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에 관한 질문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께서 서거한 날입니다. 어느 분이 제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는대로 간단히 대답하였고요. 그분의 질문과 제 답변을 아래에 적어둡니다.
문 : 요새 제가 안중근에 관련된 글을 읽었는데요. 거기에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잖아요. 그때 우리나라에 와 있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다 안중근 의사를 십계명의 하나로 살인범이라고 규정하였답니다. 그리고는 일본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프랑스 신부님들이 자기네들 스스로 친일적이라고 했다고 하고요.
또, 일본의 신문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지 않았다면,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 앞장서 좋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사살하였으니, 안중근의 잘못이라는 거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사살로 인하여 오히려 한일병합이 되었다는 것이 일본 신문의 논조라고 책에 나와 있어요.
프랑스 선교사들이 안중근을 편들기보다는 일본 편을 들었다고 하던데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궁금해서 한번 여쭤봅니다.
답 :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제가 잘 알 턱이 없지요. 심지어는 이런 얘기도 나오고 있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말하자면 사살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식사(수라)를 들다 말고 고종이 젓가락을 떨어뜨렸다는 말도 있어요. 왕은 충격을 받아서. ‘이제 일이 잘못되겠구나’라고 한탄했대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라는 사람이 누군가요. 이 사람은 "정한론"의 맥락에서 보면 상당히 온건한 사람이었거든요. 빨리 서둘러 조선을 어떻게 든지 집어삼키자는 과격한 정한론자가 아니었어요. 이토 히로부미는 말이죠, 천천히 기회를 봐가면서 조선을 집어삼키자는 주의였다는 말씀입니다. 더 완벽하게 조선을 없애자는 거였어요.
그렇게 놓고 보면요. 이토 히로부미가 좀 더 오래 살아 있었으면, 병합이 조금 더 늦춰졌을 수는 있었을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세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제 판단이 그렇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미 늙을 만큼 늙은 일본의 정치가였죠.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병합을 그때는 반대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민족을 위해서 반대한 것이 아니지요. 외교적으로 무리 없이, 아주 매끄럽게 한국을 병합하는데만 목적이 있었던 거였지요. 이토 히로부미가 몇 년 더 살았다고 해서 한국에게 독립의 기회가 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요. 일본 사람들이 참으로 교묘하게도,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마저도 한국을 침략하는데 그럴 듯하게 이용해 먹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침략을 합리화할 명분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죽을 때까지도 제 나라를 위해서 멋지게 죽은 꼴이었어요. 그야말로 그 자신은 조국에 멸사봉공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사정이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한가요. 감히 안중근 의사의 애국적 행위를 놓고서, 그때 그렇게 한 것이 망국의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안중근 의사는 한국 사람으로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가장 멋지게 잘한 것입니다.
길이길이 한국 민족이 이땅에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사람 죽이는 것 자체는 잘한 일이 아니지만, 안중근 의사가 억울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지요. 안중근 의사가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던진 것을, 우리가 왜 부끄러워합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지요. 무슨 명목으로든지 안중근 의사를 비난하거나, 그를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언사로 폄하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애초 안 의사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테러리스트요, 암살자라고 말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때로는 테러도 해야만 하는 거죠. 대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안 의사는 살신성인의 뜻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대의를 실천하신 것으로 압니다.
안중근 의사는 평화주의자였어요. 그분은 옥중에서까지 <<동양평화론>>이라고 하는 장문의 글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의사는 동양의 평화, 즉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공존 공영을 누구보다도 강력히 바랐던 분이었습니다. 안 의사는 세 나라가 공동으로 화폐를 만들어 쓰자고 하였고, 세 나라가 공동으로 군대를 길러서 외부의 침략에 단호히 대처하자고도 주장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유럽 연합이 화폐도 통일하였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공동 방위를 꾀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20세기 초 아시아의 형편은 달랐지요. 아무리 노력하여도 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어려웠어요. 일본 제국주의자들 때문이었지요. 동양 평화의 가장 큰 적은 일본 제국주의요, 그 우두머리가 이토 히로부미였습니다. 그 때문에 안중근 의사는 총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방편을 선택해, 화근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하얼빈 역전에서 안 의사가 죽인 것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한 사람의 늙은 노인이 아니죠. 의사는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제국주의를 심판하였습니다. 그분은 범죄적 사상과 정치적 음모를 척결하기 향해서 총알을 쏟아부은 것이었지요. 어찌 이토 히로부미라는 한 늙은 일본의 정객을 죽이기만 하였겟습니까. 안중근 의사가 발사한 총알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몸부림이었지요.
개인적 원한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었어요. 참으로 엄숙하고 공적인 사형 집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하게도, 거기에 한 개인이 희생되었어요. 그러나 그날 안중근 의사의 의로운 행위는 이토라는 일본 정객의 희생이라는 작은 틀에서 평가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그것은 아주 훌륭한 대장부의 거사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나라의 운명이 다시 위태로워진다면, 천 명 아니 만 명의 안중근 의사가 나올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 대열에 기꺼이 설 것입니다. 과연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