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 김효진
그러지 말라고 해도 남편은 또 내 뒤를 따라나섰다. 내가 운전을 하며 다닌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건만 아직도 마음이 안 놓이는가 보다.
아침에도 남편은 종이에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이쪽으로 돌 때는 이리로 붙어야 되고 반대로 갈 때는 원심력에 의해서 이렇게 해야 된다며 몇 번씩 설명을 하더니만 내 대답이 영 신통치 않았는지 오늘 한 번만 더 같이 가겠다며 나선 것이다.
그동안은 직장동료 차로 출근을 했는데 그가 전근을 가는 바람에 내가 차를 끌고 다니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운전을 하고 출근을 하던 날, 90년 대 초반에 딴 면허증만 있을 뿐 운전 경험은 없는 나를 위해 남편은 아침에 일찍 나가서 차에 기름 을 가득 채워오고 여기저기 점검을 하고 유리창까지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본인의 출근 시간보다도 한 시간이나 일찍 나서서 내 뒤를 따라 오다가 굽 은 산길이 끝나고 4차선이 보이는 데서야 차를 돌려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갔 다. 그리고는 저녁에 퇴근을 해서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느니 급커브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된다느니 하면서 내가 운전하는 방법을 지적했다.
4차선으로 올라서자 남편은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차를 돌린다. 남편차가 보이지 않으니 이젠 내 혼자 가야 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된다. 자세를 바르 게 하고 남편이 했던 말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잔소리를 들을 때는 기분 이 나빴지만 막상 혼자 운전을 할 때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핸들을 꼭 잡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을 본다.
30년 전의 일이다.
동네 할머니가 중매를 섰는데 내가 거절을 하자, 엄마는 저 나이가 되도 록 시집도 못가고 있으니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구시렁거렸다. 그래서 마지못해 맞선이란 것을 보러 나갔는데 그 쪽에서도 아버지 제사라 집엘 왔더니 약속을 잡아놨으니 꼭 가야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는 것이 다. 그래서 서로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 냈다.
그리고 그렇게 관심도 없다던 우리가 몇 번 만나고 바로 결혼을 했으니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인가 보다.
그런데 몇 달 못가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 생일이 된 것이다. 난 한껏 기대를 했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내 생일 에 그이는 어떤 선물을 해줄까?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도 그려보고 예쁜 반지도 생각해 보고 백송이의 장미도 그려보면서 빨 리 생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여느 때와 똑같이 출근을 했다. 난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저녁에 더 멋진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나보 다 여기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퇴근을 한 남편은 또 평상시와 똑같이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어버리는게 아닌가?
너무나 어이가 없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 서는 잠든 사람을 흔들어 깨워서 따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하 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비참하고...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혹시 모르니 다시 내일을 기대해보자며 잠자리에 들었다.
헌데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남편은 내 생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일이란 말조차 입 밖에 꺼내지를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럽고 치사하지만 따졌다.
“도대체 어쩜 이럴 수가 있느냐? 결혼하고 처음 맞는 내 생일인데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당신 같은 사람과 내가 왜 결혼 을 했는지 모르겠다.”
엉엉 울어가며 내 뱉는 내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이상하다는 듯 말을 했다.
“아니, 이 세상에 생일 없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그 게 뭐 그리 대 단한 건데?”
기가 막혔다. 세상에 어쩜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우리 집에서는 생일이면 엄마가 맛있는 떡도 해 주고 특별한 대접을 해 줬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런 사람이랑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돈 한 푼 모아놓은 게 있나, 자상하길 하 나, 친정엘 가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서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으 니 식구들 보기에도 창피하고, 내가 미쳤지, 아무 것도 따져보지도 않고 그 렇게 쉽게 결혼을 한 내가 바보지...
생각할수록 내 자신이 한심하고 허물투성이인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다. 그러나 어쩌랴, 노처녀 딸 시집보내서 속이 다 시원하다는 친정으로 보따리 싸들고 들어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돌아다니며 떠들어봤자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고, 애가 있으니 책임도 져야 되고... 그렇게 결혼 후 처음 맞은 내 생일은 실망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편은 어릴 때부터 생일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단 다. 어머니 혼자 8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들로 산으로 쫓아다니기 바빠서 애 들 생일까지 기억할 여력이 없었단다. 그러니 생일을 안 챙겨준다고 타박을 하는 내가 남편의 눈에는 철딱서니 없게 보일수도 있었겠다고 애써 이해를 했다.
그 이후로 난 남편에 대해 많은 기대를 내려놓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은 살아가면서도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서도 늘 외로웠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려 세상을 떠돌았다.
그렇게 삼십년을 살았다. 자식들은 학교만 졸업시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고 결혼만 시키면 내 임무는 다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결혼해서 식구가 늘어나니 기쁠 때도 많지만 그만큼 신경 쓸 일도 많아졌다.
힘이 들 때는 늘 만만한 남편한테 푸념을 해댄다. 그러면 그인 늘 묵묵히 듣고만 있다. 가끔씩은 반응이 없는 당신 때문에 내가 더 답답하다고 화살 을 그 쪽으로 돌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말없이 들어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가끔씩 남편이 없다면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몸이 약해서 무거운 것 하나도 들지를 못하고 농장엘 가도 냉이나 뜯고 꽃이나 보러 다닐 뿐 억척스럽게 풀 한 포기를 못 뽑는다. 거기다가 마음이 약해서 남들이 요구하는 걸 거절도 못하고 계산능력마저도 떨어지니 남편이 없다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아가 될 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변해 있었다. 내 생일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고기를 볶아서 나를 위한 생일상을 차려준다. 또 출장을 갔다 오는 날이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와 가방을 들어주고 내가 늦잠을 자는 날 이면 밥상을 차려 놓고 한 술이라도 뜨고 가라며 성화를 댄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해서 조금만 옹송거려도 따뜻하게 보일러를 올려주고 자다가 다리에 근육이 뭉쳐서 쩔쩔 매고 있으면 얼른 일 어나 다리를 주물러 주고 이불을 덮어줄 때면 역시 부부밖에 없다는 생각 이 든다.
남편하고는 찌개 하나만 남비 채 올려놓고 먹어도 괜찮고 쉬는 날이면 늦게까지 속 옷 바람으로 돌아다녀도 흉허물이 없어 좋다.
이제는 눈에 띄게 주름이 생기고 흰 머리카락이 늘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날의 미움도 원망도 다 사그라지고 다만 측은한 생각만 든다.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같이 힘들었고 같이 행복해 했던 사람, 살아오면서 부딪히는 온갖 풍파를 함께 헤쳐 오면서 서로 의지 가 되어 여기까지 와 준 사람, 그리고 언제까지나 내 편이 되어주는 돌아보면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우리에게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이렇게 서로의 버팀목으로 살다가 고이 하느님 품에 안기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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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수필가 프로필
충주 출생, 건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문학공간」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현 앙성중학교 전문 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