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밥뭇나
사모아 이민자의 아들인 마크 헌트는 1974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헌트가 자라났던 오클랜드 남부지역은 거칠고 험악한곳이다. 어린시절에 대해 헌트는 UFC 160 카운트다운 영상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릴때 싸움을 많이 했어요, 여러가지 것들로 문제에 휘말렸죠. 무척 가난했습니다. 가난하게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많아지죠. 먹을것 조차 부족했어요. 그렇게 화내면서 성장했습니다. 제 인생은... 아마 감옥으로 향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만, 신께서 저를 격투계로 인도하셨어요. 격투가 저를 구원했습니다."
1990년대의 초반, 18~19세 였던 헌트는 한 나이트 클럽에서 난투를 벌였다. 헌트가 상대를 손쉽게 때려눕히는 모습을 본 기도 샘 마스터스는 그의 싸움실력에 감명을 받았고 헌트를 자신의 무에타이 도장으로 초대했다. 이 부분에 대한 헌트의 회상은 아래와 같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나이트 클럽 앞에서 술이 취해 싸우다가 첫 트레이너를 만났죠. 1주일 정도 훈련을 하고 무에타이 시합을 뛰었습니다. 상대는 저보다 30KG 정도 더 나가는 선수였지만 제가 2라운드에 그를 KO시켰어요."
그는 타고난 파이터였고 곧 프로 킥복싱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8년 헌트는 25세의 나이로 프로 복싱에도 발을 들여놓지만 데뷔전에서 판정패를 당했다. (총전적 1무 1패)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참고하면 프로 초반의 헌트는 대회에 빈자리가 생기면 급히 대타로 출전하는 보결전문 선수였던것으로 보인다. 2000년 2월 시드니에서 K-1 2000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토너먼트가 벌어졌다. 당시 14승 5패 3KO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던 헌트는 이 대회에서 K-1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헌트는 로니 세포(레이 세포의 동생)를 포함한 세명의 상대를 꺽으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의 K-1 토너먼트는 3개의 층위로 구성되어있었다. 가장 낮은단계가 지역 예선(preliminary)이었고 두번째가 WGP 출전자 선발전(대회 제목 뒤에 in 도시명으로 명명된다)이었으며 두대회에서 자격을 얻어 올라온 16명의 선수들이 16강 원매치를 치르고 최종 선발된 8명이 연말 WGP 토너먼트에서 최종 우승자가 되기위해 경쟁했다. 헌트가 우승한 대회는 지역 예선이었고 헌트에게는 WGP 출전자 선발전에 올라갈 자격이 주어졌다. 나고야에서 열린 K-1 그랑프리 2000 in 나고야 대회의 8강에서 헌트는 제롬 르 벤너를 처음으로 만났고 판정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2001년 2월 K-1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토너먼트에 헌트는 전년도에 이어 출장했다. 8강과 준결승에서 연속 KO승을 거군 헌트는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피터 그래함이었다. (*그래함은 2006년 초대형 공중뒤돌려차기 '롤링썬더'로 바다하리의 턱을 부순 장본인이고 샘 그레코, 알렉세이 이그나쇼프, 폴 슬로윈스키 등을 꺽게되는 오세아니아 지역의 강자였다.)
2001년 2월 마크 헌트 대 피터 그래함 3라운드
*피터 그래함 롤링썬더 장면
단신에 체중이 많이 나가는 헌트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정면에서 접근해 들어가 강타위주로 몰아치는 타입이다. 방식 자체는 단순하다. 헌트는 상대의 공격을 최소한의 방어로 흘리거나 막고 넉넉한 받아치기 타이밍을 잡는편을 선호한다. 반대의 경우, 예를 들면 본야스키 같은 경우는 상대의 공격이 들어올 경우 카운터 타이밍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확실한 방어를 완성시키는데 우선순위를 둔다는것이다. 헌트는 한대 맞더라도 카운터 찬스를 잡으려 하고 본야스키는 카운터 못때리더라도 확실하게 방어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선수의 방어성향은 언더 디펜스, (미디엄), 오버디펜스로 구분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오버 디펜스 플레이어란 후스트-본야스키-쉴트 같은 타입인 것이고 언더디펜스의 경우 아츠-헌트-바다 하리 같은 스타일이 된다. 극단적인 오버디펜스 선수들은 정확하고 기계적인 방어로 상대를 심리적으로 좌절시키고 체력 소모를 유도하는것을 즐기는것 처럼 보이는 운영을 선호하며 극단적인 언더 디펜스 플레이어들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야할 어떤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카운터 날릴 기회 정도로 생각하고 방어행위 자체가 카운터 공격과 잘 연결되어 있다.
헌트의 언더디펜스 성향이 상대하는 입장에서 곤란한 이유는 그의 내구력이 워낙 우수하기 때문이 첫번째 이유이고 공격이 실패하면 높은 확률로 카운터가 날아오는데 그것이 의외로 빠르고 매우 강력할 뿐더러 다양한 방향에서 날아드는 몇가지 옵션(그렇다고 그렇게 다양한것은 아니다)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정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헌트는 스텝은 느릿하지만 순간적인 움직임은 굉장히 민첩하고 반응속도도 무섭게 빠르다. 즉 그는 맞추기 쉽지도 않고, 맞춰도 잘 버티고, 혹시 실패하면 굉장히 강력한 카운터가 날아온다든지, 접근을 허용하게 된다든지 하는 페널티가 따르는 상대인 것이다. 헌트는 슬러거이면서 카운터 파이터의 속성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것으로 총평할 수 있다. 특기는 레프트 훅, 라이트 어퍼, 라이트 오버핸드이며 로킥도 모양새가 조금 빠지기는 하지만 좋은 타이밍에서 상당히 강하게 나온다.
그래함과의 위 경기 영상은 3라운드 내용밖에 없어서 어떤 분석자료로써의 가치가 다소 부족하다. 한가지 눈에들어오는것은 어퍼컷의 사용으로 자신보다 신장이 높은 선수인데도 계속 어퍼컷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미스가 상당히 많이 났지만 라이트 오버핸드로 그래함이 숙이게 만들고 바로 라이트 어퍼로 올려친 것이 정확하게 적중했고 레프트 훅을 던져 숙이게 만들고 라이트어퍼를 올려친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헌트의 장점이 주로 부각된 내용이었다.
이 경기의 승리로 헌트는 2001년 멜버른에서 열린 WGP 출전자 선발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8강 라운드의 상대는 아마다 히로미였다.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_CdzZPrKyGI
아마다 히로미는 복서출신의 K-1파이터다. 상당한 복싱실력을 갖춘 선수답게 경기에서 좌우로 잘 움직이고 있고 펀칭솜씨도 잘 다듬어져 있다. 헌트는 이 경기에서 깔끔안 기술을 갖춘 복서를 상대로 거친 운영과 로킥의 적극적 사용으로 승기를 잡았다. 정교한 선수는 거칠게 때려부수는것, 그리고 복서잡는 로킥이라는 격투계의 속설이 딱 들어맞는 내용이었다.
준결승에서 한트를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였다.
후스트와의 경기에서는 헌트의 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헌트는 단신이고 리치가 짧기 때문에 높고 길고 빠른 후스트의 치고 빠지기와 때리고 붙잡기에 약점을 보였다. 그리고 공격옵션이 강한위력을 가진 큰기술 위주였기 때문에 후스트의 완벽 방어선을 뚫기 힘들었다. 그리고 후스트는 1라운드와 3라운드의 템포와 활력이 비슷한데 비해 헌트는 3라운드에 다소 지친 모습인 점도 눈에 뜨인다.
이경기에서 후스트의 방식을 잘 보면 히트 & 어웨이, 스트라이크 & 클린치 말고도 상단공격을 흘리면서 로킥으로 카운터를 차는 장면, 컴비네이션의 마지막을 로킥으로 끝내는 안정감등을 관찰할 수 있다. 후스트가 여러가지 면에서 헌트에 비해 우위였고 2라운드에 헌트가 바디 스트레이트로 판정상 다운을 하나 얻어냈지만 후스트에게 충격은 없었다. 결과는 헌트의 판정패.
이 경기의 해설진은 헌트의 강펀치를 '수면제' 라고 부른다. 그리고 헌트의 이 당시 별명은 '닥터'였는데 수면제를 강제로 처방해주고 상대를 잠들게 만드는 능력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것으로 짐작된다.
2001년 10월 8일 'K-1 in 후쿠오카'의 준결승에서 세포와 헌트가 만났다. 이 대회는 연말 WGP 그랑프리에 출전할 선수를 선발하기 위한 토너먼트였다. 원래는 크로캅이 세포와 싸울 예정이었지만 경기를 몇주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헌트가 급히 대타를 뛰게 되었던 상황이었다.
WKA 시절의 세포
71년생의 뉴질랜드인(사모아계) 레이 세포는 89년에 데뷔했고 라이트 헤비-크루저 급에서 싸우던 베테랑 킥복서다. 신장은 약 183cm 정도(프로필상 신장이고 실제는 180 조금 못되는 정도인것으로 보임)로 한계체중 약 88KG이하의 체급대에 잘 어울리는 선수로 볼 수 있다. WKA무대에서는 스피드와 테크닉과 파워의 수준높은 조화로 명성이 자자했고 '슈거풋'이라는 별명도 유명했다.
96년 그는 무제한급 킥복싱의 최고 스테이지인 K-1에 진출했다. 97년, 세포는 강력한 라이트 로버핸드로 제롬 르 벤너를 잠재웠다. 세포의 특기였던 이 라이트 결정기에는 '부메랑 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체격자체가 워낙 불리했기 때문에 체격조건이 좋고 안정적인 운영을 하는 본야스키나 후스트같은 선수들에게는 다소 약한 면모를 보였지만 그외의 상대들과는 아주 좋은 승부를 많이 벌인 세포는 매력적인 파이터였다.
두선수 모두 슬러거-카운터파이터 하이브리드이며 세포는 미디엄 디펜스 카운터 파이터 성향이 상대적으로 조금 강했고 헌트는 파워와 맺집과 어그레션이 한수 위였다. 헌트는 세포를 향해 다가서면서 공세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세포는 헌트의 빈틈으로 날카로운 카운터를 적중시켰다. 기세는 헌트였지만 실리는 세포가 가져간 셈이다. 2라운드에도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세포가 스피드와 테크닉면에서 한 수위임을 보여주며 적중률을 높여가고 있었다. 헌트는 많이 맞으면서 좀처럼 때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보통 자신보다 크고 느린 선수들을 상대로 싸워왔던 헌트에게 자기보다 더 작고 재빠른 세포는 매우 어려운 상대였다.
2 라운드 중반에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포의 공격을 몇차례 허용하던 헌트가 세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발을 멈추고 가드까지 내린채 'Hit me' 라고 말한 것이다. 세포는 어이 없는 듯 웃으며 클린치를 잡았는데 헌트는 세포의 귀에다 대고 계속 때려보라고 도발을 했다. 잠시 정상적인 전개가 이어지다가 이번에는 세포가 공격을 끝낸 후 그자리에 버티고 서서 헌트에게 쳐보라는식으로 제스쳐를 취했다. 헌트가 힘껏 좌우연타를 휘둘렀지만 세포는 여유있게 그것들을 다 막아냈다. 그리고 세포가 공세로 전환했을 때 헌트가 다시한번 가드를 내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세포는 냉정하게 펀치연타를 퍼부었다. 상당히 무거운 펀치가 몇차례 적중했지만 헌트는 멀쩡했다. 그리고나서 두선수는 경기라는 틀을 벗어나 진짜배기 '싸움판'을 벌였다.
헤비급 킥복서들이 서로의 손이 닿는 거리에서 가드를 내리고 서로 차례를 바꾸어가며 치고 받는다는것은 우주적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세포의 움직임을 잡아내기가 힘들었던 헌트가 친 일종의 배수진이자 하나의 덫으로 볼 수 있었는데 세포가 그것에 기꺼이 뛰어들면서 이런 명장면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기의 결과는 세포의 넉넉한 판정승이었다. 그렇지만 세포는 헌트와의 경기에서 눈부상을 당했고 세포가 물러나면서 결승에는 헌트가 올라갔다. 헌트가 경기에서는 졌지만 싸움에서는 이긴 셈이다.
결승에는 아담 와트라는 호주 선수가 올라가 있었다. 세포-헌트전에서 막대한 소모전이 벌어지자 해설진은 '아담 와트가 이 경기를 보면서 매우 해피해 하고 있겠군요'라는 언급을 했다. 와트는 준결승에서 일찌감치 KO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승에 오른 헌트는 3라운드, 와트에게 수면제를 처방해버렸고 상대가 잠든 사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K-1 WGP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단지 세계 최고레벨의 무제한급 킥복서 8인이 1년동안 수많은 대회를 치르며 선발되고 그들이 최종 토너먼트를 벌여 최종승자, 즉 왕중왕을 가려내는 그런 대회였던것 뿐이었을까. 그렇다면 현 입식 최고 이벤트인 '글로리' 와 절정기의 K-1이 이다지도 다른느낌인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규모 때문일것이다. 대회의 규모면에서 한창때의 K-1 WGP는 당대의 그 어떤 대회보다 거대했다. K-1 WGP 2001은 도쿄돔에서 열렸고 관객수가 무려 6만 5천명에 달했다.
후쿠오카 대회에서 운수좋게 우승을 거두었던 헌트에게도 도쿄돔으로부터의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8강 대진은 아래와 같았다.
어네스트 후스트-스테판 레코
제롬 르 벤너-마크 헌트
피터 아츠-프란시스코 필리오
알렉세이 이그나쇼프-나콜라스 페타스
헌트는 8강 라운드에서 제롬 르 벤너와 대전했다. 두번째의 만남이었다. 첫 대결에서는 벤너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1972년생의 프랑스산 사우스포 르 베네는 매우 우수한 타격기술자였다. 앞발(오른쪽) 로우킥으로도 KO를 뽑아낼 수 있었고 상중하로 나누어 차는 뒷발은 커버링을 해도 대단한 충격이 전해질만큼 강력했다. 벤너는 18세에 프로 킥복서로 데뷔했고 95년부터 K-1에 등장했으며 후스트, 아츠, 앤디 훅, 베르나르도 등과 함께 초기 K-1을 대표하는 탑 파이터로 성장했다.
