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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론
1. 루소의 생애
루소는 1712년에 가난한 제네바의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자 곧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아들의 교육에 전혀 무관심한 아버지의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유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그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었던 많은 소설책을 읽는 것만이 어린 루소가 받을 수 있었던 최초의 교육이었다. 여덟 살이 되는 해까지 루소가 이 같은 소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나가는 것을 묵인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태도는 결코 그에게 이로운 것이 못되었다. 이 정신 영양의 과다로 인한 두뇌비대증은 그가 노년에 가서 정신이상으로 고통 받는 세월을 보내는 원인이기도 하다.
불행했던 유년기를 마치고 청년기로 들어서면서 그는 더욱 불행하였다. 아버지와 헤어져 살게 된 그는 그 후의 인생을 고아로서 살게 되고 따라서 고아가 느끼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맛보야만 했다. 그의 불안스러운 방랑과 모험의 일생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그를 사촌형과 함께 어떤 신부의 집으로 라틴어 공부를 시키러 보내는 때부터 시작되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그의 반항적인 성격은 어디로 가든지 환영을 받지 못해 고향 없는 생활이 1741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불행한 루소에게도 자애로운 보호자가 생겼으니 그 사람이 바로 루소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드바랑(De Warens) 부인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린 루소에게 드바랑 부인은 어머니인 동시에 또한 마음의 고향이기도 했다. 루소를 신교에게 구교로 개종시킨 드바랑 부인은 그의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여기서도 그의 괴팍한 성미로 인하여 몇 번의 말다툼이 있긴 하였으나 언제나 어머니 같은 부인의 품속에서 청년기의 마지막을 보낸다. 아마도 루소는 이 기간 동안 그의 초기 사상을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 후 루소는 자신의 거처를 파리로 옮기게 된다. 하지만 10년간의 파리생활은 루소에게 있어 정신적 시련기였다. 자연인으로서 자유로이 성장해온 그로서는 죄 없는 자연인을 학대하고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문명사회가 격렬한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잡지<메르규르> 지에 실린 디종 학술원의 현상공모에 평소 자신이 생각해온 소신을 정리한 논문을 제출하였다. 이 논문에서 상을 획득하여 일시에 유명해진 루소는 그로부터 3년 뒤인 1753년에《인간불평등의 기원》이라는 논문을 써서 더욱 그의 이론적 체계를 굳게 하였다. 그리고 시골에 은퇴하여 평온함과 자유 속에 심사숙고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세운 원칙 위에 사회의 전반문제를 재검토한 결과 그의 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사회계약론》그리고《에밀》을 출판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나도 독립을 사랑하는 그의 성격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친척들이나 그를 보호해주었던 사람들의 비위를 맞출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에 입각한 교육이론을 풀이한 저서인《에밀》은 위험 사상으로 낙인찍혀 출판금지를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철학자들이 그를 고소하여 마침내 체포령까지 받아 그는 결국 스위스로 피난처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운명에 빠지기도 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의 혁명적 작가를 진실로 이해하려면 그 시대적 배경과 작가 개인이 처해 있는 환경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역시 이러한 사회적 박해를 염두에 두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루소의 위대성은 그 작품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바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그의 사회와 그의 작품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 우리가 그의 작품을 다룰 때, 루소는 실로 프랑스가 낳은 최대의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는 일반적 의견에 우리는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즉 그의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로 보아서 위의 말은 그 가부를 다룰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18세기의 시대정신을 볼 수가 있다. 그의 작품이 당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아마 달리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켰다. 인생의 모든 부분의 활동에 있어서 특히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그는 낭만주의 운동의 직접적인 선조가 되었다. 그는 괴테를 비롯한 독일 낭만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19세기의 문학 작품 속에 계승된 내성적 묘사법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적 교육 및 정치사상에 기초를 닦아 주었다.
