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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圓佛敎]
박중빈은 그의 나이 26세에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하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개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정전 正典≫, 〈개교의 동기〉).
원불교 교명에 대하여 제2대 종법사인 송규(宋奎)는 “원(圓)이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만유가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萬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가지로 말은 달리하나 그 실(實)에 있어서는 원(圓) 이외에는 다시 한 법(法)도 없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불(佛)은 곧 깨닫는다(覺)는 말씀이요 또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원의 진리’가 아무리 원만하여 만법을 다 포함하였다 할지라도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다만 이는 빈 이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圓佛) 두 글자는 각자 마음에서 근본적 진리를 깨친 바탕 위에서 나타낸 것이므로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가 있다.”라고 말하였다.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이다. 그러나 외면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는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면에서도 종래의 사찰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나, 교단은 기존 불교의 분파적 입장이 아니다. 창조·모방·개혁을 시도하는 새로운 교단으로 볼 수 있다.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로 삼아 새 종교를 주창하였는데, 그가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 즉 법신불(法身佛)사상을 주체로 하고,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시대화란 어느 시대에 처하든지 불법을 그 시대에 맞게 구현하자는 것을 말한다. 시대적 변화에 잘 동화하면서도 높은 차원으로 사람들을 지도해나갈 수 있도록 불법을 응용하자는 뜻이다. 생활화란 생활 속에서 불법(佛法)을 찾고 깨달아서 그 불법으로 새 생활을 개척해 나가자는 것이다.
대중화란 민중화, 서민화 또는 시민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수한 계층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누구나 다 같이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국한 없이 불법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는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표방하고 있다. 다른 기성종교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 발생된 종교로서 후천개벽의 이념과 그 맥(脈)을 같이하고 있다.
최제우(崔濟愚)·강일순(姜一淳) 이후 또 하나의 민중종교를 탄생시킨 소태산은, 앞으로의 세계는 동방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가며, 특히 우리 나라가 그 중심국가가 될 것을 예견하였다.
‘정신의 지도국’·‘도덕의 부모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 보편윤리에 입각한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는 다만 불교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기성종교에 대하여 새종교의 출범이라 말할 수 있다.
소태산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에 우주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일으켰고, 9세 되던 해에는 인간만사에까지 큰 의심을 일으켰다. 이를 해결해보려고 산신과 도사를 찾기도 하였으며, 극진한 공을 드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기도와 고행을 15년 동안 행하였다.
15세에 양씨(梁氏)와 혼인하여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계속하여 의문나는 일에 몰두하였다. 부모의 후원으로 가정을 겨우 지탱하여오다가 20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생활고는 더욱 심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장차 이 일을 어찌할고.” 하는 탄식과 더불어 오직 의심뿐 모든 것을 갑자기 다 잊어버리는 지경(頓忘狀態)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온몸에 부스럼이 나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자랄 대로 자라 동네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험상궂게 변해 갔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완전한 폐인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던 중 1916년 4월 28일 이른 아침, 문득 생각이 밝아지면서 온몸이 상쾌하여지고 모든 의심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의 대각의 경지였다.
소태산은 그때의 깨달음의 경지를 “만유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말하였다(대종경 서품 1장).
소태산은 우주 자연현상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은 그 순간 인간사 변혁도 절실하게 요청 받았다. 다가오는 세상의 인간화작업이 시급함을 느끼고 새 도덕의 확립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開敎標語)를 내걸고 정신개벽의 기치를 쳐들었다.
소태산은 그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지 아니하고 구도(求道)하였으며 그곳에서 도를 이루었다. 또한 그가 창교이념을 실현한 곳도 고향이었다.
그는 1917년 고향에서 뜻 있는 동지들을 모아 저축조합을 조직하여, 근검절약과 허례폐지, 금주·금연과 숯장사라는 제1차 시련으로 경제적 기초를 세우고, 1918년 3월에는 조상 대대로 버려 둔 해변의 갯벌에 자력으로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시작하여 제2차 시련을 감행하여 1년만에 2만 6000평의 옥답을 개간하였다.
그 당시 쓰러져 가는 한민족 국가 사회에 생산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원불교의 창립정신은 공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함이었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일심합력으로 나아가면 장차 어떠한 큰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소태산은 제2차 시련을 거친 제자들을 이끌고 새로운 회상(會上) 창립을 위하여 제3차 시련에 들어갔다. 소태산은 8인의 제자들을 이끌고 산상기도에 들어갔다.그 해 8월 20일 마침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異蹟)이 나타났다. 기도를 마칠 무렵, 흰 종이에 맨손으로 인장을 찍자 혈인이 나타난 사건이다.
소태산은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참뜻이 법계(法界)의 인증을 받았으니 만사는 이로부터 비롯되었도다.”라고 말하며, 이 백지혈인의 기적은 진리로부터 새 회상의 창립을 인가 받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소태산은 방언공사와 산상기도를 통하여 교단창립의 기초를 다진 것이었으며, 소태산과 그의 제자들은 그의 탄생지인 길룡리를 토대로 또 다시 회상 공개의 준비에 들어갔다. 도와 학이 겸비된 수제자 송규(宋奎)를 얻은 후 교법의 틀을 짜 갔다.
한편 1924년 4월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원불교중앙총부)에 총부를 건설하려고,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열었다. 여기에서도 그는 제자들과 6만여 평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한편, 주경야독의 생활로 오늘의 원불교 터전을 닦아나갔다. 이 과정이야말로 원불교 창립의 제4차 시련이었다.
소태산은 당시 모여든 인재들을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하여 훈련, 육성시켰다. 낮에는 농업부에서 개간과 생산의욕에 불타게 하고, 밤에는 소태산의 직접 설교와 훈도로 새 회상 건설의 희망에 부풀게 하였다. 여기에서 바로 소태산이 실현하려고 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된 것이다.
동정일여(動靜一如)·영육쌍전(靈肉雙全)·이사병행(理事竝行)의 실천이기도 하였다. 원불교의 이러한 개척정신과 훈련방식은,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면 그 누구나 근면하고 성실한 지도자가 되도록 한 것이었다.
1926년에는 민중의 생활의식을 개혁할 방침으로 신정의례준칙(新定儀禮準則)을 발표하고, 종래의 생활의식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사상을 널리 선양하였다. 1935년에는 산업기관으로 약업사 보화당(普和堂)을 개설하고, 교역자의 손으로 이를 운영하게 함으로써 생산성 있는 종교, 자력생활하는 종교의 터전을 닦아나갔다.
