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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항쟁_강탈당한 나봇의 포도원
열왕기상 21:15-19
15. 이세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아합 왕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팔지 않겠다고 한 그 포도원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소유였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려갔다.
17. 이 때 야훼의 말씀이 디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18. "일어나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 곳에 내려가 있다.
19. 가서 그에게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여라. '네가 사람을 죽이고 그의 땅마저 빼앗는구나.' 또 야훼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여라.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
지난주 부처님 오신날(8일)에 고(故) 김지하 시인이 향년 81세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저항 시인이었습니다.
김 시인은 194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죠. 목포산정초등학교, 중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공부했고,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습니다.
김 시인은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고,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 상과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로노 크라이스키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1991년 명지대 학생이었던 강경대 열사 치사 사건 이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학생 및 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자살이 이어지자, 고인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해 진보 진영의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죠.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시와 산문집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이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 김지하 시인의 궤적은 소위 586으로 대표되는 진보 운동권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지난주 5월 10일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또다시 재현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조금 과격한 이들은‘ 우리 백성들에게 지옥문이 열린 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지난 5년과는 전혀 다른, 억압과 폭력의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으로 달라지게 될 세상을 한번 그려볼까요~
▲우선 사회적 분위기는 차별과 경쟁, 불평등이 심화 되고 이에 맞서는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매우 흉흉해질 것입니다. 노동법 개악과 성차별, 장애인 차별이 공공연히 정책으로 채택되고 있죠. 지금 권력의 핵심에는 정치검찰 출신들이 포진되어 있어 모두가 예상했듯이 검찰공화국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윤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에 어울릴만한 인사들은 별로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온갖 비리로 장식된 인물들이 대다수입니다.
▲우리의 외교는 미일에 종속될 것이고, 통일은 또다시 요원한 목표가 될 것입니다. 윤 정부는 이미 수차례 대놓고 친일 행각을 보여 왔습니다. 북에 대해서도 적대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유사시 한반도에 일본의 자위대를 끌어드리려 하고 있고 위안부, 징용 문제도 박근혜 때로 돌아갈 것입니다. 무모한 선제타격 발언으로 전쟁의 분위기가 한반도를 감쌀 것입니다.
▲경제는 더욱 어렵습니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 경제가 위험에 빠져있습니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 인상은 곧 엄청난 쓰나미가 되어 세계 경제를 뒤흔들 것입니다. 내수 진작 없이 무역에만 의존해 온 우리 경제는 더 치명적입니다. 영끌 부동산, 영끌 주식으로 가계 부채가 36개 OECD 회원국 중 최고로 높아 걱정입니다.
전체 가구의 17.2%인 354만 가구가 적자 상태입니다, 이들의 연평균 소득은 4,600만 원인데, 연간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은 4,500만 원으로 연 소득의 98%에 달했습니다. 남은 2%의 소득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지금 미국이 금리를 0.5% 올리며 세계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미국의 물가는 8.5%가 올랐고 우리도 4.5% 이상 올라가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인권, 다양성, 성평등, 노동, 교육, 생태, 기후변화 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의제들을 소외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검찰과 권력, 자본과 언론이 한편이 되어 국민들에게 빨대를 꽂을 것입니다. 공기업과 의료민영화는 빈부격차를 더욱 벌려 놓을 것입니다. 탄소중립시대에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확대 정책을 대안이라고 내놓고 있습니다. 스카이케슬이 현실이 되어 사교육이 극성을 부릴 것이고 서민의 계층상승은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지난 행태와 이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계를 보며 저는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아합왕 시대의 일입니다. 아합은 쿠데타로 왕권을 찬탈한 오므리왕의 아들로 우상 숭배와 폭정, 부정과 부패로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왕은 사마리아에서 38km쯤 떨어진 이스르엘이라는 곳에 별궁을 지어 놓았습니다. 이스르엘은 경치가 뛰어난 곳이었는데 아합은 그곳에 고가의 상아로 별궁을 짓고 사치스런 삶을 즐겼죠.
그런데 그 별궁 가까이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별궁을 확장하고자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나봇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포도원을 내줄 수는 없다고 거절합니다. 아니 각 지파나 가문에게 분깃으로 나누어 준 땅은 율법으로 팔지 못하게 되어 있어, 아합이 포도원을 팔라고 요구한 것 자체가 율법을 어긴 행위였던 것입니다.
포도원을 빼앗지 못해 앓아누운 아합에게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주겠노라 공언합니다. 이세벨은 왕의 이름으로 이스르엘의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편지를 쓰죠. 이스르엘 사람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재판정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불량배 두 명을 내세워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게 하고 나봇을 끌어내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나봇은 사람들의 조롱과 저주를 받으며 죽게 되고, 포도원은 아합의 차지가 됩니다.
이 일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불러 아합이 그 악행에 대한 댓가를 치를 것이라고 예언하게 합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네가 사람을 죽이고 그의 땅마저 빼앗는구나.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19절)"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봇의 포도원 강탈 이야기는 열왕기상 21장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이야기 앞과 뒤에 아합왕의 승리와 죽음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0장에는 소수의 병력으로 아람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아합왕의 이야기가 있고, 22장에는 수많은 남북이스라엘 연합군 병력을 가지고도 아람과의 전투에서 죽게 되는 아합왕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아합의 일생에서 가장 큰 승리와 가장 큰 패배 사이에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가 배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합의 패배와 죽음의 이유가 나봇의 포도원 강탈에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아합이 바알 숭배를 해서, 혹은 수많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인 죄가 아니라,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것이 가장 치명적이고 직접적인 실패와 죽음의 이유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째서 나봇의 포도원 강탈이 이토록 큰 죄일까요? 그리고 이를 통해 성서가 말하려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먼저 아합은 하느님께서 분배해 준 땅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지계표(地界標, landmark)라는 것이 나옵니다. 지계표는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이나 나무로, ‘땅을 쓰는 평등한 권리를 겉으로 보이게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이 지계표는 개인의 토지소유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땅을 분배해 주셨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지계표는 땅의 주인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표식인 것입니다.
