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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마음을 놓고 오다
진도와 거제도, 희망과 차이를 보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한국 전쟁의 비극이 담긴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이는 실제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아프게 그려낸 영화다. 2014년엔 ‘명량’이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켰다. 천년이 넘는 시대가 담긴 보물들이 쏟아져 나온 벽파진 명량해로를 찾는 여행객들이 많이 늘어났다. 명량대첩은 단순히 이충무공 개인의 모노드라마가 아니다. 그 시대를 아프게 함께 했던 수많은 민초들의 애환과 애국 혼이 담긴 정통 역사인 것이다. 물론 그 정점엔 이충무공이 있었다.
진도는 누구에게나 가고 싶은 남쪽 섬이었다. 하지만 올 해 잔인한 사월, 세월호가 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경계 1호 진돗개 발동이 걸렸다. 무심한 파도만 출렁거리는 팽목항에서 수많은 학부모 가족들이 슬픔을 바다에 파랗게 흘려보내야 했었다. 진도군민들은 모두 입을 닫고 봉사지원에 몰두했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겨울 초입에 거제도를 찾았다. 처음이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 째로 큰 섬 거제도. 거제도는 한국동란 때 포로수용소가 들어선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매년 1백만 명이 찾아오는 외도가 더 유명해졌다. 25만 명을 넘는 인구. 세계 굴지의 조선소가 들어선 해양도시의 위상을 자랑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구분하면서도 아우르는 은빛 물결의 섬진강을 건너 거제도로 향했다.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발이 내릴 것만 같았다. 왜 우리는 이 여행을 시작했는가? 이 단순한 나에게로의 질문은 보다 구체적으로 답변을 요구하게 된다.
진도는 위기의 섬이다. 섬이라는 본질을 잊어버리면서 진도는 스스로 정체성을 잃고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지방자치제라는 새로운 변혁의 물결 속에서 그냥 그렇게 흘러왔다. 이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날개를 펴야 한다. 천 년이 지나도록 오직 농사에만 전념하면서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와 경제구조를 이루고 살았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 해 농사지어 3년 먹는다는 풍년가만 되풀이했다. 바다풀과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김과 미역을 뜯어 새 농사를 일구었던 완도나 다른 남해안 지자체들은 이제 거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선진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노래와 민속에 취하고 서화를 즐기며 문화선진군을 자랑했다.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야 했다. 아니 이것은 도피였다.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이라 자부했던 진도군은 이제 3만 3천의 인구가 그럭저럭 사는 쇠락한 시골이 되었다. 마음 놓고 춤추고 노래하는 그런 시대의식은 더 이상 용인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이동진 군수는 올 해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층 활력이 넘치는 진도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행정의 투명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지속적인 정책방향을 분명히 하고 진도읍의 시가지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진도 이미지 구축에 혼신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올 한 해는 분명 위기의 해였다.
나는 결코 ‘이동진식 개발정책’의 추종자는 아니다. 분명한 콘셉트가 유지되어야 하고 문화가 있는, 안전과 희망이 공유하는 그런 미래지향적 슬로우 컨추리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진도군민들은 침체된 분위기를 적극 털어내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심기일전 을미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내년 봄에 진도 역사상 처음으로 전남도민체전을 유치, 문화예술체전으로 승화시켜 진도발전에 가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 더 많은 문화관광해설사를 양성해 청정한 진도의 특화된 자연과 명승을 널리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미 문화예술특구 지정을 받았으며 진도아리랑과 강강술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더욱 고무시키고 있다. 또 의신면 남쪽 해안을 따라 초대형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바로 대명리조트다. 전국 1위를 달리는 복합리조트사업체이다. 의신면 초사리와 송군포 그리고 삼섬 등 절경을 이룬 이곳에서는 신비의 바닷길 명승지가 10분 이내 차량으로 닿을 수 있으며 남망산 웰빙등산로가 있는 접도와 그 주변에선 갯바위나 해상낚시의 적격지이다. 대명리조트는 이곳에 마리나요트장 시설도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불과 두 달 전 명량대첩축제가 열린 진도대교를 건너면서 나는 특별한 설레임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거제도는 내게 너무 생소한 이미지다. ‘거대한 뿌리’의 시인 김수영이 포로로 있었던 곳.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이 태어났던 곳. 그런 단편적인 인식이 흐릿하게 담겨 있을 뿐. 나는 그곳에 가기도 전에 ‘거대한’ 공룡 같은 조선소, 아파트단지, 하청업체 밀집 공단 지역 등을 떠 올리며 진저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거제대교를 건너면서 나의 인식은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여행자들이 진도대교를 건너면서 느끼는 설레임, 호기심, 남도의 서정을 자연스레 습윤케 하는 것과는 분명 달라도 너무 다른 이미지다. 완도나 남해 거제의 다리는 매우 수평적이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찾을 때마다 진도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무언가 다른 ‘오래된 미래’ 혹은 분별없는 질주에 지친 나그네가 찾아나서야 할 바다의 오아시스나 복사꽃 피는 아리랑 고개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그런 이상향을 꿈꾸게 한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쉬이 사라지지 않개 하는 건강한 노력이 너무 절실하다. 무작정 진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단지 관광의 단조로운 섬광에 먼저 눈을 감아버린다. 다른 일정이 등을 떠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방식의 관광여행에 길들여져지 않아야 한다.
