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때로는 피하고 싶은 진실과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다.
그냥 모른 채 살면 좋겠지만 진실은 너무 끈질겨서
우리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나쁜 일에 빠져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좋은 것일수록 그것을 얻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지금 하는 행동이 미래를 말해준다.
나와 다른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먼저 행동을 살펴야 한다.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그 사람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의 대부분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도,
그 속에서 구해내는 것도 결국은 자기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비상한 용기 없이는 불행의 늪을 건널 수 없다.
누구나 불행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겨내지 못할 불행도 없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기연민을 이겨낼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가장 견고한 감옥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일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갖가지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며 우리를 뒷걸음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누가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완벽주의가 좋은 인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에서는 완벽주의가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해가 된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는 좋지만 친구로서는 꺼려지는 법이다.
사랑은 인생에 처방하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다.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순간 살아볼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이 견뎌야 할 모든 시련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도 바로 사랑이다.
방황하는 영혼이라고 해서 모두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미처 다 가볼 수 없는 여러 갈래길이 있다.
그 여러 갈래길 사이에서 잠시 이탈하거나 행로를 변경하는 것은
방황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한 모험일 수 있다.
짝사랑은 고통스러우면서 낭만적이지도 않다.
애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가
때로는 짝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서로 소통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혼자하는 사랑은 낭만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체념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은 변화를 꾀할 수 없다.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지도가 지형과 다르다면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이 모여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나간다.
결국 인생이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맞게
머리속의 지도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이다.
감정적인 행동을 이성적으로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스스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그 행동이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편견이나 아집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주도권은 무심한 사람이 쥐고 있다.
어떤 인간관계든 깨어질 때는
어느 한쪽이 먼저 마음이 떠나기 마련이며,
그 사람이 오히려 강자가 되어
원상회복을 위한 약자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린다.
함부로 베푸는 친절이 상대를 더 망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위사람들의 친절이나 보호가 아니라
절망을 이겨내겠다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다.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용기를 내야 한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데도
부딪쳐 싸워낼 의욕이나 용기가 없어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충분히 불만스러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열 번의 변명을 하느니 한 번의 모험을 하는 것이 낫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왜 그 일을 할 수 없는가에 대한
변명거리만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그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모험심으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여기에서 좋은 것이 영원히 좋으리란 법은 없다.
뛰어난 두뇌, 유머감각, 완벽주의 등
어떤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던 요소들이
때로는 그 사람을 불리한 처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인생에 절대적 가치가 없듯이 절대적 장점이란 것도 없다.
남을 속이는 것보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 더 나쁘다.
갖가지 핑계로 게으른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자기 합리화가 반복되면 결국은 어떤 판단도 올바로 할 수 없게 된다.
이혼과 불륜은 완벽한 사랑의 환상에서 비롯된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는
완벽한 사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며 헛된 욕망일 뿐이다.
이혼과 불륜이 난무하는 이 현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별은 사랑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진실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은 결코 사라지거나 죽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사랑은 그대로 남아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워진다.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규칙을 만들고 강요하며 통제해야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아이를 나약하고 비관적인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어떤 사람은 아프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몸져눕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불필요한 두려움은 진정한 기쁨을 방해할 뿐이다.
이 사회는 온갖 다양한 것들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전쟁과 테러, 가난, 질병, 사업 실패...
그것들은 단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한다.
부모가 자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훌륭한 부모가 되고 싶다면 통제하는 대신 따라오게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다.
아쉬운 기억일수록 낭만적으로 채색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기억은 곧잘 낭만적인 환상으로 부활한다.
과거의 낭만적인 기억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의무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외로운 노년을 자식에게 기대려는 것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노년의 상실감을 품위와 의지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용감해질 수 있는 기회다.
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온갖 부조리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을 자유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시련을 대처하는 여러 방식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용서는 포기나 망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이다.