때문에 이웃의 지계표를 빼앗는 것은 당연히 저주받을 죄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신 27:17). 지계표를 옮긴다는 것은 남의 토지 지분을 가로채는 행위로 하나님의 토지 주권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위로 간주 되었습니다. 또한 토지가 생활의 터전이고 생존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이웃의 토지를 빼앗는 것은 곧 이웃의 생존권과 자유를 박탈하여 노예로 전락시키는 범죄였던 것이죠.
궁극적으로는 율법이 의도한 사회체제를 붕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인데 아합은 이세벨과 공모하여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당시의 사회가 썩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사건에는 이스르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평소 나봇과 가까이 지내던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세벨이 보낸 아합왕의 편지를 받고 아무런 갈등이나 망설임도 없이 그 편지의 음모를 실행하죠.
당시의 장로와 귀족들은 정의와 질서를 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원로들과 유력자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불의한 명령에 항거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웃이자 친구였던 나봇을 죽인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만든 개념입니다. 한나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의 재판을 취재하면서 아이히만이 히틀러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복무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점에 충격을 받습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구조적 악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그저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충직할 때 그 사회는 강력한 악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은 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 악에 대해 침묵하는 이들, 혹은 그 앞에 아무런 저항도 갈등도 하지 않는 무심한 이들의 동조로 인해 작동하고 위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끝없는 욕망에 자신을 놓아 버린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이세벨이 나봇이 죽었다고 하니 아합은 그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묻지도 않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려 듭니다. 그에게는 생명보다 자신의 욕망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욕망을 채울 수만 있다면 거짓도, 폭력도,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어게인 마이 라이프’란 드라마에서 나오는 정치검찰 출신으로 대권을 꿈꾸는 조태섭이란 인물이 바로 그런 사람인거죠.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윤석열 정부는 그 시작부터 민폐와 불통, 그리고 허위와 조작으로 점철된 권력의 민낯을 보이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 신자유주의체제가 가져온 불평등 구조에 대한 개혁 의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가치관과 정책 등은 전무합니다. 아마도 이 정권은 처음 잘못 끼운 단추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함께 국민적 고통을 가져올 것입니다.
윤 정부는 검찰총장 시절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기반으로 하여 온갖 기득권 카르텔의 도움으로 성장한 세력입니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진 대선에 0.73% 차이로 당선된 윤 정부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듯 우리 국민들을 무시하며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지금 개선장군처럼, 점령군처럼 의기양양 하지만 민족정기를 무너뜨리고 국민을 무시하다가는 아합왕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인권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욕망에 사로잡혀 민중들을 억압하다가는 하느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합에게도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그 시대의 모순과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저주는 아합과 이세벨 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도 철저히 망하리라는 것이었죠. 하느님께서는 ”나는 네 후손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씨도 없이 죽이리라(21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경고를 듣고 아합왕이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습을 보시고는 재앙을 그의 시대가 아니라 그의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하십니다. 아합이 큰 죄를 지었는데 회개의 모양을 보인다고 그 죄의 결과를 아들에게 묻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아합과 이세벨의 죽음을 면해 준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22장에 보면 분명 아합은 하나님의 심판 예언을 따라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해서 처절한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이세벨도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재앙을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것은 아버지 세대가 만든 죄악이 만연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는 필연코 망조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아버지 시대가 만든 자본숭배와 생명 경시의 문화가 결국 일상화되어 아들 시대에 이르면 그런 시대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6월 KBS에서 했던 세대별 의식조사 결과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MZ세대들은 전 세계 MZ세대와 같이 부의 재분배와 공정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해법에 관해서는 세계 45개국의 MZ세대가 부유층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최저 임금과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에 찬성하는 반면, 우리 MZ세대 남성들의 경우 임금 격차를 당연시하고 최저 임금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계층별 격차를 공정이라 생각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도리어 차별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자본숭배와 생명 경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차별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능력주의 신봉 세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 주는 5.18민중항쟁 42주기 추모 주일이기도 합니다. 5.18민중항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18정신을 왜곡하고, 외면하는 자들이 이 땅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군림하려 하는 한 항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2일 5·18진상조사위원회는 '5·18 진상조사 대국민 보고회'를 통해 "일부 탈북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5·18 당시 북한 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5·18 조사위는 보고회에서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역 등 3차례 집단 발포해놓고 '자위권 발동'이라 했다 ▲계엄군이 민간인 집단학살·부녀자 성폭행 등 만행을 저질렀다 ▲무명 열사·행불자 신원 파악 결과 북한군으로 지목되었던 '광수 1호'는 시민이었다 ▲신군부 정권의 인권 침해도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5.18민중항쟁 42주기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려면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지금까지의 반민족, 반민중적 정책 폐기를 선언하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저 모양새만 갖출 요량이라면 결코 광주의 영령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탈당한 나봇의 포도원을 되찾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깨어있는 촛불들은 횃불이 되어 타오를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능력과 은총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2.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