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을 지나며
정 일 남
폐석장 언저리에 서면 옛 기억이 새롭다
해바라기와 친해보지 못하고 어둠에 사로잡힌 두더지들
몸 생각지 않고 석탄을 캐던 열성들
이제 알겠다, 역사는 석탄의 페이지를 접었다는 것을
싸늘한 낮달처럼 폐광에 바람이 스산하다
밤낮으로 오가던 운반 트럭 보이지 않고
불도저로 밀어내던 저탄장은 양돈장으로 변했다
흑인 얼굴 흡사한 적재부들
쉴 새 없이 삽질하던 근육들
간혹 객차에 손 흔들어 주던 익살도 있었지
막장으로 향하기 전에 갱목에 걸터앉아
담배 피워 물던 광부들의 무표정들
그들은 감독 지시에 일사분란 했던 순응주의자들이었다
석탄의 전성기엔 벌집처럼 붐볐지
그 순응주의자들 상한 폐를 안고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어느 길을 가며 무슨 익명으로 말라 가고 있을 것이다
내 전성기도 막장에 갇혀 생사를 넘나들었지
역전 주점에서 돼지비계 놓고 석탄과 시(詩)를 얘기하며
인생의 미래를 응시하던 동료는 이제 지상에는 없다
까마귀 고기 먹은 듯 기억이 멀어지는군
산자의 눈에서 썩은 물이 떨어진다
갱이 무너지던 그날의 아우성
내 한사코 감옥의 저 갱구를 사랑하리라
생명을 바친 광부를 사랑했던 것처럼
빛바랜 광부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스쳐간 날의 추억뿐이다. 그 어두운 석탄의 광휘를 아꼈던 정신의 만남을 다시 떠올려보는 것이다. 6,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경제의 일익을 담당했던 광부들은 이제 다 흩어졌다. 밤낮으로 흥청거리던 태백 탄전지대는 찬바람만 감돈다. 산업전사로 불렸던 광부들은 폐광이 되면서 뿔뿔이 떠나갔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 했다. 망가진 폐를 안고 어찌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도시로 스며들었다. 갱 막장에서 요행히 살아남은 광부들은 대도시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다시 일하기도 했다. 서울시민들이 다 연탄으로 겨울을 견딜 때 광부들의 값어치는 주가가 높았다. 이 무렵에 나도 광부가 되어 갱 속에서 석탄을 캐며 색다른 체험을 했다. 학창시절 나는 광산이 전공이었다. 그러나 탄광에 입사해 처음 3년간을 말단 광부로 석탄을 캐야 했다. 그 색다른 세계를 체험한 것이 내 유일한 재산이다. 막장을 소재로 시를 써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때는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광부 시인의 빛은 오래가지 못 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연탄은 밀려나고 유류나 가스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시는 폐광으로 쓸쓸한 태백지역을 지나다가 옛 추억이 떠올라 써본 시다. 저 폐광의 언저리를 보면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죽은 많은 동료들을 생각하면 죄책감마저 든다. 언제 갱이 붕락되어 변을 당할지 모르는 갱 생활을 떠올렸다. 광부들은 늘 불안감에 술에 취해 살았다. “아들과 연인”을 쓴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아버지도 광부였다. 그는 술주정뱅이고 방탕한 생활로 교양 있는 어머니와 늘 불화가 잦았다고 한다. 그 원인이 언제 막장에서 매몰되어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직업에 대한 허무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 고흐가 벨기에 탄광 지역 보리나주를 찾아가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위로를 주었고, 그의 초기작 “감자를 먹는 광부 가족”이란 명작을 남긴 것도 광부들의 위태롭고 불안한 직업에 대한 애착에 기인한 것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광부는 해바라기와 친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늘을 두 껍질 쓴 광부들. 이제 그들은 늙었다. 그들은 살아있다 해도 진폐 환자로 괴로움을 겪고 있다. 진폐는 갱내에서 미세 탄가루를 오랫동안 마셔 폐를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그들은 서울의 면목동 녹색병원이나 안산의 중앙병원에 입원해 요양하고 있다. 이들 병원이 진폐 전문병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진폐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약이 아직은 없다. 그저 합병증이 없기를 바라며 요양하다 때 되면 떠나는 것이다. 하루빨리 완치할 수 있는 치료약이 생겨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젊은 이립의 시절. 철암역전 단골 술집에서 돼지비계 놓고 같이 소주를 마시던 친구가 떠오른다. 목돈을 잡아 남들처럼 잘 살아보겠다고 했으나 막장 붕락사고로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어찌 그 친구 하나 뿐이겠는가. 너무도 많은 동료들이 갔다. 우린 밤새워 염을 했고, 상여를 메고 언덕을 올랐다. 황천으로 날려 보냈다. 젊은 미망인들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추석이 되면 공동묘지에서 더러 만날 수 있었으나 이젠 성묘에도 오지 않는다. 그 사연을 누가 알 것인가. 이제 광부들의 무덤을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막장으로 향하기 전에 갱목에 앉아 담배 피워 물던 그 무표정의 얼굴들이 아득히 멀어진다.(끝)
2014년 ‘시에티카’ 상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