원망이나 복수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면의 성숙이 필요하고,
내면의 성숙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이 제대로 흘러가는지 살펴라"
생활 창고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100개가 되었을 때 나는 스승님을 찾아가
"덕분에 100개 점포 달성을 이루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스승님은 "잘했어. 정말 잘했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래,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 칭찬받아 마땅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진 스승님의 말씀은 뜻밖이었다.
"자네 요즘 일이 잘 안 되지?"
방금 전 100개 점포 달성을 함께 기뻐해 줘 놓고서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스승님은 내 사정을 정확히 알아맞혔다. 사실 그 무렵 일이 신통치 않았다.
100개 점포를 개점하기는 했지만 생각처럼 매출이 오르지 않고
본사와 체임점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스승님은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리셨을까?
나는 직접 여쭤 보았다.
"어렸을 적에 공원 모래밭에 강을 만들어 위에서부터 물을 흘러보내는 놀이를 많이 하지.
처음에는 물이 아래까지 잘 흘러갈 거야. 그런데 물을 계속 흘려보내면 나중에 어떨게 되나?
결국 모래로 만든 약한 도랑이 무너지고 아래까지 물이 흐르지 못하게 되지.
밖으로 새어 나가니까 말야."
가맹점 계약 초기에는 일도 잘되고 인간관계도 술술 풀린다. 이것은 맨 처음에 물을 흘러보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다음 가게, 또 다음 가게로 확대해 나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100개 점포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모래로 만든 강에 불과하다면
결국 생각처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스승님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빠짐없이 보고 계셨던 것은 아니다.
단지 세강의 이치가 그런 법이니 안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승님 말씀대로 서둘러 튼튼한 벽을 치기로 했다.
점포 늘리는 것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계약한 점포 유지에 힘을 쏟아 부었다.
가맹점의 매상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온갖 문제점을 말끔히 씻어 냈다.
그때 스승님께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바닥을 단단히 굳히지 않고 성공만을 떠올리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경계심을 갖게 해 주는 명언으로 스승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밑바닥 성공법칙》, 호리노우치 큐이치로
"마음의 양식"
인터넷 문화를 접하면서부터
가장 많이 얻은것이 있다면 마음을 살찌우는
마음의 양식일것입니다.
구석구석마다 좋은글 보고 들으며
나를 반성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며 몇년간의
시간 투자가 헛된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웬만한 마음속의 속물들을 참 많이도 비웠다 싶은데
아직도 비워지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타툼없는 세상에서 살면 좋으련만..
다툼속에서 사랑이 싹트고 몰랐던 고약한 버릇들을
알게되니
자아 발전의 기회가 다툼속에서 생겨납니다.
부부로 만나 살면서 처음부터
한마음인 사람이 어디 있나요,
긴 시간 아웅다웅속에서 늦으막에 돌아보니
어느정도 마음 맞추기가 이루어져 있는걸 발견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것이 있네요,
전날 의견 충돌로 인한 토닥거림들을 새날속에
그대로 간직해오니 더러는 자존심으로
더러는 상대에게 이겨야 버릇을 고친다는 일념으로
몇일을 어색한 부부가되어 시간을 허비합니다.
남편이 먼저 아내가 먼저
사과하며 다가오길 기다리는 속물이 됩니다.
나이들면 여자가 너그러워지고
포옹력이 늘어난다는 말들을 합니다.
신혼시절의 새침떼기 새댁은 흔적없이 사라졌습니다.
자식들 다 자라 제갈길 떠나고
하루종일 기다리는건 남편 아내 둘만의 공간에서
그나마 어색한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면
그건 죽을만큼 못할짓이라 여겨집니다.
그런것들이 쌓여 내가 참아야지
자존심 버리고 살다보니 어느듯 뒤바뀐
성격에 놀라기도 해요,
더 나이드신 분들은 그럽니다.
아웅다웅 싸울때가 좋았다란말 그나마
서로에게 관심있고 젊음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다툼과 화해의 시간은 길지 않길
서로에게 자잘못 떠넘기는 어리석움은 없길
중년에는 여자가 너그러워짐은 어떨까요?
