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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다차는 우니나라의 별장이나 전원주택과는 목적부터가 달라
다차는 대체로 작은 땅으로 구성돼 다차에서 사람들은 텃밭 가꾸기와 여가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다차'라는 용어는 '준다'라는 뜻의 러시아어 동사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다차는 미국의 시골 별장과 유사하다. 그러나 큰 차이는 러시아의 다차 중에는 근대식 배관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은 집들이 많다는 점이다. 다차는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주민들은 여름 동안 텃밭을 가꾸거나 여가활동을 하는 데 열중한다. . 역사적으로 다차는 17세기 말에 표트르 대제에 의해 처음 성립되었다. 다차를 둘러싸고 형성된 생활방식과 문화적 전통은 근대 전체를 통해서 그대로 지켜져왔다.
다차의 규모는 가족에 따라 다르지만, 오늘날 텃밭 가꾸기는 다차문화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 역사 전체를 통해서 사람들은 식량부족으로 시달림을 겪어왔다. 특히 전쟁기간과 소비에트 시대 - 1930년대와 소베에트체제 붕괴 직후 - 에 그러했다. 그러므로 텃밭 가꾸기가 다차의 주요활동이 되어온 것이다. 이 여가활동은 자신들의 토지와 생산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러시아인들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다차와 그 역할이 갖는 중요성은 러시아에서 논란거리였다. 어떤 사람들은 다차가 작물을 기르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여가야말로 다차문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다차의 기능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라져 있다. 따라서 실제로 다양한 유형의 다차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이 소유한 다차, 소비에트 다차 토지, 개인 소유 다차텃밭 등등. 러시아 역사를 통해서 사회와 정부의 요구에 따라 다차의 형태는 변천을 겪어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다차에서 사람들은 텃밭 가꾸기와 여가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정부는 종종 나라의 경제상황에 따라 다차텃밭에서의 작물 생산을 장려하거나 통제하기 위해서 개입한다.
17세기에서 소비에트 시대까지의 다차 역사
다차에 대한 근대적 정의(定義)는 표트르 대제 치하인 18세기에 출현하였다. 1700년대 동안 다차에 대해서 내려진 정의에 의하면, 다차는 러시아인의 여름생황을 위해 고안된 것이고, 주요 도시들에서 가까운 외곽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다차는 농산물에 관련된 경제적 가치나 번영이라는 이미지에 결부돼 있지만, 이것은 보다 최근의 현상이지 원래 다차에는 잉여 농산물 생산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다차에는 18세기 이래 심미적 목적을 위한 정원들이 존재해왔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다차는 여가와 휴식의 장소였다. 19세기 동안 다차가 크게 인기를 얻고 널리 이용되면서 중산층이 성장했다. 다차는 1917년 혁명 직전까지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었고, 중산층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적 생활빙식을 대변했다. 표트르 대제 시대에 시작된 다차의 원래 의도는 여름 동안 도시의 혼돈으로부터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피서장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다차텃밭의 등장
다차텃밭은 소비에트연방 시절에 그 중요성이 커졌고, 심미적 목적만이 아니라 소비에트의 생존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식품 생산을 위해서 다차텃밭을 지원했다. 텃밭과 작물 경장이라는 개념은 브레즈네프 정권 동안 확대되었다. 브레즈네프 정권에서 도시 텃밭과 작물 경작 그리고 감자와 채소 재배의 집단화는 중요한 의미를 차지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공산당까지 나서서 텃밭 운동을 지원했다. 소비에트 붕괴 후 1990년 동안 다차에서의 텃밭 농사는 러시아인들이 식품 부족 사태를 모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소비에트 정부가 다차의 가치를 크게 변화시켰지만, 그 유산은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러시아인들은 이 여가활동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소비에트 정부가 경작용으로 다차를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련 시민들은 이 텃밭 가꾸기와 노동을 크게 즐겼다. 뿐만 아니라 최대 수확을 기록하기 위한 경쟁이 다차들 사이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주된 인센티브는 인민들이 자신의 다차에서 생산한 잉여 작물을 스스로 처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최신의 현상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시작되어 현재의 러시아까지 계속돼오고 있다.
다차활동
텃밭 가꾸기 이외에, 사냥과 낚시도 다차에서 사람들이 빈번히 행하는 활동이다. 러시아인들은 소비를 줄이고, 다차의 텃밭농사로 자급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인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시장에서 사지않고 손수 기르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식량을 채취하거나 경작하는 것이 시장에서의 외로운 상품구매 행위보다도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스스로 자연적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행위는 러시아인들로서는 자본주의로부터 한 걸음 비켜서 있는 행동을 표상한다. 그들은 식품 부족 사태를 모면하는 수단으로서, 그리고 휴식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수단으로서 다차의 이 비교적 새로운 목적을 철저히 향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텃밭 일과 검소한 생활이 주는 혜택을 즐기고 있는 반면에 텃밭 일이 육체적으로 심히 고단한 일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성립된 이래 다차는 거의 30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의 전통이다. 1995년에 다차텃밭은 150만개를 넘었고, 다차를 보유한 도시 가정은 165만 세대였다.