1940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수계리에 대농장을 건설하였다. 이는 원불교 창립의 제5차 시련 작업이었다. 과수원과 축산업을 겸한 새로운 영농방식에 착수하여, 명실공히 산업종교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소태산은 교단의 사업목표를 교화·교육·자선에 두고, 차츰 이를 추진해나갈 기관을 확장해나간 것이다. 〈원불교〉란 교명은 해방을 맞이하고 소태산의 유시에 의하여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가 개칭한 것이었으며, 1947년 4월에 재단법인 원불교의 등록을 필한 후 공포되었다.
소태산은 그가 깨달은 진리를 ‘○’으로 그려 상징하고, 이는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우주만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밝혔다. 원불교의 교리는 이 일원상의 진리를 최고 종지로 하였다. 곧 일원상의 진리는 만사만리(萬事萬理)의 근원이요, 만생령을 움직이는 생성력(生成力)이라고 본 것이다.
이 진리를 근거로 하여 소태산은 사은사요(四恩四要)의 신앙문(信仰門)과 삼학팔조(三學八條)의 수행문(修行門)을 열게 된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존재를 서로 가능하게 하는 이법(理法)과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이 ‘없어서는 살 수 없는 힘’의 관계를 ‘은(恩)’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이 큰 은혜를 자각하고 항상 감사(感謝)·보은(報恩)한다면, 진리의 위력을 얻게 되고 자신은 언제나 상생상화(相生相和)의 기운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은혜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사은(四恩)이라 하였는데, 천지은(天地恩)·부모은(父母恩)·동포은(同胞恩)·법률은(法律恩)이 그것이다.
이 사은에 보답하는 것을 밝힌 것이 신앙문이다. 또한 원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일원상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어서 그릇됨도 없고, 요란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다. 그렇지만 이 본래의 마음이 경계에 끌려 욕심을 일으키게 되어, 사람들이 이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수양하고, 사리(事理)를 연구하고, 작업을 취사하는 태도로써 끊임없이 수행해 나아가면 일원상과 같이 원만하고 거짓 없는 본래 마음을 회복하고, 그 마음을 활용하면 한없는 은혜와 위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길을 밝힌 것이 수행문이다.
이 밖에 신앙문에 있어서는 자력양성(自力養性)·지자본위(智者本位)·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 등 사회개조에 임해야 한다. 이 네 가지 실천요목을 사요(四要)라 이르고, 사은과 사요를 합하여 인생의 요도(要道)라 하였다.
수행문에 있어서는 신(信)·분(忿)·의(疑)·성(誠)의 조목을 추진해야할 네 가지 조목(進行四條)이라 하며, 불신·탐욕·나(懶)·우(愚)의 조목을 버려야할 4가지 조목(捨捐四條)이라 이르고, 이 둘을 합하여 8조라 하였다.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3학과 이 8조를 합하여 인생으로 꼭 수련하여야 할 공부의 요도로 정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우주만유가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으로 얽혀 있으니, 인간은 1분1각도 이 은혜에서 떠날 수 없음을 알아 곳곳이 부처(處處佛像)요, 일일이 불공(事事佛供)하는 생활로 세상만사를 처리해 가자는 것이다.
또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법신불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선(禪)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無時禪 無處禪), 수양·연구·취사의 삼대력(三大力)을 길러나가자는 것이다. 전자의 사회적 실현이 곧 사요의 실천이며, 후자의 추진요소가 8조목이다.
이러한 신앙과 수행을 통하여, 인간은 마침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법신불일원상과 계합(契合)하여 스스로 부처를 이루고, 나아가 제생의세(濟生醫世)의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원불교 경전은 9종 교서 및 그 밖의 교서로 나누어져 있다.
9종 교서는 ≪정전 正典≫·≪대종경 大宗經≫·≪불조요경 佛祖要經≫·≪원불교예전 圓佛敎禮典≫·≪성가 聖歌≫·≪정산종사법어 鼎山宗師法語≫·≪세전 世典≫·≪원불교교사≫·≪원불교교헌≫을 말한다.
이 중 ≪정전≫과 ≪대종경≫은 원불교의 기본경전으로 ≪정전≫은 소태산이 원불교 교리의 강령을 밝힌 원경(元經)이며, 제일경전(第一經典)이라고도 한다. ≪대종경≫은 소태산 일대의 언행록인 통경(通經)으로 총 15품 547장으로 되어 있다.
≪불조요경≫은 원불교의 보조경전으로서 원불교 사상과 관련이 깊은 불경과 조사(祖師)의 글을 선택·수록한 경으로, ≪금강경≫·≪반야심경≫·≪사십이장경≫·≪현자오복덕경 賢者五福德經≫·≪업보차별경 業報差別經≫·≪수심결 修心訣≫·≪목우십도송 牧牛十圖頌≫·≪휴휴암좌선문 休休庵坐禪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원불교예전≫은 개인·가정·교단에서 필요한 각종 예의규범을 수록하였다. ≪성가≫는 찬송·축원·전도의 성가집으로서 처음에 126장이 수록되었는데 계속하여 추가하고 있다. ≪정산종사법어≫는 정산종사(鼎山宗師, 宋奎)의 일대 언행록이며, ≪세전≫은 태교(胎敎)로부터 천도(遷度)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일세의 도리 강령이다.
≪원불교교사≫는 원불교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교단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계속 추가하고 있다. ≪원불교교헌≫은 원불교 교단의 기본 헌장으로 전문 10장 90조로 되어 있으며, 교단 운영의 기본방침과 제도 및 기구와 하는 일들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 또한 시의에 맞도록 절차에 따라 개편하고 있다.
원불교는 교단을 총괄하기 위하여 중앙총부를 두고, 종법사와 수위단회(首位團會)·중앙교의회(中央敎義會)·교정원(敎政院) 및 감찰원(監察院)을 두고 있다. 그리고 각 지방별로 국내 15개의 교구와 500여 개의 교당이 있으며, 해외에는 미주동부교구·미주서부교구·유럽교구·일본교구 등 4개 교구와 40여 개의 교당이 있다.
아울러 교육기관·훈련기관·문화기관·복지기관·의료기관·산업기관 및 기타 관련 단체를 두고 있다. 신도는 약 100만으로 집계된다. 종법사는 교단을 주재하고 대표하며 수위단회의 회장이 된다. 수위단회는 교단의 최고의결기구일 뿐만 아니라 소태산의 초기 교단조직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단치교’의 교단통치의 최고기구로서 역할되고 있다.
중앙교의회는 교단의 의결기관으로 재가·출가 교역자들의 대표가 모여 교헌개정 및 예산결산을 하는 기관이다. 교정원은 교단의 중앙집행기관으로 종법사의 명을 받아 집행각부와 산하 기관 재단을 통리 감독하며 현재 1실 7부로 되어 있다. 감찰원은 교단의 중앙감찰기관으로 종법사의 명을 받아 교단감찰 전반을 책임진다.