그것이 가장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미쳤어, 미쳤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지금 밖의 기온이 무려 영하 5도다.
11월 중순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온은 12월 중순에 해당된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중 ‘미쳤어~’ 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처럼 날씨도 미치고, 우리도 미쳐가는 건 아닌지...
사실 따지고 보면 미친다는 거, 그건 뭘까?
미쳤다는 건 뭘 말하는걸까?
단순히 생각해 본다면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면 다 미쳤다고 보는 것 아닌가?
한가지 비유를 들어보자.
지난번 앞산에 아내와 효빈이를 데리고 산책갔을 때 썼던 비유인데 여기에 적용해보면 아주 재미있을 듯 싶다.
산기와 염기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산도를 측정할 때 PH라는 단위를 쓴다.
PH의 단위는 1부터 14까지 있으며 7을 중성으로 두고 7보다 높으면 염기(알카리)성,
7보다 낮으면 산성으로 생각한다.
자, 그럼 앞에 이야기와 연관시켜서 7을 정상이라 본다면 7을 벗어나는 것은 미친게 되는 것이다.
물론 7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미친 정도가 심하다고 말해야 하겠지.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미쳤다는 건 그렇다치고 낮은 숫자로 가는 방향과 높은 숫자로 가는 방향의 기준은 무엇으로 둘 것인가?
글쎄... 생각해 볼만한 것인데...
남자와 여자?
왼쪽은 여자가 미친거..
오른쪽은 남자가 미친거..
너무 썰렁한가?
하긴 이 표에 대한 비유로는 너무 약하긴 하다.
그럼 다른 건 뭐 없을까?
고차원과 저차원으로 나누는 건 어떨까?
음... 무슨 이야기냐 하면, 고차원은 너무 똑똑하고 전문적인 연구를 거듭하다 미친 경우...
한마디로 높은 수준의 미침. 반대는 저급한 수준의 미침. 이거 괜찮은데...
저급수준의 미침은 바보의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지.
아니면 사고로 인해 뇌 다쳐 정상적인 사고의 틀을 가져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를 의미하면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건 지식 또는 수준의 정도에 의한 구분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럴 듯 하긴 하구먼...
자, 그럼 여기까지 2가지에 의한 구분이 나왔네.
하나는 성별에 의한 구분,
둘째는 지식 또는 수준의 정도에 의한 구분. 뭐 다른 건 없을까? 흐흐...
마치 퀴즈 놀이 하는거 같다.
그거 있지 않은가?
산토끼의 반대말을 말하는, IQ Test 문제. 죽은 토끼, 들토끼, 집토끼, 판토끼, 염기토끼, 바다토끼 등등.
어쨌든 생각의 범위를 다양하게 넓혀주는 실험은 상상력에 도움이 될뿐더러 더 중요한 건!!
바로 재밌다는 거.
사실 뭐 있겠어. 재미 있으니까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는거고, 쓰면서 생각도 하는거지.
이거 하는데 누가 돈을 줘, 재밌다고 이야길 해 줘. 안그래? 그냥 나 혼자, ‘어 이런 생각도 하고, 기특한걸?
그리고 하다보니 재밌는걸?’ 하고 있는거지. 이게 혼자놀기의 한 방법인가? ㅋㅋ
자자,
계속 진도 나가자.
내 주특기인 딴길로 새지말고.
근데 사실 말야. 첨에 글을 쓰려 할 때 미친거에 대해 쓰려고 한게 아니었거든.
결국 그 얘긴 지금 나는 처음부터 딴 길로 이미 새어버렸단 이야기지.
그럼 처음엔 뭘 쓰려 한거지?
이궁... 모르겠다.
이게 주객의 전도인가?
아니면 웩더독 현상인가?
어.. 그러고보니 점점 미쳐 가고 있는건가... 쩝...
미친 방향에 대한 구분은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미치다의 정의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미치다라는 것의 사전적인 정의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이다.
