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도서관 옆, 약속된 시간 09:20에 모여 박태원 목사님께서 몰고 오신
선산순복음교회 봉고차를 타고 문경새재를 향해 출발했다.
목사님께서는 선산 IC에 올리시기 직전 최재건 국장에게 핸들을 맡기셨다.
아니, 핸들을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최국장의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셨던 것이다.
최국장 또한 운전을 직접 해야 멀미기운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탁을 했던 것 같다.
혹시 뜻하지 않은 사고라도 난다면? 운전을 잘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웃는다.
이번 선주문학회 번개모임을 제안했던 박윤희 선생님과 조미애 님은
차 안에서 애써 준비한 음식(사과, 오이, 달걀, 곶감, 고구마, 박카스 등)들을
일일이 회원들에게 나눠주면서 챙겨주셨다. 덕분에 빈 배낭이 먹거리로 가득 찼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상주 IC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들 때엔 내리던 비가 거의 그쳐 있었다.
점촌에 사시는 창동교회 박태원 목사님은 우리 일행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고,
성과 이름의 한자까지도 똑같은 두 박목사님께서는 만나자마자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면서
우리 회원들을 즐겁게 해 주셨다. 문경 호계면을 지날 때는 차창 오른쪽으로
육군체육부대 가 한창 건설 중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안개가 어슴프레 끼어있던 가은 마성면 일대를 지날 때는
이일배 교장 선생님께서 살고 계신 마을 쪽을 향해 고개를 빼들기도 했다.
어느 새 새재 일관문 입구에 도착했다. 과연 최국장은 빗길을 달릴 때나 얼음길을 달릴 때나
별 무리없이 안전하게 운전을 잘해줬다. 믿음직스러웠다.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다들 등산과 트레킹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국장과 조미애님은 문경새재에 처음 온다면서 매우 감격해 했다.
점촌의 박목사님은 우산을 받치고 계시지만 실제로 비는 거의 오지 않는 상태다.
살얼음이 얼어있는 길이 다소 미끄럽긴했다.
반송지기 김낙교 선배님은 최근 사진기 하나를 구입하셔서 오늘 처음 활용하신다고 했다.
오늘의 번개모임이 그 사진기에 고스란히 기록될 것으로 예상되고, 내가 간간이 찍는 사진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한다. 사진기의 색깔이 분홍빛이라서 눈에 확 띄고 강렬하다.
원터 바로 앞의 정자 안에 들어가 배낭에 가득했던 먹거리를 꺼내어 놓았다.
간식 시간인 셈이다. 삶은 달걀, 곶감, 오이 등을 맛있게 먹으면서 참 행복했다.
음식물을 준비해 주신 조미애님과 박윤희 선생님께 감사해 하면서.......
길이 미끄러워서 준비해 간 아이젠 한 짝을 꺼내어 등산화에 고정시켰다.
나머지 한짝은 박태원(선산)목사님께 드렸다. 박목사님은 구두에 가까운 신을 신고 계셔서
미끄런 얼음길을 걷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용추 약수, 바위 틈에서 나오는 석간수(石澗水)다.
바닥돌을 깎아 샘을 만든 뒤, 바듯한 천정석과 큰바위를 층층이 쌓아 만들었다.
규모와 형태로 보아 옛 길손은 물론 성내 군사용으로 요긴하게 쓰이던 샘으로
조곡관 축성 당시(선조 27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 강점기에 새재길을 확장하면서
토석에 묻혀 오랜 세월 세간에 잊혀 있던 것을
2003년 10월에 복원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관심을 끈다.
용추(龍湫), '용추'란 이름은 우리나라 명산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용이 하늘로 승천을 했거나 해서 용의 전설이 담긴 물웅덩이란 뜻일 것이다.
교귀정(交龜亭)
꾸루리 바위, 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큰 꾸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한겨울인데도 단풍나무의 잎은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고스란히 매달려 있다.
날이 추워지면서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나무 스스로 잎을 붉혀서 버틸 대로 버티다가
막바지엔 온몸을 털어 앙상한 겨울을 보내는 것이 보통일진대, 이곳의 단풍나무들은
그 좋았던 가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저렇게 붉어 있나 보다.
박윤희 선생님은 어느새 단풍잎 하나를 주워들었고 조미애님은
그 단풍잎에 관심을 보이며 하얗게 웃고 있으시다.
‘산불됴심’이란 표지석, 이곳을 지나면서 다들 어떤 생각들을 할까?
이 표지석은 언제쯤부터 여기에 서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적어도 ‘됴심’이란 표기를 근거로 해서 추정해 보면 어떨까? 오늘날의 표현이 ‘조심’이니
아직 구개음화(‘ㄷ’이나 ‘ㅌ’이 각각 ‘ㅈ'이나 ‘ㅊ’으로 변화되는 것)가 일어나지 않았고,
이중모음(‘ㅛ’)이 단모음(‘ㅗ’)으로 변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임진왜란 이전)의 표기가 아닐까 하는데......
곳곳에 눈이 쌓여 있거나 바위 위로 흘러내린 고드름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겨울임을 실감한다.
제2관문(조곡관) 도착, 3킬로 정도를 걸어온 셈이고 3관문까지는 3.5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
회원들의 전체적인 의견이 오늘은 여기까지 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가자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3관문까지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을 발견한 조미애님은 두 손으로 안아 카메라 앞에 섰다.
작은 눈사람도 있다. 작은 놈이 큰 놈 옆에 그윽하게 기대었다. 암수 구분이 없어도 보기가 좋다.
새잿길은 얼음과 비가 섞여서 반쯤은 얼어있는 상태여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버적버적 소리가 난다.
회원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팔왕휴게소, 시를 쓰고 섹소폰을 연주하는 멋쟁이 주인장, 꽁지머리 정**님은 없었다.
새잿길을 오르내릴 때면 한 번씩 들러서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그분이 연주하는 섹소폰 소리를 듣노라면 그저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오늘은 손님도 별로 없고 해서 시내에 볼일 보러 갔단다. 안 주인의 말이었다.
오미자막걸리 한 통과 소주 한 병, 그리고 부추전과 파전을 안주로 시켜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안주인께서 우리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섹소폰 연주를 시작한다.
예상 밖의 서비스에 회원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우리의 신청곡 또한 곧바로 받아들여져
온 산천에 울려퍼지니 휴게소 주변의 수목들도 덩달아 장단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왕복 6킬로 정도의 가벼운 산행을 마치고 초곡관 식당 옆,
두부전골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창동교회에 잠시 들렀다.
90여 호의 가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가난한 동네에 들어선 창동교회,
목사님의 안내로 그 안에 잠시 들어가 보았다. 예배당 왼쪽에는 목사님께서 직접 쓰신 시가
현수막에 게시되어 있었는데 그 시를 사진으로 담아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첫댓글 박윤희선생님께서 계획하셔서 추진하신 문경새재 등반에, 저도 감히 동참해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여기에사진들이 결어나올것만 같습니다
그날 한분 낙오자없이 잘다녀오게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