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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자동차 원 없이 탔네.
여행둘째 날이 밝았다. 잠잠하던 배안이 다시 시장 속으로 바뀌었다. 하루 밤 몸을 눕혀 평안을 덮었던 자리가 밝은 아침에 보니 어느 수용소 같다. 벽에 붙어있는 숫자며 촘촘히 깔아놓은 침구들. 한 방에서 지새운 일행들...., 그래도 어제 밤잠자리가 그다지 불편을 몰랐으니 잠처럼 좋은 약도 없다. 그놈이 들어오면 어떤 불편도 스르르 잊어버리고 자리를 가릴 사이 없이 평안해지니 말이다. 작은 창문으로 바라본 아침 물빛이 옅게 붉은 빛이다. 해가 빼꼼히 얼굴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 동쪽인 모양이다. 해돋이가 상큼하다. 부지런한 친구들은 벌써 몸단장이 한창이다. 낭만이라면 낭만이고 추억 쌓기라면 이보다 멋있는 추억은 없을 것이라 기대한다.
배안에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배에서 내렸다. 입국수속을 마친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현지가이드인 이해영이라는 아가씨다. 몸에 밴 능란한 말솜씨로 보아 꽤 오랜 경험을 가진 조선족 아가씨다. 직업상이지만 이국땅에서 우리말로 반겨주는 사람이 있어 낯이 설지가 않는다. 위동페리 (NGB V),우리가 타고 온 배가 하룻밤 인연이라고 내리려니 조금은 서운하다.
이국땅 중국에 왔다. 중국청도에 온 것이다. 이 나라는 인구 많고, 땅 넓고 일찍부터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나라인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우선 4가지가 없는 나라란다. 휴지, 문. 커피 그리고 가장 흔할 것 같은 녹차가 식당에 없단다.
청도는 대륙이다. 우선 차를 많이 타야한단다. 넓고 황량한 들녘이 계속되는 청도에서 여행하는 것은 타는 여행이라 한다. 기수라는 곳을 가기 위해서 3~4시간 차를 탔고 몇 군대는 차창 밖으로 눈요기만을 해야 한다. 청도의 상징인 잔교, 독일 총독관저나 소어산, 소청도( 독일에서 만든 등대), 천우봉, 오사광장이 그런 곳이다. 허지만 특별히 오사광장을 잠깐 내려서 그 광장이라도 둘러본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다. 혈투로 막아 내나라의 주권을 지킨 대학생들의 얼을 담아서 그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광장이다. 지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독일이나 일본의 식민지 로 지난 10년 혹은 20여년을 설음 속에서 살았다니 우리나라의 일제36년간의 압박과 설음의 날들이 떠올라 동병상련의 아픔으로 미루어본다. 그해가 1919년 삼일운동의 해와 맞물려 더욱 동질감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외치는 절규와 환희의 목소리들이 뒤엉켜 들려오는듯해서 사방을 둘러보게 된다.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젊은이는 곧 국력이라는 말이 맞다.
지배국들의 풍이 어린 건물들을 보면서 그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분노가 일 것이라 미루어 알 수가 있다. 또 한 편 성서에서 배웠던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민족 해방운동, 죽으면 죽으리란 각오로 투쟁하여 얻은 이스라엘민족의 주권회복운동도 얼핏 가슴이 서늘하게 한다. 1980년에는 이곳이,1988년에는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로 발전하게된 것이 목메게 감사했다.
청도에는 4개의 직할시가 있으며 한창 개발도중에 있는 신도시다. 지하철도 만들고 있고 조경도 잘되어있는 19639평방미터의 넓은 신도시다. 삼면이 바다인데 조경으로 바다가 보이지가 않지만 바다가 늘 그 자리에 있어 조경과 잘 어울어진 아름다운 도시라는 긍지를 갖고 도시 명을 중국의 유명한 이름을 따서 짓기도 했다. 그것은 그 도시들처럼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많은 인구들 중에는 외지의 유동인 들이며 한국인들도 8만 명이나 살고 있다니 살길을 찾아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200여개의 외국인 별장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3~4시간이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북방지역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고량주공장이다. 관광스케쥴에 포함되어있어 관광했지만 우리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고량이라는 곡식이며 참깨가 주원료라는 곡주로 농도가 아주진한 술이라고 한다. 어찌되었든 모두 섞여 질좋은 품질로 발효가 되는것은 우리에게도 교훈이되기도 한다. 내 속에 있는 각가지의 품성들이 신앙의 도가니에서 순도높은 신앙인으로 발효가 된다면 하는바람이 있다.
