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절의 쟁점 <아동문학>
동시 한 편이 일으킨 파문
이 영호
5월은 축제의 달이다. 공휴일로 지정된 5일 어린이날을 시발로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과 가정의 날이고, 21일은 부부의 날이니 말이다.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는 어린이날을 필두로 어버이와, 스승과 가정과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부를 기념하는 날이 총총히 들어있는 5월은 축하와 감사의 달임이 분명하다.
이런 5월에 초등학교 3학년인 어린이의 이름으로 출간된 <솔로강아지>라는 동시집이 축하는커녕 엄청난 부정적인 파문을 일으킨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 동시집에 수록되어있는 문제의 작품 ‘학원가기 싫은 날’ 이 일으킨 파문은 지난 6월에 터져 나온 한국의 대표적 여류작가인 신경숙의 단편 소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서 온 세상이 시끄러웠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윤리적 교육적 의미를 던지고 있는 사태였다.
그런데도 어린이의 이름으로 출간된 동시집이 예사롭지 않은 사회적 파동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동시 창작과 지도의 전문가들인 동시인은 물론이고 아동문학 평론가나 아동문학인들 중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 실명으로 논평을 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마침 본지 이번 호에 ‘이 계절의 쟁점ㅡ아동문학’ 난의 원고를 청탁받게 되었기로 늦었지만 이 사건을 쟁점의 소재로 선택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대체 어떤 동시를 썼기에 그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궁금해 할 동시인과 아동문학가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문제의 동시 ‘학원가기 싫은 날’의 전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고작 3학년 어린이가 쓴 동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동시에 삽화가가 붙인 삽화 또한 동시 내용의 참혹성이 시각적으로 돋보이도록 피가 낭자한 상태로 쓰러져있는 여자와 그 옆에 심장을 들고 있는 피로 물든 화자를 그려놓고 있다.
동시집을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한 한 학부모가 작품과 함께 격한 비판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놓자 쇼크를 먹은 학부모들이 격앙된 표현으로 그 동시집을 출간한 출판사는 물론이고 동시를 쓴 어린이와 그 부모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다투어 올려놓기 시작했다. 어린 자녀들의 정서와 윤리를 해칠 수 있는 끔찍한 ‘패륜 동시', ’잔혹 동시’, ‘호로 동시’라는 것이 그들이 내린 정의였다. ‘어린이가 엄마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먹기까지 하는 이런 것이 무슨 시냐’면서 그런 시를 쓴 어린이는 물론이고 부모와 출판사, 삽화를 그린 그림작가까지 싸잡아 비난과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끔찍한 내용을 동시라고 쓴 아이를 당장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 ‘아이가 사이코패스다’ ‘부모가 미친 것 같다’ 는 등의 격한 표현의 댓글이 난무했고, 그런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동시집을 출간하여 돈벌이를 하려고 한 출판사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글이 출판사 홈페이지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비난과 성토가 것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급기야 출판사 사장이 사과와 함께 수습책을 내놓았다. “‘솔로강아지’의 일부 내용이 표현 자유의 허용 수위를 넘어섰고 독자인 어린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항의와 질타를 많은 분들로부터 받았다”면서 “이를 수용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도서 전량을 회수하고, 갖고 있던 도서도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는 사과를 겸한 수습책을 발표한 것이다. 출판사가 사과와 후속 조치를 약속하자 겨우 소요 사태는 진정 국면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동문학가의 한 사람으로서 출판사의 조치는 당연하고 온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에서 다루는 문학적 소재는 동화, 동시, 동극 등이 있지만 창작까지 함께 글쓰기에서 다루는 교재는 동시가 유일한데 어린이의 동시 쓰기는 문인을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이의 순수한 정서를 표현하는 동시 창작을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익히고 고운 심성과 정서를 표현하고 습득할 수 있는 교재로 최적의 학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판사의 이런 조치에 이번에는 그 동시집을 낸 어린이의 부모가 반발하고 나섰다. 놀랍게도 현역 시인으로 알려진 그 어린이의 엄마가 "문제가 된 동시 '학원가기 싫은 날'은 아이들을 숨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모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우화로 작품성과 시적 예술성이 있다" 면서 ."딸이 엽기 호러물과 추리소설, 괴담 만화책 등을 좋아하는데 '학원가기 싫은 날'이 나름 작품성과 시적 예술성을 갖췄다고 확신했다"고 평가하면서 "영어로 번역한 것도 '엽기 호러'를 콘셉트로 한 아동문학사에 의미 있는 동시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유럽과 미국에 알리고 싶었다"는 말로 동시집의 폐기조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도된 것이다.
고작 열 살 어린이가 쓴 작품을 두고 성인 동시인의 빼어난 작품에도 좀처럼 붙일 수 없는 ‘비판적 우화로 작품성과 시적 예술성이 있다’고 단언하는 것도 해괴한 일이지만, '엽기호러'를 콘셉트로 한 아동문학사에 의미 있는 동시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유럽과 미국에 알리고 싶어 영어로 번역했다‘는 엄마의 과대 망상증에 실소가 터져 나올 지경이다. 고작 열 살인 3학년 어린이가 쓴 문제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여 유럽과 미국에 소개해서 딸이 '엽기 호러'를 콘셉트로 한 아동문학사에 의미 있는 동시가 한국에서 나왔음을 해외에 자랑하고 싶었다‘니 그것이 시인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시인 엄마의 확신에 동감한 그 어린이의 아버지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솔로강아지> 회수 및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주변의 여론과 만류로 소를 취하한 것으로 밝혀져 더욱 놀랍다.
만약 시인 엄마의 말처럼 딸이 쓴 작품이 '엽기 호러'를 콘셉트로 한국 아동문학사에 의미 있는 동시를 쓸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어린이‘로 확신했다면 그런 동시 작품만을 모아서 작품의 성격을 표지에서 밝힌 동시집을 따로 냈으면 이번과 같은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문의 소치인지는 모르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런 엽기 호러 동시집을 낸 어린이나 동시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선량인 국회의원이 내뱉은 막말 파동으로 한 야당 의원이 당에서 징계를 당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줄로 안다. 막말을 하는 국회의원이 어디 그 사람 하나뿐인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회의장에서 내뱉는 언어가 그 지경인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회의원이 그 지경이니 정부의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끊임없이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정체 불명의 각종 단체 인사들이 일상적으로 내뱉는 막말은 이미 도를 넘어선지가 오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 그대로 이런 어른들의 막말 행태는 영상 매체를 통해 고스란히 어린이의 언어생활에도 파급되고 있다. 그래서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언어생활이 극도로 오염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어린이들의 언어생활을 바로잡고 순화된 아름다운 언어를 쓰도록 가르치는 교육은 바른생활과 국어교육이고, 동시 창작은 그런 교육의 핵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동시 파문이 한 유명 소설가가 일으킨 표절 파문보다 더 크게 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
* 이 글은 한국문인협회에서 간행하고 있는 <한국문학인>(계절문학) 지난 가을호에 발표된 '이 계절의 쟁점' 난에 수록된 글입니다.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만 할 아동시의 일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글이어서 편집회의에서 우리 회보에 재수록하기로 하고 필자의 양해를 얻어 이 면에 수록하였습니다. (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