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한글 맞춤법 제22항을 살펴봅니다.

문장의 주체가 스스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가리켜 ‘주동사’라 하고 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를 가리켜 ‘사동사’라 합니다. 예를 들어, ‘웃다’는 주동사이고 ‘웃기다’는 사동사인 것이지요. 그리고 주동사를 사동사로 바꾸어 주는 접미사를 가리켜 ‘사동 접미사’라 하는데, ‘웃기다’의 ‘-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편, 주어가 제힘으로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가리켜 ‘능동사’라 하고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하여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가리켜 ‘피동사’라 합니다. 예를 들어, ‘잡다’는 능동사이고 ‘잡히다’는 피동사인 것이지요. 그리고 능동사를 피동사로 바꾸어 주는 접미사를 가리켜 ‘피동 접미사’라 하는데, ‘잡히다’의 ‘-히-’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동 접미사에는 ‘-이-’먹이다, ‘-히-’입히다, ‘-리-’울리다, ‘-기-’웃기다, ‘-우-’돋우다, ‘-구-’솟구다, ‘-추-’낮추다, ‘-으키-’일으키다, ‘-이키-’돌이키다, ‘-애-’없애다, ‘-이우-’재우다←자이우다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반면 피동 접미사는 그 종류가 많지는 않습니다. ‘-이-’놓이다, ‘-히-’먹히다, ‘-리-’팔리다, ‘-기-’쫓기다 등 4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어찌됐든, 이들 사동 접미사와 피동 접미사는 그것이 결합한 능동사나 주동사의 어간과 분명하게 구별되며, 규칙적인 형식으로 결합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본디 어간의 형태와 접미사를 구분하여 적는 것이 뜻을 파악하는 데에 더 효율적이라고 보아 원형을 밝혀 적도록 한 것입니다.

자주 언급하는 말이지만, 당장에 적을 때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편리한데도 굳이 원형을 밝혀 적도록 할 때에는 그렇게 할 때의 장점이 있어야 합니다. 원형을 밝혀 적는 것이 읽는 사람이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쓰이고 있는 의미가 원형의 의미에서 한참 벗어나 버린 상황이라면 애써 원형을 밝혀 적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원형을 밝혀 적어 봤자 현재의 뜻을 유추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도리다’는 ‘돌다[廻회]’와, ‘드리다’는 ‘들다[入입]’와, ‘고치다’는 ‘곧다[直직]’와, ‘바치다’는 ‘받다[受수]’와, ‘부치다’는 ‘붙다[附부]’와, ‘거두다’는 ‘걷다[撒살/捲권]’와, ‘미루다’는 ‘밀다[推추]’와, ‘이루다’는 ‘일다[起기]’와 관련된 말입니다.

‘-치-’, ‘-뜨리-’, ‘-트리-’ 등은 자음으로 시작하는 접미사이므로 제21항의 적용 대상이기도 한데, 본디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는 점에서 내용상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들 접미사는 모두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입니다. 즉, ‘부딪다’가 가리키는 동작을 더 강한 어감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부딪치다’라고 하는 것이지요참고로, ‘부딪히다’는 ‘부딪다’의 피동사이다. 그리고 ‘-뜨리-’와 ‘-트리-’는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므로 언제나 대체해서 쓸 수 있습니다. 즉 ‘깨뜨리다’와 ‘깨트리다’ 모두 표준어라는 말입니다.

접미사 ‘-업-’, ‘-읍-’은 ‘-이-’, ‘-음/-ㅁ’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하는 접미사에 속하므로 제19항 붙임의 규정에 따라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입니다. 그래서 ‘
믿업다,
웃읍다’로 적지 않고 ‘미덥다, 우습다’로 적는 것이지요. ‘미쁘다←믿브다’처럼 접미사 ‘-브-’가 붙어서 된 말로는 ‘고프다←곯브다, 기쁘다←깃브다, 나쁘다←낮브다, 바쁘다←밫브다, 슬프다←슳브다’ 등이 있습니다. 이들 단어에 대해서는 일반 언중들 사이에서 어원 의식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소리대로 적도록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