양자강을 중심으로 북방과 남방으로 나눠 북방에는 발전한 도시들이 많은데 임기라는 도시는 강북에서 제일 큰 소상품도시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에 흐르는 기수 강은 우리 한강과 비슷한 크기라고 한다. 15000평방킬로의 넓이와 인구 1000만의 넓은 곳이다. 한국과 가까운 곳이어서 기온도 비슷하고 이농현상으로 젊은이가 없는 것도 비슷하다. 차를 타고 건넌 해상도로는 지루 할 만큼 긴 다리라 싶더니 길이가 43킬로나 되는 전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라 한다. 우리인천대교보다 더 긴 다리라하니 놀라웠다. 건너다보니 흙 갈색 바다다. 푸른색은 어디 두고 이리 갈색으로 탁하기만 한가!
산동성에대해서는 어른들에게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곳이 인구가 9000만이나 되고 넓은 면적을 가진 거대 한 대륙이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또한 노나라와 제나라가 합해서 만들어진 곳으로 두 나라의 인물들이 집대성한 곳이라는 것도 놀랍다. 공자나 맹자, 왕희지, 제갈공명, 관장, 손문 등의 익숙한 인물들이 이곳에 서 출생했다니 그곳이 물이 좋은 곳인가 보다. 지금은 문화교육의 중심지이므로 유학생들이 많으며 한국유학생도 많다고 한다. 또한 관광자원도 많으며 그곳에 지하기수 대 협곡이라는 오랜 동굴은 지금 우리가 그곳을 가기위해서 오래 동안 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속설에 장가계 여행은 와와관광, 서안은 귀 관광이면 산동성은 차 관광이라더니 지금 우리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다. 대륙지역이라 관광지를 찾아가려면 끝없는 농토를 지나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허리가 휠 정도로 차를 타고 있다. 끝없이 계속되는 농토를 지나면서 논은 볼 수가 없지만 내 고향을 생각해본다. 밭작물과 과일들도 풍부한 것이 산동성의 특징이라 한다. 지금은 밀은 다 수확이 끝났고 땅콩농사가 한창이라는데 그 넓은 농토에 가꾸는 사람이 한 두 사람뿐 한가롭기 그지없다. 아마도 땅콩이나 밀 같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그런지 간간히 물을 주는 아저씨 의 모습만 보일뿐이다. 이곳에는 5~6개의 부족들이 섞여 살고 있어 언어는 있으나 문자를 갖고 있는 부족이 적다니 소통이 불편할 것은 짐작으로 알 수가 있다. 조선족도 30000명이나 살고 있으며 부족마다 풍속도 다르단다. . 티벳족은 남아가 나서 3살이 되면 모두 사찰로 데려가 키우고 장례문화도 특이해서 산장이나 수장을 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다시 자연으로 환생한다 믿어 하늘에서 나는 것이나 물속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먹지 않는다 고 한다. 죄지은 사람은 따로 토장을 한다니 대대로 죄인의 가문임을 씻을 길이 없을 것 같다.
아직 유일하게 모계사회로 현존 하고 있는 부족이란다. 결혼도 재미있다. 축제에서 즐기다가 눈이 맞는 사람들끼리 손바닥에 싸인을 주고받으므로 만난 두 남 여는 즉시 같이 생활을 한단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고 나면 그 아이는 외삼촌이 키우고 아비가 누구인지는 관계가 없다니 그곳의 남자야말로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는 자유인이다. 일처다부제의 사회라는 말이 생소하다.
차속에서 가이드의 입담도 들으면서 달리다가 내려 배를 타고 또 열차를 타고 가서 내린 곳이 천마도라는 곳이다. 정상인 정금산에는 거북이상의 바위가 있으며 돌로 된 산이란다. 두 사람씩 케이불카를 타고서야 정상에 이르렀다. 천마를 탄 장군인지 사람의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긴긴 시간 타는 관광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정상은 탄성을 지를 만큼의 절산이었다. 깎아지른 듯 한 희귀한 모양의 돌들은 예리한 장인의 작품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인간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그 장인의손길을 찬양할 뿐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펼쳐지는 바다며 수려한 경치. 사바가 내 발아래다. 서늘바람으로 머리를 감고푸른 하늘에 간간히 떠있는 흰 구름으로 너울 쓰고 서 있으니신선이 따로 없다. 어떤 일행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읊으며 폼을 잡기도 한다. 여기 나 외에 누가 있느냐 말이다. 산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겸허와 성찰의 기회를 주기도 하니 우리에게 교과서가 아닐 수 없다. 산은 나더러 욕심을 버리라하고 바람은 나더러 마음을 비우라하네! 어느 노래의 가사인 듯 자연스럽게 암송이 된다.
