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터럭 끝만큼이라도 내생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아니오.
따라서 아미타불의 서원과 거리가 생기게 되고, 감응의 길이 트이지 않아 부처님의 영접을 받을 수가 없소.
책: <인광대사가언록: 화두놓고 염불하세> 중에서 발췌(p111~P114)
세간에서 선업(善業)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는,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오.
믿음과 발원을 원만히 갖추고 극락에 왕생하는 정업(淨業)에 대비하면, 그 선업도 결국 악업이 될 뿐이오.
정토 법문은 별도로 특별한 안목으로 보아야 하며, 통상의 교법이나 의리와 나란히 견주어서는 안 되오.
만약 여래께서 이 법문을 여시지 않았다면,
말세 중생 가운데, 생사를 해탈하는 자는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임종에 반드시 서방극락에 왕생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평소 굳게 지녀야 하오.
---설령 인간이나 천상의 왕 또는 스님도 원하지 마시오.
출가해서 하나를 들으면 천 개를 깨닫고, 대총지(大總持)를 얻어 불법 교화를 널리 펼치고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하는 고승대덕의 몸이라도, 내세에 받을 염두일랑 손톱만치도 해서는 안 되오
이러한 과보도 마치 독풀이나 죄의 숲처럼 보고,
혹시라도 받고 싶다는 마음을 한 순간도 결코 내지 않아야 하오.
이와 같이 확고부동하게 결정해야만,
자기의 믿음과 발원과 수행((염불)이 비로소 부처님의 서원에 감응을 얻고,
부처님께 거두어질 수 있다오.
감응의 길이 서로 트이고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으면,
곧장 구품연화(九品蓮花)에 올라 윤회 고해를 영원히 벗어나게 되오.
사바 고해를 벗어나기는 마치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간절히 원하고,
극락에 왕생하기는 곤궁에 빠진 아들이 고향의 부모에게 되돌아가기를 생각하는 듯이 절실히 원해야 하오.
정토에 왕생하기 이전에는,
설령 인간이나 천상의 왕위(王位)를 준다고 할지라도, 이를 타락의 씨앗이나 뿌리는 인연으로 여겨,
눈꼽만큽도 바라거나 좋아하는 생각을 품지 않아야 하오.
또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로 태어나, 순진한 어린애 때 출가하여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닫고,
대총지(大總持)를 얻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조차도,
구불구불 돌아가는 수행길로 여기고, 한 생각도 바라거나 구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오.
오직 임종 때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아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만, 바라야 하오.
일단 정토에 왕생하기만 하면, 생사를 해탈하게 되오.
즉, 범부를 초월하고 성인의 대열에 끼어,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면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되오.
그때 인간과 천상의 왕 따위나, 스님이 되어
정토 법문을 모르고 다른 법문으로 오랜 겁토록 힘들게 수행하면서
해탈의 길조차 없는 이들을 되돌아본다면, 과연 어떠하겠소?
마치 반딧불이 빛나는 태양 아래서 날고, 개미가 태산 기슭을 기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오.
그 비통함과 애도의 마음을 어찌 다 이길 수 있겠소?
그러므로 정토 법문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단코 인간과 천상의 복록이나, 내생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겠다는 과보 따위를 바라서는 안 되오.
만약 터럭 끝만큼이라도 내생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아니오.
따라서 아미타불의 서원과 거리가 생기게 되고, 감응의 길이 트이지 않아 부처님의 영접을 받을 수가 없소.
이처럼 불가사의하게 수승하고 미묘한 수행으로,
결국 인간과 천상의 번뇌 많은 복록 인연이나 짓는단 말이오?
그 복록을 누릴 때 반드시 악업을 짓게 되고,
일단 악업을 지으면 죄악의 과보를 피할 수 없는데도 말이오?
마치 제호(醍醐:우유에서 뽑아낸 최고의 맛과 영양 품질을 갖춘 식품) 가운데 독을 넣으면,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요.
마음을 잘 쓰지 않는 자의 허물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소.
그러나 이러한 염두일랑 철저하게 싹둑 잘라 버려야 하오.
그래야 정토 법문 수행의 온전한 이익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쓸 수 있소.
인간의 수명이 설령 백 년이라고 해도, 눈 깜박할 사이에 금방 지나가 버리오.
그러니 아직 숨결이 붙어 있을 때, 벗어날 길을 한시 바삐 찾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임종에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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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극락세계는 보통 범부 중생들이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설사 소승 성인(성문,벽지불)이라도 갈 수 없다오. 그 곳은 대승의 불가사의한 경지이기 때문이오.
소승 성인도, 마음을 돌이켜 대승으로 향하면 갈 수 있소.
범부 중생은 믿음과 발원으로 부처님을 감동시키지 않는 한,
설령 그 밖의 모든 뛰어난 수행을 닦으면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는 염불 수행까지 병행하더라도,
극락에 왕생할 수 없다오.
그래서 염불 법문에서는 믿음과 발원과 수행(염불)의 세 가지 법이 가장 요긴한 종지(宗旨)라오.
세 법이 솥발처럼 원만히 갖추어지면, 틀림없이 왕생하게 되오.
만약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없으면, 설령 진실한 수행(염불)이 있을지라도, 왕생할 수 없는 것이오.
하물며 유유자적하니 한가하게 입으로 염불 시늉이나 하는 사람이, 왕생하겠소?
서방정토에 왕생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오,
만약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없으면,
설령 염불 수행을 할지라도, 부처님과 감응이 서로 통할 수 없소.
그래서 단지 인간과 천상의 복록만 얻고, 미래에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원인 종자만 심는 데 그치오.
정말 믿음과 발원만 갖추면, 만 사람 가운데 하나도 빠뜨림 없이 모두 왕생하게 되오.
영명(永明)선사가 사료간(四料簡)에서 “만 사람이 닦으면 만 사람이 모두 간다.”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믿음과 발원을 함께 갖춘 수행을 가리키는 것이오.
무릇 불보살님께 예배하거나 대승경전을 독송하거나, 또는 세간의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일체의 선행 공덕은, 모두 서방 왕생에 회향 기도하여야 하오.
단지 염불 공덕만 서방 왕생에 회향하고,
그 밖의 선행 공덕은 따로 세간의 복록을 받으려고 회향해서는 결코 안 되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일념(一念)으로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여, 왕생하기 어렵기 때문이오.
진짜로 염불할 줄 아는 사람은, 무병장수나 집안 화목, 자손영달, 만사 소원성취와 같은
세간의 복록을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세간의 복록을 받게 된다오.
만약 세간의 복록을 받으려고만 생각하여 극락왕생에 회향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얻는 세간의 복록은 오히려 형편없이 낮은 것에 지나지 않고,
마음이 일념으로 오롯이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왕생도 확정하기 어렵다오.
염불하는 사람이 단지 진실하고 간절히 염불하기만 하면,
저절로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어, 총칼이나 전쟁, 홍수, 화재 등의 온갖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오.
숙세의 업장이 너무 무거워 지옥의 과보를 받아야 할 운명인 경우에는,
현생에 가벼운 벌로 과보가 바뀌어, 더러 이러한 재앙을 당할 수도 있소.
그러나 평소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만 갖추고 있으면,
금생에 틀림없이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을 것이오.
또 살아생전에 염불삼매를 증득하면 이미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므로,
자기 몸조차 그림자와 같아져, 총칼이나 홍수, 화재 같은 것이 모두 전혀 장애가 되지 못하오.
설령 재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고통이 전혀 없게 되오.
망망대해 같은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몇이나 있었겠소?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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