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에는 베드로가 병자를 고치는 장면과 그의 두 번째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절을 보겠습니다.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다.
2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거나 불길이 솟아나는 것 같은 혀들이 나타났다는 기록들은 사실성 여부를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한 극적인 장치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이야기, 그러니까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여기서 방언이라는 표현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만 본문이 말하는 방언은 그냥 외국어라는 뜻입니다. 4절을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4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명절에 재미교포, 재일교포, 중국에 사는 조선족 등 외국에서 사는 모든 한민족 사람들이 모였는데, 시골에서 나고 자라 외국에는 가본 적도 없고 외국어를 배운 적도 없는 사람들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말했다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황홀경에 빠져 이상한 말을 했다는 게 아니구요. 이어지는 본문 5~8절을 보겠습니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와서 살았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 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의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서,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외국에는 가본 적이 없는 갈릴리 시골사람들이 여러 외국어로 말하는 걸 보고 디아스포라들, 즉 이방민족의 땅으로 흩어져 살다가 예루살렘에 와 있던 유대인들이 놀라는 장면입니다. 누가는 이 이야기를 성령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실제 일어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교인들에게 신앙교육을 하기 위해 역사 기록의 형태로 쓴 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인데, 놀란 디아스포라들에게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현상이 어찌된 일인지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로 오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과, 무지한 자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의 역사를 지금 그들 디아스포라들이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디아스포라들의 반응에 대해 기록한 본문을 보겠습니다. 37~42절입니다.
37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잘못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의 시간차는 50일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선교명령을 받고 복음을 전파하기까지의 시간차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본문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답니다.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갈릴리 시골 어부였던 사람이 유창한 언변을 구사하는 엄청난 능력의 설교자로 변신해 약 삼천 명 정도나 되는 사람이 새로이 신도가 되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천년 전 사람인 사도행전의 기록자는 진실로 그럴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을 읽는 현대인이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다는 이유로 그대로 믿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공부하지 않아도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충만을 받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고 능력 있는 신학자나 설교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생겨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오늘날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공부는 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만 한 사람을 서울대에 합격시켜주려면, 누군가 자격을 갖춘 사람이 떨어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런 분일까요?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본문의 이 설교를 정말로 베드로가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가 아니라 베드로의 입을 빌은 누가의 설교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그렇게 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 수천 명의 초대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43~47절을 보겠습니다.
43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45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믿는 사람이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답니다. 이 정도면 공산주의의 이상이 초대교회에서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예수는 빨갱이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