루소의 사상은 시종 일관으로 하나의 굳은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사상을 뚫고 흐르는 정신을 요약하면 우선 그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가치 관념에 의해서 세워진 봉건적 인습 위에 서 있던 당대의 사회를 파괴하여 ‘자연적 상태’를 기본으로 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즉 현실의 사회는 인간의 부패한 제반 지적 노력으로 인하여, 인간 본연의 선한 본질을 무시한 제도 위에 서게 되었으므로 만인에 부자유와 불평등을 가지고 오는 결과가 되었다. 인간의 모든 악행은 그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부자연한 제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이 사회를 파괴하여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최초의 본연상태 즉 ‘자연’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는 공민간의 계약을 이상적 상태에서 다룬《사회계약론》을 쓰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를 요하는 것은 루소는 ‘자연 복귀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사회 파괴론자’ 로 오해를 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나《사회계약론》에서 설명되는 ‘사회적 상태’는 일단 자연적 상태로 복귀한 연후에 부패한 현 사회 대신에 건설되어야 할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 것으로서, 자연의 상태를 기반으로 했으되, 그것보다는 한층 더 발전한 ‘자연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사회계약론》에 있어서 적어도 루소는 이 인간 본연의 상태에 돌아간 ‘자연의 상태’란 것을 실재적인 상태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부패한 현 사회적 상태와의 사이에 가정한 공상적인 순수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흔히들 루소의 사상은 애매하고, 보수적이고 추리에 비약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루소의 처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추상적인 추리 태도로 인한 것이고, 결코 의식적으로 애매한 것인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의 사상 자체가 일사불란한 연맥을 결하는 데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의 열띤 어조로 말미암은 너무나 주관적이요 일방적인 논리적 유도에 기인한 것이지 결코 그의 사상 전체에 불연속선이 개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하여 루소는 그의 산만한 주의력으로 그를 이해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논리의 비약이라 여겨지는 신중한 검토를 하면 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하나의 목적으로 질주하는 루소의 흥분한 머리는 그의 번역을 극히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지만 독자의 준비 부족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또한 루소는 현실 사회의 여러 제도를 예로 설명하는 연역을 거의 하지 않고 추상적 이론을 토대로 오히려 구체적인 것으로 돌아오는 태도를 취한다. 이것 역시 그를 모호한 작가로 불평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루소의 시대와 그의 이론의 혁명성을 이해한다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태도였으리라 아니할 수 없다.
루소의 말년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스위스로, 영국으로 또 다시 프랑스로 피난처를 구해 다니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마침내 정신 착란에 빠져 그를 보호해 주던 모든 친지를 오히려 자기를 모함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노발대발하였다. 아무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을 알아차린 그는 자르댕 씨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베풀어주는 호의를 받아들여 결국 1778년 파리 북방의 에르므몽빌의 별장으로 가서 아무도 몰래 남은 생의 비참한 종지부를 찍었다.