결국 미치다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다.
보통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야만 미쳤다는 것을 판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다가 한가지 더 추가되어야 할 기준이 바로 ‘정신에 이상이 생겨’라는 것이다.
다시 정의를 해 보자면 먼저 정신에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둘째로 그 문제로 인해 보통사람과 말과 행동에 있어 달라야 즉,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흠... 복잡한건가,
아님 간단한건가?
뭐 그렇게 복잡한거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미쳤다는 기준은 결국 상대적이란 것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미쳤다고 판단은 누가 하는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신병원의 의사들이 사람이 미침 여부를 판단한다고 알고 있다.
그들은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미친 사람을 정신병 환자로 분류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나도 궁금하다...
이건 나중에 찾아보거나 의사들한테 직접 물어보고.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과연 의사가 어떻게 미친 사람을 구분하고 실제 잘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한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로렌 슬레이터가 쓴 <스키너의 심리사자 열기>에 보면 정신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몰래 실험한 결과가 나와 있다.
아주 못된 실험이였지만 실험을 하는 대상자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게임’ 같았겠지?
그 내용을 함 살펴보자.
1970년대 초반에 스탠퍼드대학의 법학과와 심리학과의 명예교수로 있던 데이비드 로젠한 박사는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병 환자와 정상적인 일반 사람들을 얼마나 잘 구별하는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여덟 명의 사람을 모집하여 정신병 환자처럼 가장시킨 후 여러 곳의 정신 병원에 나누어 들여 보냈다.
그를 포함해서. 물론 사전에 정신병 환자처럼 보이기 위한 많은 훈련을 한 후 말이다.
그리고 정신 병동에 일단 들어가고 나면 정상인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들의 목표는 그들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정신과 의사들이 제대로 알아볼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정신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정신병이 있다는 가정 하에 판단을 할 것인지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로젠한 박사를 포함한 8명은 정신병에 대한 한달 간의 사전 훈련을 마친 후
동부와 서부의 각 지역으로 흩어져 정신 병원의 응급실로 찾아갔다.
물론 외모도 정신병자처럼 보이기 위해 D-데이 닷새전부터 샤워와 면도, 양치질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병원에 들어가 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들립니다.
‘쿵’ 소리를 내요.”라고.
어떤가?
일단 들어만 봐도 뭔가 정신병의 징후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들은 그날로 그들의 목적대로 정신 병동에 입원하였고, ‘일반적인’ 정신병 환자처럼 정신 치료를 받았다.
그들 중 한사람에게 의사가 내린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나이가 서른 아홉인 이 백인 남자는 친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양가감정(兩價感情, 모순감정)을 느껴왔다고 밝혔다.
그의 감정은 늘 불안했다.
그는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몇 명 있다고 말하지만 그 관계에 매우 자신 없어했다.’
이상한 일은 다른 환자들은 로젠한박사가 정상임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젠한 박사 뿐만 아니라 전국의 정신 병원에 수용된 다른 가짜 환자들도
의사보다 정신병 환자들이 제정신인 사람을 더 잘 알아보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 젊은 남자는 휴게실에 있는 로젠한 박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아마 기자 아니면 교수일 거예요.”
또 다른 환자는 “당신은 지금 병원을 조사하고 있군요.”라고 말했다.
로젠한 박사는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모든 지시에 따르고, 권리를 주장하고,
다른 환자들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돕고, 법적 조언을 해주고, 탁구 시합을 하고, 많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것을 병원에서는 ‘글 쓰는 행위’라 명명하고는 로젠한 박사의 과대망상적 정신 분열 증상으로 보았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인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입원할 때 만큼이나 아무런 근거없이 퇴원 조치를 받았다.
그 곳에서 로젠한 박사는 혹독한 것을 배웠다.
그는 보호 시설이라는 곳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곳인가를 배웠고,
정신 의학이라는 것이 또한 얼마나 병들어 있는 지를 배웠다.
