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22살 77년부터 10년목회 그후 30년
내년이면 목회를 시작한지 40년 그만둔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진은 77~79년 첫 부임지 덕동교회 전 건물과 신축건물 두 번째 부임지 80~81년 철암교회는 광산촌 산기슭에 멀리 보입니다. 세번째는 81~82년 상계동영광교회는 개척 후 결혼하고 모든것 바쳐 세운교회로 후임자 부임 후 이름이 바뀌고 80년도 말 중형교회로 부흥되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마지막 83~86년 섬기던 해성교회 모습 예전사진을 인터넷에 찾아 올렸습니다.
같은 시기 함께 시작한 목회동역자 동갑내기 3명과 후배 10년을 비슷한 교회에서 목회한 것도 특이합니다. 나만 늦게? 26살에 결혼하고 친구들은 22. 23. 25살에 결혼하고 30살이 훨씬 넘은 자녀들을 저만 둘이고 다른 친구들은 3명이상씩 두고 있습니다. 당시신학교는 문턱에 있었고 군복무 겸해서한 했던 일 돌이켜보면 은혜지만 지금으로 보면 불가능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21~23살에 함께 목회하던 4명의친구들 모임니다.
황재0 이연0 홍흥0목사 그리고 나 40년 전 우리가 어떻게 담임목회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성경을 읽게 되고 목사지도 없이 가능했고 단기간에 목회자가 될 수 있었던 일을 지금도 가능한 일이 이 시대에 주어질 메시지라고 믿고 우리가 모여 기념강좌를 갖고 다시 조명해 보기로 했습니다.(일시 2017년 적절한 때)
지금도 가능할까" 기능해야 한다. 그때 역사하던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목사도 없는 두매 산골에서 5명이 성경을 읽다가 4명이 기존교회에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은혜를 분석하고 선교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 외에 두 명은 현재 감리교서 한명은 장로교 합동측목사로 21살에 담임목회를 시작 2013회기에 총회전도부장을 역임 현재 아들과 함께 목회하고 있습니다.
저의 그 후 30년은 준비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을 위해서라 믿습니다.
한자교육연수원간판이 보이는 건물과 충주제일교회(사용하던)건물에서 한자교육연구 완성과 숙박연수실험 교육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와 중국어읽기교육실시 교재출판 완성 후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연수원지도자들이 주관하는 서울과 도시교육 외 저는 제가 시골숙박연수원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밤 마지막 목회지였던 해성교회 사진을 인터뎃에서 보고 올렸는데 사진 속 여학생이 벌써 중견공무원이 되어있네
위 86년도까지 마지막으로 목회하던 교회 처음으로 6개월 300명 전도목표를 세웠던 교회
아래는 해성교회의 다른편 모습 여기를 떠난후 다시는 교회로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사임이유는 88년 고향서 국회의원선거출마 관계 당시 32세
광산촌 철암교회 제천에서 이삿짐 차로 차로 9시에 출발 오후 4시쯤에 도착했다.
첫 부임지 덕동교회 포장이 된 훨씬후 사진이다. 만2년 동안 군복무로 12키로를
이틀에 한번씩 밤에 경찰관서로 출근하며 목회한 시절 성도들의 배려와 사랑 기적 잊을수 있을까
아래는 신축된교회 제가 있을때 주일이면 언제나 가득찬 분위기 부흥의 최전성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래 1차 원주로 귀향 3년의 생활 행복을 만끽한 시간과 다시 돌아오는 아픔을 경험했다.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면 돌아갈 첫번째 후보지다
아래 5분에 읽는 천자문 숙박연수교육현장 본건물은 다른교회가 이전후 매입해 갔으나 진행기간 이견으로 계약파기되었다.
중국어읽기 연수교육과 교재 출판으로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되었다. 연수원 중국어교재 전 5권
5분에 읽는 천자문과 한자종합교재 25년 연구 종합교재다.
내년에는 전도학교개강과 학교식 한자연수원교육이 시작됩니다.
부흥이 보장되는 이시대 부흥되는 교회유형과 한자와 중국어읽기교육 설명회가 있습니다.
메시지로 참가신청을 문의 할수 있습니다. 010 2218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