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제두 양명학 : 우리나라에 양명학이 수용된 시기는 조선 중기이다.
수용 초기의 학자는 남언경, 이요, 이항복, 신흠, 최명길, 장유 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는 정제두가 있다. 정제두는 격물치지관을 주장했는데,
그는 물리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탄생한다고 여겼다. 정제두는 궁극적 탐구대상은 물 리가 아니라
진리라고 보았고, 그 진리는 마음의 본체라고 주장했다. 이 마음의 본체를 바탕으로 모든 만물의 이치가
통섭되는 것이다. 그는 리를 물리, 생리, 진리 등의 세 단계로 이해하였다.
정제두는 양명학의 심즉리와 주자학의 성즉리를 모두 인정하였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한몸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안에 다시 차이를 설정하고, 세계 일체의 관점을 생명성에 두는 만물일체 사상을 주장했다.
정제두는 진리개념을 통해 만물일체를 논하면서도 인간의 윤리적 책임 주체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려 했고,
생리 개념을 통해 생명의 긍정적 윤리학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는 포스트휴먼적 특징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지(知)와 행(行)의 문제에서 성리학은 먼저 알고 나서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며 지식이 우선이고
행동은 그 지식에 따른 결과로 보는 이 선지후행(先知後行)의 입장, 양명학은 앎과 행동이 하나라는 개념에서
지식과 행동은 불가분하며 실천을 통해 지식이 검증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입장으로 각각 차이가 있다.
앎과 행함의 선 후 문제에서 성리학과 양명학 중 어느 입장을 지지하는가?
= 성리학의 입장을 지지한다. 선지후행은 이론적 기초를 먼저 다룬다. 이론적 기초를 제대로 다루면 결국
나중에 실천을 해야할 때 훨씬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행합일은 지식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는 지식과 행동의 통합을 강조하여
두 가지가 함께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곧바로 행함이 동반되지 않다고 해서
그 지식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론을 먼저 배우는 과정을 거치면,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식이 먼저 있고 그 다음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선지후행이 조금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상황을 통해 이 주장을 보충해 보자면, 최근 학술 발제를 준비하는 상황을 생각해보고 싶다.
이번 학술 발제 주제는 ‘지눌’이었는데, 처음 지눌에 대한 앎이 부족했을 때는 발제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본질적인 앎 없이 계속 발제문만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의 부족함을 깨닫고 책을 읽고 논문을 찾아보며 앎을 깨우치니 그 다음 과정인 발제문을
작성하는 일은 굉장히 수월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앎이 먼저 바탕이 되어 실천이 따라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성리학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