2.『사회계약론』의 구성과 내용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자연 상태, 계약론, 주권론, 정부론의 4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이는 다시 크게 제2부로 나눌 수 있는데 각 부마다 2편의 소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제1부의 제1편는 주권에 관한 이론을 부연한 것으로서 사회의 형성과 사회계약을 논하고 있다. 제1편과 주권의 성질과 그 한계를 논한 제2편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제2부는 정부에 관한 이론으로서, 여러 가지 정부형태를 이론적인 면에서 연구․관찰한 제3편과 한 도시국가의 운영의 본보기로서 로마 공화국의 실례를 연구․관찰한 제4편이 이에 속한다. 맨 마지막의 <사회적 종교> 부분은 일종의 부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총4편으로 구성된 각 부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1편은 모든 사회의 형성과 사회계약을 다루고 있다. 사회질서의 근원을 찾는다면 최초의 약속, 곧 만장일치의 원시적 합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자연 상태에 살던 인간들이 각자가 혼자서 삶의 역경을 처리해나갈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때까지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까지 없던 새로운 힘과 능력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그들은 각 개인의 힘과 능력을 결합하여 삶에 대한 장애를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제기되는 근본문제는 바로 개별 구성원의 재산과 신체를 전체 공동의 힘으로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형태의 결합체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이 다름 아닌 사회계약이다. 바로 이 사회계약에 의해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시민사회로 이행하며, 본능으로부터 풀려나 도덕성과 정의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이행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적 사유와 그의 손이 닿는 한의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의 지연적 권리를 상실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대신에 공공재산의 일부를 위탁받은 자가 됨으로써 그가 갖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한 공인된 소유권과 시민적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제2편은 주권과 입법을 주제로 다룬다. 주권, 곧 일반의지(General Will)는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의지라는 것이 넘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권은 또한 불가분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상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지가 ‘일반적이다’라고 할 때 그것은 인민 전체의 의지를 가리키며, 의지가 ‘일반적이 아니다’라고 할 경우 그것은 전체 중 한 분파의 의지를 가리킨다. 전자의 의지를 말과 힘으로 옮기는 것이 주권행위이며, 이때 의지는 법이 된다. 후자의 경우 의지는 하나의 특수의지이거나 일개 행정조치다. 또는 기껏해야 그것은 일개 행정법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정치 이론가들은 주권을 그것이 적용되는 방식들로 분해해왔다. 즉 주권을 힘과 의지로, 입법권과 집행권, 조세권과 사법권과 교전권, 내치와 외치 등으로 분해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이론가들은 주권자를 별개의 부품들로 구성된 공상적 존재로 만들었다. 마치 한 신체에선 두 눈을 떼어내고 또 다른 한 신체에서 양 팔을, 또 다른 신체에선 발을 취하여, 이것 모두를 함께 모아 한 사람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주권은 나눌 수는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입증된 주권의 성질로부터 일반의지에 관한 세 번째 명제가 자명하게 도출된다. 즉 일반의지는 언제나 올바르며, 공공의 선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3편은 정부와 그 운영이 주제다. 국가에서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법을 집행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입법권은 주권자, 곧 일반의지에 속하나 그렇다고 해서 주권자 자신이 집행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 주권자는 별도의 대행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 대행자는 주권자와 신민의 사이에 서는 매개자로서 일반의지의 지도하에 법을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기능이다. 그러니까 정부는 주권자의 대리인이자 주권자 자신은 아닌 것이다. 정부를 구성하는 한명 또는 수명의 행정관은 집행권의 수탁자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월권 내지 주권자의 권리 찬탈을 시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정기 회합을 법으로 정해야 하며, 이 회합기간 중에 모든 집행권은 중지되며, 모든 권력은 인민의 수중에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하나 유념해야 할 사항은, 일반의지는 양도할 수 없는 것처럼 대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의원은 인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인민의 사용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최종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법도 인민이 비준하지 않은 법은 무효이다. 정부조직 역시 인민과 행정관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산물이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법이다. 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인민의 공복이지 인민의 주인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인민을 상대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고, 인민에 복종하는 것이다. 사실 행정관들은 그들의 직책을 완수함으로써 단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따름이다.
4편에서는 정치에 관한 법과 제도를 다루면서 국가체제를 공고히 하는 방법이 진술되고 있다. 일반의지는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선거를 통해 표현된다. 다양한 선거 양식이나 호민관, 독재, 감찰 등과 같은 제도의 가치에 관해서는 그리스, 로마, 특히 스파르타 같은 고대의 공화국들의 역사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종교는 국가 창건의 기초였다. 또 종교가 언제나 인민의 삶에 중대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것 역시 사실이다. 각 시민이 어떤 특정 종교를 믿고 그 종교의 영향으로 자신의 의무를 사랑하는 것은 국가의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는 타인에 대한 의무나 도덕성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생활에 대해선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에는 종교가 있기는 있어야 하나, 주권자가 그것의 기본신조를 종교의 교리로서가 아니라 사회성의 기본 감정으로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누구나 국가로부터 추방되어야 할 것이되, 그 죄명은 신앙심의 결여가 아니고 비사회성이다. 또 주권자가 결정한 이 신조를 수락하고서도 이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사형에 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신조는 소수의 명확한 조목들로 짜여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신의 존재, 그의 권능, 지혜, 선견지명의 섭리 등과 내세, 의로운 자의 행복과 사악한 자의 징벌, 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 등의 적극적인 교리들이다.
