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관련 시
변계량의 <동지>
繡紋添線管灰飛 (수문첨선관회비) 수 놓는 실 늘어나고 대롱 속 재도 날아가니
冬至家家作豆糜 (동지가가작두미) 동짓날 집집마다 팥죽을 쑤는구나.
欲識陽生何處是 (욕식양생하처시) 양의 기운은 어디서 생기는지 알고 싶구나.
梅花一白動南枝 (매화일백동남지) 매화의 남쪽 가지 하얀 꽃망울 터뜨리려 하네.
동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 밤에 수 놓느라 긴긴밤을 보내도 보내도 기나긴 어두운 밤.
이 긴긴 밤의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려 악귀를 물리치고 가족 건강을 비는 풍습이 우리에게 있었으니,
이러한 풍습을 통해 그간 쇠퇴해진 양의 기운을 북돋운다 하여 어서 빨리 오라며 기대하는 마음이다.
남향으로 뻗은 매화 가지에는 벌써 꽃망울 맺혀있으니 어서 봄의 기운이 오라는 기원을 또한 볼수있다.
변계량(卞季良, 1369년 ~ 1430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변옥란(卞玉蘭)이고, 형은 우부승지를 지낸
변중량(卞仲良)이다.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이다.
예조판서를 지내고, 20년 동안 집현전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실용주의적 경세사관으로 조선조의 기틀을 마련한 경세가로 평가된다.
변계량은 조선 초기 세종의 스승으로, 태조, 태종, 세종 3대의 국가의 제천 의식 등
국가 서류 90%를 작성했다는 문필의 달인이었고, 세종에게 집현전 설치와 대마도 정벌을
건의하고, 공정한 과거제를 운영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네 살에 고시의 대구(對句)를 외우고 여섯 살에 글을 지었다.
이색·정몽주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1382년(고려 우왕 8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는 생원시에도 합격하였다. 13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주부(典校注簿)·
비순위정용랑장(備巡衛精勇郎將) 겸 진덕박사(進德博士)를 지냈다.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B%B3%80%EA%B3%84%EB%9F%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