2001년 WGP의 본선무대에서 벤너는 시드를 받은 파이터였다. 헌트는 그에비해 무명에 가까웠고 아무리 잘봐줘도 다크호스, 혹은 시드선수에게 바쳐진 떡밥같은 느낌이 강했다. 체격조건부터 차이가 심했다. 벤너는 190cm 헌트는 178cm였다.
벤너의 특기 패턴은 킥거리에서 라이트 로킥과 레프트 미들킥, 레프트 하이킥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형태다. 하나하나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벤너가 좋아하는 거리와 타격 및 카운터 타이밍을 자꾸 내주고 벤너의 패턴에 말려들면 정말 처참하게 두들겨 맞게된다 1라운드는 헌트가 벤너의 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벤너는 여유있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었으며 헌트가 가끔 펀치러쉬를 걸었지만 너무 멀었고 벤너에게 오히려 카운터 찬스만 내주고 있었다.
2라운드가 되자 벤너가 전략을 바꾸었다. 자신의 킥거리보다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서 타격전을 벌였고 공세를 크게 강화했다. 아마도 피니시를 노리고 있었던것 같은데, 헌트는 벤너의 맹공앞에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실마리를 풀지 못한채 실점을 거듭하고 있었다. 경기의 밀도가 높아져 가고 있었고 6만5천의 대관중이 쏟아내는 함성이 지축을 울리던 중이었다. 코너에 처박혀 벤너의 공세를 받아내던 헌트가 갑자기 가드를 내리며 턱을 내미는 도발기를 걸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갔다, 그리고 그 직후의 펀치교환에서 헌트가 라이트 오버핸드를 벤너의 관자노리에 정확히 꽃아넣었다. 충격을 입은 벤너는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헌트의 파상공세가 벤너의 뒤를 추격했다. 코너부근에서 저항불능에 빠진 벤너의 안면에 헌트의 포격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경기장은 폭발 일보직전이 되었고 잠시후 레프리가 TKO선언을 하며 헌트를 제지하자 벤너의 거대한 몸뚱이가 힘을잃고 허물어져내렸다. 벤너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내구력인데 헌트가 그것을 기가막히게 파고들었던것으로 볼 수 있다.
8강의 결과는 이변의 속출이었다.
후스트가 레코를 이겼지만 발등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탈락했고 리저브의 승자 마이이크 베르나르도 역시 부상으로 가동불능이었다. 할수없이 레코가 준결승에 올라갔다.
벤너가 헌트에게 덜미를 잡힌것도 이변이었고 아츠까지 필리오에게 판정패를 당하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이그나쇼프 혼자만 예상대로 준결승에 오른셈이다.
준결승에서 헌트는 스테판 레코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레코는 작고 빠르며 테크닉이 우수했지만 파워가 부족하고 헌트의 거친 플레이를 당해낼만큼 강인한 선수는 아니었다.
반대쪽 블럭에서는 필리오가 이그나쇼프를 꺽고 결승에 진출했다. 2001년 K-1 WGP의 결승전은 '닥터' 마크 헌트와 극진이 파견한 특수요원 프란시스코 '일격' 필리오간의 대전으로 결정되었다.
K-1의 창시자 이시이 카즈요시는 고 최영의 총재의 제자였다. 극진에서 주먹쥐는법을 배운 그는 정도회관을 차려 독립했다. 이시이는 정도회관에서 링과 글러브를 도입한 카라테를 창안했고 그것이 K-1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앤디훅도 원래 극진출신이지만 정도회관으로 스카우트 되어 K-1무대에 등장했던 케이스 였는데 극진은 이전까지 타류와의 교류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 하다가 97년을 기해 프란시스코 필리오를 K-1에 파견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앤디 훅(좌) 대 프란시스코 필리오 (우) 1991 극진 세계선수권
필리오는 71년생의 브라질리언이다. 신장은 188cm 정도(실제로는 조금 더 작을것으로 보인다)에 체중은 105KG 가량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카라테 선수로 활동한 그는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했다. 앤디훅을 정도회관으로 밀어낸 장본인이 바로 필리오라는 설이 있다 (아래 영상 참조), 100인조수 (100명과의 연속 겨루기)를 달성한 14명의 극진인중 한명이다.
앤디 훅 대 프란시스코 필리오 (1991)
http://www.youtube.com/watch?v=XUHJvcNU__w
극진 카라테 100인조수 달성자 명단
1997년 프란시스코 필리오는 (96년 WGP 우승자) 앤디훅과의 슈퍼파이트를 통해 K-1에 데뷔했다. 극진과 정도회관 사이에 집약된 애증이랄까, 혹은 앙금같은것이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게 되는 엄청난 대진이었다. 그 경기에서 필리오가 앤디훅에게 KO승을 거두었고 필리오도 일약 K-1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비록 WGP 우승경력은 없었지만 필리오는 후스트와 승패를 주고받았고 아츠에게는 굉장히 강했다. 그에게 2001년 WGP 토너먼트 결승은 대망의 우승을 차지할 아주 좋은 기회였다.
필리오는 미디엄 디펜스형의 카운터 파이터다. 스텝을 활용한 기동방어가 다소 부족하지만 높고 단단한 커버링이 항상 좋은 자리를 잡고 있으며 방어동작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타입이다. 킥의 커트와 방어도 무척 훌륭하다. 이 선수는 많이 때리기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한방 한방에 최대한에 살기를 싣는데 집중하는 스타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공격이 적중되면 상대가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의 별명인 '일격'도 그런 스타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강한 일격을 노리는 신중한 카운터 파이터라면 세상에 흔하고 흔하다. 필리오를 일반적인 '그' 스타일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바로 브라질리안 킥이라는 특수기술이다. 브리질리안킥은 발동되고 중간까지는 미들킥으로 보이지만 어느시점에서 갑자기 상단으로 변환되는 스킬이다. 위 경기영상에서 필리오가 그것을 자주 구사하는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킥은위력보다는 연기력이 중요한 기술이다. 많은 카라테 베이스의 선수들이 이 기술을 사용한다, 글라우베 페이토자의 특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기술을 가장 능숙하게 구사했던 인물은 역시 필리오였다. (영상 9분 16초경 참조)
치고들어가 때려부수려는 헌트와 신중하게 일격의 찬스를 기다리며 프론트 로킥과 브라질리안 킥으로 상대의 방어선을 교란하는 필리오, 두선수는 3라운드까지 극도로 팽팽하게 맞섰다. 1,2 라운드는 주로 테크니컬한 공방이었고 3라운드가 되자 필리오가 아끼던 라이트펀치와 라이트 킥을 내기 시작하면서 헌트에게도 카운터 기회가 돌아갔다. 경기의 형태가 갑자기 화력전 양상으로 변하면서 관객들도 엄청나게 흥분했다. 3라운드가 끝났을 때 세명의 부심이 모두 3라운드 까지 30:30으로 만점을 채점하면서 두 선수는 연장라운드로 돌입했다.
연장라운드에서 승부를 가른 요인은 헌트의 바디펀치였다. 1라운드 부터 헌트는 단단하게 잠겨있는 필리오의 상단보다는 바디를 노려 큰것을 계속 시도했다. 그것이 누적된 상태에서 4라운드 초반 헌트가 레프트훅-라이트 바디-라이트 미들킥으로 가는 연속기중 바디 두개를 다 클린히트 시켰고 필리오의 다리는 늪속으로 가라않기 시작했다. 이 이후 헌트는 공격 타이밍이 오면 의식적으로 바디타격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필리오는 움직임의 속도, 방어력, 공격시도등이 종합적으로 급속히 감소하면서 라운드를 내주게 된다.
결과는 만장일치로 헌트의 판정승. 크로캅의 보결로 올라간 후쿠오카 대회에서 세포에게 패했지만 세포의 부상덕으로 결승에 진출해 우승하면서 WGP의 출전권을 획득한 헌트가 벤너를 상대로 업셋을 일으키고, 천적이라 할 수 있는 후스트의 부상탈락이 이어지면서 준결승에서는 조금 쉬운상대를 만나 이기고 결승에 올라 난적 프란시스코 필리오를 바디공격으로 무너뜨리면서 K-1 월드 그랑프리의 월계관을 차지한것이다. 도쿄돔을 가득메운 K-1팬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그날의 헌트는 글자 그대로 신데렐라맨이었다.
2002년 1월 27일, 나카사코 츠요시 전에서 헌트는 상대의 강타를 먹고 다운을 당했다. 비록 역전 KO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헌트의 상태는 베스트가 아니었다. 전년도의 WGP 우승 이후 헌트의 체구는 더 커졌고, 경기력 면에서도 다소의 누수가 보였다. 민첩성이 조금 둔화되었고 집중력도 예전같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후의 경기에서 헌트는 상대의 큰것을 허용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집중력과 민첩성이 떨어지면서 그의 언더디펜스 성향, 특히 커버링마저 게을리 하는 부분은 약점이 되어갔다. 경기 간격이 너무 짧은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것이다. 이 당시 그는 거의 6주에에 한번꼴로 링에 오르고 있었다.
같은해 3월 3일 헌트는 크로캅과 대전했다. 74년생인 캅은 헌트와 동갑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미르코 필리포비치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부터 격투기에 깊은 애정을 가졌고 태권도와 복싱을 수련했다. 위키피디아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아마추어 복싱에서 40승 5패 31KO의 전적을 기록했으며 몇몇 동구권 국제 대회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했다고 한다. 필리포비치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위대한 킥복서 '크로아티아의 호랑이' 브랑코 시카틱의 제자로 킥복싱무대에 등장했다, 스승의 별명인 'Tiger'를 물려받아 96년 K-1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의 링네임은 '미르코 타이거'였다.
K-1데뷔전에서 필리포비치는 제롬 르 벤너를 만났다. 왼손잡이끼리의 격전끝에 필리포비치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96년 WGP출전자 선발전이었고 필리포비치가 WGP 본선에 올랐다. 본선 8강전에서 그가 만난 상대는 어네스트 후스트였다. 후스트는 필리포비치의 스승 브랑코 시카틱과 악연이었다. 시카틱은 93년 제1회 K-1 WGP 결승전에서 후스트를 KO로 눕히고 우승을 차지 했으며 94년 연말의 슈퍼파이트에서도 다시한번 그를 잠재웠던 것이다.
후스트가 과연 필리포비치가 시카틱의 제자라는것을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후스트는 필리포비치를 상대로라면 평소와는달리 다소 공격적인 타입으로 변신한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길이 없다. 필리포비치는 K-1에서의 첫 패전을 후스트에게 로우킥에 의한 KO로 당했고 99년 그랑프리의 결승전에서도 후스트의 강력한 바디샷을 정통으로 먹은 후 KO패를 기록했다. 이듬해 크로캅과 후스트는 WGP의 첫라운드에서 만났다. 이번에는 크로캅이 상당히 잘 싸웠고 연장라운드 까지 끌고갔지만 결국 승리는 후스트의 차지가 되었다.
후스트에게는 약점을 보였지만 필리포비치의 실력은 대단했다. 그는 미디엄 디펜스의 사우스포 카운터 파이터였다. 워낙 빠른데다가 움직임과 스텝도 좋은편이었고 전반적인 방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웬만한 선수들로써는 그에게 정타를 맞추기 힘들었다. 공격면에서 크로캅은 화려한 테크닉 세트를 보유한 선수였다. 같은 왼손잡이인 벤너가 라이트 로킥, 레프트 하이,미드,로킥, 라이트잽-레프트 스트레이트 콤보, 레프트 스트레이트-라이트 로킥 콤보 정도를 가지고 파워플레이 위주로 싸웠던것에 비해 크로캅은 라이트 로킥, 하이킥, 레프트 미드,하이, 로우킥, 레프트 스트레이트, 라이트 훅-레프트 스트레이트 콤보, 레프트 어퍼컷등등 더욱 다양한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했고 스피드가 뛰어났기 때문에 잠시만의 빈틈만 있어도 레프트 스트레이트, 혹은 레프트 하이킥 등의 큰것을 정확히 적중시켜 아름다운 피니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이킥에 대한 그의 집착은 다소 놀라울 정도였는데 그는 하이킥을 성공시키기 위해 레프트 미들킥과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상대의 의식속에 심어넣는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그렇게 하이킥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그의 패턴을 읽는것은 쉽지 않았을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킥 피니쉬의 화려함이 빛이라면 결국은 하이킥으로 가는 그 뻔한 패턴이란 바로 그림자 같은것이었다. 만약 그가 어느시점에서 하이킥에 대해 다소 과했던 집착을 버렸다면, 즉 왼쪽 하이킥의 구사비율을 조금만 낮추었다면 과연 어땠을지,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참으로 궁금한 부분이다.
이 시기 필리포비치는 크로아티아 경찰의 대 테러 특수부대의 일원이었다. 그의 애칭은 크로캅으로 바뀌었다. 크로캅은 헌트와 싸울 때 언더독으로 취급받고 있다, 헌트는 WGP우승자였고 크로캅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트에게 크로캅은 쉽지않은 상대였다. 체중이 늘고 무뎌진 헌트는 크로캅을 쫒아가기 힘들었고 쫒아가더라라도 쉽게 클린치를 잡히고 타격기회를 번번히 놓쳤다. 반면에 크로캅은 짧은 라이트 로킥과 레프트 미들킥, 레프트 스트레이트로 헌트의 방어선을 교란시켰고 3라운드 종반에 결국 왼쪽 하이킥을 적중시켜 헌트에게서 다운을 뺏아냈다. 그렇지만 헌트의 맺집은 역시 불가사의한 수준이었고 다시 일어나서 회복하고 멀쩡하게 계속 싸웠다. 5라운드였던 이 경기에서 헌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로캅을 밀어붙이며 공세를 유지했지만 전반적으로 비효율적이었고 스피드와 테크닉면에서 약간 밀리면서 크로캅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2002년 5월 22일, 제롬 르 벤너는 헌트와의 복수전을 위해 그를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프랑스로 불러들였다. 두선수간의 3차전이었다.
이미 두번을 싸워 본 두선수는 1라운드부터 탐색없이 정면승부로 맞붙었다. 지난경기에서 헌트를 상대로 밀어붙이다가 통한의 역전 KO패를 당했던 벤너였지만 그정도로 벤너의 기가 꺽이지는 얺은 모양이었다. 벤너는 그 어느때보다 공격적인 태도로 강타를 쏟아내었다. 벤너가 공격적인 만큼 헌트에게도 찬스가 많이 돌아갔고 1라운드부터 경기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 경기의 2라운드는 아마도 K-1역사상 최고의 라운드중 하나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을것이다.
