인가, <직관>으로 열릴 것인가라는 존재의 방식 앞에 서있습니다. 내가 이해한 <지성>은 세계를 ‘고정하고 다루는 능력’입니다. <지성>은 세계를 분리하고, 개념화하고, 고정시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을 분석하고 기술을 만들며, 세계를 예측 가능한 대상으로 만듭니다. <지성>은 생존의 도구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동시에 한계를 지닙니다. 흐르는 생명을 정지된 그림으로 만들고, 타자를 객체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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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종교는 타락합니다. 신은 교리로 고정되고, 진리는 제도가 되며, 믿음은 권력이 됩니다. 결국 <지성>은 닫힌 체계, 닫힌 사회를 만듭니다. 반면 <직관>은 세계를 ‘살아내며 들어가는 능력’입니다. <직관>은 분리하지 않고, 내부로 들어가며, 흐름 속에서 함께합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며 생성됩니다. <직관>은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 참여하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직관>은 공감하고,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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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를 만지는 것말입니다. 종교 관련 베르그손에게 있어 신은 개념이 아니라 <체험>이고 신비주의라고 하더이다. 신비주의의 신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는 생명(엘랑비탈), 곧 우주적 생명과의 합일된 존재입니다. 그러니 참된 신비가는 자기 경계를 넘어 “모든 존재를 향해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화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창조로 움직이는 방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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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형님의 '힘에의 의지'는 생명의 폭발입니다. 들뢰즈의 '차이와 생성'은 고정된 존재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베르그손의 그 흐름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것이 <직관>아닙니까? 물론 지성이 필요합니다. <지성>은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한 도구이니까요. 그러나 <직관>이 없으면 삶은 죽은 체계가 됩니다 지성은 길을 만들고, <직관>은 그 길을 살아냅니다. 종교 역시 지성에 머물면 교리가 되고, <직관>으로 열리면 사랑이 된다는 것 아닙니까? 나는 지금, 이해의 자리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흐름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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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거리 31회입니다. "화 안 낸다고 말해줘... 네가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니 엄마가 너 버린 게 아니야(앞으로 너랑 말 안 해)" 창만이 솔직하면 할수록 유나는 상처를 받나 봅니다. 유나의 애인을 자처하면서 유나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주려는 가상한 노력을 유나가 알아주지 않으니 창만은 답답하고 애가 탑니다. 유나도, 엄마도 진심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세희 찾았냐(아빠랑 같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희도 세희 아빠도 아무리 악인이라도 자식 사랑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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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가 수-랩에 입원(상주) 하는 문제로 고민 중입니다.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이 무엇일까? 아내가 원망스럽지만 내가 아내를 미워하면 아이들이 싫어할 것이고, 아내를 무시하고 에스더와 동패로 가자니 아이들의 부담을 나 몰라라 하는 나쁜 아빠가 아닙니까? 지금으로선 아직 정확한 결정을 유보한 채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바른길을 인도해 주시길 기도해 주시라(2021.1.1) 그 시각 세희는 아빠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옛날 공주들 키울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내가 보기에 세희 아빠는 너무 늦은 것 같네요. "사는 게 다 사기야... 사람의 진심이 너무 그리워... 지쳤어... 그리고 나 같은 년은 사랑을 입에 담으면 안돼... 진실한 사랑은 사업이 될 수가 없다(좋은 꿈 꾸고)" "모기가 있다... 잡았다(어디 봐요)... 감히 우리 예쁜 딸의 피를 먹으려고 들어오다니 용서가 안 된다(세희 아빠)" 세희를 데리고 아침 일찍 경찰서 앞으로 세희, 엄마, 아빠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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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복은 차마 그 자리에 끼지 못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세희 아빠의 간청에 아침을 먹는 세희네 가족들. 세희 아빠가 다시 합치자는 말을 하고 세희를 이용합니다. 부킹 언니는 단호하게 자기 입장을 말합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 '용서 절대 불가'를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말하는데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유나가 단단히 삐쳤는지 창만과 말을 안 합니다. 빨래 걷어온 창만에게 흔들흔들. 미선 언니 필드 나갔다며 스윙 폼을 잡는데 오우, 자세 제대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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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 타는 칠 것 같아요. 유나가 얼굴도 예쁘지만 연기를 굉장히 잘하지 않나요? 지금 힘들더라도 참고 잘 기다리면 김옥빈 양도 반드시 뜨고 말 것입니다. 귀여운 여자 유나 파이팅! 유나가 미선 언니 대신 카페에 왔는데요, 남수가 유나에게 하소연 비슷한 충고를 합니다. 유나가 병원 비를 내준 바람에 바닥 물이 흐려졌다는 것 같습니다. ‘훔치고 돌려주고 하면 생산성 제로‘라는 말일까요? 유나가 세희를 데리고 쇼핑을 한 후에 고아원에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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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사준 것이 새 출발을 하려나 봐요.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작가가 이번엔 다영과 유나의 만남을 세팅해 놓았어요. ‘상처는 상처로 치료 한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유나와 다영의 속 깊은 대화 속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이 시점이 결자해지의 터닝 포인트로 봅니다. 딸들은 누구나 가슴에 엄마 사진을 한 장쯤 품고 있나 봐요? 우리 딸 남의 딸 할 것 없이. 오늘은 자봉 아줌마가 오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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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노인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자봉 줌마를 기다렸고 짱구 엄마가 도끼 오빠에게 정이 들었는지 질투를 하네요. “지가 구청에서 나온 자봉이라면 난 콜라텍에서 나온 자봉이다.”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도 노인들만의 경륜입니다. “오빠, 오빠는 넓은 가슴팍이 젊었을 때 여자들 많이 안아봤겠네요(짱구 엄마)” “많이 안아봤지 지금은 내 가슴만 남았어(도끼 영감).” “오빠 고개가 아파요(짱).” “기대도 돼(도끼)”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필요했던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어깨를 내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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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그 어깨에 기대는 명장면이 감동입니다. 유나와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세희는 즐겁기만 합니다. 칠복도 그런 유나가 고맙죠. 유나의 고아원 방문 소식이 다영을 통해 일파만파가 되었고, 맘보와 홍 여사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의 한 부분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사회가 좋아진다고 보는 해방신학을 반대하지만, 그렇더라도 성도라면 흙탕물 속에 끊임없이 샘물을 뿜어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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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창만과 함께 현정을 찾아갑니다. 오랜만에 보는 현정은 많이 어른스러워져있습니다.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현정은 유나의 발에 매니큐어를 해 줍니다. 바리스타 친구가 밤새 만든 커피를 마신 창만의 찬사에 잠을 못 잘 거랍니다. 철든 소녀들이 베푼 섬김은 성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의 헌금일 것입니다. 보호관찰소를 나온 유나가 갑자기 터져버렸습니다. “매일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어. ”Don't cry, Esther!
2026.4.26.sun.앙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