원불교의 교도란 광의로 원불교에 입교하여 원불교의 교지(敎旨)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며, 협의로는 연원에 의해 법명(法名)을 받고 4종의무(四種義務)를 이행하는 자를 일컫는다. 교도는 크게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로 구분된다.
출가교도는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하며, 일에 따라 교무(敎務), 도무(道務), 덕무(德務)로 나뉘어져 있다. 교무란 소정의 교육과정을 거쳐, 교무자격을 취득하고 교리강설 법요의식을 집행할 수 있으며 교화업무를 전담하거나, 교화와 연관된 교단의 일반업무를 맡아한다.
도무는 소정의 과정을 거쳐 도무자격을 취득하고, 교단의 교육, 행정, 자선, 연구, 기술 의료 등 전문분야에서 봉사한다. 덕무는 소정의 과정을 거쳐 덕무자격을 취득하고, 근로직에서 노무와 기능을 가지고 봉공하는 전무 출신이다.
소태산이 죽고 난 뒤, 종법사가 된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는 일제강점기 말엽 극심한 탄압을 받다가 광복이 되자 임시로 내걸었던 ‘불법연구회’라는 간판을 내리고, 이미 내정되었던 ‘원불교’ 교명을 붙였다. 정산은 전재동포구호사업·교육사업·한글보급운동 등을 건국 3대사업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서울·익산·전주·부산 등지에 구호부를 설치하여 해외에서 귀국하는 동포들을 맞아 안내·급식·방역 및 치료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친척과 가족을 잃고 방황하는 무의무탁한 동포들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서울 덕성여학교 자리에 학병귀국자를 모아 건국을 위한 사상강연회도 가지고, 1946년에는 유일학림(唯一學林:현 원광대학교 전신)을 개설하여 일제하에 실현하지 못하였던 교육사업을 개시하였다. 특히 국어교육의 시급함을 알고 각 지방의 교역자를 총부로 모이게 하여, 한글학자를 초빙하여 단기강습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단기 강습을 마친 교역자들이 각 지방에 돌아가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서게 하였다. 또한 정산은 해방 후 혼란기에 종교지도자의 처지에서 ≪건국론 建國論≫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는 ≪건국론≫을 통하여 정국안정의 지도강령을 밝히고 이를 실천하도록 각 방면에 지도하였다.
정산은 소태산의 대세계주의(大世界主義)의 뜻을 이어받아, 이를 우리 나라에서부터 실현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자 교단의 사업목표를 교화·교육·자선의 세 방면으로 다시 정비하였다.
그리하여 교육사업으로 1951년 종전의 유일학림 전문부를 개편하여 원광대학으로 만들고, 중등부는 원광남·녀중고등학교로 만들어 인가를 받았다. 1953년에는 특수한 훈련기관으로 동산선원(東山禪院)을 개설하고, 인재육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사회사업기관으로는 1945년 서울과 익산 총부내에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1950년에는 총부 구내에 요양원과 동화병원(東華病院)을 개원하였으며, 또 1952년에는 익산양로원을 세웠다. 1953년에는 총부 내에 있던 고아원을 익산 시내로 이전하여 운영하였는데, 전국을 통하여 모범적인 고아원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955년에는 익산시에 삼창공사(三昌公社)를 설립하고, 복숭아통조림 공장시설을 갖춤으로써 지역사회의 산업발전과 고용확대에 이바지하였다. 그 해 원불교의 발상지인 영광에 제2차 방언공사를 착공하여, 언답(堰沓)을 더욱 크게 늘렸다.
출판문화활동으로는 1951년에 원광사를 발족, 교단기관지 ≪원광 圓光≫을 편집·발간하였으며, 기타 교재 및 교양서적 등도 간행하였다. 1958년에는 교서편수기관(敎書編修機關)으로 정화사(正化社)를 발족시켜, 각종 교서의 편수를 완료하였다.
편술된 중요교서는 개정판 ≪정전≫·≪대종경≫·≪불조요경≫·≪원불교예전≫·≪성가≫·≪원불교교사≫ 등이다. 최근 교서편수위원회에서는 원불교 기본경전인 ≪정전≫·≪대종경≫·≪정산종사법어≫ 등을 영어·일어·중국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힌두어 등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산의 업적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매우 높게 평가되어야 할 몇 가지 작업이 있다. 첫째는 불법을 주체로 한 삼교회통사상을 삼교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서 구현하였다는 것이며, 둘째는 조국해방이 되면서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혼란상태를 잠재우기 위해 종교지도자의 입장에서 〈건국론〉을 집필하였다는 점이며, 셋째로 정산의 회갑식 기념 법설로서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선포하였다는 점이다.
이 삼동윤리는 정산이 1962년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자기 평생의 게송이라고 하여 이를 강조하고 열반에 들었다. 동원도리(同源道理)는 모든 종교와 각종각파의 교단들은 다 같은 한 근원임을 알아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들은 서로 문호를 열어놓고 성자혼이 무엇인가를 체험하면서 그 근본을 추구하여 다 같이 일원화(一圓化)의 도리를 펴자는 것이다. 동기연계(同氣連契)는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생령들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이나 민족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모두 생성의 한 기운으로 연하여 있으니, 다 같은 동포·형제임을 자각하고 금수초목까지도 이를 함부로 하지 말자는 것이다.
동척사업(同拓事業)이란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사업이나 주의·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 궁극목적은 모두 잘 살기 위해 개척하자는데 있으니, 이 뜻을 알아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다. 1962년 2월에 정산종사의 종통을 이어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1914∼1988)가 종법사로 취임하였다.
대산은 교조의 창조적 의지와 정산의 계승사업을 점철하여, 1963년에는 ‘개교반백년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켰다. 이 사업이 성취되자 교단이 내외적으로 알찬 실력을 갖추고, 세계를 향하여 봉공(奉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선사(先師)의 의지를 받들어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표어를 내걸고, 국내외의 교도 6만여 명이 모여 단합대회를 가졌다.
또한 대산은 1991년 교조 소태산대종사의 탄생백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를 개최하여 외국인 약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인류문명과 원불교사상〉이라는 주제를 걸고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대산은 소태산·정산의 뜻을 받들어 평소 주장해 오던 종교연합운동(U.R.M)을 국제적으로 발족시키는 행사도 가졌다.
이를 계기로 대산은 세계평화를 위한 삼대운동으로 심전계발, 공동시장개척, 종교연합운동 등을 제창하고 인간화 작업으로 각종 훈련을 강조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간 협력운동에 원불교가 앞장서도록 박차를 가해왔다. 1994년 11월 대산의 뒤를 이어 이광정(李廣淨, 호는 좌산 左山, 1936∼)이 종법사로 취임하였다.
