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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보수로 요산문학관과 생가 관리에 헌신하고 있는 요산 김정한 선생의 사촌동생 김재한(72) 옹이 생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아래 사진은 텅빈 요산문학관의 북카페. 조봉권 기자 |
'부산 정신' 이야기할 문학관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부산의 문학관은 요산문학관, 향파이주홍문학관, 추리문학관 등 3곳. 이 가운데 부산이 낳은 한국 문학의 거목들인 요산 김정한, 향파 이주홍 선생을 기리며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개관한 두 문학관의 운영 현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운영비·전문인력·자체 프로그램의 부족, 지자체의 무관심, 시민사회의 활용 아이디어 부족 등이 합작으로 빚어낸 결과이다. 다른 지역의 중소 규모 지자체들은 문학관을 지역문화의 핵심 콘텐츠로 규정하고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부산의 문학관들이 처한 현실과 대책을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지난 19일 요산문학관을 방문한 기자는 문학관의 담을 뛰어넘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보수로 요산문학관을 관리하고 안내하는 요산 김정한 선생(1908~1996)의 사촌 동생 김재한 옹(72)이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워 문이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이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 동안 문학관 마당을 서성였으나 방학임에도 방문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생가 마루 한쪽의 방명록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생가에는 들어왔지만 문학관은 문이 잠겨 관람할 수 없었다. 원활한 개방을 부탁한다'고 쓴 방문객의 글이 5건 있었다. 기자는 나올 때도 담을 넘어야 했다.
●'부산정신' 깃든 곳=요산문학관은 부산 금정구 남산동 661의 4번지 요산 생가 바로 곁에 조성돼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정식으로 문을 열어 이달로 개관 8개월 째다. 총 사업비는 14억3000만 원. 시비와 국비로 충당한 8억3000만 원을 제외한 부족분 6억 원은 부산은행이 희사했다. '부산 정신'의 상징이자 한국 문단의 큰 나무로서 요산 김정한 선생의 정신적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지역사회 각계각층이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요산은 '사하촌'과 '모래톱 이야기' 등의 작가로 한국 문학에 큰 획을 그었고 항일과 반독재 활동을 펼치며 초대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그러나 문학관 운영을 맡고 있는 (사)요산기념사업회는 개관 이후 운영 예산을 사실상 거의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문학관 프로그램 구상과 홈페이지 구축 등의 일을 맡은 비상근 연구사 1명의 명목상 임금과 기초적 운영비만 겨우 대고 있는 수준이다.
●전기도 끊길 판=이런 현실은 문학관의 부실한 운영으로 직결된다. 현재 요산문학관에는 상근 직원이 없다. 요산의 사촌동생 김재한 옹이 무보수로 요산 생가와 문학관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김 옹은 "운영비가 없어 전기요금 같은 기초적인 운영 자금도 힘겹게 내고 있다"며 "개관 이후 2차례에 걸쳐 관계기관에서 전기세 등의 납부 독촉을 받은 끝에 유족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각각 200여만 원의 요금을 치른 바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 옹은 "단전 직전에 해결은 했지만 지금도 지난 두달 간의 전기요금 독촉장을 받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요산문학관은 전기가 끊길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나마 금정구청이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여성 2명을 배치해 청소 및 관리가 되고 있는 게 다행이다.
●텅빈 북카페=또 다른 문제는 이 상태로 문학관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김 옹은 "내가 일주일의 대부분 문학관에 상주하고, 예약하는 방문객을 안내하기 때문에 현재로는 관람 중심의 문학관 기능 유지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전국 각 대학 문학 전공 학생들의 방문 일정이 적지 않게 잡혀 있다. 그러나 예약 없이 개별적으로 불시에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처지는 불안하기 그지 없다. 직원이 아니라 자연인 신분인 김 옹이 불가피하게 개인 용무로 문학관을 비울 때 생가와 문학관의 문을 잠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책도 보고 차도 마실 수 있게 꾸민 1층 북카페의 서가는 10분의 1도 차지 않은 채 텅 비어 있다. 이 모습은 차라리 서글펐다.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좋은 책 10권씩만 기증해도 금세 가득찰 서가였다. 2층 도서관의 요산 선생 소장 저서와 자료 도서들은 인력이 없는 탓에 등록대장이 없어 책이 없어져도 실태를 파악할 수 없다. 3층의 작가용 집필실은 발길이 끊겼다. 김 옹은 "관람말고 다른 기능은 못한다"고 털어놨다.
●민·관 대안 모색해야=이런 상황에 대해 조갑상 (사)요산기념사업회 이사(소설가·경성대 교수)는 "부산의 글쓰는 사람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정을 발휘해 문학관 건립에 애썼으나 향후 운영하는 데까지는 만전을 기하지 못해 더욱 노력이 필요하다"며 애로와 부진을 인정했다. 그는 "최근 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는 청소년 문학프로그램을 부산문화연구회(대표 김성배)와 공동으로 따내는 등 프로그램 마련에는 성과가 있다"면서 "문제는 운영비를 안정되게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체 힘으로 운영비를 확보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되 지자체나 지역기업과 협조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나 지역기업 개입 없이 이 문제를 푸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당연한 접근이다. 조갑상 이사는 "최근 요산문학관 차원에서 부산시와 접촉해 올해는 힘들지만 내년에 이주홍문학관과 함께 요산문학관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형평성을 들어 신중한 입장이다. 시민의 관심과 함께 지자체와 지역기업의 지원 손길이 현실적으로나 명분상으로 절실한 상황이다. (051)515-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