라운드 초반, 헌트가 레프트로 거리를 재고 라이트를 휘둘렀다, 벤너는 그것을 기가막힌 타이밍에 라이트 크로스카운터로 받아쳤고 헌트는 그자리에서 나동그라졌다. 금방 일어난 헌트는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근거리 접전도중 라이트를 휘두르다가 다시한번 베너의 라이트 크로스카운터를 맞았다. 헌트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피냄새를 맡은 벤너가 피니쉬를 위해 달려들었다. 벤너는 비틀거리는 헌트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강력한 펀치와 킥이 헌트의 안면에 계속 적중되면서 헌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처럼 보였다. 코너부근에서 웅크리고 있던 헌트의 안면에 번너의 왼발킥이 들어가면서 이대로 끝인가 했지만 바로 그 직후 헌트가 라이트-레프트 연타를 던졌고 그중 레프트가 벤너의 턱에 정확히 걸리면서 이번에는 벤너가 앞으로 떨어졌다.
벤너는 비틀거렸지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두 선수 모두 심각한 데미지를 안고있는 상태에서 경기는 속행되었다. 헌트도 벤너도 사력을 다해 서로를 때려눕히려 하고 있었다. 경기내용은 그 시점에서 육체를 넘어선 정신력의 대결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라운드 종반부에 벤너가 헌트의 안면에 레프트 정강이를 때려 넣으면서 다시한번 다운을 뺏아냈다. 라운드 종료 후 헌트의 코너에서 경기의 중단을 요청했고 벤너가 자신의 홈링에서 헌트에게 복수전을 달성하며 화려한 부활을 신고했다.
2002년 10월 5일 헌트는 WGP 16강에서 남아공의 흰사자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대전했다. 연장 라운드 까지 가는 접전끝에 베르나르도를 판정으로 돌려세운 헌트는 다시한번 WGP 본선무대로 진출했다. 12월 7일에 개막된 2002 WGP의 무대는 도쿄돔이었고 관객수는 7만 4500명이었다.
8강 첫 라운드의 상대는 스테판 레코였다. 74년생의 독일인 레코는 무제한급에서 뛰기에는 조금 작은 체구의 선수였다. 그렇지만 작은만큼 빨랐고 테크닉 레벨도 우수했다. 한참때의 '레드 스콜피온' 알렉세이 이그나쇼프를 두번 잡았고 세포 및 본야스키와1승1패를 나눠가졌으며 아츠와 베르나르도를 꺽은적이 있는 훌륭한 선수였다.
레코는 1라운드 부터 매우 빠르게 움직이며 상 하단을 정신없이 공략했다. 특히 라이트 로킥으로 헌트의 왼다리에 충격을 누적시키는데에 공을 들였다. 레코는 기회가 생기면 어김없이 라이트 로킥을 구사했다. 전반적으로 헌트가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큰 소득을 거두지 못한채 레코의 로킥에 계속 실점을 허용하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3라운드 중반부에 레코가 라이트를 내던 순간 헌트가 환상적인 레프트 훅 맞받아치기를 적중시켰다. 상대의 뒷손 강타를 앞손으로 찍어누르며 크로스 카운터를 적중시킨다는것은 지극히 특별한 장면이다. 상대의 왼손잽을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덮으면서 맞받아치는것은 경기에서 간혹 나오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쉽게 볼 수 없다. 그만큼 헌트가 본인의 맺집과 완력, 타이밍 감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엄청난 펀칭이었다. 레코는 겨우 일어났지만 잠시 후 다시 무너졌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주심이 TKO 판정을 내리는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준결승에서 헌트를 기다고 있던 선수는 다름아닌 제롬 르 벤너였다. 두 선수간의 4차전이다.
언제나 처럼 두선수는 1라운드 부터 난타전을 별였다. 그러나 1라운드 중반 벤너의 로킥이 적중되면서 헌트의 왼다리에 문제가 생겼다. 레코와의 경기에서 너무 많은 로킥을 허용한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경기의 주도권은 벤너에게 완전히 넘어갔고 벤너는 로킥을 중심으로 헌트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2라운드에는 결국 로킥에 의해 헌트가 다운을 내주기도 했다. 3라운드 들어서 벤너는 일방적으로 헌트를 유린했다. 로프에 몰린 헌트에게 로킥을 세번 차고 네번째는 하이킥으로 마무리 하는 연속기를 선보이기도 했고 정확한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적중시켜 헌트의 머리를 크게 흔들어버리기도 했다.
이 경기도 기술적인 면이나 공방의 묘리 같은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원시적인 싸움으로 전개되었다. 어째서 헌트는 쓰러지지 않을까, 저지경이 되어서도 버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들정도로 헌트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3라운드 종료 10초전 마크가 떨어진 직후 헌트는 방어를 열고 몰아치기를 퍼붓던 벤너의 턱에 그림같은 카운터 일격을 꽃아넣었다. 그것을 정통으로 먹은 벤너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벤너가 금새 일어나면서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으며 부심단은 벤너의 손을 들어주지만 헌트라는 선수는 완전히 쓰러질때 까지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라는 점이 다시한번 빛났던 명장면이었다.
*벤너는 이렇게 헌트를 꺽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후스트였다. 후스트는 10월 5일 16강 엘리미네이션 매치에서 밥 샙에게 KO패를 당하고 탈락했으나 세미 쉴트가 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대타로 본선에 올랐다. 후스트의 8강 상대는 16강에 이어 또다시 밥 샙이었고 후스트는 이번에도 밥샙에게 KO패를 당했다. 그렇지만 후스트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밥샙이 전열을 이탈하면서 후스트가 4강에 올랐고 4강에서 레이 세포를 KO시킨 그는 우여곡절 끝에 결승에 오른 상태였다. 후스트와 벤너, 양선수 모두 상당한 대가를 치르며 결승에 오른셈이었다. 벤너는 2라운드까지 후스트와 팽팽하게 맞섰다. 그렇지만 3라운드에 후스트의 라이트 미들킥에 의해 벤너의 왼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경기를 자세히 보면 2라운드에 이미 벤너의 왼팔에 문제가 생긴것 처럼 보인다) 벤너는 심각한 고통속에서도 어떻게든 계속 싸우고 싶어 했지만 후스트는 냉정하게 벤너의 부러진 팔을 노려 킥을 구사했고 결국 세번의 다운을 당하면서 WGP를 향했던 벤너의 꿈은 끝내 무산되고 말핬다. 이미 골절된 상태에서 추가적인 충격을 몇차례 더 입은 벤너의 팔 상태는 심각했다. 그의 경력이 끝장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왼팔에 티타늄 봉과 열한개의 나사를 박아넣는 대수술 끝에 벤너는 회복했고 아직까지도 일선에서 싸우고 있다.
K-1의 전성기는 여기까지였다. 1997년 실전격투의 신 힉슨그레이시와 총괄본부장 다카다 노부히코가 대전하면서 막을 연 프라이드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했고 K-1의 점유율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2002년 8월 벌어졌던 K-1과 프라이드의 합동이벤트 Shockwave-Dynamite 이벤트는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무려 9만 1000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2002년 이후 K-1은 더이상 도쿄돔에서 만석을 이루어 내지 못했고 반면에 프라이드는 승승장구하게 된다.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이 대회의 관객은 9만 1000명이었다. 이것은 복싱을 제외한 격투 스포츠 사상 최대의 관중동원 기록이다. 복싱의 경우 1993년 멕시코에서 훌리오 세자르 차베즈와 그렉 호겐이 대결할 당시 세워진 13만 6274명이 최고기록이며 UFC의 레코드는 생피에르-쉴즈전의 5만 5724명이다.
마크 헌트는 2003년 5월 게리 굿리지와의 경기에서 판정승을 거둔것을 마지막으로 K-1을 떠나 프라이드, 즉 MMA라는 신세계를 향했다. 그의 킥복싱 전적은 30승 12패 13KO였다.
요시다 히데히코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78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4년 6월 20일 프라이드 크리티컬 카운트다운에서 헌트의 MMA데뷔전이 벌어졌다. 프라이드 헤비급 토너먼트의 8강 대진을 중심으로 짜여진 이 이벤트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4만 3711명의 관중을 불러모았다. 코메인은 노게이라-헤링전이었고 메인이벤트는 효도르-랜들맨전이었다. 헌트는 토너먼트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코메인에 앞서 싱글매치로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요시다 히데히코와 대전했다.
이 당시의 요시다는 프라이드에서 헤비급과 미들급(UFC기준으로는 라이트 헤비급)을 오가며 3승 1무 1패 3SUB를 기록하고 있었다. 두선수간에 15KG의 체중차가 있었기 때문에 4점 포지션의 킥공격을 금지하는 특별규칙이 적용될뻔 하였으나 요시다가 상관없다는 의력을 피력해 일반적인 프라이드룰로 진행되었다.
헌트-요시다 경기 영상)
https://www.facebook.com/video/video.php?v=35601384596
경기 시작 5분 25초만에 요시다의 암바가 완성되면서 헌트는 서브미션패를 당했다. 그 과정에서 헌트는 요시다에게 넘어가던 순간 몸을 뒤집어 상위포지션을 잡기도 했고 스프롤을 성공시켜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레슬링을 잘한다 라고 보긴 힘들었지만 상대의 레슬링에 대한 기대이상의 저항력과 발전가능성이 보였던 대목이다. 물론 타격 전문가 답게 요시다의 태클 타이밍에 날카로운 니킥을 구사하기도 했다. 문제는 서브미션에 대한 방어력이 너무나 약했다는점이다. 요시다가 하위 가드에서 헌트의 왼팔을 컨트롤하며 리버스 암바를 조준할때 헌트는 먼저 왼팔의 고립상황부터 해결했어야 했지만 그런 개념이 전혀 없이 그대가 본인의 왼팔을 잡고있으니 본인은 오른손으로 그대의 얼굴을 치겠소, 라는식의 대응을 한 점은 역시 MMA초보티가 확 난 부분이다.
요시다의 첫 암바 시도에서 헌트는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삼각에서 암바로 변환되었던 두번째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헌트는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요시다가 결국 헌트의 팔을 가져가면서 경기는 종료되었다.
요시다가 스탠딩에서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고 노골적으로 그래플링을 노렸기 때문에 타격을 쓸 기회는 거의 없었다,
특이한 점 하나는 헌트가 스프롤로 요시다의 태클을 저지 한 후 요시다의 가드안으로 뛰어든 점인데, 그의 서브미션 방어능력을 고려할 때 다소 무모한 선택이었던것으로 보인다. 헌트는 그렇지만 상대가 그라운드 파이터건 뭐건 가드건 뭐건 일단 유불리 같은것을 따지기 보다는 그냥 달려들어 때려부수려 하는 직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자주 보게될 장면이다.
2004년 10월 31일 프라이드 28에서 헌트는 체중 155KG의 레슬러 댄 보비시와 대전했다. 이 대회에서는 최무배 선수가 사모아의 헐크 소아 팔라레이를 상대로 초반의 어마어마한 열세를 뒤집고 무바이 초크로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댄 핸더슨, 크로캅, 오브레임, 아로나, 등이 출전했고 메인 이벤트는 반실-퀸튼 2차전이었다.
헌트-보비시 경기영상)
보비시는 NCAA 디비전 III 전미 챔피언 출신이고 올아메리칸에 세번 선정된 경력을 가진 우수한 레슬러였다. 해설진의 소개에 따르면 보비시는 프라이드 데뷔 당시에는 체중이 너무 나가서 체력이 금새 소진되는 약점을 보였는데 헌트와의 경기를 앞두고 상당한 감량을 해 155KG가 되었다고 한다.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 파운드에 특화된 선수로 MMA가 시작되고나서 이런 타입의 선수들은 수많은 타격 전문가들에게 굴욕을 안겨왔다.
헌트와의 경기에서도 보비시는 전형적인 전개로 경기를 끌고갔다. 초반에 클린치를 잡고 테이크다운 시도를 한번 실패했으며 두번째 시도에서는 헌트의 니킥을 허용하고 왼쪽 눈썹부근에 큼직한 열상을 입기도 했지만 결국 기가막힌 안아던지기로 헌트를 넘기고 즉각 사이드 포지션을 차지 했다. 그리고 나서 헌트는 거의 5분간 보비시의 파상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보비시는 능숙한 그라운드 컨트롤로 헌트를 누르고 포지션을 장악하면서 4점니킥을 쏟아부었는데 상당한 비율로 강한것이 수차례 적중되었다, 그중 하나는 헌트의 두피를 찢을 정도로 강하게 들어갔다. 해설진의 바스 루튼은 보비시가 처음에 헌트의 백을 잡고 펀칭 파운딩을 날릴때까지만 해도 저렇게 때려서는 헌트를 KO시킬 수 없다고 장담을 하지만 보비시의 4점니킥이 헌트의 머리에 적중되기 시작하자 니킥은 얘기가 다르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렇지만 헌트는 헌트였다. 심판이 보비시에게 뒤통수 가격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메세지를 보낸 직후 보비시의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진 틈을 타 잽싸게 보비시를 밀어내면서 일어난것이다.
보비시는 다시 헌트를 그라운드로 끌고가기위해 정면에서 태클을 시도했는데 헌트의 라이트 어퍼컷이 보비시의 안면에 걸렸다. 빗겨맞았기 때문에 결정타가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충격을 전달했고 보비시는 그로기 상태에서 앞으로 넘어졌다. 보비시의 안면에 펀치 하나를 시도한 후 헌트는 무릎찍기?로 보비시의 머리를 노리도 했다. 헌트는 K-1에서부터 이런 모습을 자주 보였다. 마치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식의 동해보복같은데 이런장면은 이후의 경기에서도 몇차례 관찰된다.
보비시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순간 적중된 헌트의 왼쪽 미들킥이 결정타였다. 헌트를 눌러놓고 공격을 퍼부으면서 보비시의 체력이 상당히 소진된상태였고 숨을 몰아쉬고 있을때였는데, 보통 그런 상황에서 꽃히는 바디샷, 바디킥은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숨을 들여마시는 도중에 복부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피격자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보비시는 비틀거리다가 배를 붙잡으며 엎어졌고 심판은 그 시점에서 즉각 TKO를 선언했다.