그는 얼마나 많은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진을 받고, 약물을 투여받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용되는지 궁금해서 무모한 실험에 도전한 것이며,
그 결과는 결코 좋아 보이지 못했다.
정신병이라는 딱지가 정신병을 낳은 것일까?
병 때문에 진단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진단이 두뇌에 각인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두뇌가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두뇌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다시 읽어봐도 꽤나 흥미진진하다.
미쳤다고 하는 것. 그건 정말 미친걸까?
정상인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 좀 더 신의 영역으로 사고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게 된 사람은
그렇다면 미쳤다고 해야할까?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하며 인간의 주체 본능의 회복을 강력히 주장한 니체는
정신병으로 고생하기 전부터 미친 것이었을까?
그리고 실제로 정신병을 앓았다고 했는데, 그는 과연 진실로 정신병을 앓았던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그를 정신병으로 몰은 것은 아니었을까?
<살짝 미치면 세상이 즐겁다>란 이야기가 있다.
이 ‘살짝’이란 정도는 아마도 정상적인 범위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미쳤다고 정신병으로 보내지 않을테니까.
그렇다면 ‘살짝 미치면’이란 표현은 맞는 표현인가?
‘미쳤다’란 기준이 이미 정상적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라고 본다면 결국 미치면 미친거지,
‘살짝 미쳤다’란 표현은 결국 틀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 말꼬리 잡기인가?
나는 ‘살짝 미치면 세상이 즐겁다’란 표현을 ‘변화하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모티베이션이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고, 안정되기만을 바라며 그럭저럭 만족한 채 지속적인 생활을 원한다면
변화라는 것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아니 쓰레기가 아니라 ‘공기’와도 같이 있는 지 없는 지 알고 싶지도
별로 중요하지도(맘 속으론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않은 것이다.
“살짝 미치는 것!
그리고 변화하는 것!” 이란 세상의 삶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시각으로, 관점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돌아보며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각을 조금 비틀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처음에 ‘미친듯이’ 추워진 이야기를 꺼냈다가 결국 미친 것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었고,
‘살짝 미치라’란 어설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덕분에 ‘돼지 양이’라는 이쁜 캐릭터를 하나 얻었다.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사람은 아는 만큼 넓어지게 되어있다.
지식이란 담으면 담을 수록 그 한계가 넓어지는 것이며, 그로 인한 시각의 범위, 관점은
사방 팔방, 입체적으로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요즘 한해가 너무 기쁘다.
스스로가 자라남을 느끼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행동의 실천이 ‘살짝 미친’ 것임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얼마나 더 미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상의 범위 안에서 더 미쳐보고 싶다. 하하하하하하!!!!(침 줄줄... ㅋㅋ)
"아버지와 아내"
"너에게 남은건 실망밖에 없다"
해외 출장 중에 만난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딱 잘라 반대하셨습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듣고 나니
죄송함과 괴로움이 한데 엉켜 답답했습니다.
말썽만 부리던 철부지가 군대에 다녀와서
사람이 됐다며 믿어 주셨는데...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저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로 남았습니다.
아직 아버지 세대에서는 국제결혼이란
용납할 수 없는 단어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고
당시 아내는 뱃속에 아이까지 가진 상태였습니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태어난 딸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해맑은 미소로 저를 반겼습니다.
집사람에게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와 집사람과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을
우편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었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사진도 보지 않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저에게
'좋다 결혼해라 하지만 축하를 바라지는 마라.'
라고 하시더군요.
집사람의 친정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의 하객은 출장중이던 직원들이 전부였습니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Visa를 받아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의 일입니다.
웃음을 잃으셨던 아버지가
아이와 집사람을 보시고는 미소로 반기셨습니다.
'이셀(집사람 이름입니다)아 이제 아버지도 행복하다.
언젠가 너의 친정 식구들에게 한번 가마.
이제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이 행복한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면 된단다.'