좌산은 역대 종법사의 뜻을 계승하여 안으로 인재육성·체제정비·경제기반확립 등 내실을 통한 교단 각분야의 성숙을 이루고 밖으로 교화·교육·자선의 3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세계적 종교로서의 위상확립과 역할 수행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좌산은 세계교화의 한 단계를 열려는 작업으로 교헌을 개정하였다(제5차 개정).
교헌개정의 주요한 골자는 수위단회의 새로운 편성과 해외총부를 두고 이를 통해 세계교화로 나가는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또한 좌산은 취임 후 특별사업으로 원불교방송국인 원음방송국(圓音放送局)을 개국하였으며, 정산종사탄생백주년기념사업을 추진하여 정산종사 탄생지의 성역화와 정산종사의 삼동윤리 이념을 더욱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좌산은 1995년 9월 22일 UN본부에서 개최된 UN창설 50주년 기념 WCRP 주최 강연회에서 세계평화의 이념 구현을 위해 연설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UN의 NGO기구를 통해 21세기 인류보편윤리헌장(人類普遍倫理憲章) 편성에 삼동윤리 사상을 반영하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
원불교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지향하고 있는 창조적 특징을 크게 종교적인 특징과 사상적인 특징,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의 특징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종교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으로부터의 종교라는 점이다. 원불교는 불교의 불법(佛法)을 주체로 하고, 한국에서 나온 개혁종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그 내용 면으로 보면 국가적 종교나 민족적 종교에 한정되지 않는다.
종교가 절대적인 세계를 지향한다고는 하나, 그 종교가 발생한 지역에서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대중화·생활화의 길을 걷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는 한국에서 발생하였지만 조용한 가운데 변화를 시도하면서 인간의 의식구조를 전환시킴으로써 세계 인류에게 개명된 생활을 전개하도록 개혁하는 자세로 나가고 있다.
둘째,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의 신앙을 제창한 점이다. 소태산은 우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문자나 언어를 빌리기 전에 일원상(一圓相)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으로 상징된 진리 당체(當體)를 자타력 병진신앙체계로 형성한 것이다.
즉, 자력신앙이나 타력신앙의 어느 한 면에 기울어짐이 없이 원만한 신앙으로 조화롭게 추진시키도록 한 것이다. 셋째, 불법으로 교리체계를 세우고 이를 주축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을 시대화·생활화·대중화시키려 했다. 교조 소태산은 20여 년의 구도 끝에 대각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그 구도과정이나 출발점에서 어떠한 기성종교에 영향받은 바가 없었다. 대각의 내용을 통하여 볼 때, 궁극적 진리는 불타의 깨달음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소태산이 비록 불법에 변혁의 주체성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불교의 개혁만을 시도한 것이 아니며, 이를 기치로 종교혁명을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교단을 세움에 있어 종교가 그 시대, 그 생활, 그리고 모든 대중을 선도하는데 적합한 종교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넷째, 종교윤리(宗敎倫理)를 제기한 점이다. 종교윤리란 명일심 통만법(明一心通萬法)의 정신이다. 현대처럼 지역과 공간을 좁힌 상황에서 모든 종교가 횡적으로 서로 넘나들고, 하나 되는 일부터 하여야 된다고 본 것이다.
자기 종교의 교리에 국집되지 말고 타종교 및 타종교의 지도자들과 화해의 문호를 열어 놓는 윤리를 말한다. 이러한 종교윤리는 원불교에서 줄기차게 실천하여 왔는데, 소태산은 이를 일원주의로 표방했고, 정산은 이를 삼동윤리로 표방했고, 대산은 종교연합운동(UR)으로 표방해 오고 있다.
사상적인 면에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존재철학(存在哲學)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존재개념은 서양인의 분석적인 태도에서 보는 존재라든가 사변적 인식론적으로 탐구하려는 진리의 논리적 추구가 아니다.
소태산이 대각(大覺)의 경지에서 바라다본 이 우주는 생생약동(生生躍動)하는 기운이 꽉 차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주 및 인생의 근거를 밝힘에 있어서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종교의 방향으로 이끌게 된 것이었다.
둘째, 보은사상을 제기한 점이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당위적(當爲的) 인간관계(人間關係)의 윤리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있으며 여기에는 기본적인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과법칙이라는 것이다.
소태산은 인간의 자각을 통해서 ‘은(恩)’의 방향을 인과법으로 받아들여 구체적인 생성철학을 제기한 것이다. 우선 이 우주가 무심(無心)하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가 체험하여 생성의 관계가 인과의 이치에 의해서 존재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보은사상을 제기한 것이다.
셋째, 과학사상과 도덕사상의 일치이다. 물질은 과학을 의미하고 정신은 도덕문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우세하여 인간의 정신세력은 날로 미약해가고 있음에 소태산은 도덕으로 축(軸)을 세우고, 과학을 활용하는 사상을 내세우며 주객이 전도되지 않고 과학을 활용하는 원형으로 되돌려 나가야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과학은 아무리 그 세력이 우세하나 그것 역시 인간의 정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력은 도덕성으로 회복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소태산은 보았기 때문이다.
넷째,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한 점이다. 소태산은 최초법어(最初法語)에서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强者 弱者 進化上 要法)’을 내놓았다. 강자와 약자가 항상 대결의식을 가지고 있어서는 인간다운 역사가 성립되지 않음을 간파한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여야 진정한 강함을 유지하며, 약자는 강자에게 배우고 단합력을 길러 지도력을 형성해 나가야 능히 강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라고도 하며, 음양조화의 상생윤리라고도 표현한 바 있다.
그리하여 강자는 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먼저 진취력 있는 약자를 도와 강자이게 하며, 그러한 조화윤리로 더 내려서서 약자들을 강자로 변화하도록 지도하여 나가는 이념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측면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척정신을 불러일으킨 점이다. 저축조합운동에서부터 교단 창립과정을 더듬어보면, 개인이나 단체나 사회를 막론하고 자립갱생의 개척정신으로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은 인적·물적 자원이 고갈되어 있는 최저생활의 농촌에서도 저축으로 자본을 만들고, 맨손으로 언답을 일궈냈다. 그는 일제의 압제하에서도 이러한 창립정신에 입각하여, 주경야독의 간고한 생활을 디디고 서서 끊임없이 인재양성과 산업육성을 추진해 왔다.
둘째, 인간훈련을 강조한 점이다. 훈련이라고 하면 우선 군대훈련, 국가적 정책훈련, 산업가의 산업훈련 등을 들 수 있으나 소태산이 지향한 훈련이야말로 아무런 전제조건이 붙지 않는다. 순수한 〈인간훈련〉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훈련〉이라 함은 의지교육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의지는 인격형성의 3대 요소 중의 하나다. 의지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은 첫째가 인고(忍苦)의 단련이며, 이는 인간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도덕을 창출해 내는 방법인 것이다. 이와 같은 훈련된 인간이 나올 때 사회는 달라진다.