남해 중심의 거점도시이자 한국 조선업의 중심인 거제도의 진정한 속살을 나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북한을 잠시 다녀온 어떤 동포의 대담한 편견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내가 본 거제도는 섬이라고 보다는 무한질주 졸속 개발의 한국경제의 한 상징처럼 보일 뿐이었다. 물론 이도 나 개인의 편견일 수도 있다.
10여 년 전 후 강화도를 몇 번 찾으면서 가졌던 느낌 또한 이와 달랐다. 해안을 따라 즐비하게 서있는 카페촌. 중간 중간 옛 농가를 고쳐 서울에서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강화도는 그렇게 문명에 잠식되고 있었다. 함민복이라는 시인이 그곳에서 산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아 강화도가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자꾸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창자도 발 보이지 않는 밴댕이 안주가 생각나기도 했다.
강화도는 800년 전 쯤 고려왕실을 떠받치고 있었던 군부 쿠데타세력이 선택한 곳이었다. 결국 그들은 개경환도를 결정했다.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들에 분연히 반발한 세력(삼별초만은 아닐 것이다)은 천리 뱃길 진도로 향했다. 진도에서는 항쟁과 패배가 있었을 뿐 굴욕과 무릎꿀림은 없었다. 수 만명의 포로가 대륙으로 끌려갔을 뿐이다. 진도에서의 격렬한 전투를 알려주는 지명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여기급창’과 ‘핏기내’는 얼마나 격렬하며 순정한 정신들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도가 서울에서 이렇게 멀리 있다는 것에 오히려 안도감을 갖는다.
혼자 중얼거린다. 진도는 너무 오래 동안 정체되어 왔던 것이 아닌가. 누가 봐도 섬개구리에 불과하면서 옛 영화타령만 줄곧 외쳐온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제 그 정체의 아쉬움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너무 빨리 자본주의 체제와 개발에 떠밀려온 대한민국과는 달리 전통적인 공동체정신을 유지하고 고유한 문화 민속을 지켜 내려온 진도사람들의 정서와 의식은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나의 자긍심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고개를 넘어 마침내 지세포 항에 다다랐다. 우리 일행은 식당으로 갔다. 생선탕을 시키고 지역산 소주를 한 잔 마셨다. 바로 앞 매표소에서 외도 여행 승선표를 팔고 있다.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1인당 3천 원씩 감면해 준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익혀둘 사항이다. 진도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특별한 메리트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렇듯 실질적인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실사구시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오후 한시 반에 배(지세포유람선 2호)를 탔다. 여기 저기서 온 50여명이 동행한다. 젊은 사람들이 많다. 이도 부럽다. 날씨는 비교적 차갑지만 모두 조금은 들뜬 모습이다. 진도읍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는 박 모 언론인(진도는 언론인고 기자의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은 벌써 네 번 째 이곳 외도를 찾는다고 한다. 최근 ‘아들과의 동행’이란 수필집을 내고 동행한 김창용씨는 경상도가 처음이라고 한다.
