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미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죤 스타인백(1902-1968)이
1939년에 처음 발간된 장편소설입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김승옥 옮김, 1, 2권 합해서 981페이지 입니다.
1930년도 초반 미국의 대공황 속에서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고 아파하는 일반 미국인들의 모습을 적확하
게 묘사한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 사물을 사진기로 찍어내듯한 묘사가 숨막힐듯 몰아가는 정말로 강렬한
사실주의 소설입니다
미국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1930대 대공황 시절에 지주는 대지주가 되고 은행 빚을 갚지 못한 땅주인들
은 트럭에 모든 짐을 싣고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그들은 설 곳이 없었고, 일자리
를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가진 자들은 노동력 임금을 떨어뜨리려고 애를 씁니다. 하루 종일 일해도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가 아주 힘들게 됩니다.
나는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와 아메리칸 드림으로 미국을 동경하며 자란세대입니다. 하나님
의 축복받은 청교도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포도가 영글어 터질만큼 어려운 시대를 분노로 살아낸 사람
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책을 읽고 슬픔과 분노를 공감하며 그들이 어떻게 공동체의 문제들을 극복했나를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톰 조드는 자기방어로 살인죄를 범하고 오클라호마 형무소에서 복역하고, 형기를 마친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과거에 목사를 지낸 짐 케시와 만난다. 예전에는 목사였지만 이제는 방랑하는 일종의 사회개
량주의자인 짐 케시다. 두 사람은 황폐한 농촌지대를 지나 톰의 집에 당도했다. 집은 이미 폐가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남아 있는 소작인에게 물어보았다. 그 지방 농부들은 거의가 캘리포니아로 이주 했거나 아니면
이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드 일가도 친척 집에서 이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1934년 11월 11일, 휴전 기념일부터 불기 시작한 황사풍은 남쪽 텍사스 주로부터 북쪽은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대 초원을 휩쓸어 거의 2년이나 계속되었다. 중부 지방의 농민 수십만 명이 정착하여 살 수가 없
었다. 매일 쏟아지는 황사 때문에 풀도, 나무도 살지 못했다.
오클라호마 농민들은 연이어 흉년이 닥치자 조상 대대로 지어오던 농토를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았다. 모
래에 파묻힌 농토는 자본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조드 일가도 이런 이유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뻬앗겼다. 캘리포니아 과수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조드 일가는 팔
것은 모두 팔아버리고 가족 11명이 덮을 것과 식기만을 가지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은 같은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는 2천
킬로미터나 된다. 가는 도중에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죽었다. 길가에 시신을 묻고 다시 서쪽 길을 재촉
했다. 할머니도 과로로 길 위에서 숨졌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도의를 지
키고, 협력하면서 푸른 계곡의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
푸른 평원에 복숭아와 포도가 영글고 있었지만 이미 일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그들에게는 낙원이 될
수 없었다. 노동자 임금이 떨어질대로 떨어지자 그들은 싼 임금으로 과일 통조림을 만들어서 큰 이득을
보고 있었다. 과일이 풍부한 캘리포니아에 살면서도 그들은 굶어서 죽는 일이 일어나자, 가슴 속에는 분
노가 가득했다. 분노의 포도가 영글고 있었다.
조드 일가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메고 다녔다. 조드의 장남인 톰은 복숭아 밭에서 일했다. 그곳
에는 공장 노동자의 파업을 지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클라호마에서 같이 온 전 목사인 캐시도 그 중
의 한 사람이었다. 톰이 보는 앞에서 파업 노동자를 진압하는 사람의 곤봉을 맞고 캐시가 쓰러졌다.
목화 채취 일을 하게 된 조드 일가는 망가진 화물차에서 생활한다. 톰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외출조차
못했다. 이곳에서도 장마가 시작하니 사람들은 기근과 병으로 고통 받았다. 냇물이 불어서 화차의 바닥
까지 차올라 왔다. 이때 사위인 코니는 달아나고 임신한 장녀가 사산을 한다.
가족들은 홍수를 피해서 언덕 위의 오두막 집으로 옮겼다. 오두막 집에는 이미 두 사람이 있었다. 굶어
죽어가는 남자와 그를 간호하는 소년(아들)이었다. 조드 아내는 막 사산한 딸에게 귓속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 사이에 장녀는 다 죽어가는 남자 옆에 누어서 가슴을 헤치고 그 남자에게 젖가슴
을 물려 그를 살린다. 그리고 그녀는 신비스런 웃음을 지었다》.
조드 일가와 같이 캘리포니아 약속의 땅으로 가는 사람들은 냉엄한 현실,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그러한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단결과 단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치면 모든 절망
들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게됩니다. 절망을 극복하는 매체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작
품의 마지막 장면에 주제이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등장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사람들의 분노가 번뜩이고 그것을 조장하는 악한 영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함
과 인간존엄성을 배우며 분노와 증오가 판치는 잘못된 나라가 아닌 따뜻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 열정의
꽃이 소망으로 만발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이 나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사야 12:3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한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미움과 증오가 깃든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오실 자
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들어오셔야만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전에는 우리 가족을 먼저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죠. 서로 도와가며 살아
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전도서 4: 9-12 인용)
분노에 찬 강력한 저항이 아니라 고통에 신음하는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승화
시키는 구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01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