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사학과 권태억 교수의 한승조망언에 대한 기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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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이 들어간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의 글이 장안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고 네티즌들의 분노도 뜨겁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그가 쓴 글의 번역문을 읽고 난 뒤 소감은 우선 상식에 어긋나고 논리의 비약이 심해서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글은 그 동년배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감히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속내를 대담하게, 그 나이가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를 자신감에서 토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의 생각은 그 동년배들만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식민지 소년 한승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학에서 식민지 시기와 한국사를 연구하는 본인의 눈에는 75세라는 그의 나이가 먼저 들어왔다. 75세. 만 나이라면 1930년 생이다. 말하자면 그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던 그 무렵에 태어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일제는 얼마 안 지나 중일전쟁을 도발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으며 이 전쟁터로 한국인들을 내몰기 위해 민족의식을 마비시키는 황민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는 멋도 모르고 집안 어른이 정한대로 일본식 이름을 갖게 되었을지 모르며, 행사 때마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웠을 것이고, 신사에 참배하고, 나중에는 아침마다 황성요배를 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 점차 그는 자신이 만세일계 일본 천황의 적자,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라는 의식이 강렬해지고 학도병으로 지원(?)해 나가는 형들과 선배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영광스런 그 대열에 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천황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지자 믿어지지 않고 청천벽력과 같아서 땅을 치며 울었다는 식민지 소년이 바로 그일지도 모른다. 해방 당시 그는 또한 분명히 한글을 제대로 말하거나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말하자면 일제의 황민화 교육 1세대였다. 그의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불쌍한 시대의 희생자인 것이다.
부끄러운 해방 이후의 역사
해방 이후에 전개된 상황은 이들이 올바른 판단기준을 갖는 것을 방해하였다. 일제 식민지 지배 잔재 청산의 여론이 드높던 사회의 혁명적 열기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친일파들은 현상유지를 꾀하는 미군이 남한을 지배하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찬탁과 반탁의 대결 구도 속에서 신탁통치를 용납할 수 없었던 한국인들의 열망에 편승하여 하루아침에 애국자로 둔갑하였다.
이어 성립한 이승만 정권은 기본적으로 일제 식민지 유산 위에서 성립하였으며 친일파 청산을 방해하였다. 그에 이은 박정희 정권도 경제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조약을 맺었음이 오늘날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그의 뒤에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지원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힘입어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다.
생존조차 위협받던, 누구나 할 것 없이 못살던 시절이라 국민들 일부는 이러한 박정권의 정책을 환영 또는 묵인하였고, 경제발전의 과실의 달콤한 맛을 보는 속에서 우리들은 체면을 돌보지 않는 물질 숭배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은 물론 한번도 일제 식민지기를 제대로 평가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 뒤를 이은 군사 독재정권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친일파 청산을 이와 같이 시대적 과제로 공론화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80년대 후반 이후 진행된 민주화 과정의 결과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교수는 말하자면 이러한 시대 상황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그러한 흐름에 적극 동조하고 편승한 사람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대한제국은 당시로서는 망할 수밖에 없었으며, 일본이 병탄하지 않았다고 해도 러시아가 삼켰을 것이라는 것은 일본 우익들이 흔히 내세우는 논리다.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당시는 제국주의 시대이므로 남의 나라를 빼앗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일제가 자랑하는 '한국 근대화'의 진상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세계 질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입장에서 과거 인류가 저질렀던 죄악을 비판하고 그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 당시 일본은 물론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미개국을 문명화시켜준다는 명분을 앞세워 인륜에 반하는 죄악을 자행하였고, 후안무치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였다. 이를 자명한 사실로 인정한다면 일본의 주장은, 내버려두어도 상대방이 훔칠 것이므로 그를 물리치고 먼저 훔친 자신은 죄가 없다는 억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식민지 시기 일제는 한반도를 영구히 일본의 판도로 만들고 또 대륙 침략의 기지로 만들기 위해 철도를 놓고 도로를 닦고 산업을 육성하는 등 이른바 ‘개발’을 하였다. 일제 자본이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고 그 이윤을 독점하기 위해 한국에 일본과 거의 유사한 제도들을 옮겨 심었다. 이것이 그들이 자랑하는 ‘한국 근대화’의 진상이다. 해방 이후 일본이 남겨두고 간 법이며 제도는 좋든 나쁘든 그대로 남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질서가 되었다. 한번 뿌리를 내린 제도와 법 체계, 또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사회 전반의 질서를 완전히 바꾼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가진 것을 이용하여, 온갖 혼란을 겪으면서, 또 그것이 드러냈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이 식민지 지배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그들 주장의 진상이다. 그와 같이 주장하고 싶다면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이 겪었던 분단과 전쟁, 모든 혼란과 궁핍, 그리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올해로 해방된 지 60년이 되었으니 말하자면 환갑을 맞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도 일제 식민 지배의 유산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속에서 이러저러한 망언들이 계속되고 있다. 한 교수의 글도 그런 수많은 착각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언제라도 다시 살아나 갈 길 바쁜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것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과거를 청산하여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으로 한마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죄악이었다고 해서, 일본인들, 또 그들에 세뇌 당한 일부 사람들의 망언이 우리의 자존심을 긁는다고 해서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잘못, 식민지 기간 동안에 있었던 커다란 변화에도 눈감지는 말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원인을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식민지 기간 동안 한국 사회가 커다란 변화를 겪었으며, 그 때 정착된 질서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냉정한 분석을 기다리고 있는 과제이며 이런 과제를 깨끗하게 해결해낼 때 비로소 저러한 망언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