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강하다 갈대라고 읊조리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나 느낌이 떠오르는지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유명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천재 수학자이며 철학자이면서도 깊이 하느님을 체험했던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수증기 한 방울로도 죽을 수 있을 정도로 갈대처럼 연약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저는 파스칼이 억새를 갈대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억새를 갈대로 잘못 알고 있거든요. 억새는 산, 들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갈대는 주로 강가나 냇가의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로 억새보다 더 굵고 강하고 억세답니다. 양자는 모두 줄기가 속이 비어 있고 마디식물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주는 이미지는 많이 다르답니다. 저는 순천만에서 갈대숲을 보고 갈대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지니게 되었습니다. 갈대는 남쪽 더운 지방에서 뿐만 아니라 북극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의 어디에서나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호수나 습지, 개울가를 따라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억새와는 달리 비교적 잎이 넓은 풀로 키는 1.5에서 무려 5m가 넘기도 할 정도로 크게 자라며 깃털 모양의 꽃이 무리지어 피며 줄기는 곧고 매끈합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갈대의 모습은 전혀 약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차영섭이라는 시인은 ‘갈대는 물처럼 강하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시를 썼고요. 소설가 정찬주 선생님은 “흙을 움켜쥔 대의 발톱 같은 갈대의 뿌리를 보면 힘찬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겉만 보면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에 약한 식물이라는 이미지를 주지만 저는 갈대가 약하다는 편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갈대의 강한 모성애를 알게 된 까닭입니다. 갈대가 여름까지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속에서 새로 자라나는 새끼 갈대가 바람에 깔리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다리며 지켜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새끼 갈대가 이제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바람에 몸을 뉘인다고 합니다. 이런 강한 모성애를 지닌 갈대를 누가 약하다고 하리오? 오랫동안 갈대줄기는 지붕을 이는 재료나 건축 재료로, 또 바구니 세공, 화살, 펜, 악기 등의 재료로 이용돼 왔다고 합니다. 갈대에 많이 함유된 셀룰로오스를 얻으려고 수확하기도 하는데, 편리하고 갑싼 플라스틱 제품들이 많이 나오면서 갈대를 수확하는 것이 경제수지가 맞지 않아, 오히려 순천만과 같은 대규모의 갈대밭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갈대는 다년생초로,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많은 수염뿌리가 난다고 합니다. 꽃은 9월에 피기 시작하고, 수꽃에는 털이 있고 긴 까끄라기도 있어 가을 물가에서 날리는 갈대 이삭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것이지요. 갈대는 토질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중금속과 같은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곳에 갈대를 심어 오염물질을 제거하기도 한답니다. 모네는 한 장면을 다른 계절, 다른 시간대에 걸쳐 시리즈로 작품을 그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저도 흉내를 내어 시리즈로 사진을 올립니다. 그리고 제가 갈대숲에서 낭송한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다시 읊조립니다.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어지는 시는 새로 발견한 시입니다. 갈대꽃 - 차수경 탱탱한 삶의 중력을 불협화음 하나 없이 가르는 갈대꽃 무리를 본다 유랑극단 곡예사처럼 간드러지게 휘는 허리를 타고 초저녁 달빛이 흐른다 갈바람 쉼 없이 현을 켜는 밤새들의 무리가 사정거리 안에 깰 줄 모르고 잠들어 있다 가을의 끝자락에 피워 낸 가난도 아름다운 꽃! 한적한 강 구석에 군락을 이룬 저 빛나는 자유 늙은 갈대의 독백 - 백석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섦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밤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는 이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작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갈대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갈대 - 정호승 내가 아직도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 물결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는 강변에 사는 것은 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하다는 것을 죽은 새들의 정다운 울음소리 들으며 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 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것이었나니 내가 아직도 바람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이 햇살에 빛나기 때문이다 |
첫댓글 아, 그때, 그랬지요. 사진도 찍 글도 쓰고... 감사해요.
네 신부님. 건강을 회복하시어 다시 사진을 찍으시어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