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 시 반의 충남 태안 안흥항 >
무슨 부귀영화를 볼 거라고 비 오는 날에 배낚시를 갔는지 모르겠다. 노가다도 그런 생노가다가 없었다. 비옷을 입긴 했지만 1 시간도 채 안 돼 속옷까지 푹 젖어버렸다. 그 상태에서 낚시질과 고패질을 쉼 없이 반복했는데, 입질도 없는 고패질… 비는 오지… 바람은 불지… 옷은 속옷까지 축축하지… 춥지… 배는 요동치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낚시한다는 게 그렇게 고된 노동인 줄 몰랐다. 나중에는 몸이 으슬으슬 떨려서 낚시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 속옷까지 싹 갈아입었다. 여벌의 옷을 가져갔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자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아~ 뽀송뽀송해~
오늘 낚시 끝!
그런데 시계를 보니 오전 10 시 반이네? 이런… 오후 5 시는 돼야 포구로 돌아갈 텐데 그 때까지 뭐하지? 죽었다. 하긴 새벽 3 시 반에 기상해서, 4 시에 숙소를 떠났고, 안흥항에서 아침을 먹은 후 곧장 바다로 나왔으니 한 7 시쯤에는 이미 바닷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겠다. 비가 많이 와서 몸이 힘든 만큼 시간이 더디게 갔고, 그래서 점심 때가 지났겠거니 하며 하루 과업을 쫑냈는데 그게 겨우 오전 10 시 반이라니……. 쪽 팔린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비 오는 날에 이러고 있는지…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나와 비슷한 상태의 3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밖에서 열심히 낚시질 중이었다. 역시 진정 꾼들이시다. 나는 남아 있는 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잠을 청했다. 지난 밤에 함께 잔 사람들 중에 두 명이 코골이 전쟁을 벌였는데 그 때문에 기상했을 때 피곤함이 배로 쌓여 있었다. 한숨도 못 잔 것 같고, 귀가 멍멍했다.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남이 잡아 놓은 우럭으로 자연산 회맛 좀 보고, 매운탕과 함께 점심밥을 한 술 떴다.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 마른 옷으로 싹 갈아입었기에 차양 아래로만 맴돌며 낚시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줬다. 꽤 큰 놈을 잡으신 분도 있었다. 잡아 놓은 우럭, 광어, 볼락을 보니 욕심이 생겨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비바람+추위’에 굴복한 몇 명이 선실 안으로 전사해 들어가면서 그대로 놔둔 좋은 낚싯대가 몇 대 있었다. 더 이상 갈아입을 옷이 없기에 웬만하면 낚시를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한 마리는 건지자는 욕심에 낚싯대를 잡았다. 아까 벗어둔 푹~ 젖은 옷으로 다시 갈아입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죽기보다 싫었고, 대신 비옷을 완벽하게 여며 입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입질은 없었다. 두 번째까지 그렇게 허탕만 치다가 세 번째 장소에서 드디어 입질이 왔다. 퍼드득~ 하는 손맛이 60 m 쯤 드리워진 낚싯줄을 타고 전달돼 왔다. 조심조심 끌어올려 낚은 꽤 큰 우럭 한 마리! 이게 이 날 내가 낚은 전부다. 그리고 옷은 다시 푹 젖어 있었다. 어디로 들이쳤는지 모르겠지만 속옷까지 다시 푹 젖은 상태였다. 흑흑흑, 우럭 한 마리 때문에 그 뒤로 몇 시간 동안 나는 100% 젖은 상태로 낚시질하고, 고패질하고, 사진 찍고, 섬 구경하고, 선실에 들어가 몸 녹이기를 반복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그 때 생각에 몸이 으스스 떨린다. 머리는 고통을 잊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나 보다. 그래도 그렇게 낚싯대를 잡는 바람에 내가 잡은 우럭 한 마리와 다른 분이 잡았다가 버린 삼식이 한 마리를 챙겨올 수 있었다.
< 이렇게 몸을 녹였다. 너무 불쌍했다 >
< 버려 놓은 것을 내가 냉큼 주워온 그 삼식이 >
< 내 장바구니... 우럭과 삼식이. 저래 보여도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다 >
비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기도 쉽지 않았다. 선상낚시를 나가면 고기잡이가 5 분의 4 고 나머지 5 분의 1 은 섬 풍경 감상이었는데 비가 와서 그것도 영 꽝이었다. 부두로 돌아와서 횟집에다 손질을 부탁했다.
나 : “아주머니, 이거 회 좀 떠주세요.”
횟집아주머니 : “안 돼요.”
회를 떠서 김밥 도시락통 같은 데 담아서 주는데 한 통에 3,000 원이란다. 그런데 내가 잡은 우럭과 삼식이로는 한 통도 안 나오기 때문에 안 된단다.