3. 사회계약론의 주요 개념
(1) 자연상태
루소는 인간이 본래 선하나 사회의 발생으로 악해졌다고 말한다. 이때, 본래 선한 인간들이 살던 문명 이전의 상태를 자연 상태라 하였다. 루소는 이러한 자연 상태를 두 단계로 구분하였다.
루소는 1단계 자연 상태를 야생 상태라고 하였다. 이때의 자연 상태는 생산기술이나 언어가 없어도 숲속을 헤매어 먹을 것, 마실 것, 그리고 잠잘 곳을 해결할 수 있고, 특별히 이웃을 헤치거나 동맹을 맺지 않아도 괜찮으며, 그들을 기억하지도 않고, 단순한 정념에 따라 자족하고, 상황에 알맞은 감정과 지식만을 가진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1단계 자연 상태는 임시적이고 불안정 하다. 때문에 인간은 불행에 대항하기 위해 두 가지 기능을 가지게 된다. 그 중 하나는 불행을 받아들이거나 저항하는 자유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완성하는 기능이다. 이런 기능들은 인간들을 제 2단계 자연 상태로 도달하게 만든다.
제 2단계 자연 상태는 야생 상태와 사회의 중간 상태로서, 인간은 자기의 완전한 독립을 보존한 채 동료들과 관계를 추구한다. 즉, 이 시기는 인간 기능의 발전기라고 할 수 있으며, 야생 상태의 나태와 자기 것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활발한 활동 간의 중용을 유지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제 2단계 자연 상태는 제 1단계와는 달리 지속적이며 행복한 상태이다. 또한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들은 자유와 평등을 향유한다.
(2) 인간 불평등의 기원
자유와 평등의 자연 상태에서 인위적인 불평등 상태로 어떻게 이행하게 되는가에 대하여 루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땅’이라고 선언한 사람이 불평등을 처음 발생시킨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사회와 정치의 진정한 창설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지주에 예속된 노동이 필요해 지면서, 가난과 노예가 필연적으로 탄생하며, 인간은 점점 더 ‘문명화’되어 간다. 이러한 문명화는 지배와 종속의 굴레로 인간을 내몰아 사회를 전쟁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이 전쟁 상태에서 가장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자유 이외에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빈자들이 아니라 자기 재산의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자들이다. 그리하여 가진 자는 자신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을 고안 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회와 법률의 기원이다. 이와 같이 부자들이 고안한 법률은 약자에게는 또 다른 멍에가 되지만 부자에게는 더욱 더 큰 권력을 줌으로서 인간 본연의 평등과 자유를 완전히 말살해 버리며, 이로부터 인간 불평등의 영구화의 가능성이 마련된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은 세 단계를 거쳐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제도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불평등이 생겼고, 둘째로 관료 제도의 성립에 따라 권력자와 무권력자의 불평등이 생겼으며, 셋째로 권력의 전제화에 따라 주인과 노예와의 차별이 생겼다. 이러한 상태는 매우 개인주의적이며 경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3) 사회계약
이렇듯 인간의 이기로 안한 ‘문명화’는 자유롭고 평등했던 자연 상태를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루소는 이러한 ‘악’의 상태에서 예전의 자유와 평등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사회계약은 로크와 같은 이중계약이 아닌 단일 계약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가지던 어떠한 권리도 잃지 않은 채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국가 형태를 바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루소가 주장한 사회계약을 통한 국가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 국가로 꼭 ‘있어야 할’ 국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연 상태의 모든 권리를 잃지 않고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이 어느 한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고 루소는 보았다. 개인이 자기가 속한 전체 공동체에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계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또한 모두가 공동체에 모든 권리를 양도 하였으므로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부담을 지니게 된다. 결국 루소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자기와의 계약’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자기와의 계약’은 사회계약을 통해 이전되는 권리가 자연 상태의 모든 자연권을 의미하므로 자연 상태의 어떠한 이점도 제거되지 않음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자연 상태의 권리를 시민적 권리로 고스란히 변형시키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자연권을 개인의 힘에 의해 제한되어지는 권리라고 본다면 시민적 권리는 일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법규에 의해 제한되어지는 권리라고 볼 수 있다. 즉, 시민적 자유는 욕망의 충동에 따가 움직이는 노예가 아닌, 오히려 법규에 복종하는 자유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민이 시민 상태에서 얻는 이러한 권리는 윤리적인 자유를 의미하며, 인간은 이러한 윤리적인 자유에 의해서만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국민 주권론