그때서야 마음에 남아있던 걱정이 사라졌는지
서툰 한국어로 '아버님 감사합니다.' 라며
환하게 웃던 집사람의 얼굴을 잊을 수 없네요.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우리보다 어려운건
낯선 땅에 사랑을 찾아 일을 찾아 온
그들이 아닐까요?
우리가 먼저 인사해봐요
베트남 - 씬 짜오(Xin chao)
필리핀 - 쿠무스따 까(kumusta ka)
몽골 - 센 베노(Сайн байна уу)
태국 - 사왓디(sawat dii)
- 인사말 외우기 숙제 꼭 하세요! -)
中 진학포기 후 막노동 전전… "어려움은 새로운 도약의 자극제"
(엉덩이로 공부한 '박영립' 변호사
“성공의 결과는 습관의 산물” 화장실·배달 갈 때도 책 놓지 않아 중·고교 과정 2년 만에 끝내)
박영립(55·사진) 변호사는 눈물겨운 공부 경험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노동판, 여관 조수, 버스승객 계수원,
전선회사 임시직공, 양복점 기술자로 전전했다.
스무 살이 돼서야 검정고시에 도전,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현재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소록도 한센병 환자,
성매매 피해여성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은 이들을 돕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패배의식이 인생의 제일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했다는 핸디캡이 오히려 제겐 축복이라 생각했지요."
□ 공부, 공부, 공부… 20살에 중등 검정고시 도전
전남 담양 조그만 산골에서 태어난 박 변호사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형편이 나빠 진학을 포기했다.
“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며 가슴 속 응어리가 지고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그해 광주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 사환으로 객지 생활을 시작했지만 형편은 더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이듬해 담양 대바구니 장꾼들을 따라 무작정 상경했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서울행 완행열차를 타고 새벽녘 노량진역에 도착했지요.
금의환향을 꿈꾸며 상경했지만 현실은 그악했습니다.
마음 속으로 ‘죽어도 고향에 못 내려 간다’고 다짐하며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지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한답시고 남대문시장, 서울역 부근 일대를 돌아다녀도 헛수고인 날이 많았다.
양복기술을 배우고 싶어 양복점 시다로 취직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노동판, 신문보급소, 분식점 배달원, 동대문시장 이불집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중학교 졸업장만 있어도 번듯한 직장에 이력서도 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날 노점에서 파는 책을 사서 읽다가 그 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에 대한 글을 읽게 됐지요.
이런 말이 나왔어요.
‘ 부자가 되려면 세(貰)를 살더라도 부자 동네에 살아라. 부자의 생활방식을 따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부자 따라하기’가 부자가 되는 비결이라는 구절을 읽은 뒤
박 변호사는 이불집 주인아저씨를 벤치마킹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동대문 상인들이 제일 질겁(?)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세무서 직원이었다.
세무서에서 누가 나왔다고 하면 돈 많은 상인들도 허리 굽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일하던 이불집 주인만은 달랐다.
중국 텐진상고(商高) 출신인 주인은 장부를 허투루 작성하지 않아 세무서 직원을 겁내지 않았던 것이다.
“주인아저씨를 보고 경리학원에 다녀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경리를 잘하면 성공 할 수 있겠구나’생각하며 경리학원을 알아보고 다녔어요.
그러다 검정고시 학원광고를 보게 됐지요. 광고 문구에는‘9개월 단기 완성’이라 적혀있었어요.
‘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지금 아니면 영영 공부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어머니께 말씀드렸죠.
‘ 9개월이면 됩니다. 중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하늘이라도 훨훨 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승낙을 얻어냈지요.”
당시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8년, 동창들은 이미 대학교 2학년이었다.
늦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 것도 안될 것 같아’미친 듯이 공부했다.
방정식을푸는데‘꼬부랑 글자’인 x, y도 몰랐지만 무조건 외웠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꿈과 희망이 있으면 행동이 나오고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자리잡게 됩니다.
모든 성공의 결과는 습관의 산물입니다.
