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한 인간의 본성
나는 맹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선천적으로 보편적인 선한 덕성을 타고난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사람이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각종 혼란 속에서도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면서, 특히 학교에서 말하는 소위 문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 생각이 철저히 무너졌던 때가 있었다. 교활하다 못해 악독하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회의까지 들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인간은 선한 존재라는 믿음을 다잡게 되었다. 차가 전복된 교통사고였는데 사고를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현장에 다가가 구조를 도왔고 운전자의 안위를 걱정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그랬고, 나도 다른 어떤 생각을 할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보며 유자입정의 사례가 생각났다. 이렇듯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차마 그대로 보고 넘기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안타까워하며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 부모에게서 어떤 혜택을 얻고자 하기 때문도 아니고, 이웃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려 하기 때문도 아닌 그저 우리의 타고난 도덕심(四端)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럼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각종 사회 문제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맹자』에 보면 ‘풍년에는 젊은이들 가운데 나태한 사람이 많고, 흉년에는 젊은이들 가운데 포악한 사람이 많다. 하늘이 내린 자질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함닉시키는 것이 그렇게 만든다.’는 구절이 나온다. 맹자는 불선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지 않고 불선을 조장하는 외부적 환경에서 그 답을 구했다. 내가 경험한 교활하다 못해 간악하다고 느꼈던 문제 학생들도 보면 대부분 그 아이의 처지나 살아온 환경이 본성의 선함을 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환경을 고려해 본다면 문제 행동들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극악무도함과 잔인함을 마주할 때면 도덕교사로서 좌절감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보려 한다. 본래의 선한 마음을 구하기 위해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자료들을 찾으며 매일 수업을 고민한다. 나부터 솔선수범해야지 하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