앞에서 보았듯이 루소의 사회계약은 개인이 가지는 모든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양도하는 단일계약이다. 그러나 이것은 홉스의 복종계약과는 다르다. 인민은 여전히 자유로우며, 국가에 양도하는 것은 의지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권력일 뿐이다. 다시 말해 양도하는 것은 주권이 아닌 통치권이다. 이렇듯 루소의 사회계약에서는 인민이 명령자에게 복종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민은 계속 주권의 주체로 남는다. 즉, 사회 계약을 통해 결합한 전체가 바로 주권자이며, 정부란 이런 주권조직에 종속된 집행 권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국민 전체인 주권자가 바로 법의 실질적 원천이며, 정당성의 근거가 됨을 의미한다. 결국, 이러한 점을 보아 루소의 주권이론은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국민 주권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루소는 최고 무제한적인 권리를 가지는 주권이라도 그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사회계약이 인민에 대하여 주권자에게 부여한 권리는 공공의 유익을 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유익, 즉 공동선은 결국 일반의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결국 주권이란 일반의지의 행사이며, 일반의지에 그 한계가 정해지고 있는 것이다.
(5) 일반의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이 바로 ‘일반의지’이다. 일반의지는 루소의 철학적 전유물인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루소가 ‘일반의지’란 단어를 새롭게 조어한 것은 아니다. 루소가 이룬 업적은 ‘일반의지의 역사’를 만든 것이다. 루소는 일반의지란 개념을 자신의 철학 중심의 자리에 놓음으로써 일반의지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것이다. 일반의지란 공동체 전체의 의사로서 공동체를 지도하는 최고의 원리이다. 이것은 즉, 주권자의 의사를 말한다. 자세히 말하면, 자신의 여러 가지 이익추구를 위한 자유로운 개별의지 중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의지와 중복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달성하려는 사적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사적 이익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의지인 일반의지를 지니고 있다. 결국 일반의지는 개인이 가진 사적 의지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의지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자유의지를 따르는 것이 된다. 일반의지 속에서 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전체의 자유가 일치하며, 일반의지에 의해 개인의 자유는 절대화된다. 일반의지에 따라 행동할 때 나도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남도 똑같이 자유롭고, 또한 나와 남 사이에 평등한 관계가 성립되게 된다. 그러므로 일반의사는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되면 개인의 의사만이 존재하게 되어 주권자의 의사일 수 없게 된다. 일반의사는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의지이다. 그러므로 일반의사는 언제나 올바르며 공공의 유용성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에게 있어 시민의 덕이란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부합’으로 정의 되는 것이다.
개별의지 가운데 일반의지가 자리 잡고, 일반의지가 나 자신의 자유로운 개별의지 안에 있는 한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이때의 일반의지는 개별의지의 총체인 전체의지 즉, ‘만인의 의지’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일반의지는 주권자인 국민의 공통 이익과 공동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 반면에, ‘만인의 의지’는 어디까지나 개별 의지의 총합이기 때문에 공동선이나 보편적인 목적을 지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일반의지와 전체의지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이 둘을 잘 구별하여야 한다.