“(삼식이를 가리키며)이것도 있는데 안 돼요?”
삼식이는 회를 안 떠준단다… 흑흑흑… 전에 아산만에 갔을 때는 일부러라도 사먹은 회가 삼식이회였는데……. 다행히 나와 비슷한 경우로 손질을 못 하고 계신 분이 있어서 둘이 잡은 걸 합쳐서 손질을 부탁했다. 그리고 사정해서 두 군데로 나눠 담았다. 게다가 그 분이 잡은 것 중에 회를 뜰 수 없는 잔챙이들은 모두 내 차지였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날 내가 집에 들고 온 것은 우럭회 조금과 매운탕용 우럭 뼈 두 마리 분과 삼식이 큰 놈과 잔챙이들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선상낚시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한 사람당 뱃삯이 7 ~ 8 만원이었고, 여기에 바늘, 추, 줄 등까지 하면 최소한 10 만원은 들었는데 그걸로 회를 사먹었으면 배 터지도록 먹고도 남았겠다. 몇 년 전만 해도 뱃삯이 4 ~ 5 만원이었는데 너무 비싸졌다.
집에 오자마자 씻지 않고 회부터 먹었다. 초장과 함께 먹는데 우와~ 어찌나 맛있던지. 자연산과 양식은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싱싱하냐 안 싱싱하냐 정도는 구분할 수 있기에 입 안이 화사했다. 한 점 한 점 아껴 먹어도 절대 잃을 게 없는 회 만찬이었다. 식탁 앞에 앉아 있는 회 못 먹는 은영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눈만 깜빡이고 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회 못 먹는 은영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회를 못 먹기에 사랑스러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은영이가 매운탕을 끓여 주겠단다.
“은영아, 참으면 안 될까?”
생전 처음 끓여 보는 매운탕이지만 어떻게 해보겠단다.
“은영아, 우리 그냥 얼려 놨다가 어머니께 해달라고 하자.”
안 된단다. 이씨… 아까운 초자연산 금방 죽은 놈들의 매운탕을 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야! 우리 그냥 냉동실에 넣자, 응?”
끝까지 안 된단다. 이 생뚱맞은 똥고집은 또 뭐야? 너한테도 이런 똥고집이 있었어?
그 날 결국 은영이는 매운탕을 끓였다.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문구처럼,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매운탕 아닌 매운탕이 되기 전에 얼른 한 장 >
첫댓글 ㅋㅋㅋ 바다낚시 후기 잘 읽었어요~~ ^^ 매운탕 맛은 어땠어요?
묻지 마세요... 솔직히 얘기하기도 그렇고 솔직하지 않게 얘기하기도 그렇고... 꼬양님, 우리 덮읍시다.
비는 오지 허릿띠는 안풀리지 오줌은 마렵지 애는 잔등에서 울지 뒤에서 쏴데지.......미친다 미쳐 우리 쌤 너무 불쌍타 우리집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 ?! 세상에 10만원만 드렸나 차비에 시간에 에라이...... 그리고 고기 이름도 제대로 몰라요 우럭 = 조피볼락, 삼식이 = 삼세기 ㅋㅋㅋㅋㅋㅋ ... 그리고 회는 원래 약간의 숙성을 거쳐야 제맛이 나는데 그저 싱싱한맛에....그러니 뱃삯 오르고 자연산 비싸고 - ! 그런데 가고 싶으면 참았다 쌤이랑 고궁이나 인사동, 아님 대공원 뭐 이런델 가면 사랑 받잖여 ㅍㅎㅎㅎㅎ
진작 좀 가르쳐 주시지... 진짜 남는 게 없는 장사였습니다...
그래도 한마리는 건져서 다행..ㅎㅎ 나는 지금까지 바다낚시에서는 한마리도 못 잡았는데... 삼식이가 생긴건 괴물같아도 맛은 있는것이라 매운탕보니 침 넘어가네...ㅎㅎ
다음 번부터는 가는 걸 한 번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안 가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아요... 손맛은 무슨 손맛이요... 다 뻥인 것 같애... 저 매운탕... 끓인 결과를 올려드려야 되는데... 벌써 반을 먹어버려서 그러지를 못 하겠네요...
배멀미가 무척 심한편이라 선상낚시를 하고싶어도 못간다는..ㅡㅡ 사진만 보고있는데 멀미가 날러구해요.. 근데 직접잡아서 매운탕도 싱싱한 회도 먹어 보고싶긴해요..
삼식이 무섭게 생겼는데요.. 후덜덜..
맛도 없어요
삼세기, 매운탕으로 죽이는건데요? 양은 솥에 걸고 장작 때가며 미꾸리, 중태 민물 끓이듯 끓이고 국수 넣어 푹~ 끓이면 묻지마털랭이!....아우~! 그거면 소주 한짝도 문제 없는데 ㅎㅎㅎ..아구 배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