이 경기에서 헌트는 그라운드 하위 포지션 대처능력면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쉽게 포지션을 내주었고 상대가 마음먹은대로 공세를 펴는데 그것을 저지할 기술적, 경험적 기반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렇지만 보비시의 공격 능력이 헌트의 내구력과 정신력에 밀리면서 보비시가 경기력 면에서는 우세를 점했지만 싸움에서 져버린 결과라고 총평할 수 있다.
헌트의 MMA 전적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서브미션 피니시가 강한 선수에게는 거의 당했고 그것이 부족한 선수들은 헌트에게 먹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산토스와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헌트를 잡는 가장 유효한 방식은 서브미션기를 거는것이다. 그 외의 방법으로 헌트를 상대한다는것은 기대효과보다 비용이 너무 크다. 헌트는 그라운드에서, 서브미션으로가 정답이다.
산토스는 그러나 크로캅, 아이블 같은 극단적인 타격편향 선수들을 상대로도 타격으로 싸웠다. 크로캅, 아이블을 이긴 선수는 많지만 대부분이 그 두선수를 그라운드에서 주로 상대하면서 승리를 거두거나 최소한 그라운드에서 힘을 뺀 다음 승부를 걸었다. 산토스는 전혀 달랐다. 오직 스탠드업으로 아직은 날카로움이 살아있던 크로캅과 늙기는 했지만 여전히 매우 위협적이던 길버트 아이블을 압도했던것이다. 과연 헌트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당시에는 산토스가 한창 랭킹으로 높여가고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할때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챔피언으로써, 넘버 1컨텐더로써의 입지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고 승리를 염원하는 산토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서도 안정적인 운영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왼손잡이이와 싸울때 라이트 바디 펀칭의 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왼손잡이들은 보통 같은기술, 즉 왼손 바디 펀치의 사용에 능숙하다. 왼손잡이들은 주로 오른손잡이와 싸우기 때문에 이 기술을 익히고 써먹을 기회가 많다. 반면에 오른손잡이 선수들의 경우 주로 오른손잡이와 싸우다가 가끔 왼손잡이와 싸우는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잡이를 상대로 싸울때는 왼손 바디 펀치가 오른손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과적이다. 반대로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를 만나면 왼손바디보다는 오른손이 잘 먹히는데 왼손잡이 상대와 많이 싸워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숙련도면에서 오른손잡이의 왼손잡이를 상대로한 오른손 바디펀치의 순도는 보통 왼손잡이의 오른손잡이를 상대로하는 왼손 바디펀치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조그만 특성들이 모여서 결국 같은 실력이면 왼손잡이가 조금 유리하다는 상대성이 도출된다고 볼 수 있다.
산토스의 선택은 무엇일까. 경기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것인지는 전적으로 산토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헌트가 어떻게 나올지는 사실상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산토스는? 이것이 이 경기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일 것이다.
반다레이 실바는 76년생이다. 브라질 남부의 쿠리치바 (쇼군, 앤실도 이지역 출신이다. 세계적인 싸움꾼의 고장인듯) 출생으로 어릴 때 부터 그는 인근에서 악명높았던 싸움꾼이었다. 별명은 '미친 개'. 고교 졸업후 군인으로써 한동안 복부했고 제대후 96년 슈트 복세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군입대 이전부터인지 군에서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슈트복세 이전에 실바는 무에타이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던것으로 보이며 MMA데뷔는 1996년 브라질리언 발리튜도 6이었다.
1996년 11월21일 BVT 6 반다레이 실바 대 딜슨 필리오 (강추)
실바의 그릇은 데뷔전에서 부터 확실히 눈에 뜨인다. 상대였던 필리오는 실바에 비해 두체급은 높아보였다. 신장은 아마도 188~190, 체중은 못잡아도 105~110 정도였다. 필리오의 전문영역은 카라테였다. 브라질의 본판 발리투도는 원초적인 싸움의 형태와 매우 가깝다. 거의 모든 공격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실바는 상대와 격렬한 난투를 벌였는데 난타전에서 심하게 치고 받았고 코너부근에서의 클린치게임에서 박치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한치앞을 알기 힘든 난전으로 전개되던 경기는 코너에서 실바가 니킥과 펀치를 연이어 적중시켜필리오를 잠재우면서 실바의 KO승으로 결정지어졌다.
데뷔 후 첫 네경기를 모두 1회에 스탑시키지만 다섯번째의 경기에서 불의의 커트에 의해 레프리 스톱의 1패를 기록하게되고 98년8월 에 있었던 다음경기에서 다시한번 상대를 1라운드에 잠재웠다. 5승 1패. 이긴 5경기는 모두 1라운드에 끝장을 본셈이다.
98년 10월 UFC는 브라질을 방문했다. 이 대회에서는 UFC 초대 월터급 챔피언이 탄생했다. 펫 밀리티치가 마이크 번넷을 꺽고 타이틀을 감은 것. 프랭크 샴락이 존 로버를 상대로 3차방어전를 당성한 것도 이 대회였으며, 반다레이 실바는 UFC 12의 헤비급 토너먼트 승자 비토 벨포드와 대전했다. 이 경기에서 실바는 벨포트의 소나기 같은 양손 연타에 녹아내리며 치욕적인 초살패를 당했다.
1998년 10월16일 UFC Brazil 비토 벨포트 대 반다레이 실바
이후 실바는 1999년 1월 부터 2000년 1월까지 UFC는 물론 브라질과 일본의 프라이드를 오가며 2KO와 2SUB를 포함한 6연승을 질주했다.
1999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프랭크 샴락이 티토 오티즈를 꺽고 4차방어를 당성한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UFC는 티토 오티즈와 반다레이 실바간의 챔피언 결정전을 추진했다. 당시 실바는 11승 2패 6KO 3SUB였고 오티즈는 4승 2패 3KO 1SUB였다.
반다레이 실바는 기량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오티즈도 프랭크 샴락과의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심기일전한듯 굉장한 기량을 과시했다. 양선수가 서로 위기상황을 주고 받았으며 내용면에서 상당한 경기였다. 오티즈의 체격과 힘에 다소 밀리면서 실바는 판정패를 당했고 오티즈는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티토 오티즈에게 패한 반다레이 실바는 브라질에서 1승 추가한 후 같은 해 프라이드에서 라이언스 덴의 가이 메츠거와 대전했다.
반다레이 실바는 주짓수의 퍼플벨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라운드에서 쉽게 당하지 않는 선수라는 증명과도 같았다. 그리고 스탠딩에서 그가 뿜어내는 압력의 크기는 굉장했다. 이것에 밀려 상체를 들면 살인적인 붕붕훅의 연속기로, 고개를 숙이면 빰클린치의 니킥지옥으로 상대를 때려잡았던 실바의 게임은 관중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것이었다. 라이언스 덴의 베테랑 가이 메츠거는 실바를 그라운드에 잡아두며 요리하지 못했고 스탠딩에서 실바의 패턴에 말려든 후 1라운드 3분 45초만에 조용히 잠들고 만다.
실바의 또다른 매력은 다작을 하는 작가였다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프라이드 10에서 14까지 모두 참여하며 9개월간 5경기를 치르었고 길버트 아이블과의 노콘테스트를 제외하면 4전 전승 3KO를 기록했다. 이러한 실바의 베스트셀러를 연속으로 집필하는 능력을 프라이드는 높이 샀다. 최초로 제정된 프라이드 미들급(한게체중 93KG)의 챔피언 결정전에 사쿠라바 카즈시의 파트너로 그를 선택했다. 두선수의 2차전이었다.
사쿠라바 카즈시는 위대한 파이터였다.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걸었던 남자였으며 그레이시 가문을 홀로 상대해 승리를 거듭했고 결국 호이스 그레이시를 세계최초로 제압했던 '그레이시 헌터' 사쿠라바는 아시아의 대표선수였다.
2001년 11월 3일 도쿄돔의 프라이드 17. 4만 5천의 관중 앞에서 펼쳐진 미들급 챔피언 결정전은 같은 날 있었던 노게이라-히스헤링의 헤비급 타이틀전을 밀어내고 메인 카드가 되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경기는 실바의 슬램에 의해 왼쪽 쇄골의 골절을 당한 사쿠라바가 1라운드 종료이후 경기속행의 불가를 선언하면서 다소 어이없이 끝나게 된다. (이경기의 해설진에는 호이스 그레이시가 참여했다)
어찌되었건 실바의 TKO승이었으며 실바다 프라이드 미들급(UFC기준 라이트 헤비급)의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반다레이 실바는 프라이드 17 에서의 타이틀 획득이후 18,19,20,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18에서 알렉산더 오츠카를, 19에서 키요시 타무라를 각각 상대해 압도적인 위력의 차이를 과시하며 연속 KO방어를 해낸 실바가 프라이드 20에서 상대했던 선수는 크로캅이었다.
프라이드 데뷔전에서 다카다 노부히코와 무승부를 기록하고 2001 이노키 봄바예에서 나가타 유지를 초살시키긴 했지만 두 선수의 기량은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크로캅으로써는 반다레이 실바와의 이 경기가 사실상 진째매기 MMA에 대한 첫경험으로 볼 수 있다.
체격차과 파워의 차이를 극복하고 크로캅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실바는 이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리나 다름없는 무승부였고 크로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경우바른 무승부는 드물다. 실바는 라이트헤비급의 맹자로 헤비급의 타격 전문가와도 싸울수 있는 선수라는 위명을 얻었고 크로캅은 사실상의 데뷔전에서 한체급 아래의 선수지만 챔피언과 대등한 경기를 했다는 부분을 인정받게 된것이다.
2002년 11월 24일 프라이드 23에서 카네하라 히로미츠를 일방적으로 두드린 실바는 카네하라의 코너로부터 타월투척을 받아내면서 3차방어를 달성했다. 도끼 살인마라는 별명에 걸맞는 퍼포먼스였다.
2003년 프라이드는 미들급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참가자는 챔피언 반다레이 실바를 필두로, 카즈시 사쿠라바, 타무라 키요시, 요시다 히데히코, 무릴로 부스타만테(부상당한 아로나를 대신해 참전), 퀸튼 잭슨, 알리스타 오브레임, 그리고 척 리델의 8인이었다. 척리델은 앞서 소개한 커튜어와의 잠정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한직후 UFC 라이트 헤비급을 대표해 이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당시 라이트 헤비급의 지형도가 단숨에 작성될 엄청난 대진이었다.
첫 경기에서는 알리스타 오브레임과 척리델이 대전했다. 1라운드 3분 9초만에 척 리델의 KO승.두번째 경기는 퀸튼잭슨이 무릴로 부스타만테에게 힘겨운 판정승을 거두었고 타무라 키요시를 옷깃조르기로 잠재운 히데히코도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1대진에서 리델과 잭슨이 대전하게 되었고 다른블럭에서 요시다 히데히코와 대전할 상대를 결정하는 첫라운드 마지막 시합이 카즈시 사쿠라바와 반다레이실바의 3차전이 된다. 실바는 다시한번 사쿠라바를 처참하게 분쇄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과 결승은 2003년 11월 9일 도쿄돔에서 벌어졌다. 총 관객은 67,450명.
준결승 첫경기에서는 퀸튼 잭슨과 척 리델이 격돌했다. 이 경기의 해설진에는 데이나 화이트가 참여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화이트는 UFC의 신참 CEO로 프라이드에 대한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그는 리델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출전시키며 프라이드의 아성에 도전한 셈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화이트는 척 리델의 전략에 대해 게임플랜을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있다. 게임플랜이란 바로 이전라운드의 무릴로 부스타만테전에서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잭슨의 왼다리를 라이트 로킥으로 공략하는것이었다. 리델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경기는 양선수 모두 집요하게 서로의 머리를 노리던 복싱매치로 진행되었고, 내용면에서 굉장한 내용의 타격전이었다.
잭슨은 리델의 천적이었다. 리델은 자신을 넘어뜨리려 하는 레슬러형을 때려 잡는데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잭슨은 리델을 넘길 생각이 없었고 순수한 주먹교환의 경기양상은 잭슨에게 오히려 유리했다. 잭슨의 클린히트를 여러차례 정통으로 먹고 그라운드로 끌려내려가 체력마저 소진된 리델이 잭슨의 파운딩 앞에 녹아내리기 시작했을때 리델의 코너에서 타월을 투척했다. 퀸튼 잭슨의 결승 진출, 그러나 잭슨이 지불한 대가도 컷다.
반대편 블럭에서는 실바와 요시다가 대전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도가인 요시다는 도북을 입고 출장했다. 요시다의 투혼이 빛났지만 실바가 전체적으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면서 판정승. 실바 역시 출혈이 상당했다.
이 토너먼트의 결승전에서 실바는 잭슨을 상대로 압도적인 화력을 과시하며 통렬한 KO승을 거두었다. (이경기에는 게스트 해설자로 랜디 커투어가 초빙되었다.) 이 경기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없다. 실바의 살상능력이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명경기였으며 실바의 황금시대는 절정을 향하게 된다.
2004년 2월에 미노와 이쿠히사와, 8월에 곤도 유키와 각각 논타이틀로 대전해 두선수 모두를 처참하게 박살낸 실바는 이무렵 일본인을 주식으로 하는 '괴수'라는 식으로 표현될 만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1차전에 대해 그것은 토너먼트였고 준결승에서 척리델을 상대하느라 소모가 큰 상태로 실바와 싸웠다는 잭슨의 인터뷰내용을 전해 들은 실바는 매우 분노했다. 두선수간의 라이벌의식은 2003년3월 퀸튼잭슨이 케빈 랜들맨을 박살내고 관중석의 실바를 도발하면서, 그리고 링에 난입한 실바가 잭슨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시작된것이었고, 2004년 당시 두선수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게된다. 프라이드의 입장에서 두선수의 이러한 대립은 호재였다.
