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오리엔탈리즘의 선구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글렌 굴드에 대해 온전히 한 챕터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일년 앞두고 1981년 컬럼비아 레코드사와 작업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음반은 지적 비루투오소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을 뿐 만 아니라 연주가 작곡의 반열에 올라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연주를 통해 여전히 작품이 작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공연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라벨, 사티에 이어 라모, 쿠플랭, 스칼를라티 등 바로크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그는 이번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악보를 들고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사라방드 풍의 아리아로 시작해서 30곡의 변주곡을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아리아)로 와서 끝을 맺는 80분 동안 타로는 단아하고 담백하면서 깊은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한음 한음을 놓치지 않고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는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선율은 우주 어딘가에 이름 모를 존재로 태어난 작은 생명체에게 위안과 안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처럼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날 것 같지 않게 반복되는 선율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을 때 연주자도 청중도 모두 마지막 음이 공기 중으로 아스라히 사라지는 순간을 숨죽여 기다렸습니다. 실로 아름다운 순간이었죠.
그날 저는 운 좋게도 연주자의 손모양이 아주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무대를 등지고 앉은 알렉상드르 타로의 전체적인 모습과 건반 위를 이리저리 오고가는 손 모양이 겹치면서 마치 큰 화면에 작은 화면이 들어있는 TV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작은 화면에 보인 타로의 손은 길고 유연해서 흡사 무대위를 뛰어다니는 발레리나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듣는 감동 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같이 선사해 준 공연이었죠.
제 눈에 특이하게 보인 점은 왼손 타건 모습인데 왼손에서 들려오는 음이 매우 선명하게 들릴뿐 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왼손이 연주를 하고 오른손이 반주를 하는 것 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속도가 다소 늦춰진 15번 변주곡 이후에는 건반을 누르고 그 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다듬는 듯한 타건법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선율을 더욱 유려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곡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자신만의 작은 리츄얼을 보여주었는데 이를테면 손으로 원을 그린다거나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묵상에 잠기는 모습은 경건함을 더 해 주었어요. 그 순간 타로는 마치 가톨릭 사제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사실 납작하고 마른 체격이라 더욱더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본 프로그램 이후 앵콜로 들려준 스카를라티 소나타 141번 연주에서는 피아노를 마치 하프 연주하듯이 켜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전까지 정적이던 타로의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해서 깜짝 놀랬습니다. 두번째 앵콜곡인 왈츠도 좋았지만 먼저 들려준 스카를라티 소나타는 타로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듣기고 좋았습니다.
다음날 풍월당에서 열린 대담 및 사인회에서 본 자연인 알렉상드르 타로는 연주 못지 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은 대단히 깊게 사유하고 성찰하며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연주자의 이미지였습니다. 그날 대담한 내용은 정리해서 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본인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떤 의미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 간단히 언급하며 마칠까 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건반악기를 위해 쓰여진 순환하는 세계와 같은 곡입니다. 구조적으로 봐도 그렇고, 악상적인 면모를 봐도 그렇고, 바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봐도 그렇습니다. 매번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제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모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체험을 하게 해주는데 이곡 을 연주할 때마다 저는 곡과 관객을 연주로 이어주는 사슬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관객과 같이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시간에 대한 느낌을 잊게 되는데 듣거나 연주할 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 곡을 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망각하게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의 모든 과제를 내려놓고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 사랑, 자아의 무게 등... 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할 때마다 사소한 것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악한 행동을 한 사람도 용서할 수 있고, 또 제가 모르는 사이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도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죽음을 몇분 앞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눈앞에 쏟아지는데 '인생에 대단하고 중요한 것은 없었어'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략) 삶이란 별거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 또 삶은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느낌... 심지어 마지막 아리아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느낌이 듭니다."




첫댓글 좋은 공연을 보셨군요. 전문 연주가들이 한곡 한곡 자신의 분신처럼 연구하여 만들어 내는
곡들은 경의로움과 신비함을 우리들에게 선사합니다.타로의 연주에서 발레리나의 모습을
보았다는 pure님의 말씀에 저는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타로의 어머니는 파리 오페라 발레 지도 교수를
지낸 발레리나 였고 타로 역시 어려서 발레를 배웠다고 합니다.
연주회뿐만 아니라 연주인을 더욱 느끼기 위해 대담회까지 찾으시는 pure님의
모습에 감동 합니다. 항상 좋은 글 역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좋은 글 허락하신다면 모셔가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전문가적 식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관객의 감상문을 좋게 읽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부끄럽지만 언제든 갖고 가셔도 좋습니다. 대담에서도 타로의 부모님 두분다 예술가라고 하던데 어머니가 발레리나였군요. 게다가 발레를 배워서 그런지 타로의 리듬감이 남달랐어요.
작곡가나 연주자의 전기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제가 공연이나 음반에서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되어 훨씬 더 폭넓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자리가 있으면 참석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지만 막상 여건이 안될 때가 있어 자주 가보진 못합니다...
@pure 고맙습니다. 드래그 해서 모셔가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마도 바리톤 성악가였고 할아버지가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sangyoung 와~ 완전 예술가 집안이군요. 고맙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감동이 있는 연주였습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후에 앙코르를 하면 감흥이 깨질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분명 그러했습니다. 본 연주도 감동적이었는데 앵콜 연주도 정말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타로의 골드베르크는 역시 사유와 성찰이 들어있는 것이었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저 또한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고맙습니다^^
공연이란 1등의 연주, 실수없는 연주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음악작품을 자신의 음악적 자아로 올곧이 성장시켜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는것 같습니다. 퓨어님이 감동하는 것처럼요~
음악적 자아~ 너무 멋진 말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더없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