이곳에서 하산하여 2시간여의 달리기 끝에 도착한 곳이 기수 대 협곡이라는 곳이다. 길고도 신기하기 짝이 없는 동굴이다. 석순이나 석죽이 삼라만상을 짓고 있어 누구나 보이는 대로가 이름이다. 무엇보다 중간지점에서부터 출구까지 보트를 탄 것은 지금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그 보트는 2인승이라 반드시 두 사람이 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엉겁결에 혼자서 타고 그 어둡고 좁은 동굴 속 게다가 뒤집힐 듯 곡예를 시키는 급한 물살 위를 떠내려 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일생일대 잊지 못할 스릴과 외로움의 극치였다. 새삼스레 나약한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저 물 따라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점하나 , 무엇 때문에 그리 당당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나뭇잎 배에 탄 개미나 다를 게 없다. 어렸을 적 대나무 잎을 따서 배를 만들고 그 안에 억지로 개미 한 마리를 태우고 강물위로 띄워놓고 좋아라 박수쳤던 것이 새삼 죄로 떠오른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그 개미에게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 죽음의 계곡이었을까 싶다. 생각하면 내게 짧지만 긴 회고의 터널이었다.
4시간의 버스길에서 하루가 지나고 사위가 어둠에 물든 끝자리에 매달려 있다. 족발 요리로 호텔까지 경영하고 있다는 꽤 유명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거하게 먹었다. 아무튼 오늘 하루는 여러가지 이야기로 거하게 보낸 셈이다. 이번여행에서는 별로 음식이 역겹지 않은 것이 펵 다행이다.
청도 글로리 라는 4성급호텔에서 마지막 여행지의 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은 주일이다. 타국에서 맞는 주일은 그 느낌이 다르다. 주일 새벽 예배를 드리는 것은 더욱 감회에 젖는다. 얍복강 가의 야곱도, 에셀나무 밑에서의 아부라함 도 아주 친숙하게 다가온다.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부목자의 인도 따라 일행들이 함께 드리는 그 곳에 주님이 임재하심을 느낀다.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하셨던 그 주님이 이곳 이국땅까지 함께 오신 것이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님 모신 곳, 그곳이 천국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석도라는 곳이 이번 여행지의 마지막코스다. 또 아주 많이 타고 달려서 찾아온 곳은 장보고 기념사찰이다. 우선 우리나라가 낳은 장보고! 이웃나라에서 이리 거성으로 받들고 있음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우리의 혈육임에 반갑고 자랑스럽다. 바다의 신이라 불렀던 어린시절 이었다.
기억해 보건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인물들이 시대를 따라 참 많았다. 허지만 이처럼 기념하고 길이 남길 보관이 조금은 소홀하지 않나 하는 느낌을 해본다. 어떤 이는 외국의 어느 곳인지도 뚜렷이 알지 못하는 곳에 묻혀 외롭게 지내고 있는 인물도 있다니 면구스럽다.
꿈에서 본 대명신사와 장보고가 너무 닮아서 놀랐다는 그 신사의 좌상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니 바다와 벌판이 어우러져 이곳 또한 절경이다. 마음에 일고 있는 생각은 여기에서도 다르지가 않다. 중국이라는 땅 곳곳에 많은 감탄할만한 절경을 주신 신의 깊은 뜻은 무엇일까 말이다. 그 나라에서는 십자가를 볼 수가 없다. 그 나라의 밤은 아직 어둡다. 네온은 반짝이지만 십자가의 불빛은 볼 수가 없어 어둡다. 그들이 신의 깊은 뜻을 알아차릴 때를 기다려주시는 걸까! 이번이 두 번째 여행이지만 역시 돌아가는 길이 허허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오는 배로 이동해서 밤새껏 바다 위를 지나면 내일 아침이 되어서 고국 땅에 도착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4박 오일동안의 여행이 잊지 못할 한 토막으로 남을 것이다. 차도 원 없이 타봤다. 그 곳에 아쉬움 한 자락 묻어두고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다. 그 땅에도 십자가의 불빛이 하나씩 밝아지는 날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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