UFC의 동체급에서 이보다 2년여에 앞서 티토 오티즈와 캔 샴락의 감정의 감정선이 강렬하게 꼬여들어갔던 상황에 못지않게 불꽃튀는 라이벌의식을 바탕으로 기획되어진 실바-잭슨 II는 UFC의 오티즈-캔샴락전이 지루한 경기가 되며 볼것 없는 잔치로 끝나버렸던것과는 달랐다. 이 경기 역시 말이 필요 없다. 1차전에 비해 확실히 준비가 잘된 잭슨은 실바의 좌우연타를 기가막히게 커버링 해 냈고 라운드 후반 오른손 강타를 실바의 안면에 적중시키면서 경기의 흐름을 확실히 가져갔다. 그러나 2라운드에 폭발했던 실바의 라이트에 의해 충격을 입은 잭슨은 다시한번 실바의 니킥을 먹고 로프에 널린 빨레신세가 되고만다.
실바-잭슨 1,2차전 하이라이트
http://www.youtube.com/watch?v=WCCm9kFfv80
(영상 도중 나오는 마우로 라날로의 멘트: 당신이 반다레이 실바의 경기를 보시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포악한 사람처럼 보일겁니다. 하지만 링밖에서 실바는 훌륭한 가장이고 매력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진정 훌륭한 선수인 이유는 온/오프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그는 그것을 언제 켜고 언제 꺼야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경기로 프라이드의 미들급에는 더이상 실바의 적수가 될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어졌다. 실바의 다음경기 상대는 자신보다 체중이 30kg가량 더 나가는 마크헌트였다.
반다레이 실바는 2000년 4월에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티토 오티즈에게 패한 이후 2004년 10월 까지 14승 1무 1NC를 기록했다. 노 콘테스트의 상대는 길버트 아이블이었고 경기 시작 22초만에 실바의 로킥이 아이블의 사타구니로 들어가면서 경기가 끝나버렸던 상황이며 1무승부는 크로캅과의 헤비급 매치였다. 실바는 거의 4년동안 연승행진을 거듭하며 프라이드 미들급을 장악했던 셈이다.
2004년 12월 31일 벌어졌던 프라이드 쇼크웨이브 2004에서 실바는 원래 사쿠라바와 4차전을 벌일 예정이었지만 사쿠라바가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헌트가 대타로 나서게 된 상황이었다. 헌트는 불과 3일전에 오퍼를 받고 승낙을 했으며 실바역시 상대가 급작스럽게 변경된것을 개의치않고 출장했다. 이 대회에서는 최무배 선수가 2m 30cm의 파울로 세자르 실바(통칭 자비로운 실바)를 상대해 암트라이앵글로 서브미션승을 거두었고 메인이벤트에서는 효도르와 노게이라의 3차전이 벌어졌다. 장소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였고 관객수는 4만 8398명.
헌트의 체중이 114KG 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나가보인다. 해설진에 마우로 라날로, 바스 루튼과 함께 랜디 커투어가 참여하고 있다. 타격이 전문분야인 실바의 입장에서 헌트는 상당히 골치아픈 상대였다. 커투어는 이 부분에 대해 실바가 그라운드에서 싸우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커투어의 말대로 실바는 평소의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게 테이크다운을 적극적으로 노렸다. 그라운드에서 헌트는 전반적으로 상당한 고생을 했다. 암록에 걸려 서브미션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물론 헌트가 결과적으로는그 상황을 역이용해 포지션을 뒤집기는 했지만) 그라운드에서 힘들게 이스케입을 시도할 때는 실바의 스톰핑과 싸커킥이 헌트의 머리를 위협했다. 그라운드의 상위포지션을 잡은 헌트의 파운딩 능력 역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본인보다 상당히 작은 사이즈였고 물리적인 힘의 차이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헌트는 실바와의 그라운드 게임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타격전 부분은 흥미롭다. 실바가 물론 평소보다는 테이크다운 비중을 높게 잡고 싸웠지만 그래도 그 역시 타격가였다. 실바의 타격패턴은 킥복싱의 정석과는 차이가 있었고 또 클린치와 테이크다운을 헌트가 경계하면서 1라운드 초중반 까지만 해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헌트의 타격은 1라운드 초중반 까지만해도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했다. 선제공격은 적중되기 보다는 실바에게 클린치-테이크다운의 기회를 제공했고 실바의 타격에 대한 카운터도 계속 빗나갔다.
그러다 1라운드 말미(영상 10분 14초 지점)에 실바가 스탠딩에서 헌트에게 라이트-레프트훅에 이어 레프트-라이트 훅을 연이어 쏟아낸다. 이 공격을 헌트는 '스웨이에서 백스탭' - '백스텝에서 덕킹(바빙)' 이라는 멋진 수비 컴비네이션을 사용해 완벽하게 흘려냈다(이 연계는 기동형 수비의 원-투 컴비네이션이라 할 수 있다, 반대의 동작, 즉 덕킹-스웨이-백스탭의 형태도 중요하고 바빙-스웨이-바빙으로의 연결도 중요하다. 몸에 익으면 이 동작 사이사이에서 카운터를 칠 찬스를 만들수 있다), 이렇게 공격자의 큰 공격 시도가 연속해서 상대의 몸에 닿지도 못한 경우라면 공격자가 레인지-타이밍 그리고 벨런스면에서 매우 불리해져 있기 때문에 일단 수세로, 즉 방어모드로 이행하는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실바는 리셋을 하지 않고 연이어 공세를 가져가는 역수를 두었다. 그가 다시 횐손훅을 시작으로 붕붕훅을 시작하던 순간 그것을 빤히 보고 있던 헌트가 오른손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실바의 첫 다운이었다.
2라운드, 헌트는 실바에게 접근하면서 큰것을 휘둘러 테이크다운의 빌미를 제공했던 1라운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주로 왼손으로 실바를 툭특 건드렸는데, 실바가 이에 반응해 왼손훅을 치고 나오자 또다시 냉정한 라이트 카운터를 적중시켜 실바를 흔들고 클린치에서 라이트 어퍼컷을 하나더 넣고 넘어가던 실바에게 라이트를 하나 더 꽃아넣어 그로기 상태로 몰고갔다. 짧은사이에 헌트의 라이트를 세게나 먹은셈인데 실바는 그라운드로 후퇴해 위기를 넘겼다. 실바의 이 맺집과 회복력을 두고 해설진은 외계인급이라 극찬을 했다.
3라운드 이후의 타격전 상황은 헌트가 실바를 일방적으로 혼내고 있다. 헌트가 실바를 몰고 다니고 있으며 코너에 몰리기 싫은 실바가 결국 선제타를 내긴 내는데 헌트가 그것을 거의 맘먹은대로 카운터해버린다. 실바의 펀칭옵션은 양훅으로 상당히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즉 단순하기 때문에) 헌트는 밀어붙여서 상대의 공격이 나오게 만들고 그것을 맞받아치로 요격하는 흐름을 가져가기 용이했던것으로 보면 좋을것이다. (물론 전 라운드의 데미지도 무시할 수 없을것이다.)
실바를 다운시켜놓고 헌트 역시 언제나처럼 동해보복의 원리를 적용해 나름대로 스톰핑과 싸커킥을 시도했으며 점프하면서 엉덩이로 깔아뭉개는 특이한 공격을 구사하기도 했다. 커투어는 이 기술을 두고 '아토믹 벗드랍 (핵 궁댕이 찍기)'이라고 명명했다.
2,3 라운드에 스탠딩 실력으로는 실바가 헌트에게 한수 아래라는것이 확실히 보였다. 그렇지만 그래플링면에서 실바는 헌트에 비해 두세수가 높았다. 전반적으로 헌트도 잘했지만 실바가 이긴것 처럼 보이는 내용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실바는 본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판정은 헌트의 승리로 나왔고 헌트 본인도 이에 깜짝놀란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현 UFC식으로 판정한다면 실바의 승리가 되었을것가능성이 클것이라는 개인적인 견해가 있다.
이 경기에서 헌트는 라이트 헤비급에서도 굉장히 재빠르고 하드펀쳐인 선수인 실바를 상대로 맞받아치는 카운터의 시범을 보이고 있다. 맞받아치기란 보통 상대가 신장이높고 느릴경우, 그리고 상대의 파워가 내 맺집에 비해 버틸만하다고 느껴지는 경우에 사용하는 단신선수들의 기법이다. 그런데 헌트는 작고 빠르고 하드펀쳐인 실바를 상대로도 그것을 문제없이 구사할 수 있는 선수인것이 드러났다.
헌트가 가진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대를 맞출 카운터 타이밍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능력'은 가르쳐서 되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낮은 신장과 짧은 팔로 K-1 WGP에서 우승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지만 헌트는 정말 천재적으로 잘때리는 선수다. 앤더슨 실바의 짧고 굵은 버젼과도 같다.
산토스에게 가장 위험한 포인트는 바로 이 점이다. 산토스도 핸드스피드가 좋고 타이밍 감각도 좋고 파워도 있다. 게다가 헌트에 비해 레인지 면에서 큰 잇점을 가지고 있고 발까지 빠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전략적으로 헌트를 상대한다면, 즉 헌트의 가장 큰 약점인 레인지를 활용해 치고 빠지는전력과 헌트가 강하게 밀고들어오면 카운터 테클로 넘기는 죠르쥬 생피에르 식으로 싸운다면, 헌트에게 기회는 거의 없을것이다. 그렇지만 산토스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산토스는 체격에 비해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스피드를 이용해 상대의 간을 보며 신중하게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찬스가 오면 사정없이 몰아친다. 복싱으로 치면 복서-펀쳐(만능형) 스타일로 볼 수 있는데, 즉 그는 아웃파이팅이 가능하지만 아웃파이팅으로 일관하지 않는 선수인 것이다.
산토스가 레인지 관리를 하며 수비에 중점을 두고 아웃파이팅을 벌여서 마치 콘딧이 디아즈 잡듯 헌트를 상대한다면 모르겠지만 산토스가 헌트의 레인지 안에서 정면승부나 몰아치기를 시도한다면 그 순간 순간은 모두 헌트에게 기회가 될것이다. 근거리에서 두 선수가 치고받으면 둘중 누가 뻗어도 이상하지 않다.
산토스가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본인의 스타일을 굽히지 않을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물론 산토스가 카윈전에서의 3라운드처럼 안정적인 운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헌트를 상대로도 산토스가 아이블이나 크로캅과 싸우듯 본인 스타일대로 간다면, 헌트에게도 기회는 분명히 있다. 나이가 들기는 했어도 헌트는 자기간격안에서는 여전히 무적이기 때문이다(멜빈 만호프에게 당하긴 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고?). 산토스가 만약 이 지점에서 조심성을 잃는다면 헌트에게 먹힐 수 있다는 얘기다. 헤비급에서는 상대에게 기회를 주거나, 실수를 한다면 거의 언제나 치명적이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조심해야할 상대는 누구일 것인가. 바로 헌트다. 타격의 레인지와 앵글과 타이밍을 내주어서는 안될 선수를 UFC 헤비급 파이터중 딱 한명만 꼽으라면 그것은 헌트인것이 맞다. (예전에는 카윈이엇지만 그는 이제 은퇴)
헌트가 이기는 시나리오의 급소는 여기다. 산토스가 늘 하던대로 정면승부나 몰아치기를 걸어온다면, 헌트가 그공세를 견디면서 엄청난 카운터를 칠 그림은 분명하게 그려진다. 그것이 터지면 헌트가 이기지 못한다는 보장이 없다. 가능성이 높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 업셋시나리오는 언제든 가동될 수 있다. 이것은 로또 펀치를 기다린다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헌트라는 하드펀쳐의 축복받은 타격재능과 산토스라는 맹수의 본성이 반응을 일으켜 의외의 화합물이 탄생하는 상황에대한 예측, 혹은 기대심리라고 볼 수 있다.
실바전으로부터 정확히 1년후인 2005년 12월 31일 프라이드 쇼크웨이브 2005에서 헌트는 크로캅과 다시 만났다. K-1에서 시작된 두 선수의 인연이 MMA까지 연장된 셈이었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4만 9801명의 관중앞에서 펼쳐졌던 이 이벤트에서는 댄 핸더슨이 웰터급(UFC 기준 미들급) 토너먼트를 재패한면서,고미 타카노리가 라이트급 (UFC기준 웰터급) 토너먼트를 석권하면서 각각 챔피언 벨트를 손에 넣었고 반다레이 실바대 히카르도 아로나 간의 미들급 타이틀젼이 벌어졌다.
해설진은 헌트는 헌트대로 주짓수 준비를 많이 했다는 멘트를 날렸고 크로캅에 대해서는 크로캅이 이미 상당한 그라운드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그가 그래플링으로 승부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을 했다. 그렇지만 크로캅과 헌트의 경기는 전반적으로 클린치가 허용되는 킥복싱룰 정도의 느낌으로 전개되었다. 크로캅은 레슬링 슈즈를 신고 나왔다. 상당수의 낙무아이들과 킥복서들이 정강이를 이용한 킥을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크로캅의 경우는 발등으로 차는것을 상당히 선호했다. 프라이드 룰상 레슬링슈즈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크로캅은 신발을 착용해 발등의 부상 걱정을 덜면서 강한 킥을 날릴 수 있었을것으로 추측된다.
*크로캅전의 신발착용과 크로캅의 컨디션에 대해 스테파니님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참고해 BOA용
<크로캅전 당시 크로캅은 발목부상 때문에 슈즈를 신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었지옇.
거기다 독감에 걸려서 몸도 최악인 상황에서 무리한 KO를 노린게 패인이라고 사카키바라가 쉴드쳐줌(헤드킥이 정통으로 들어갔는데 안쓰러지니 크로캅도 답이 없긴 했을듯;)
그런데 디시에서는 지고나서 또 변명이라고 발목캅 고열캅 조루캅 별명 탄생(ㅋㅋ)>
1라운드 초반에는 크로캅이 왼쪽 로킥을 사정없이 찍어넣기도 했고 트레이드마크인 하이킥도 간간히 시도했다. 그렇지만 크로캅의 가장 중요한 스킬중 하나인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헌트에게는 거의 먹히질 않았고 오히려 카운터 기회만 자꾸 제공하면서 주도권이 헌트에게로 넘어갔다. 헌트는 왼손잡이를 잡는 특효약인 오른손 리드 펀치, 오른손 바디, 레프트 훅을 위주로 크로캅을 상당히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2라운드 들어 크로캅은 발을 많이 움직였고 들어찍기 같은 변칙적인 공격과 공격직후 클린치잡기로의 연결 등으로 헌트를 교란시켰다. 전반적으로 경기의 흐름이 약간 루즈해 졌는데 그래도 헌트가 공세를 유지하면서 간간히 크로캅에게 한방씩을 꽃아넣으면서 2라운드도 헌트가 가져갔다. 3라운드 초반에 오랫만에 크로캅의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적중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나온 크로캅의 왼쪽 하이킥도 헌트의 머리를 맞추었다. 이 대목에서 크로캅이 공세로 전환해 몰아치기를 시도하는데 헌트는 기다렷다는듯이 레프트-훅에서 라이트 어퍼로 연결되는 카운터 콤보를 시도했다. 이후 크로캅이 다시 서클링 위주로 방어태세를 굳혔고 라운드 후반에는 그라운드에서 약간의 공방이 있었지만 잔잔하게 경기는 끝이났다.
