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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수동면 | |
남계서원(藍溪書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91호 ▣남계서원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두번째로 세워진 서원으로 일두(一斗)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학덕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이 고을의 유생 개암(介菴) 강익(姜翼,남명문인)을 중심으로 30여명의 선비들이 합심하여 1552년(명종7) 남계에다 건립하였다. 건립되기까지 이 고을의 여러 군수가 지원하였으나 10년 동안의 공사가 임진왜란으로 서원의 사우(祀宇)가 터를 옮겨가면서 진행하였다. ▣지방 유림의 다수가 일두선생의 학덕을 추모하는 소장학자로서 이 지역의 사표인 남명선생의 사숙문인이 다수 포함되었으니, 강익, 박승임(朴承任), 정복현(鄭復顯), 임희무(林希茂)등이 서구연(徐九淵)군수의 후원으로 착수하여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1566년(명종21) 9월 남계서원에 사액이 내려졌다. 사액이 내려진 배경에는 지방유림의 노력과 이 고을 군수로 온 김우홍(金宇弘)과 관찰사 박계현(朴啓賢)의 배려가 작용하여 이후 춘추로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3년 나촌(羅村)으로 옮겨 복원하였고, 1612년 남계로 옮겼다. 그 후 1675년 (숙종1)에 남명 사숙 문인 동계(桐溪) 정온(鄭蘊)을 서향에 모시고 1689년(숙종15)에 개암 강익을 동향에 모셨다. 별사(別祠)에 유호인(兪好仁)과 정홍서(鄭弘緖)를 배향하였다가, 1868년 별사는 훼철되었다. 이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중의 하나로 지방문화의 진흥과 교육에 큰 역활을 하였다. ▣서원의 구조는 사우, 전사청, 양정재, 보인재, 애련헌, 영매헌, 풍영루, 묘정비각, 고직사 등이 있다. 강익의 《남계서원기》에 의하면 사우와 강당 및 동서재와 앞문간까지 총 30여간이나 된다. 강익은 내가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으로써 여러 군자가 그 전말을 기록하고 그 재사(齋舍)에 이름하기를 청한다. 사양하다 못해서 삼가 서원을 세운 뜻을 기록하고 드디어 강당을 《명성(明誠)》이라 이름했는데 중용(中庸)에서 「밝으면 성실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왼쪽 좁은 방은 〈거경(居敬)〉, 오른쪽은 〈집의(集義)〉라 했음은 정자가훈(程子家訓)에 「경(敬)에 거(居)해서 이(理)를 궁구한다」는 것과 추경(鄒經)에 「의(義)를 모아 산다」는 뜻에서 취한 것이다. 재사(齋舍)의 동쪽 방을 〈양정(養正)〉이라 함은 역경(易經)에 「산업을 바르게 기른다」는 뜻에서 취한 것이고, 서쪽 방을 〈보인(輔仁)〉이라 함은 논어(論語)에 「벗으로서 인(仁)을 돕는다」는 뜻에서 취한 것이다. 재사(齋舍)의 두 추녀를 애련(愛蓮)과 영매(詠梅)라 했고 앞대문은 준도(遵道)라 했는데 각각 뜻이 있다. 선액(宣額)에 남계서원(먏㈜朶?이라 했음은 원이 남계강(먏▦?가에 있기 때문이다. ▣이 서원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고, 매년 2월과 8월(中丁)에 향사를 지낸다.소장품은 어정오경백편, 고려사 등 59종 317책이 있으며, 재산은 전답 1만 4500여평 대지 6천평 등이 있다. 정여창을 받들고 있는서원은 전국적으로 아홉군데에 이른다. 그 주된 서원이 남계서원이며, 종산(鍾山)서원(함북), 영계(永溪)서원(하동), 용문(龍門)서원(안의), 도산(道山)서원(거창), 인산(仁山)서원(아산), 이연(伊淵)서원(합천야로), 경현(景賢)서원(나주), 도남(道南)서원(상주) 등이 있었다. ◈자료출처 : 소구리 문화지도◈자료출처 : 함양군청 ◈자료출처 : http://www.nammyung.org/na-wb/wb-08ho/08-sghan.htm ◈자료출처 : http://www.thingskorean.com/kor/contents/building/suwon3.as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