오른쪽 산등성이엔 거제대학교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이 밤을 자야할 대명리조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20층이 넘는 건물이지만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주변엔 많은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명리조트로 인해 덩달아 이 상가들도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진도에 이런 리조트가 들어서면 분명 그 주변 예를 들어 초사리 위판장과 해안 그리고 회동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가계해수욕장, 향동 고개길 너머 운림산방도 절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자연을 잘 가꾸고 친절과 더불어 특화된 관광상품 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지세포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시설들이 있었다. 거제 문화원, 문화예술전당, 선박모양의 문화관 등이 눈길을 끌게 한다. 19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마리나 항 요트장은 상당히 이국적인 인상을 주었다. 나는 자연스레 진도 해안을 여기에 오버렙하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이번 거제시(섬이라는 인식이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와 외도(外島)를 다녀오면서 진도 리조트와 연계해 우리고장의 해상개발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진도군은 뻑 하면 500만 관광시대 진입을 입버릇처럼 내보이곤 했다. 그것도 단일 행사인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만 말이다. 소가 코웃음을 칠 일이 버젓하게 군 행정담당자들에게 이어져 왔다니. 제발 우리를 현실적으로 직시하며 반성하고 그리고 확실한 동력을 찾아내야만 한다.
의신면과 고군면 해안에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먼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회동과 물때에 따라 연결되는 모도(띠섬)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미 지적한 바이지만 이곳 섬의 뒷산과 산책로 해안 등은 그냥 엉망진창으로 버려져 있다. 군 행정이 전혀 미치지 않는 가운데 수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어도 관광과나 개발과 의신면장도 모두 외면하면서 회동으로만 가둬두려고 한다. 이 섬에는 보는 전망은 매우 아름답다. 바로 옆 금호도, 그리고 모도에 딸인 몇 개의 무인도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삼섬과 멸치잡이 거점인 접도와 구자도(곱창김의 주산지)와 매섬 그리고 육이오의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 갈매기섬(갈명도), 빗물과 미역을 먹고 살았다는 해남 출신 ‘금갑바’(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년 동안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의 실화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는 재작년에 이곳 주변을 광주 동구청장을 지낸 황일봉씨와 영산강의 또 하나 광주시인 나종영씨와 함께 모 신문사 대표의 배로 답사를 한 적이 있다. 그냥 뱃놀이였다. 우리들은 선상에서 진도산 전복과 낙지, 해삼을 먹으면서 연신 감탄을 자아냈었다.
진도는 이제 아끼고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냥 버려두었던 작은 섬들의 가치를 재 발견하고 더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바다목장 양식과 함께 어머니 자궁의 물 속에 고요히 유영하는 생명체같이 소중한 섬이 진도에는 홀로 자가성장을 하는 중이다. 우리는 건강한 탯줄을 이어주어야 한다.
거제의 외도는 한 부부가 수십년에 걸쳐 계속 가꾸어 놓은 잘 정돈된 정원이었다. 성수기엔 하루에도 수천명이 다녀간다는 관광명소다. 하지만 나는 별 감흥이 오지 않았다. 높은 단애와 기화 그리고 동백숲도 그저 그럴 뿐이었다. 아열대 식물과 외국산 수목들은 오히려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주 꼼꼼하게 산책로를 조성해 자연스럽게 산노루가 한 바퀴를 유유히 걸어가는 듯한 심정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분명 그 분들의 노고와 열정 그리고 치밀한 계획 등이 돋보였다. 기념품 판매장에서 ‘세상에서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라는 책을 샀다. 최호숙 미망인이 직접 쓴 외도와 함께 한 자서전의 성격인 듯하다. 중국의 서불이 불로초를 찾아 이곳을 왔다는 거제해금강을 돌아 외도에 올랐다. 그 동안 유람선 안내인은 쉴새없이 적절한 멘트를 사용해 설명을 하면서 거제산 말린 오징어를 팔았다. 정말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김경부 군수시절 쉬미항에 취항했던 유람선은 니나노 판에 가까웠다. 주변 섬들에 대한 해설은 눈곱만도 없었다. 팽목에서 어류포간 페리호를 타면 더욱 아타깝기만 하다. 섬마을 선생님이나 진도아리랑타령이나 좀 들려주면 안 될까? 너무도 무료하게 35분을 침묵 속에서 건너가는 심정은 새섬무리 조도에 대한 매력을 크게 반감시키게 한다. 앞으로 이동진 군수와 진도군은 유람선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예전 유인도에서 무인도화 된 섬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생태계 조사를 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평생 하는 일은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것. 죽고 사는 것은 어차피 신의 영역이니 그에게 맡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운데 토막인 ‘사는 일’에 매달려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이다”(최호숙)