크로캅: 아니!!?? 이 기술은!!!
크로캅은 이 경기에서 원히트 & 어웨이 or 클린치를 주요 전략으로 채용했다. 즉 헌트와 근거리에서 치고받는것을 피했다는 의미이다. 스탠딩에서 헌트와 싸울 때 이 전략은 굉장히 유용하다. 헌트의 약점은 레인지다. 그리고 장점은 근접거리에서의 적중률과 파괴력이기 때문에 헌트의 사정거리 밖에서 한발을 꽃고 바로 빠지거나 아니면 클린치로 연계하는것이 현명한 선택이 된다. 크로캅의 패인은 스피드의 저하였다고 보여진다. 특히 그래플링을 위한 상체근육이 많이 붙으면서 손이 느려지고 예비동작이 커졌다는 점이 헌트와의 대전에서 좋지않게 작용했다. 크로캅의 레프트 스트레이트는 헌트와의 경기에서 거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경기전 헌트는 자신이 복수전에서 져본적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헌트는 판정승을 거두었고 K-1에서 크로캅에게 진 빚을 깨끗하게 갚으면서 자신의 말에 무게를 더했다.
2006년 2월 26일 헌트는 크루저급 프로 복서 출신의 니시지마 유스케와 대전했다. 유스케는 이것이 MMA데뷔전이었다. 헌트의 체중은 이 당시 130KG를 넘어섰다. 니시지마는 95KG였다.
니시지마는 아시안으로써는 상당히 힘든 체급인 크루저급에서 상당한 성과를 낸 우수한 프로복서였다. 그는 동양 태평양 챔피언과 북미 챔피언이었고 마이너기구이지만 WBF 세계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총 전적은 27전 24승 2패 1무 15KO.
K-1의 히로미 아마다도 상당한 복싱 실력자였지만 복싱실력만으로 보면 니시지마가 상당히 위였다. 니시지마는 헌트와의 경기에서 거의 개조되지 않은 순수한 복서 스타일로 싸웠다. 이 경우 킥복서라면 로킥, MMA 파이터라면 그래플링으로 상대하는것이 정석이다. 그렇지만 헌트는 니시지마를 상대로 카운터 펀칭을 위주로 싸웠다. 이것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니시지마의 스피드와 펀칭기술, 펀칭 방어능력은 굉장히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헌트의 카운터는 굉장히 높은 확률로 적중되었다. 니시지마의 펀치도 꽤 들어갔지만 헌트는 전혀 데미지를 먹지 않았다. 지난 편에 살펴본 실바전에 이어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되는데, 헌트의 주먹재능은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인것이 다시한번 증명된 내용의 경기였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것이다. 크루저급 복싱에서 활약했던 선수가 4온스 글러브를 끼고 나왔는데 거기다 대고 주먹대결을 벌이는 헌트의 멘탈 역시 연구대상이라 볼 수 있다.
유스케는 헌트의 펀치를 무수히 얻어맞으면서 굉장히 오래 버텼다. 그렇지만 3라운드 1분 18초경에 헌트의 강력한 라이트가 제대로 터지면서 니시지마는 결국 잠들고 말았다.
2006년 5월 5일, 프라이드 무제한 급 토너먼트의 16강 첫라운드가 벌어졌다. 오브레임은 베우둠에게 암록을 내주며 탈락했고 알렉산더 에밀리야넨코는 바넷을 만나 고배를 들었다. 노게이라와 크로캅은 각각 쉬운상대를 만나 무난히 통과했으며 헌트는 코사카 츠요시와 대전했다. 코사카는 70년생이고 95년 링스에서 데뷔해 수많은 세계적인 강자들과 싸워온 역사적 파이터였다. 그는 단지 효도르에게 반칙공격으로 상처를 입히고 어이없는 TKO승을 가져간 선수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훌륭한 파이터였다. 그가 자주 사용하던 양발꿈치를 상대의 양오금에 각각 찔러넣는 형태의 오픈가드에는 TK(Tsuyoshi Kohsaka)가드라는 별칭이 있고 젊었을때의 프랭크 샴락과 모리스 스미스가 이것을 배워 한동안 잘 써먹었다고 한다. 전공은 유도였지만 주먹솜씨도 있었고 무엇보다 근성이 어마어마한 선수였다.
경기 영상)
http://www.dailymotion.com/video/xy6jp4_mark-hunt-vs-tsuyoshi-kosaka_sport#.UZHuaqJ0RrU
헌트와의 대결은 그의 은퇴전이었다. 츠요시는 그라운드에서 헌트를 항복시키거나 잡아두지 못했으며 정면에서 들어가는 태클은 번번히 헌트의 예민한 스프롤에 걸려 무위로 돌아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오랜시간을 스탠딩에서 보냈고 헌트의 무자비한 화력에 노출되면서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 그렇지만 코사카도 헌트에게 굉장히 좋은 타격을 여러차례 적중시켜 헌트를 물러서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데미지가 심하게 누적된 상태임이 뻔히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우려는 근성을 과시 했고 보다못한 심판이 TKO를 선언하면서 경기가 종료되었다.
얼굴은 엉망이 되었지만 눈빛은 살아있다.
헌트에게 뻔한타이밍에서 정면을 치는 태클은 통하지 않는다는점과 그래플링을 통해 헌트의 체력을 빠른속도로 소진시킬 수 있다는점이 참고할만 했다. 그 외에는 코사카 츠요시의 정신력이 경기 전반을 빛내고 있었던 내용의 경기였다. 헌트의 펀치를 그 정도로 먹고도 버틴다는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코사카 츠요시를 KO로 잡고 헌트는 프라이이드 무제한급 토너먼트의 8강에 안착했다. 2006년 7월에 벌어졌던 8강전에서 헌트가 만난 상대는 조시 바넷이었다. 헌트는 바넷과의 경기에서 첫라운드 2분여만에 암록에 의한 서브미션패를 당했다. 그리고 헌트는 2010년 9월까지 약 4년 2개월동안 6연패의 늪에 빠졌다.
멜빈 만호프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5경기의 패인에는 공통점이 보인다.
1. 테이크다운에 대한 취약성.
헌트는 상대가 정면에서 전진태클형의 기술을 걸어오면 거의 당하지 않는편이다. 반응속도가 굉장히 우수하고 체중도 많이 나가기 때문에 즉각적인 스프롤로 상대를 찍어 눌러버린다. 그렇지만 타격간에 벨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 카운터 태클을 당하거나 클린치를 잡히면 상당히 쉽게 넘어간다. (*클린치 상황에서 헌트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테이크다운기가 있다. 바로 발목받치기. 클린치에서 헌트가 좋은 그립을 잡았을때 갑작스럽게 나오는 이 기술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MMA 경기에서 타격을 사용하는 한 상대의 카운터 태클에 당하지 않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타격이 주공인 헌트의 경우 카운터 테이크다운에 약하다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이후의 대처이다.
2.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와 경쟁력 부족 및 그라운드 공격력의 부재
일단 넘어지고 나면 헌트는 굉장히 미숙하다. 우수한 그래플러는 상대의 테이크다운에 당할때 당하더라도 넘어지는 순간, 또는 넘어진 직후 능숙하게 상대를 가드로 붙잡는다. 헌트는 그런 기본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넘어짐과 동시에 상대에게 사이드포지션, 혹은 풀마운트를 내주는 경우가 잦다. 이것은 MMA의 타이틀권에서 경쟁하기에 너무나, 엄청나게, 극도로 불리한 부분이다. 설령 헌트가 하위에서 가드를 잡았다 치더라도 문제는 계속된다. 헌트는 하위에서 서브미션을 거는 능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상위의 상대는 안심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라운드 파이팅을 펼치게 된다. 또한 스윕이나 이스케이프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헌트를 넘기고 나면 상대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수 있다. 하위의 헌트는 상대를 너무 편안하게 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혹여 서브미션기를 실패하면서 헌트가 리버스를 성공하고 상하위가 반전되더라도, 즉 헌트가 상위포지션을 차지하더라도 키가 매우 작은 헌트는 파운딩에도 유리하지 못하며 게다가 파운딩에 익숙하지도 않고 서브미션기 역시 거의 없다시피하며 포지션 유지도 그다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3. 더블리스트록
왕년에 사쿠라바가 즐겨사용했던 백주고 기무라잡기 루틴
헌트가 가장 많이 당하는 형태
기무라 마사히코가 엘리오 그레이시에게 걸었던 팔얽어비틀기, 기무라라는 명칭의 원전
더블리스트록이란 암록 계열의 기술을 걸기위해 사용되는 그립이다. (사진 참조) 헌트는 암바에는 희안할 정도로 강하다. 효도르가 헌트에게 마운트 포지션을 잡고 암바를 시도했는데 풀려날 수 있었고 최근에 스트루브 역시 헌트에게 암바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렇지만 헌트는 암록계열에 굉장히 취약하다. 6연패중 서브미션패를 당한 5경기 모두 더블리스트록을 잡힌것이 패인이었다.
헌트의 팔은 체급대에서 가장 짧은편에 속하기 때문에 그라운드 상황에서 상위든 하위든 상대가 쉽게 헌트의 손목을 잡을 수 있다. 즉 리스트(손목)컨트롤을 쉽게 당한다는 얘기. 리스트 컨롤을 당하는 사이에 상대가 더블리스트록을 완성하기도 쉽다. 역시 키가 작고 팔이 짧기 때문이다.
헌트를 테이크다운 하고 사이드로 가서 리스트컨트롤하면서 더블리스트락 만들고 암록 혹은 스트레이트 암바로 연결, 이것이 대 헌트 필승패턴이다. 효도르는 사이드 포지션이 아닌 하프가드에서 이것을 성공시켰고, 션 패코클의 경우는 하위포지션에서 스트레이트 암바로 연결해 경기를 마무리 했다. 오브레임은 헌트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하고 가드패스를 허용하던 순간 더블리스트록을 잡았고 결국 암록으로 헌트에게서 탭을 받아냈다.
이 점이 바로 헌트의 아킬레스건이다. 바넷, 오브레임, 메코클 같이 서브미션이 좋으면서 팔이 긴 선수들은 헌트를 굉장히 쉽게 잡을 수 있었다. 3경기 도합 4분 16초 사이에 헌트는 탭을 세번 쳤던 셈이다. 헌트의 카운터 펀칭 재능이 배워서 얻어진것이 아닌것 처럼 더블리스트락에 대한 취약점 역시 헌트의 타고난 체형이 문제인것으로 보인다. 물론 트레이닝으로 어느정도의 커버가 가능은 하겠지만 챔피언 레벨에서 경쟁하는 그래플링 전문선수를 만난다면 헌트의 약점은 치명적으로 작용할것이다. 헌트가 타격전문선수를 상대하는것은 흥미롭지만 사이즈가 있는 그래플러를 상대로는 거의 기대가 되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헌트-바넷전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77624&rtes=y&startDuration=0
헌트-효도르전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KWPRxTrAKcU
*효도를 상대로는 헌트가 평소처럼 쉽게 접근하지도 선제타를 내지도 못한다. 그만큼 전성기 당시 효도르의 타격능력은 K-1 WGP 우승자에게도 위협적인것이었다. 두 선수의 스탠드업 대결은 길지 않았지만 엄청난 공방이 연출되었다. 근접상황에서의 타격전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밀려본 적이 없는 헌트지만 효도르와의 대결에서는 카운터 맛도 꽤 봤고 헛스윙도 많이 날렸다. 이 당시의 효도르를 괜히 60억분의 1 혹은 격투의 신 등으로 높이 평가했던것이 아니다.
헌트-오브레임전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35401601&rtes=y&startDuration=0
*점촌좋아님 감사드립니다. 고화질에 방대함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습니당~~
헌트-만호프전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35649303&rtes=y&startDuration=0
*이 경기에서 헌트는 만호프를 너무 쉽게 보고 달려들었다. 만호프의 스피드는 엄청난 수준이다. 헌트는 웬만한 라이트 헤비급선수보다 더 기민한 대응이 가능한 선수이지만 만호프의 경기초반 스피드는 웰터급-미들급 수준이다. 헌트의 전진러쉬에 밀리면 보통의 선수들은 벨런스가 무너지지만 만호프는 중심을 유지한채 후퇴할 수 있었고 강펀치를 카운터로 구사했다. 헌트는 안면을 열고 달려가면서 만호프의 라이트 훅에 얼굴을 가져다 박은 결과가 되었고 아무리 헌트라도 그런식으로 맞아서는 서 있을수 없었다.
헌트-무사시전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41428729&rtes=y&startDuration=0
헌트-멕코클전 영상)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7096925&rtes=y&startDuration=0
2007년 3월, 세계 MMA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야쿠자 연루설에 의해 TV 파트너를 잃고 휘청대던 프라이드를 UFC가 적격적으로 합병했던 것이다. 비록 당시의 절대자 효도르는 UFC로의 진출을 거부하고 중심권을 이탈해 버렸지만 대부분의 A급 파이터들이 UFC로 흡수되면서 UFC가 MMA업계를 사실상 평정한 셈이었다. UFC는 프라이드와 선수들사이의 계약까지 모두 인수했다. 프라이드와 계약되어있던 헌트역시 UFC 소속이 되었다. 크로캅과 헌트에 대해서 UFC는 일종의 임대 형태로 일본의 드림, K-1다이너마이트에서 활약하도록 배려했다. 두 선수는 미국시장에서보다 일본에서 싸우는 편이 더 가치있었기 때문이었다. 헌트는 그렇지만 드림과 다이너마이트에서도 연패를 거듭했고 일본의 격투기 단체들이 거의 동시에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입지가 매우 좁아지고 말았다.