소태산은 명랑하고 진취적이며 참신하고 창조적이며, 자력적이고 봉사적인 인간상을 창출해 내려는 훈련법을 내 놓은 것이다. 이렇게 훈련된 인간상을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고 하였다.
셋째, 남녀평등사상을 실현시킨 점이다. 그 당시 남존여비사상으로 묶인 제도 속에서 과감히 부녀자들을 신도로 만들어 훈련시켰던 것이다. 특히 조선조 남존여비사상에 찌든 속에서 일제가 되면서도 그대로 교육의 제한을 받았던 젊은 여성들을 인연 따라 모여들게 하고 그들에게 ‘남녀권리동일(男女權利同一)’을 내세워 교육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태산은 초창기 교육에서부터 그토록 무지몽매했던 젊은 여성들을 훈련시키며 교육하여 여자전무출신을 대량 배출해냈던 것이다.
남자교역자와 동등하게 교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는 점이며, 교단의 조직체제에 있어서도 최고 지도급인 수위단원을 남녀 10명씩 동등하게 선출해 냈다는 점이라든가, 지방교화의 책임자로 여자 전무출신을 등용시켰다는 점이다.
원불교는 오늘도 이 정신에 입각하여 중앙으로부터 지방 각 교화장소의 주역들은 여자전무출신이 60∼70%를 점유하고 있다.
넷째, 민주화의 선구적 역할을 들 수 있다. 교단조직법을 보면 교법전수를 단전(單傳)으로 하지 않고 공전(公傳)으로 하였으며, 남녀수위단회가 민주적 협의를 거쳐 교단을 통치하도록 하고 있다. 종법사외 모든 주요임원을 선거에 의한 임기제를 시행하도록 하며, 교조 재세(在世) 당시부터 민주방식으로 교단을 운영해 왔다.
원불교의 이러한 교단운영체제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상에서도 높이 평가할만한 제도였으며, 특히 종교적 지도자들의 카리스마를 극복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매우 선구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예법(禮法)의 개혁을 들 수 있다. 재래의 예법은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분수에 넘치는 낭비를 초래하게 하였으나, 소태산은 허례허식에 치우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새로운 예법을 제정하였다.
원불교의 예전은 소태산 재세시에 이미 ‘신정의례준칙’이라고 하여 시행해 오면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의식의 변화를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며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미 일제시에 ≪예전≫을 발행하고, 이를 신도들에게 생활개조의 법으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예전≫의 형성은 민족해방이 된 이후 정산에 의하여 더욱 미래지향적인 예법이 되도록 보충하며 확대시키는 작업을 함으로써, 오늘날 ≪원불교예전≫, 그리고 ≪세전≫등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는 교역자들로부터 하나하나 실현하여 대중화되도록 교화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원불교의 역사,활동,교주박중빈의생애,
주요교리,경전,구원관,의식과행사
Q. 원불교의 역사
1916년(원기 1) 4월 28일. 원불교가 창립.
1917년(원기 2) 8월 경,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제자들은 저축조합 설치.
1918년(원기 3) 4월부터 1년간 걸쳐 영산성지 앞의 간석지를 개간한 방언공사 진행.
1919년(원기 4)에 혈인기도를 올려 교단 창립의 법계 인증.
1919년(원기 4) 음 10월경에 전북 부안군 산내면 봉래산에 들어가 봉
래정사를 짓고 교리와 제도 등을 구상·제정
1924년(원기 9) 봄 소태산 대종사, 봉래정사에서 나와 전북 익산시 교
외 보광사에서 창립총회를 개최,「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을 선
포.
바로 이어 익산시 북일면 신룡리(현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
소태산 대종사는 총부 건설 이후 열반하기 까지 약 20년 동안 이곳
에 주재하면서 제자들의 훈련, 교역자 양성, 초기교서 편찬, 교단 경제
건설, 교도교화 등 원불교의 창립 발전에 헌신 노력하였다.
1935년(원기20) 일원상 첫 봉안,
원불교 대판(오오사카)교당 설립(해외포교효시)
일본 통치 시대의 원불교는 겨우 교단의 명맥을 유지해 올 수 밖에 없
었다.
1943년(원기 28) 6월 1일에 소태산 대종사 열반, 수제자 송규(정산종
사)가 종통을 이음.
1945년(원기 30) 8·15 광복을 맞아 건국사업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발
전을 모색하다가 다시 6·25의 수난을 겪는다.
1948년(원기 33) 4.28 대각개교절을 맞이하여 교명을 '원불교'로 개명
1953년(원기 38)에 거행한 제1대 성업봉찬대회 이후에야 비로소 힘찬
발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된다.
1962년(원기 47) 1월에 정산종법사가 열반하고 다시 대산 김대거 종법
사가 교단을 이끌게 된다. 이후로 개교 반백년 기념사업, 교도법위향
상운동, 종교연합운동, 교단창립 2대 및 소태산 대종사탄생 1백주년
기념사업 등의 각종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한 결과 원불교는 호
남의 원불교에서 한국의 원불교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한국의 민족종
교에서 세계종교로 뻗어갈 터전을 닦게된다.
1994년(원기 79)에 와서는 대산 종법사가 33년간의 종법사 직에서 퇴
임하여 상사(上師)로 추대되고, 좌산 이광정 종법사 시대가 열린다. 이
로서 소태산 대종사의 당대 제자들이 책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고,
한글세대가 교단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1998년(원기 83) 11월 30일, 원불교 라디오 방송국 '원음방송' 개국
2006년(원기 91) 3월 24일, 군종 진입
Q. 활동
원불교는 창립 초기부터 수양집단 이라기 보다는 사회에 공헌하는 종
교단체를 목표로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의 사업목표는 교화·교육·자선의 세 가지이니
앞으로 이를 늘 병진하여야 우리의 사업에 결함이 없으리라」(대종경
부촉품 15)하였다.
이로부터 교화·교육·자선은 교단의 삼대사업목표가 되었다.