(6) 직접민주제
사회계약에 의하여 국가가 처음 구성될 때 일반의지는 모든 시민에 의한 만장일치의 동의로 표현된다. 일반의지가 양도와 분할이 불가능 하나는 것은 그에 근거하는 통치권 역시 양도될 수 없고 불가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치권은 오직 입법자인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그 대표자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루소는 직접민주제를 이상으로 하며 대의정치나 정당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루소에게 있어 법이란 자연법이나 정의와 권리의 원리가 아니라 단지 일반의지의 표현이다. 루소는 ‘법이란 공통의 이익에 관한 사항에 대한 일반의지의 공공적 혹은 공식적 선언이다.’라고 하였다. 법은 성질상 일반적이어야 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게만 명령되는 것일 수 없는 것이다. 일반의지가 법의 유일한 원천이라 해도 모든 영역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일반의지를 집행할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과 법의 임무를 위임받은 수임자이다. 당연히 정부는 주권에 종속된다.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의하여 제한되며 그 의사에 의하여 취소되고 변경될 수 있는 기관이다. 그에 따라 정부는 권력이 아니라 직무일 뿐이다. 루소에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주권자가 법의 실질적 연원이다.
4. 결론
이상을 요약하면『사회계약론』은 루소의 이상주의적인 민주주의 제도의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론은 1789년 프랑스 제헌 의회가 채택하고, 1791년 제1공화국 헌법의 전문으로 삽입된 유명한「인권 및 민권의 선언」에서 확인된 삼대원칙 즉 자유, 평등, 주권재민이 다 포함되어 있다.『사회계약론』의 의의는 18세기 서민층에서 점점 고조되어 가던 정치 이념을 체계화하여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놓았다는 점이다. 군주 정치의 폭정에 시달리면서 자유를 갈구하던 당시의 민중들에게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와 같은 각도에서 그가 내세웠던 민주주의 이론을 이해하는 방법은 이 삼대원칙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자유, 개인의 자기 권리는 진정한 자기 양도가 될 수 없고 다만 일시적 내지 허구적인 권리 이전일 따름이자 일시적 교환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 권리를 양보해 주는 대신 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인민으로서의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이 경우 사회 계약에 의해서 국가가 보유하게 되는 인민에 대한 권리는 공동체의 존속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법률의 대상은 전체 인민이지 결코 특정적인 인민이 아니므로 일부의 인민만이 자유에 제한을 받을 뿐 나머지 인민에게 그것의 제한이 적용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등,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혈통, 가문에 의한 특권은 인민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권을 해소하여도 부의 차이에 의한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음을 루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인민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필수조건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는 공화국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상공업에 극도로 제한받는 부의 정도가 비슷한 소지주들만으로 형성되어야만 이상적인 평등 국가가 성립될 것이라고 말한다.
주권재민, 국가의 주권은 바로 인민에게 있다는 주장은 루소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루소 이전의 사상가들은 그 권리를 양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루소는 그와 같은 권리 포기는 불법적이요 따라서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정치 체제에 있어서만 합법성을 인정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현대의 우리에게 루소의 이론은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루소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하려면 그 시대적 배경을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날의 민주 정치는 곧 대의 정치라고 해석할 정도로 루소의 직접 민주주의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늘 날의 민주주의 성립되기까지 완벽한 초석을 다져놓은 루소의 사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전제 군주정치의 포악한 횡포 속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문헌>
1. J. J. Rousseau 著, 박옥줄 譯,『사회계약론』, 박영사, 1985.
2. D. 톰슨 엮음, 김종술 옮김,『서양 근대정치사상』, 서광사, 1990.
3. 유레카논술구술 지음,『고전탐구의 신』, 중앙 M&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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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대 국정도서 편찬 위원회,『도덕2,3』, 교육인적자원부, 2005.
6. 서양근대철학회, ⌜서양근대철학⌟, 창작과 비평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