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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자 스크랩 [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7월호, 제165회 신인상 수상작] 세 번째 이별 - 이정식
신아출판 추천 0 조회 100 15.07.07 16: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는 동안 늘 지각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괘념치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로 이를 만회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각이 용기의 샘이었습니다. 호구지책으로 기초과학을 가르쳐온 약 36년 세월은 호구糊口, 문학과 간극을 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글은 늘 썼습니다. 노트 몇 권을 채웠습니다. 근무처 신문에 칼럼이라 하여 투고하면 활자화되기도 했습니다. 퇴직 후 대학평생교육원 수필반을 분주히 오고 갔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메모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언행의 성찰과 알맞은 어휘들을 찾는 습관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세 번째 이별        -  이정식


   난생처음 애완견을 입양했다. 직장 선배가 키우던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를 낳아 줄 곳도 팔 재주도 없다며 길러보라는 강권에 굴복하여 데려온 강아지였다. 그놈을 데려오자마자 걷는 모양을 본떠 종종이라 붙여주었다.
   나의 아내는 그때까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가족이 되었으니 예우를 해 주기로 했다. 삼 일이 걸려 나무로 집을 정성껏 만들었다. 내 생전 처음 지어본 집이었다. 자신의 단독주택이 생겼음에도 종종이는 마당가 맥문동밭에만 숨어 있었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하여 떠나고, 늙은 부부만 사는 적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기척이 한동안 없으면 조그마한 머리를 들고 꺼이꺼이 처량하게 울었다. 어미를 찾는 것만 같아 입양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데려온 늦둥이 자식이 아닌가. 생선을 구워 살을 발라주고 매일이다시피 목욕도 시켜주었다. 늙은 노인네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며칠이 지나자 주인을 알아본다는 듯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기도 했다. 두 달을 보내니 제법 애완견 행세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없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배설을 하여 깨끗하던 주변이 더러워지라고 아내는 목줄을 하여 묶어두지 않으면 돌려주라고 성화를 댔다.
   나는 천성적으로 목줄과 고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목은 생사여탈의 중요 부분이다. 목은 살고 죽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신체 기관 중 하나이다. 직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목이 날아갔다고 한다. 비록 개라 할지라도 목줄을 감아두는 것은 견권犬權을 유린하는 것이다. 종종이도 목을 묶어두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종종이가 목줄 없이 뜰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했다. 종종이가 방범을 담당하고 재롱을 부리니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은 주인의 임무이다. 종종이는 덩치가 작은 종이지만 일 년쯤 지나니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개의 야성이 드러난 것이다. 목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 덩치만 한 고양이와 싸워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나를 젖히고 마당의 당당한 주인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종종이의 행동이 달라졌다. 종종이가 마당을 가로지르는 복개천覆蓋川에 있는 쥐구멍을 뙤약볕을 마다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반시간이 지나 무심코 밖을 내다보니 종종이는 큰 쥐를 잡아 발로 눌렀다가 물어 흔들며 놀고 있었다. 비실거리는 쥐를 집게로 집어 쥐구멍에 다시 넣어 주었다. 복개된 개울은 쥐의 천국이었는데 종종이로 인해 이젠 지옥이 되었다. 종종이가 오면서 쥐들 사회에 경계령이 내려졌는지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거의 10년 동안 한집에서 살았다. 수목 관리가 버겁다고 아내가 집을 부동산에 내어놓았다. 매매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수목 관리가 어렵다며 가버렸고. 노인 부부들은 조경이 좋으나 적적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들에게 상속하려니 며느리가 무섭다면서 풀쩍 뛴다. 이래저래 시간만 지났다.
   어느 날 다세대주택을 보고 온 아내가 나와 의논도 없이 덜컥 매입하였다. 아내는 통이 컸다. 나와 의논을 하지 않고 통 큰 일을 잘 벌였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외국 나들이를 다녀오니 아내는 내게 알리지도 않고 이사를 해 버렸다. 종종이를 옛집에 둔 채였다. 5일째 종종이는 목줄에 묶여 있었다. 수소문하여 혼자 새집을 찾아가야 했다. 목줄은 풀렸으나 종종이만 홀로 두고 가려니 걸음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 홀로 집을 지키는 개나 남산동과 해운대를 오가는 나나 신세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유유상종이랄까, 동병상련이랄까. 종종 남산동으로 와서 개의 먹이를 챙겨주는 것이 내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서너 달이 지났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옛집에 남겨진 견공 이야기를 했다. 엿들은 종업원 아주머니가 정성껏 키우겠다며 달라고 했다. 무슨 변심이 내게 생겼는지는 승용차에 종종이를 태워 노포동에 산다는 그 아주머니의 작은 슬레이트집으로 갔다. 한적한 동네였다. 잘 키우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고 겨우 걸음을 돌렸다.
   약 일주일쯤 지났다. 종종이를 볼 겸 노포동 집을 찾아갔다. 집 가까이 가면 종종이는 분명 옛 주인의 발걸음을 기억해서 짖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주위는 조용했다. 개는커녕 쥐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예감이 이상하여 크게 불렀다. 그때 옆집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강아지를 개소주집 영감에게 팔아버렸다고 했다. 걸음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 골목을 돌아 나와 산으로 향했으나 몸과 마음이 계속 휘청거렸다. 산길 옆에 주저앉아 체면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누구에게라고 생각하지 않은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산속 나뭇가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산수傘壽에 가깝게 살면서 지금까지 세 번 크게 울었다. 한번은 어머니 돌아가시자 자식의 도리를 못한 죄책감에 울었다. 두 번째는 딸아이를 시댁에 데려다 준 후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황소처럼 울었다. 세 번째는 종종이의 죽음을 생각하며 속죄의 눈물을 흘렸다.
   종종이는 짧은 생애 동안 제 할 일을 다하고 갔다. 온갖 재롱을 부렸고 집에 있는 쥐를 퇴치해 주었다. 밤고양이를 쫓아내고 나의 외로움을 위로해 주었다. 나아가 얼마 되지도 않는 몸까지 알지도 못하는 인간에게 주고 떠났다. 하지만 나는 종종이를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종종이가 천수를 다하는 동물로 환생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지금도 그 염원만은 진실로 말하건대 변함이 없다. 그 후 나는 산에 가면 빠짐없이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으로 들어간다.

 

 

이정식  ------------------------------------------------
   교육공무원 퇴직. 숲생태해설사 역임. 부경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전문반 수강 중.

 

 

당 선 소 감


   며느리 생일 축하 송금을 하려고 해운대 번화가 인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차량들의 소음이 심했지만 당선 소식은 분명히 들렸습니다. 며느리에게 생일 축하를 하고 당선의 기쁨을 전했습니다. 생일 축하와 당선의 축하가 어우러져 더욱 즐거웠습니다.
   사는 동안 늘 지각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괘념치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로 이를 만회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각이 용기의 샘이었습니다. 호구지책으로 기초과학을 가르쳐온 약 36년 세월은 호구糊口, 문학과 간극을 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글은 늘 썼습니다. 노트 몇 권을 채웠습니다. 근무처 신문에 칼럼이라 하여 투고하면 활자화되기도 했습니다. 퇴직 후 대학평생교육원 수필반을 분주히 오고 갔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메모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언행의 성찰과 알맞은 어휘들을 찾는 습관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교수님의 열정적인 지도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함께 수필 공부하는 수필전문반 문우들의 보살핌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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