⑴ 교화사업은 교당을 많이 세우고 교도들을 교화하여 소태산 대종사
와 같은 큰 인격자가 되도록 지도하는 사업이다. 교화사업의 현장은
일선교당이 된다. 원불교 최초의 교당은 영산성지 옥녀봉 아래에 세워
진 구간도실이다. 구간도실은 처음 영산 방언공사의 현장 사무소로 사
용되었고, 밤이면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 제자들이 함께 모여 진리를
공부하던 곳이다. 방언공사가 끝난 후에는 다시 혈인 기도의 본부가
되었다. 1918년(원기 3)에 세워진 구간도실은 1923년(원기 8)에 현재
의 영산원 중심부로 옮겨져 원형 그대로 복원 보존되어 있다. 이후로
원불교의 교당은 익산총부를 비롯하여 서울·신흥·마령·좌포·원평·당
리·부산·전주·일본 대판(오오사카)·관촌·초량·대마·도양·용신·개성·남
원·이리·운봉·화해·수지·신태인·용암·수계교당 등이 차례로 창설된다.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하기 까지의 교당수는 익산총부를 비롯하여 25
개 교당이 된다.
정산종법사가 열반하던 1962년(원기 47)까지에는 약 80여개로 증가하
고, 1990년(원기 75)까지에는 4백여개의 교당으로 증가한다.(현재 520
여개) 외국 교화는 미국·일본·카나다·서독·프랑스·옛소련·중국 등에
상당수의 교당이 세워졌고, 그 이외의 여러나라에도 교당 설립을 준비
하게 된다.
⑵ 교육사업은 1946년(원기 31)에 유일학림을 설립하면서부터 본격화
하기 시작한다. 유일학림은 중등부와 전문부로 나뉘어 중등부는 원광
중·고등학교와 원광여자중·고등학교로, 전문부는 원광대학으로 발전
한다. 원광대학은 유일학림에서 1952년(원기 37)에 대학으로 발전하
게 되고, 1971년(원기 56)에는 다시 종합대학교로 발전한다. 2000년
(원기 85) 현재 원불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교육 기관은 원불교 대학원
대학교·원광대학교·원광대학교 대학원·원광보건대학·영산대학·원광
고등학교·원광여자고등학교·원광여자정보고등학교·해룡고등학교·원
광중학교·원광여자중학교·해룡중학교 등과, 대안(代案)학교로 성지고
등학교·원경고등학교·화랑고등학교 등이 있다. 또한 각 교당에서 운
영하는 유치원·유아원·탁아소·노인대학·성인교육원 등이 상당수가 된
다. 교역자와 교도들의 훈련기관으로 중앙 중도훈련원·중앙상주선원
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는 교육기관 못
지않게 훈련기관의 설립과 운영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교도훈련
뿐만아니라 국민훈련·인류훈련에도 교단의 관심과 역량을 쏟고있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육은 지식교육·기능교육 만이 아니라 인간교육에
도 크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⑶ 자선사업은 8·15 광복 직후 전재동포 구호사업으로 부터 본격화되
기 시작한다. 전쟁고아들을 모아 설립한 서울보화원을 시초로 하여 많
은 자선사업기관을 설립 운영하게 된다. 이리보육원(서울보화원->익
산보육원->이리보육원)과 한국보육원, 전주양로원, 중앙수양원, 삼정
원, 자선원, 노인요양원, 삼동복지회관, 장애자 복지회관, 모자원 등과
여러개의 종합사회복지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의 자선사업은
처음 고아원·양로원에서부터 출발하여 병원·정신질환자 수용소 등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일선교당에서는 봉공회를 조직하여
대각개교절이나 연말 연시에 또는 기회따라 각종 봉공활동을 활발하
게 전개하고 있다. 교단에서 운영하는 각종 병원에서는 해마다 무료진
료·무료치료도 실시하고 있다. 원불교의 경우에 있어서 자선사업은 단
순한 자선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불교 정신에 입각한 사회참여,
사회개혁, 사회정의실천, 복지사회 건설의 방법인 것이다. 원불교는
정치적 시각이나 투쟁적 구호를 앞세우고 사회참여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자선기관의 운영과 봉공활동을 통하여 무아봉공의 정신을 실
천하는 것이 곧 사회참여요 사회정의 실천이며 복지사회 건설인 것이
다. 교화·교육·자선의 삼대사업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자금을 교단에
서 운영하는 산업기관의 수익금, 교도들의 희사 의연금, 천도재·기도
행사 등에서 나오는 의식 수입금 등으로 충당하게 된다. 원불교 교도
들은 창립정신의 실천과 예법혁신운동 등으로 공익사업에 적극 참여
하고 있다. 모든 교도들은 근검 절약과 청렴을 미덕으로 하여 절약한
자금을 교화·교육·자선 등의 공익사업에 흔쾌히 사용한다. 여기에 원
불교 발전의 큰 원동력이 있는 것이다. 교화·교육·자선사업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교화사업회·육영사업회·법은사업회·사대봉공회·원창회
등의 후원단체를 결성하고 있다. 원불교는 삼대사업 이외에도 산업·훈
련·복지·문화·봉공사업 등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Q. 원불교 교조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생애
1891~1943 원불교의 교조(敎祖). 1891년 5월 5일(음 3월 27일) 전남 영
광군 백수읍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탄생하였다. 밀양 박씨의 후예이며
부친은 박성삼(朴成三), 모친은 유정천(劉定天). 어릴 때에는 진섭(珍
燮)이라 불렀고, 청년 시절에는 처화(處化)라 불렀다. 대종사(大宗師)
라는 호칭은 뒷날 제자들이 부르는 존칭이다. (당시에는 그냥 '종사
님'이라 부름) 가난한 산골에서 이름없는 농민의 아들로 평범하게 태
어났으나, 7세경부터 우주 대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해 큰 의심을 가지
게 되었고, 9세경 부터서는 다시 인생의 모든 일에 대해서도 크게 의
심을 일으켜, 이를 깨치기 위해 구도생활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20여년의 구도생활 끝에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음 3월 26
일) 이른 새벽, 동녘 하늘이 밝아 올 때 우주와 인생의 큰 진리를 깨치
게 되었다. 스승의 지도없이 스스로 진리를 깨친 소태산 대종사는 대
각 후 자신의 깨달음과 다른 종교의 경전을 대조 하여 열람하였는데,
유교의 사서와 소학
불교의 금강경, 선요, 불교대전, 팔상록
선가의 음부경, 옥추경
동학의 동경대전, 가사
기독교의 구약성서, 신약성서
를 두루 살펴보았다. 그 중 불교의 금강경을 보고 <석가모니 불은 진
실로 성인 중의 성인이라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깨달았으나 나의 연원을
부처님께 정한다>하였다.