러시아정부는 1999년에 국가적 축일로서 '텃밭의 날(*다츠니키의 날???)' 을 제정했다. 이것은 근대 러시아에서 텃밭운동이 갖는 중요성과 정당성을 확인해준다. 그리고 다차를 일년 내내 이용하고 텃밭 일에 초점을 두는 쪽으로 변화하면서 이제 다차를 가리키는 데에 두 개의 용어 - 코테즈와 다차 - 가 사용되고 있다. 코테즈는 일년 내내 사용하는 별장 같은 집을 가리키는데, 서구적 의미와 비슷하다. 다른 한편으로, 다차는 기본적으로 도시 주민들을 위한 여름용 오두막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차에서의 자연식품운동
다차텃밭은 가졍경제에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을 도와준다. 다차에서는 자연식품이 자란다. 예를 들어, 후추, 서양호박, 무, 당근, 양파, 완두, 호박, 양배추, 비트, 마늘, 오이, 강낭콩, 딸기, 나무딸기, 까치밥열매, 포도, 허브, 향신료 등등이다. 버섯과 야생 딸기 채취는 오늘날 다차에서 러시아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활동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딸기와 버섯 채취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다차를 찾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다차-러시아 시골에서의 유기적 삶>의 저자 멜리사 캐드웰에 의하면, 러시아인들이 버섯이나 딸기에 열중하는 것은 고립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연식품에 대한 관심이라는 뿌리 깊은 문화적 전통에 관련되어 있다. 이 자연식품운동은 다차 활동의 중심이 심미적 목적이나 순전한 휴식 및 레크리에이션 목적에서 작물 경작으로 이동해온 과정에 대응한다.
멜리사 캐드웰은 러시아에서 자연식품이 갖는 중요성을 말하고 , 이 자연식품을 생산하는 데에 다차가 차지하는 역할을 상세히 설명한다. 러시아인들은 흔히 자신의 다차 텃밭에서 채소와 과일을 길러 먹는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에게 다차에서의 경작이 주는 혜택은 인근 식품점에서 농산물을 구해 먹는 편리함을 능가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은 자시이 기른 식품에 자부심을 가지며, 그 식품은 또한 환경적으로 깨끗한 것이기에 큰 혜택을 준다고 캐드웰은 설명한다. 게다가 러시아인들은 자신이 먹는 식품이 어떤 곳, 어떤 토양에서 길러진 것인지를 몹시 알고 싶어 한다. 따라서 손수 작물을 기르는 것은 그들에게 심리적 평안을 부여한다.
많은 러시아인들에게는 다차가 주는 혜택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자신의 먹을 거리를 손수 기르는 행위에서 심리적인 만족을 느끼는 것에는 또다른 까닭이 있다 . 즉, 많은 사람들은 만약 상업화된 틀 속에서 포장.유통되고 있는 식품을 사먹는다면 그들 자신이 자본가들에게 종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러시아적 가치의 표상 소비에트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다차는 주로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소련정부는 토지뿐만 아니라 다차의 분배에 있어서도 평등성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사회경제적인 지위에 관계없이 다수 가정이 다차를 보유하고 있다 . 그리고 그들은 심미적 목적이나 경작용, 혹은 양자 혼합 방식 등, 여러가지 용도로 활요하고 있다. 다차에서의 텃밭 가꾸기를 농민적 활동으로 보는 러시아인들도 있지만, 텃밭과 자연식품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각별한 관심은 왜 그러한 활동이 다차에서 인기가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에게 이것은 사회적 계급과는 관계없는 문제이다. 오늘날 다차의 규모는 큰 빌라에서 오두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다차들 사이에는 별로 차이가 없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정부에 의해 다차의 역할이 변화해왔지만, 전반적으로 다차 공동체의 성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차에서의 생활방식이 나타내는 것은, 근대화.도시화에의 집중을 피하고 , (주말 동안의 다차생활이 표상하는) 보다 느린 속도의 삶을 선호하는 러시아인들의 가치관이다.
다차는 큰 규모의 사적 소유 땅이 아니다. 실제 다차는 대체로 작은 땅으로 구성돼 있고, 공동체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열려진 다차의 정원이나 텃밭, 그리고 그곳의 생활방식은 공동체와 연대를 중히 여기는 러시아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다차에 의해 성립된 문화와 공동체는 전체적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정부의 방침에 따른 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차 공동체는 여전히 인기가 있고, 러시아 문화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차 공동체는 러시아인들의 심미적 활동과 여가활동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윗글의 출처는 : "녹색평론" 2013년 3~4월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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