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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왕들이 누린 최고의 음식체계
오늘은 조선시대 왕들이 누린 최고의 음식체계에 대해 살펴보죠.
장동민 한의사, 연결돼 있습니다.
(전화 연결 - 인사 나누기)
Q1. 지난 시간에 왕이 누렸던
의료체계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음식도 최고의 식단을 누렸겠죠?
네 맞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왕은 최고의 음식문화를 누렸는데요, 일단 궁중 음식은 전국에서 생산된 음식재료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고 맛이 뛰어난 것들만 특별히 골라서 진상된 각 도의 명산물들을 모아 만든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열세 살에 입궐하여 수십 년 동안 궁중음식을 조리하는 일만을 전문적으로 해온 솜씨 좋은 주방 상궁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음식이니, 당대의 최고 음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통 궁중 살림은 중전 즉 왕비의 총괄 아래 각 궁에 상궁을 배치하고 각 처소에서 분담하여 거행하는데요, 13세에 입궁한 아기나인을 ‘항아님’이라 하며, 입궁한 지 10년이 지나 23세가 되면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 관례를 올리고 어른 대접을 받는 내명부의 품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다시 10년이 지나면 상궁 봉첩을 받아 벼슬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직책에 따라 품계가 주어집니다.
Q2. 그렇다면 이 때 주방 상궁도
임명되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주방 상궁이 되려면 13살에 입궁한 뒤에, 스승을 정하여 20년 동안 전수를 받아 33세가 되면, 그제야 주방 상궁 첩지를 받게 되고, 이후 평생 ‘수라간’ 즉 궁중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 그 전문성이야말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수라상의 음식은 왕의 전속 요리사들이 만들었는데요, 왕비와 세자에게도 전속 요리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각 전각에 딸린 음식 만드는 곳을 수라간이라 하였는데요, 수라간에는 생과방(生果房)과 소주방(燒廚房)이 있었습니다. 이중에 더운 요리를 담당한 소주방은 ‘조석수라’ 즉 아침과 저녁식사를 장만하던 내소주방(內燒廚房)과 크고 작은 잔치 때 다과와 떡을 만들던 외소주방(外燒廚房)으로 나뉘었습니다.
Q3. 임금의 일상 식사를 준비하는 곳과
연회 때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
각각 따로 있었나봐요?
네 맞습니다. 이에 비해 생과방에서는 평상시에 수라 이외의 음료와 과자인 각종 전과와 화채 밀수 수정과 식혜 대식 떡 생과일 등을 담당하였다고 하는데요, 지금으로 치면 디저트와 간식을 준비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각 요리마다 전문 요리사가 배치되었는데요, 수라간에서 밥을 짓는 일은 반공이 담당하였고, 생선 요리는 자색, 두부 요리는 초장, 고깃살 요리는 병사옹, 떡은 병공, 술은 주색, 차는 차색 등이 담당하였으며, 각자의 특장에 따라 책임지는 요리가 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요즘의 주방장이라 할 수 있는 반감이 이들을 관리하였으니, 이토록 그 전문성이 세밀하였습니다.
Q4. 요리마다 전문 요리사가
각각 배치되었다니 어마어마하네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수라상에 이용되는 식기류는 ‘은기성상’이라는 곳에 보관하였는데요, 대체로 은이나 놋쇠, 도자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때가 되어 수라간의 음식이 준비되면 은기성상에서 식기들을 가져다가 수라상을 차렸는데요, 궁중의 그릇은 단오부터 추석 전날까지는 백자그릇을 이용했고요, 추석부터 다음 단오전날까지는 은그릇과 유기그릇을 상에 올렸다고 합니다.
또한 수저는 항상 은제를 사용하였으며, 도자기는 분원요에서 생산된 분원자기를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수라상은 장자색에 의해 왕이 계시는 곳으로 옮겨졌는데요, 그러면 왕을 모시던 시녀나 내시가 수라상을 받아서 왕이 드실 수 있게 차렸다고 합니다.