서가모니불을 연원불로 하여 불법을 주체삼아 후천개벽 시대의 주세
종교를 창립할 서원을 세웠다. 처음에 구인제자를 얻어 저축조합운동·
영산 방언공사·혈인기도 등으로 교단 창립의 터전을 닦고, 부안 변산
의 봉래정사에 들어가 교리와 제도를 구상하게 되었다. 1924년(원기
9)에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현재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
하고 「불법연구회」란 임시 명칭으로 교단의 창립을 선포하였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와 함께「동정일여
영육쌍전」「무시선 무처선」「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등의 교리
표어를 내걸고 시대화·생활화·대중화 한 새 종교를 표방하였다. 소태
산 대종사는 스스로 깨친 진리를「일원상」이라 표현하고, 삼학 팔조
사은 사요를 교리의 근간으로 하였다. 이로부터 1943년(원기 28)까지
소태산 대종사는 익산총부에 주재하며 제자들과 함께 교단 창립에 노
력하면서 서울·부산·전주·영광·원평·마령 등지를 순회하며 교세 확장
에 힘쓰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마침 일제 통치시대의 말기인지라 탄압이 극심하였다.
당시의 제자들은 대개가 호남지방의 가난한 농민들이요, 압박받는 서
민들이었지만 교단은 점차 발전해 갔다. 1943년(원기 28)에 이르러 소
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생사 진리에 관한 마지막 법문을 설하고 6
월 1일에 52세를 일기로 총부에서 열반하였다.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가 일원상의 진리를 크게 깨친 1916년 4월 28
일을 교단 창립의 날로 정하고 있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한
1943년 6월 1일을 기념하여 매년 6월 1일을 「육일대재」라 하여 소태
산 대종사를 비롯한 역대 선진들과 삼세 부모 선조들 까지도 합동으로
향례하고 있다.
Q.주요교리
원불교의 기본교리는 일원상·사은 사요·삼학 팔조·사대 강령 등이다.
⑴ 일원상(一圓相)‥ 소태산 대종사가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크게 깨
치고 밝힌 진리의 상징적 표현이다. 일원상은 원불교에서 말하는 최고
의 진리이며, 신앙의 대상·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
원불교는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함과 동시에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일원상의 진리를 닮아가서 모든 인간이 일원상의 진리를 실천하고 일
원상의 진리와 하나가 되는 인격자가 되려는 것이다. 일원상은 진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에 일원상의 진리의 내용은 부처님·하나님
·태극·도·마음(청정자성) 등과 같은 뜻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된다.
⑵ 사은(四恩)‥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의 네가지를 말한다.
이는 일원상의 진리가 현실적으로 네가지 큰 은혜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 원불교는 이 현실세계를 긍정적 희망적인 것으로 보며, 네가지 큰
은혜로 나타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천지은은 인간이 천지로부터 입은 은혜이다. 천지가 인간에게 베풀어
주는 하늘의 공기, 땅의 바탕, 해와 달의 밝음, 바람·구름·비·이슬·서
리 등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와같이 천지은이 없으면 살
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은은 사은 중에서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부모은
은 인간 윤리의 기본이 된다. 부모님이 낳아주고 길러주며 보호해 주
는 은혜,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주고 희생과 사랑을 다 베풀어
주는 은혜이다.
동포은은 동포(우주 만물) 상호간에 서로 자리이타의 정신으로써 은
혜를 베풀어주고 입게 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동포는 한겨레·같은민족 이라는 뜻 이외에 모든 인류·일체생령 이라
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법률은이란 법률에 의해서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우주가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말하는 것이
다. 여기에서는 법률의 의미는 사회의 규율·국가의 헌법 뿐만 아니라
인도 정의의 공정한 법칙, 성현들의 가르침, 우주의 운행질서까지 포
함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네가지 큰 은혜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은혜를
깊이 느끼고 깨달아 보은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인간다운 삶이 된다
는 것이다.
⑶ 사요(四要)‥ 은혜로 가득찬 세상을 건설하고 인류사회를 상생 상
화의 윤리로 평등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네가지 덕목을 말
하는 것으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를 말하는 것
이다.
자력양성은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거나 예속된 생활에서 벗어나 스스
로의 힘을 길러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정신
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지자본위란 무슨 일이든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스승으로 알아서 묻
고 배우기에 힘쓰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식·지혜있는 사람이 사
회의 선도자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타자녀교육이란 나의 자녀 남의 자녀라는 구별없이 교육시키기에 노
력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장학사업·육영사업을 많이 하자는 것이
다.
공도자 숭배란 공익심을 발휘하고 공도정신을 실천하며 땀 흘리는 생
활을 통해서 개인의 이익 보다는 인류 전체를 위하여 헌신 봉공하자는
것이다.
이와같이 사요의 실천을 통해서 평등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자력양성을 통해서 인권평등세계, 지자본위를 통해서 지식평등세계,
타자녀교육을 통해서 교육평등세계, 공도자숭배를 통해서 생활평등세
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⑷ 삼학(三學) ‥일원상의 진리를 깨쳐가는 세가지 공부길로서,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를 말한다.
정신수양은 어지럽고 시끄럽고 더럽고 나쁜 마음을 고요하고 두렷하
고 온전하고 원만한 부처님과 같은 마음으로 키우려는 것이다.
사리연구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연구하여 큰 지혜를
얻으려는 것이다.
작업취사는 정신수양과 사리연구의 바탕 위에서 심신동작을 올바르
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안으로는 계문을 잘지켜 죄업을 끊고 밖으로는 정의를
실천하여 덕행을 쌓아가며 지행합일·신행일치의 정당한 생활을 하려
는 것이다. 삼학수행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말고 병행해야 하는 것
이다.
⑸ 팔조(八條) ‥ 삼학 수행의 원동력이 되는 신·분·의·성과 삼학 수행
에 방해가 되는 불신·탐욕·나·우의 8가지 조항을 말한다.
신(信)은 모든 일을 이루고자 할 때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 되는 믿음,
분(忿)은 모든 일을 이루고자 할 때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는 용맹있는 전진심 곧 백절불굴의 용기를 말한다.
의(疑)는 시비이해의 일과 대소유무의 이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알고 깨달으려는 마음,
성(誠)은 거짓없고 한결같이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신·분·의·성은 삼학 수행의 촉진제가 된다고 해서 진행 4조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불신(不信)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의심하는 마음,
탐욕은 지나친 욕심,
나(懶)는 게으른 마음,
우(愚)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불신·탐욕·나·우는 삼학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버려야 할 것이라 하여 사연 4조라 한다.
⑹ 사대강령 ‥ 원불교의 교리를 종합해서 교리실천의 방향을 네가지
로 제시한 것으로서, 정각정행·지은보은·불법활용·무아봉공을 말한
다.
정각정행은 일원상의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일상생활에 그대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지은 보은은 사은의 큰 은혜를 발견하고 깨달아서 감사 보은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불법활용은 소태산 대종사와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을 믿어서 일상생활에 실천하려는 것이다.
무아봉공은 참 나·큰 나를 발견하여 보은 봉공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정각정행을 실천하면 부처님과 같이 큰 지혜를 갖추게 되고, 지행합일·신행일치의 도덕세계가 건설된다.