화이트는 이 시기의 헌트에 대해 아리엘 할와니와의 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라이드 딜이 성사되었을 때 그와의 계약이 남아 있었어요, 우리는 그에게 남은 계약만큼의 액수를 지불하고 그를 정리하려 했어요, 돈을 드릴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라고 말했죠. 그는 계속 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싸우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의 뜻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공돈을 챙길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도 그것을 거부하고 싸우겠다고 한것이거든요, 그가 진심인것은 바보라도 알수 있는것 아니겠어요?"
헌트의 UFC 데뷔전 상대는 당시 9승 무패 4KO 4SUB를 기록하던 신예 션 멕코클이었다. 이 경기를 대비하던 시기에 헌트는 아메리칸 탑팀에 합류했다. 메코클은 신장은 무려 2미터에 달했고 서브미션에 능한 선수로 헌트에게는 최악의 상대였다. 도박판의 배당률은 헌트 1.51대 맥코클 2.60으로 헌트쪽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결과는 그렇지만 단 1분만에 하위의 맥코클이 스트레이트 암바를 성공시키며 헌트에게서 탭을 받아내었고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한국나이로 37세의 6연패에 빠진 선수는 퇴물취급을 받는것이 당연하다. '헌트는 끝났다' 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며 필자역시 헌트의 격투여정이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 헌트의 미래를 낙관하는이는 아마 극히 드물었을것이다.
2011년 2월 27일 호주에서 개최된 UFC 127에 출장한 헌트는 크리스 턱셔이라와 대전했다. 75년생, 신장 185의 턱셔이라는 21승 3패 9KO 7SUB를 거두고 있던 중견급 파이터였다. 도박계는 당시 헌트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턱셔이라에게 1.38을 헌트에게는 3.15의 배당을 책정한 것이다. 이 대회에서 헌트의 처지가 더욱 안쓰러웠던것은 그의 경기가 다크매치중에서도 앞에서 두번째 경기, 즉 본격적인 이벤트에 앞선 여흥정도의 취급을 받았던 점이다.
턱셔이라는 NCAA 디비젼 II 에서 활동했고 올아메리칸에 두차례 선정되었다. 마이너 무대에서 20승 1패 1무를 기록하고 UFC에 진출했지만 곤자가, 브랜든 샤웁등에게 KO패를 당했고 UFC 전적은 1승 2패였다. 그렇게 강한 상대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헌트는 턱셔이라를 상대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헌트는 스탠딩에서 신중해졌다. 전진스텝이 줄어들었으며 그만큼 뒤로 많이 움직였고 사이드 스텝의 사용도 증가했다. 선제타를 내는데도 조심스러웠으며 상대를 끌어들여 카운터를 구사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원투쓰리를 치고 달려들었을 법한 상황에도 레프트 단발로 끊었고 컴비네이션도 길게 가져가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단발과 레프트훅-라이트 어퍼의 투펀치 컴비네이션 정도로 컴팩트한 타격을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턱셔이라에게는 클린치의 기회, 카운터 테이크다운의 찬스가 많이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헌트 본인이 타격을 할 기회 역시 조금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간간히 하나씩 꽃히는 펀치로도 턱셔이라의 안면은 금방 엉망이 되었다. 1라운드 중반에 헌트의 레프트훅이 턱셔이라의 안면에 적중되었고 턱셔이라의 왼쪽눈 윗부분에 커트가 발생했다. 닥터체크를 위해 레프리가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자 턱셔이라는 레프리에게 "눈가에 뭔가가 덜렁거리는데?" 라고 말했고 레프리는 턱셔이라에게 "그거 니 눈꺼풀이야"라고 답했다. 상당히 심한 커트였지만 턱셔이라는 계속 싸우기를 강하게 원했다. 레프리는 경기를 속행시켰다.
이 직후 턱셔이라가 헌트를 넘기고 상위의 하프가드를 차지했다. 그리고 턱셔이라가 헌트의 왼팔을 컨트롤 하며 더블리스트락을 만들게 되는데, 헌트로써는 최악의 위기에 몰린셈이지만 그래도 이전의 경기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가드안에 잡힌 상대의 한다리에 트라이앵글을 걸고 버티면서 최대한 왼팔의 리스트컨트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즉 전과는 다르게 상대가 상위 자신의 한팔을 컨트롤하는것이 굉장한 위기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한 모습이었다. 턱셔이라는 결국 라운드가 끝날 때 까지 헌트를 피니쉬 하지 못했다.
2라운드, 턱셔이라는 밀리면서도 간간히 펀치를 냈는데 그것은 헌트에게 카운터의 기회만 넘겨주었을 뿐이었고 2라운드 1분 14초경 케이지 사이드에 몰린 턱셔이라의 안면에 헌트의 특기인 라이트 어퍼가 적중되면서 경기는 종료되었다. 어퍼의 적중이후 상대가 앞으로 무너졌을 때 보통의 MMA 선수들이라면 올라타서 파운딩을 시도했을테지만 헌트는 그냥 돌아서며 승리 세레모니를 했다. 자신의 펀치에 대한 확신이었을지, 혹은 입식때의 습성이 아직 남아있는것인지 알 수 는 없지만 MMA에서는 보기 힘든 멋진 피니쉬였다.
이것이 1라운드에 커트를 낸 레프트훅, 두발이 다 뜨면서 전방으로 체중이동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은 펀칭의 정석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다소 위험한 동작이다. 만약 이것이 빗나가거나 막힌다면 상대에게 너무나 좋은 카운터 기회를 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조금 부족한 레인지를 메꾸어 주었고 위력도 더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정석에서 벗어나 좋은 결과를 가져온 장면은 참으로 논하기 어렵다. ^^;
MMA에서 마음놓고 전진해 큰것을 휘두르는 선수는 대부분 클린치와 그라운드에서 자신감이 강한 선수들이다. 왕년의 효도르, 왕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쌩쌩한 TRT 사용자 댄 핸더슨, 케인 벨라스케즈가 대표적이다. 그래플링에 자신이 없는 선수들은 아무리 타격이 우수해도 상대의 카운터 테이크다운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카운터 파이터 성향을 띠게 마련이다. 38세까지 MMA의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맘껏 달려 들어 강하게 휘둘렀던 헌트가 2011년이 되어서 경기 패턴의 변화를 시도하고 그것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는것은 놀랍다. 흔한 서양 속담중 'Old dog can't learn new tricks'라는 것이 있는데, 헌트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 이야기인것으로 보인다.
헌트의 아웃파이팅은 라운드 초반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렇지만 1라운드 1분 55초경 헌트가 던진 좌우 펀치 연타의 아래로 로스웰이 저공 카운터 태클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헌트는 자주 그러는 것 처럼 즉각적인 마운트를 허용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헌트의 패턴이다. 하지만 이 직후 헌트는 상위의 로스웰을 털어내고 스탠딩으로 돌아과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테크닉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모습을 보였다. 뿐만아니라 테이크다운에 대한 방어능력도 향상되었고 본인이 테이크다운 하고 하위의 상대를 통제하며 펀치와 엘보 파운딩을 넣는 솜씨를 자랑했으며 가드 패스도 수차례 성공시켰다. 2라운드 중반 헌트가 로스웰을 마치 그래플러처럼 공략하기 시작하자 그래플링, 그라운드 게임, 주짓수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조 로건이 진심어린 말투로 탄복했다는 듯이 '헌트의 그라운드 게임은 매우 향상되었다' 라고 말했고 골드버그는 '아메리칸 탑팀이 일을 아주 잘 한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헌트가 암바를 시도하고 아깝게 실패하는 대목에서 로건의 목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그는 정말 안타까워하는듯한 어조로 "다리가 얼굴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저렇게 턱밑으로가면 안돼죠' 라고 거의 소리를 질렀다.
고지대인 덴버에서 벌어진 대회여서 인지 두 선수 모두 극도로 지쳤다. 헌트의 강펀치가 매 라운드 잊을만 하면 한번씩 로스웰의 안면에 적중되었지만 로스웰은 처절하게 버텼다. 로건은 그런 로스웰을 보고 좀비같다 라는 멘트를 날릴 정도였다. 결국 판정으로갔고 결과는 헌트의 여유있는 승리였다. *이 경기의 3라운드에 헌트가 사이드포지션을 잡고 파운딩을 넣을 때 레프리가 스탠드업을 선언한다. 로건은 그시점에서 압도적인 포지션을 한 선수가 장악한상태에서 스탠드업 선언은 잘못된 판정이라 꼬집었다. (*UFC에서도 어이없는 판정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있다.)
2010년까지 즉, 션 매코클전까지의 헌트와 벤 로스웰전의 헌트는 상당히 다른 파이터다. 이전의 헌트는 정면에서 상대를 향해 접근해 들어가고 레인지 안에 상대가 포착되면 급격한 체중이동과 상하체의 꼬임이 발생하는 강타를 연속해서 쏟아내다가 그것에 상대가 맞아주면 이기는거고 상대의 카운터 테이크다운등에 걸려 넘어가면 거의 서브미션을 내주는 선수였다. 하지만 로스웰전의 헌트는 대 그래플러용 테크닉 세트를 어느정도 갖추고 여기저기 들락날락하다가 갑자기 벼락같이 몰아치는 능숙한 MMA 스트라이커처럼 보였다. 즉 스탠딩에서 그는 산토스 처럼 싸웠다는 이야기다. 두 선수의 싱크로율은 의외로 높다.
2012년 2월 26일, UFC 144가 일본에서 열렸다.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으며 37만 5천개의 PPV를 판매했던 이 대회의 메인이벤트는 우리로써는 잊을 수 없는 벤 헨더슨-프랭키 에드가 1차전이었다. 일본무대에서는 상당한 상품가치를 가지는 헌트는 칙 콩고를 상대로 옥타곤에 올랐다.
콩고는 17승 6패 2무 10KO 3SUB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역시 레슬링, 그라운드 방어가 어느정도 되는 타격전문 선수다. 당시 콩고와의 경기란 타이틀 경쟁권으로 뛰어들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하는 시험과 같은 의미였다. 헌트는 콩고를 1라운드 2분 11초만에 손쉽게 분쇄했다. 라운드 시작 무렵 헌트가 첫수로 로킥을 차다가 넘어지면서(이날 벤 헨더슨도 많이 넘어졌고, 캔버스가 미끄러웠다는 증언이 많았다) 철장에 몰린채 콩고에게 클린치를 잡히는데 바로 예리하게 더블 언더훅을 파면서 콩고를 돌려세워 철장에 밀어놓고 잠시후 발목받치기를 살찍 걸며 콩고의 벨런스를 흔들어 놓고 클린치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공방에서 콩고가 스위치킥 페인트에 이어 라이트를 내자 그것을 빠른 스텝으로 여유있게 흘린 헌트가 레프트를 던져 콩고의 턱을 흔들었고 수세에 몰린 콩고에게 헌트의 무자비한 타격이 쏟아지면서 심판의 TKO선언이 나왔다.
콩고전에서 배당은 헌트 3.25 대 콩고 1.36이었다. 헌트의 3연속 대 업셋이었다. 만약 턱셔이라전부터 콩고전까지 10만원을 박아놓고 계속 돌렸다면 3.15 X 4 X 3.25 배가 되어 40.95배, 총 409만 5천원을 손에 쥐게 되는 계산이다.
UFC 144 마크 헌트 경기 후 인터뷰
아리엘 할와니입니다, UFC 144 포스트 파이트(경기후)인터뷰 중이구요, 저는 지금 칙 콩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마크 헌트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마크, 오늘 사이타마에서 칙 콩고를 꺽은 장면을 과연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요?
헌트: 아뇨.
할와니: 믿기 힘드시죠?
헌트: 아, 기분 좋아요, 그렇습니다.
할와니: 말씀을 짧게 하시는데, 지금 말문이 막히신 상태인가요, 아니면 그냥 말씀하고 싶지 않으신건가요?
헌트: ㅋㅋ 아뇨, 저는 지금 기뻐요, 기쁘고... 그게 뭐 별로 대단한 싸움은 아니었지만..그래도 이겨서 기쁩니다. 그런거죠.
할와니: 경기가 좀더 길었기를 바라시는것 같은데요?
헌트: 아...뭐 경기는 보신 그대로의 길이였구요... 그는 거기까지 버텼던거죠. 제쪽에서는 좋은 싸움이었습니다... 말씀 하시는 식으로 뭐 더 나은 말로 표현하는것은... 잘 못하겠지만... 꽤 괜춘했습니다.
할와니: 그를 그렇게 빨리 피니쉬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놀라셨나요?
헌트: 저는 꽤 강합니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말씀이죠. 헤헹~
할와니: 많은 사람들이 도스 산토스와 오브레임을 두고 UFC 헤비급을 대표하는 두명의 최강 스트라이커라고 평가하는데요, 다른 견해가 있으신가요?
헌트: 물론이죠, 다르게 생각합니다. 훗~
할와니: K-1의 백그라운드와 그동안 MMA에서 쌓은 경력을 고려해 보면, 당신은 둘 다를 KO시킬 수 있다고 보시겠군요?
헌트: 당연하죠.
할와니: 이곳 사이타마로 돌아오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아마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계실텐데 말씀입니다.
헌트: 당연히 이곳 사이타마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서 기분 좋습니다. 이곳은 제게 제2의 고향이예요.
할와니: 일본 팬들이 당신을 어떻게 맞이 하시던가요? 프라이드 파이터로써, 그리고 K-1 베테랑으로, 보니까 그런 파이터들은 특별한 환대를 받는것 같던데요?
헌트: 저는 여기를 충분히 많이 들락거렸어요, (이번에도) 꽤 괜찮았죠, 한 40번 정도 왔나...? 헤헷~
할와니: 듣기에는 당신이 6일 후에 열리는 호주대회에도 출전하시기를 원하신다는데, 그것에 대해 UFC 측에 출전에 대한 요구를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헌트: 물론입니다. 그렇지만..이미 물어봣는데..안될것 같아요.
할와니: 이번경기에서 아무런 부상을 당하지 않아셨죠?
헌트: 네, 부상은 없었어요.
할와니: 만약 UFC가 호주 대회에 당신을 출전시키지 않는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언제쯤 다음 경기를 하시게 될것 같으신가요?
헌트: 아암.... 호주 대회요... (할와니: 흐흐흐)
할와니: 다음 상대로 누굴 원하세요?
헌트: 아무나... 아무나 가능한 선수로...