Q5. 그릇부터 운반까지
철두철미하게 체계가 잡혀 있었네요?
네 맞습니다. 이 때 내시부에서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보다는 전체를 주관하고 대접하는 일을 주로 맡았는데요. 내시부는 궐내 음식물의 감독, 왕명의 전달, 궐문의 수직(守直) 즉 지키는 일과, 소제 즉 청소의 임무를 맡았는데요, 음식관련 업무를 맡는 내시는 상선(尙膳), 상온(尙饂), 상차(尙茶)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상선은 종 2품 벼슬로 식사에 관한 일을 맡았는데 정원이 두 명이고, 상온은 정 3품 벼슬로 술에 관한 일을 맡았으며 정원은 한 명이며, 상차는 정 3품으로 차에 관한 일을 맡았고 정원은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의녀가 된 장금이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역할로 나타났었는데, 실로 그 위세와 권한이 막강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Q6. 이렇게 많은 인원이 철저하게 준비하니..
최고의 밥상일 수밖에 없겠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준비 과정 못지않게 복잡하고 힘든 것이 또 있었는데요, 바로 식사 시중이었습니다. 왕이 밥을 먹을 때 옆에서 시중을 드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요, 일단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수라 상궁은 여러 나인을 시켜 수라상을 왕에게 가져갔습니다.
수라상을 올릴 때는 수라 상궁 세 명이 거행을 하는데요, 그 가운데 ‘기미상궁’이라 하는 나이가 많은 상궁은 검식을 하고, 또 한 명의 상궁은 그릇의 뚜껑을 여닫는 시중을 들며, 나머지 한 명의 상궁은 전골 만드는 일을 담당합니다.
Q7. 아, ‘기미상궁’ 이야기는 알아요.
왕이 먹기 전에 먼저
맛을 보는 상궁을 말하는 거죠?
네 맞습니다. 이렇게 기미 상궁이 먼저 음식을 먹어 보고 아무 이상이 없어야 왕이 수저를 들게 되어 있었는데요. 원칙적으로 기미상궁이 먼저 음식을 먹어보는 까닭은 음식 맛이 좋은 지 맛보는 것도 이유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독살의 위험을 방지하는 절차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실제 조선시대 왕이나 왕자 중에는 독살로 의심되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요, 특히 왕이 쓰는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이 모두 독에 닿으면 색깔이 검게 변하는 은으로 만든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는 몸에 해로운 독극물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는 검식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Q8. 대표적으로 독살 의혹이 있는
왕들은 누구였나요?
일단 인종의 경우에 계모인 문정왕후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손을 썼다는 얘기가 있고요, 선조의 경우에도 광해군이 총애하던 김개시라는 상궁이 드린 떡을 먹고 승하했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인조가 미워하던 소현세자는 돌연사 했는데 시체가 검게 변해 의혹이 있었고요, 효종이나 정조도 급사하는 바람에 의혹에 싸인 적이 있습니다.
특히 고종과 순종이 아편이 들어간 커피를 마신 얘기는 유명한데요, 실제 범인이 누구인지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순종은 이 때문에 건강을 크게 해쳐서 바보와 성불구가 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며, 건강했던 고종이 급사한 이후에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기미년 삼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Q9. 이렇게 독살 위험에 떨어야 했다니,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소화가 잘 안되었을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조선시대 왕들 중에는 이렇게 좋은 밥상을 눈앞에 두고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경우가 참 많았었는데요, 아예 거식증 수준까지 갔던 왕들도 있습니다. 문종이나 예종처럼 예법을 지키다 그렇게 된 왕도 있었는데요, 성종의 경우에는 몇 개월간 찬물에 밥을 말아먹기도 했었습니다.
세종의 경우에는 육식 즉 고기 먹는 것을 너무 좋아 했었는데요, 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을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 태종이 자신이 죽고 나면 법도에 상관없이 세종에게는 고기를 먹게 하라는 유언을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지금까지 장동민 한의사와 함께
‘조선시대 왕들이 누린 최고의 음식체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