꿈과 비전을 갖고 무언가를 이뤄내려는 행동이 습관화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박 변호사는 1973년 7월 중학교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천만다행으로 전국 최고 득점이었다. 덕분에 고등학교 과정은 학원에서 수업료를 면제해 줬다.
이듬해 고등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남들이 6년 걸려배우는 중·고교 과정을 2년 만에 뚝딱 끝낸 것이다.
“공부비결은 절박함이었어요.
집에서 도움을 전혀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에‘이 공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밤 10시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방구석에다 밥상을 펴놓고 공부했어요.
사법시험 준비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화장실 갈 때나 물건을 배달할 때, 점포 손님이 없는 잠깐 동안에도 책을 놓지 않았어요.”
□ “못 배우고 가난하다는 핸디캡이 오히려 축복”
박 변호사는“중졸 졸업장만 있으면 남들처럼 어깨 펴고 살 수 있겠다” 고 생각했지만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대학까지 도전하게 됐다.
당시 전기 대학이었던 고려대 상대에 응시했다. 하지만 낙방, 후기였던 숭실대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사실이 믿기질 않아 대학 교복을 맞춰 입고 다녔다.
전공을 법학과로 택하고 2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지금 중도포기하면 다시는 공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극이 저를 일으켰던 것 같아요.
‘ 궁하면 통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은 어제보다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란 믿음을 마음 속에 새겼지요.”
‘처음 중학교 과정을 도전할 때 다른 친구들보다 8년이나 늦었지 않았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하자’ 고 다짐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던1980년 사범시험 1차에 합격한 뒤 이듬해 2차에 합격했다.
“다른 사람들의‘고시 합격기’를 읽어보니 하루 10시간씩 3년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하루 15시간씩 3년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일기장에 하루 15시간을 공부하면 ‘○’, 공부량의 80%를 채우면‘△’, 50% 정도면‘×’를 썼지요.
처음엔 세모와 가위표가 많았지만 점점 동그라미가 많아지기 시작했지요.
작은 목표를 세워 하루하루 성취감을 높였습니다.”
박 변호사는 기계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했다.
“슬럼프니 매너리즘이니 하는 것은 만족할 만큼 공부를 못해서 오는 불안과 초조” 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무리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보내고 일주일에 한나절쯤 쉬어 몸의 피로를 극복했다.
“공부가 잘 된다고 밤늦게까지 하면 다음날 영향을 미쳐 습관처럼 규칙적인 공부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꿈에 그리던 변호사가 됐지만 정작 변호사가 된 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을 맡아 구금시설 실태조사를 실시해 구치소, 유치장의 시설개선을 이끌었다.
대한변협 인권위원장이 된 뒤에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과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위한 소송을 맡기도 했다.
“인생은 마라톤입니다.
때를 놓쳤다면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만회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못 배우고 가난하다는 핸디캡이 제겐 축복이었던 것 같아요.”
"雜談-/유모?"
1. 말의 차이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
밀가루는 봉지에넣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넣는다
봉지는 비닐로 만들고 봉다리는 비니루로 만든다
비닐은 가위로 자르고 비니루는 가새로 자른다
가위는 엄마가스고 가새는 엄니가슨다
2. 세노인
첫째노인 계단오르다 쉬였다, 내가오르다가 쉬였나 ,래려 오 다 가 쉬였나 헛가린다
둘째노인 침대위에 앉잣다, 내가 자다가이러났나 잘려고 앉잤 나 헛가린다
셋째노인 버스에서내렸다 내가 뼈스타려왔나 버스에서 내렸나 헛가린다
3. 유명정치인
티부이 기자회견때 나는 야한 여자만 좋아한다 는말을해 집가서 마누라에게 혼났다.
나는 야 한여자만 좋아한다 즉 당신만 좋아한다는 죄밖에 없는대 왜그래 했다.
4. 망사 지갑
한여자가 요즘 유행하는 망사옷 망사백등을 갖고싶어 밤에 남편에게 코소리내며
여보 나 망사지갑갖고 싶어 하나사조오 했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