할와니: 당신의 문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그것은 히브루(유대어)인가요?
헌트: 네 히브루입니다. 제 아들을 위한것인데, 의미는 '아름다운' 이고...아들을 뜻하는..험,....
할와니: 아들의 이름인 가요?
헌트: 제 아들의 이름은 '노아'입니다. 그런데.. 그 (문신의)의미가 '뷰리플'이고 제게 아들이 그런 존재라서..
할와니: 히브루어를 하십니까?
헌트: 아뇨 저는 유태인이 아니기때문에 흐흐흐
할와니: 제가 그부분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저는 유태인이기 때문입니다.
헌트: 오케이... 당신에게 무례하고 싶진 않았지만....
할와니: 아뇨, 저는그게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헌트: .......
할와니: 오늘 대승리의 뒷풀이는 뭘로 하실겁니까? 약간의 KFC?? (헌트는 KFC를 즐겨먹는다고 인터뷰에서 밝힌적 있음)
헌트: ㅋㅋㅋㅋ 아니... 저는...ㅋㅋㅋ (바디블로)
할와니: 빠르시군용~~
헌트: ㅋㅋㅋㅋㅋ 그냥 편하게 친구들이랑 한잔하면서 즐길거예요, 일본에 친구들도 있고.....
할와니: 그렇게 하시도록 하구요....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헌트: ㅋㅋㅋㅋㅋㅋ ~~~~ TV ㅋㅋㅋㅋ
할와니: 땡큐 마크~ 축하드립니다.
헌트: 고마워요.
콩고전에서 승리한 헌트는 2012년 5월 26일 스테판 스트루브와 대전하기로 예정되어있었지만 경를 10여일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두 선수의 대전은 약 10개월 후인 2013년 3월로 연기 되었다. UFC on Fuel TV : Silva VS. Stann은 반다레이 실바를 헤드라이너로 내세우고 일본에서 벌어졌다. 헌트-스트루브전은 코메인 이벤트였다. 한때 다크매치에서도 초반에 배치되는 수모를 겪었던 헌트지만 이제는 다시 예전의 지위를 상당히 회복 한 셈이었다. 사이타마 수퍼아레나에서 열린 이 대회는 1만 4682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경기전 UFC는 아래와 같은 프로모션 영상을 공개했다.
제 마음은 이미 경기장에 가 있습니다, 강하게 집중하고 있어요. 그는 저를 건드릴수도 없을겁니다. All or Nothing이죠, 저는 모든 것을 걸었었습니다. 뭔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싸움판으로 저를 몰고가는 그 불꽃 같은것 말씀이죠. 지킬 박사도 하이드씨도 여전히 내속에 있어요. 제가 원하는 만큼의 진보를 이루어낸다면 그가 이길 방법은 없어요. 그런방법 같은것은 없습니다.
준비를 끝내고 싸우러 나갈 때면 최고의 기분을 느낄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다시 싸우게 되어 기뻐요. 일본에서는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통산 한 60여차례 방문했던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내가 UFC 무대에 서기엔 부족하다고도 했죠. 훗...저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파이터중 한명입니다. 경쟁자들을 타이틀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최후에는 타이틀을 손에 넣는 것, 그게 제 일입니다.
싸움은 게임이 아닙니다. 카라테 키드에서 미야기 사범은 '카라테에는 'Do' 와 'Don't'가 있을 뿐 'May be'는 없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싸움은 그런거죠.
공이 울리면 저는 뛰쳐나가서 그 친구에게 고통을 안겨줄겁니다.
스트루브는 1988년생의 네덜란드 출신 파이터다. 신장은 212cm로 UFC 최장신이며 2008년 11월 까지 16승 2패를 기록한 후 2009년 2월 20세의 나이로 UFC에 진출했다 첫 상대가 바로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였고 스트루브는 산토스의 강력한 펀치러쉬를 못견디며 1라운드에 TKO패를 당했다. 스트루브는 션 매코클, 펫 베리, 라바존슨, 스티페 미오치치등에게 피니쉬 승리를 거두었고 산토스, 로이 넬슨, 트래비스 비라운등에게는 KO패를 당했다. 스트루브의 UFC전적은 9승 3패 4KO 4SUB (총전적은 25승 5패 8KO 16SUB)였다.
두 선수의 연령차는 14세였다, 게다가 신장차가 34cm에 달했고 리치차는 27cm였다. 헌트가 타격기술을 펼치기에 체격차가 심해보였고 스트루브는 서브미션기의 구사가 상당히 능숙했기 때문에 나이차에 의한 체력문제까지 고려하면 헌트에게는 쉽지 않은 대진, 혹은 UFC에서 맞이한 대전중 가장 어려운 상대성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도박계는 다시 헌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헌트에게 2.1배, 스트루브에게는 1.75배의 배당을 책정했다. 배당뮬만으로는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1라운드 초반, 스트루브는 헌트와의 거리를 유지한채 헌트를 붙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헌트는 주로 왼손훅과 스트루브의 잽을 헤드웍으로 흘리며 왼손 받아치기, 레프트-라이트 바디스트레이트 등으로 공격했다. 신장차가 워낙 커서 헌트가 스트루브의 안면에 펀치를 넣는것이 매우 힘들어보였다. 그러다 헌트가 레프트-라이트 컴비네이션을 시도하는 틈을 이용해 스트루브가 클린치를 잡았고 풀링가드(셀프가드)로 경기의 국면을 그라운드로 전환시켰다. 잠시 후 스트루브는 헌트의 오른팔을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와 팔로 꽉 붙잡은 후 오른쪽 발로 헌트의 왼다리를 들어올려 헌트를 뒤집었다. 기본적인 버터플라이 스윕이지만 두 선수의 길이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헌트는 그대로 뒤집히며 풀마운트 포지션을 내주였다. (그래도 헌트가 그라운드 초입부에 스트루브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고는 하고있었다. 즉 예전처럼 아예 개념이 전혀 없어 당한것은 아니라는의미, 단지 스트루브의 그라운드 스킬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체격차가 컷던것이 문제였던것으로 보인다)
마운트를 내준 직후 헌트는 상당한 위력의 파운딩을 연속해서 허용했으며 굉장한 위기상황에 몰렸다. 헌트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백을 내주었다. 스트루브는 헌트의 백을 잡고나서 바로 암바로 연결했다. 이것은 정확하게 스트루브가 원하던 바 그대로였다. 셀프가드로 그라운드로 가서 스윕으로 마운트를 따내고 파운딩을 내려치다 상대가 몸을 돌리면 백을 잡는것, 헌트로써는 당연히 최악의 전개였다.
그렇지만 헌트가 팔을 내주지안고 버티자 스트루브가 자신의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포지션의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스트루브는 하위에서 삼각을 시도했지만 그것을 방어해내면서 헌트가 사이드 포지션을 장악하기도했다. 라운드가 종료되었을때 국내 방송의 해설자인 김대환은 "옛날 같으면 열번은 더 끝났을 상황에서 헌트가 버텨내었다"라고 말하며 놀라워 했다.
2라운드가 되자 스트루브는 스탠딩에서 더욱 패시브해졌다. 헌트가 스트루브의 레인지 안쪽 깊이까지 접근한 상황에서도 스트루브는 커버링을 굳힌채 웬만해선 공격을 내거나 움직여 도망가지 않았다. 이것은 헌트에게 어느정도는 맞을 각오를 하고 대신 헌트가 타격간에 벨런스를 잃거나 몸이 많이 돌아간 상황이 왔을때, 즉 헌트가 실수를 하면 클린치를 잡고 그라운드로 내려가겠다는 배수의 진이었던것으로 보인다. 헌트도 이 점을 확실히 인지한듯 성급하게 몰아치치 않고 한발 한발을 요령있게 맞추는데 집중했고 연속기와 강타를 쏟아내는것을 자제하며 바디를 많이 노렸다.
2라운드 2분20초경 스트루브가 레프트를 내며 달라붙어 클린치가 이루어졌다. 이 직후, 헌트는 굉장히 잽싸게 발목받치기를 걸어 스트루브를 넘기고 상위포지션을 차지했다. 이어진 그라운드에서 헌트는 스트루브의 각종 서브미션 시도를 상당히 능숙하게 견뎌내었다. 그러던중 스트루브의 가드를 패스하기도 했을정도로 헌트의 그라운드 스킬은 확실히 진일보 해 있었다. 그렇지만 잠시 후 스탠딩으로 돌아가려하던 헌트를 스트루브가 붙잡으며 헌트는 다시 그라운드로 끌려내려갔고 스트루브가 다시 마운트 포시션을 장악했으며 마운트에서 파운딩을 내려치다 암바로 가는 황금의 서브미션 루트로 진입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헌트가 건곤일척의 순간에 팔을 재빨리 거둬들이며 위기를 탈출했다. 잠시후 라운드가 종료되었는데 두 선수 모두 탈진 일보직전인 상태였다.
거의 발을 멈춘 두 선수는 굉장히 특수한 타격공방을 연출했다. 헌트는 상대에게 클린치-테이크다운 기회를 최대한 내주지 않으면서 타격을 꽃아넣을 궁리를 하고 있었고 스트루브는 타격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면서 헌트가 벨런스를 잃었을때를 노려 클린치-테이크다운을 하기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경기의 쟁점은 헌트가 스트루브의 그라운드를 허용하느냐 아니면 스트루브에게 헌트의 결정타가 꽃히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양선수 모두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어느쪽이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선수가 이길 가능성이 상당히 큰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3라운드 1분 5초 정도가 지난 지점에서 스트루브가 레프트 하이킥으로 헌트의 안면을 맞추었고 헌트가 물러나자 적극적으로 타격을 내며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패착이었다. 공격을 위해 스트루브의 방어선이 흐트러지자 헌트의 강력한 펀칭이 연이어 적중되기 시작했고 잠시후 거의 달려가다 점프하다시피하며 던진 헌트의 레프트훅이 턱에 적중되면서 거목이 쓰러지듯 스트루브는 허물어졌다. 헌트는 그자리에서 돌어섰고 레프리는 TKO 선언을 잠시 미루고 스트루브의 상태를 살폈다. 잠시후 헌트가 마무리를 지으려 돌아서서 스트루브에게 접근하자 레프리는 그제서야 TKO판정을 내렸다.
경기 직후 존 아닉이 헌트를 인터뷰 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닉: 오늘의 승리로써 UFC 4연승을 질주하게 된 마크 헌트와 함께 하고있습니다. 먼저 제가 보기에 당신의 그라운드 실력은 일취월장 했습니다, 마치 그와의 그라운드 게임을 오히려 반기는것 처럼 보였습니다.
헌트: 네.
아닉: 왼손훅의 결정타가 제대로 꽃히면서 경기가 끝났고 자주 그러시는것 처럼 당신은 그자리에서 돌아서면서 KO의 순간을 음미하셨는데요, 그것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요.
헌트: 저의 주군이신 지저스 크라이스트께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보, 얘들아, 사랑해.
아닉: 신사 숙녀 여러분, UFC 헤비급의 새로운 도전자 마크 헌트였습니다.
헌트의 UFC 4연승, 그리고 4연속 업셋이었다. 10만원을 헌트에게 꽃아놓고 4경기를 기다렸다면 3.15 x 4 x 3.25 x 2.1 = 85.99의 계산으로 거의 860만원돈이 되는 계산이 되는것이다.
마크헌트의 K-1시절부터 최근까지 여러 경기를 살펴보았다. 헌트는 기본적으로 싸움꾼인 상태에서 이 세계에 진입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당시 헌트가 클럽에서 싸우고 무에타이와 인연을 맺게 된 시기가 90년대 중반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 상황이 일어난 시기에 대해 헌트는 자신이 18~19세 시절, 즉 90년대 초반이라고 밝혔다.) 무에타이의 기술을 몸에 익히고 프로 킥복싱계로 진출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여전히 헌트는 싸움꾼 스타일이었다. 강한맺집과 느린발에 비해 기민한 순간동작, 빠르고 정확하며 치명적인 펀칭능력, 동물적인 감각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신력등이 그의 장점이었고 움직임의 스피드와 전반적인 테크닉, 낮은신장과 짧은 리치, 스테미너는 약점이었다.
극도로 우수한 장점과 장점만큼 부각되는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헌트의 특징은 MMA에서도 유지되었다. 근접 타격전에서의 초월적인 능력치만큼 그라운드상황에서의 심각한 경험부족, 그것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의 헌트였다.
그렇지만 MMA에서 6연패를 하고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은 헌트는 2010년경 (션 메코클과의 대전을 위해) 아메리칸 탑 팀의 문하에 들면서 많은 부분에서 진보를 이루어 내었다. 스탠딩에서 전진스텝과 좌우 연타를 마구 날려 상대에게 좋은 카운터 테이크다운의 기회를 넘겨주었던 헌트는 이제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단발과 절도있는 연속기를 구사하는 카운터 스트라이커로 변신에 성공했다. 더이상 헌트는 예전처럼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테이크다운 기회를 내주는 선수가 아니다. 지금의 헌트를 넘기기 위해서는 상대도 많은것을 걸어여 한다.
스탠딩에서 헌트가 이룩한 발전은 그라운드에서의 그것에 비해 새발의 피다. 스탠딩에서의 헌트는 조금의 요령이 더해진 정도이지만 그라운드에서 헌트는 완전히 다른 선수로 변했다. 아직 군데군데 빈틈이 있고 언제 큰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헌트는 이제 넘기기만 하면 잠시후 서브미션을 내주는 그런 선수는 아니다. 아메리칸 탑팀에서 거의 3년간 가르침을 받는동안 헌트의 그라운드 능력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의 6년에 비해 상대가 안될 정도로 상승했다.
지금의 헌트는 그라운드 전문 선수에게는 아직 조금 약할지 모르지만 타격 스페셜리스트들에게는 극도로 우수한 상대성을 가지는 MMA 파이터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상대는 현존하는 MMA 최강의 타격가라 볼 수 있는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다. 이 경기를 미국에서조차 '드림매치'라고 손꼽는 이유가 바로 타격으로는 역사상의 수위를 다툴 두 선수가 벌이게 되는 일종의 정상회담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어후~~진짜 스압이네~
읽다 포기했네요...
시간내서 다시 봐야할듯~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었네요^^ 능력자!!^^
이용수씨 칼럼은 디테일 면에서는 최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