외도의 구석구석이 ‘천국의 계단’ ‘비너스가든’ 그리고 에덴동산으로 태어났다고 하며 해마다 100만 명이 찾아오는 대한민국 최고의 해상정원이 되었다고 자찬한다. 40여 년의 노고의 결과물인 외도는 분명 매력적인 섬이다. 하지만 진도에는 이런 외도식 관광섬을 또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도는 서남해안으로 거제도 해안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개펄과 모래사장 그리고 해송과 다양한 난대림이 풍성하다. 진도지역만의 특성을 잘 살린 콘셉트로 친환경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이동진 군수는 물론 이런 구상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진도는 전체가 하나의 자연공원이나 다름없다. 나는 내가 진도에서 태어났다고 진도찬가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거제도와 진도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진도를 선택할 것이다. 이 가난하고 때로 잡사스러운 이 징한 섬을 진정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오는 길에 거가대교를 건넜다. 바로 부산이 다가온다. 이런 다리가 진도 팽목항과 장죽도(진 대섬)를 거쳐 하조도와 연결될 수는 없을까? 한국건축계의 거장인 김석철 교수는 이미 이런 구상을 밝히고 정부의 적극적인 실행을 요구하고 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다. 월드컵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옛 설화에 ‘구지가’라는 것이 있다. 많은 백성들이 지팡이를 두들기며 “구야구야 수귀현야”를 외친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은 이뤄졌던 것이다. 이제 진도군민들이 향우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 모두 혼연 합심해 보배섬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우리들의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해. (박남인 진도칼럼리스트)
◎여행자들은 본질적으로 꿈을 먹고 산다. 어린 아이와 같이. 헤르만헤세의 크놀프처럼. 하여 여행자들은 한 곳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길은 걷는 자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여행자들이다.
“한 곳에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느껴주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의 소중한 임무였다.”(크놀프에서)
이번 여행은 진도이야기의 연장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나는 함께 한 사람들과 어떤 공유를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사유는 분명 나와 다르고 더 독특할 수 있다. 진도 밖에서 진도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오늘이다. 진도에서 진도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 진도의 가치를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비교가 되는 어떤 대상을 찾아 연구해야 한다. 우물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늘 꼭 그만치에 불과하다. 잠깐 구름이 끼면 온 세상은 암흑의 기운으로 덮인다. 우리는 모두 그런 우물을 하나씩 갖고 사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인구 비례와 땅의 크기로 지자체의 경쟁력과 비교우위를 논하는 시대는 갔다. 생각의 힘, 변화에 대한 자각과 활용이 더 중요한 시대에 와 있다. 물론 정치인, 정부는 아직도 고지식한 방식을 고집한다. 지역편중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역과 계층을 더욱 구분화했다. 말과 실행은 이제 방향이 크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유신회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북한은 이를 즐기는 듯하다.
*저녁에 중국집을 찾았다. 박미자씨의 제안으로 갖가지 음식(주로 안주용)을 주문했다. 양장피. 탕수육 등. 몸이 거해지도록 술을 마셨다. 모두들 그래도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여행은 어떤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연말로 가는 중이라 여러 모임들이 이곳에서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진도의 식당들은 이렇게 손님들로 북적거리지 않는다. 종사원들도 매우 신중하고 응대에 정성을 다하려 하는 모습이다. 과연 진도는 어떨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기본예법이다.
다시 섬진강휴게소를 지나는데 눈발이 제법 날린다. 우리는 지금 서해안시대의 꼭짓점(진도)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