지은보은을 실천하면 상생상화·상부상조하는 평등세계가 건설된다.
불법활용을 실천하면 일원상의 진리를 일상생활에 활용하여 부처님의 은혜가 가득찬 불국정토가 건설된다.
무아봉공을 실천하면 헌신 봉공하는 성현정신을 회복하게 되고, 서로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아름다운 세계가 건설된다.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면 소태산 대종사와 하나로 만나게 된다. 그래
서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것이다. 신앙의 방
법이 사은 사요인데 이를 다시 인생의 요도라고 한다. 수행의 방법이
삼학 팔조인데 이를 공부의 요도라 한다. 사은 사요의 신앙과 삼학 팔
조의 수행으로 일원상의 진리를 깨달아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
성에 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곧 사대 강령을 실천하는 것이
다. 사대 강령을 실천하는 사람이 원불교에서 목적하는 가장 훌륭한
인격자이다. 또한 사대 강령이 실천되는 사회가 원불교에서 목적하는
이상사회인 것이다. 사대 강령은 또한 원불교의 사회정의 실천방법이
요 사회참여 방법이기도 하다. 원불교는 다양화하고 혼란한 현대사회
에서 사대 강령의 실천을 통해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상사회·복지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Q.경전
경전으로는 일경(一經) 사전(四典)이 있음
일경은 대종경으로, 이 경은 전체를 다 통하는 통경,
사전으로는
첫째, 정전(正典) : 진리와 우리의 생활하는 원리 원칙을 밝힌 원전(元典)
둘째, 예전(禮典) : 우리가 살아가는데 예절을 밝힌 경전(敬典)
셋째, 세전(世典) : 세상을 바르게 하는 정전(正典)
넷째, 악전(樂典) :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하는 화전(和典).
정 전 : 대종사님의 저서,
대종경 : 대종사님의 말씀.
예전/세전 : 정산종사(초대종법사)님의 저서
악 전 : 원불교 성가집
그 밖에 정산종사법어와 대산종사법문 등도 있음.
Q. 구원관
원불교는 긍정과 실천의 종교이다. 불교의 고해(苦海)사상이나 기독교의 말세사상 등은 현실 부정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원불교는 현실세계를 사은의 큰 덩어리, 곧 은혜의 세계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원불교는 법멸(法滅)시대나 종말론이 없다. 미래세계를 긍정적·희망적으로 전망한다. 원불교는 개인성불이나 개인 구원 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대중전체의 성불을 강조한다.
○ 내세관
대종사께선 사람들이 이승/저승으로 세상을 나누지만, 실은 사람이 죽어서 어디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서 있으면 이승이요, 죽어서 있으면 저승이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이 육신과 갈릴 때는 육신의 기식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 뜨는 것이 보통이나, 아직 육신의 기식이 남아 있는데 영혼만 먼저 뜨는 수도 있으며(요즘 말로 '뇌사'), 영혼이 육신에서 뜨면 보통 칠칠일(49일) 동안 중음으로 꿈꾸듯이 돌아다니다가 임신 3개월쯤되는 태아에 탁태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임신 3개월은 임신기간의 3할로 현대의 생물학에선 모든 동물이 임신기간 중 3할의 기간이 지나면 모든 형체가 갖춰지고 이 다음 성장만 한다고 합니다.
○ 원불교의 천국과 지옥
불교의 육도처럼 원불교에서도 육도가 있습니다.
천상-인간-축생-수라-아귀-지옥
그중에서 천국(극락,천상,천도)과 지옥을 많이 알고 계셔서 이를 설명하겠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저승이 따로 있는 게 아니기에 천국과 지옥도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 곧 천국과 지옥입니다.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상한 부모 밑에서 사랑 받으며 사는 것이 천국이고,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학대 받으면서 사는 것이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 잘 사는 사람의 비율이 적은 이유는 그 만큼 살아 생전에 착한 일하면서 복 지으며 사는 사람의 비율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돈많지만 못된 사람와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은?
기독교는 성악설로 모든 이가 원죄를 안고 태어나지만,
원불교에선 사람의 최후 일념을 중요시 합니다.
한 평생 남을 도우면 착한 일을 하며 복을 짓는 사람이 늙어 죽음을 기다릴 때,
'그동안 착하게 살았는데, 남 좋은 일만 하다가 내 인생 끝나는구나. 좀 약삭빠르게 익속 챙기며 즐겨보고 살아볼 걸 너무 바보처럼 살았구나 덧없는 인생이여'
하고 죽으면 그 사람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지만, 마지막에 악한 마음을 품고 죽었기에 새로 태어났었도 그 마음에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다.
반대로 온갖 나쁜 짓 하다가 마지막에 그 잘못을 뉘우치며 죽으면 그 나쁜 짓으로 인해 궁핍한 환경에서 태어나지만, 최후 일념을 선한 마음을 갖고 죽었기에 내생에서 받는 몸에서도 선한 마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Q. 의식과 행사
의식 :
정례법회와 수시법회가 있고, 정례법회에는 월례법회와 연례법회가 있다.
월례법회에는 예회와 야회가 있고, 연례법회에는 동선·하선·교리강습회가 있고, 수시법회는 형편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갖는다.
이 여러가지 법회 중 가장 기본되는 법회는 '예회'인데, 대개 일요일에 개최하고 형편에 따라 일요일이 아닌 다른 적당한 날에 갖기도 한다. 야회는 창립초기에는 많이 가졌으나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자주 갖지는 않는다.
동선·하선 교리강습회도 초창기에는 연례법회로 널리 시행했으나 오늘날에는 역시 과거같지 못하다. 예회는 대개 설교와 경강이 중심이 되나 때로는 기도법회·성가법회·체육법회·야외법회 등 여러가지 형태를 갖는다.
행사 :
이재(二齋) 사축(四祝)
이재(二齋)
* 6월1일 육일대재: 소태산 대종사님 열반 추모일
*12월1일 명절대재: 소태산 대종사 이하 원불교의 모든 조상과 삼세의 모든 성현 및 일체생령을 길이 추모하여 합동 향례
사축(四祝)
* 1월 1일 신정절 : 정월 1일 신년 축하일
* 4월 8일(음력) 석가탄신일 : 부처님 오신날
* 4월 28일 대각개교절 : 대종사께서 대각하신 날로 본교 개교기념 축하일 및 일반교도 공동생일기념 축하일
* 8월 21일 법인절 : 혈인성사로 법계의 인가를 받은 법인기념 축하일
첫댓글 좋은 자료라 옮겨왔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제, 블러그에 뫼시어 광고합니다~~
이 곳에 자주들러 읽어 보겟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