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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과정과 때: 카이로스
2021 08 03 입추 나흘 전.
비유 또는 도표에 속지 말자. 벩송은 흐름과 총체적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비유들에 속지 말라고 한다. 벩송의 예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빛을 다섯 색으로 또는 일곱 색(크리스트교 미신)으로 분류하는 것은 편리(도구적이든, 지성적이든)의 조작이지 실재성이 아니다. 게다가 12색과 24색 등의 구별(분류)은 차이를 설명하는 틀이겠지만, 벩송은 주황색의 단위는 다른 색과 다른 진동수를 지니고 있고 자기 고유성이 있다고 한다. 그 경계를 규정하는 것은 물리학이며, 그 실재로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래에서 설명을 위한, 또는 표면의 분류(la classification, 분류학)와 갈래들의 길(la taxonomie, 계통학) 또는 방향을 위해, 도식들을 여럿 사용할 것이다.
우선 벩송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사는 것이 먼저(primum vivere)”라고 보는 윤구병은 그 다음으로 “철학은 그다음이다(deinde philosophari)”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덧붙여서 플라톤은 “철학한다는 죽는다는 것을 배운다(philosopher, c’est apprendre àmourir)”한다. 실행이 먼저이고 정리하고 분류하며 길을 찾는 것은 그 다음인 것으로 생각해 보자. 그리고 개인의 삶을 마감하는 것, 그것은 영원히 산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염두에 두자.
박홍규 선생님은 철학은 총체적 자료를 다룬다고 강조한다. 그는 먼저 원전의 자료들을 꼼꼼히 읽기를 권하고, 그리고 그 주변의 자료들을 비교하고 분류하며, 그리고 역사와 문화적 자료를 총괄적으로 섭렵하는 것이 학자라고 한다. 그는 원전 자료를 읽는데 만, 즉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교수 생활을 다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언제 한 철학자의 주변을, 그리고 역사와 문화의 실증성을 보탤 수 있을까? 연구에서 한 사람의 토대 위에 그 다음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에서 한글세대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의 강의와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양 철학사에서 총체적 자료를 다룬 철학자는 소크라테스가 처음일 것 같다. 그리고 철학사를 총체적으로 성찰하여 달리 다룬 이는 - 플로티노스의 방식을 빌려온 – 벩송일 것이다. 들뢰즈도 이 길을 갔다. 나로서는 박홍규와 들뢰즈가 유사하게 그리스인들과 그들의 철학을 보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워 한다. 박홍규가 문헌적으로 다룬 측면에 비해, 다른 한편으로 실증적으로 자연사와 인류사를 철학사에 끌어들인 것은 들뢰즈가 아닌가 한다.
박홍규의 제자인 윤구병은, 가끔 아니 자주 ‘삶이 먼저다’라고, 선승의 게송을 말하듯이 한다. 이 땅에서 현실의 삶의 문제로서,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운율에 맞추어) 11자를 주문처럼 외우자고 한다. 그는 칠언으로 ‘궁궁을을 시천주’도 괜찮다고 한다. 온 대중을 하나의 큰 수레에 태워가자고 한다. 그의 주문이 약간 허공에 뜬 구름 같다고들 하나 – 나로서는 실재적으로 보이는데 – 이와 달리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있다. 그는 간단히 하나, 둘, 셋이라 한다. 하나 땅(토지)의 국유화, 둘 의료와 교육의 무상화, 셋 하늘길 땅길 물길의 공공화이다. 사람들은 그의 방안에 대해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하는데 비해, 그는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하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며, 시대를 잘 보라 그렇게 변해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시대를 잘 보라. 시기를 알아차리자. 벩송이 고르기아스의 3가지 불가지론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잘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가지론이라고 하지만, 안으로는 드러나려는 것이 있어왔고 그리고 들어내려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고르기아스는 카이로스(때)를 찾으라 한다. 고르기아스를 만나 한 수를 배웠다고 하는 소크라테스도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이고, 벩송은 기억의 총체에서 발현 또는 창안되는 것을 다음과 연결하여 선택하라고 할 것이며, 들뢰즈가 말하는 생성 하고 되기 하는 것도 그가 카이로스처럼 보았을 수 있다. 개인이 아니라, 한반도가 그리고 8천만이, 카이로스를 잡지 않을 수 없을 경우, 들뢰즈가 인류사에서 고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경우, 파(결)들이 서로 부딪히면 소멸하여 수평을 이룰 수도 있지만 파(결)들의 부딪힘과 더불어 상승하는 효과에서 변곡점을 이룰 수 있는 경우, 즉 여기 이땅, 지금 이 시기에, 흐름에서 변곡점을 또는 고원을 형성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세계사에서 남북의 분단과 전쟁, 휴전 상태를 남아있는 이 땅에서, 평화로 바꾸는 카이로스.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
박홍규는 간단히 말한다. “왜냐하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냐 공간이냐 둘 뿐이에요. 플라톤은 둘 다를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서 형상이론(form theory)을 놓았고, 베르그송은 시간에서 정리했습니다. 그 이외는 없어요.” (54쪽, 박홍규, 「강연록」) 이 형이상학의 구도는 너무나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수많은 갈래와 가지치기가 서양학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래와 가지치기의 연결과 접속, 연합과 동맹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결들의 겹침과 만남에서 변곡점을 형성 또는 창안할 것 인지에서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를 데리고 오자. 다시 말하지만 벩송은 비유에 속지 말라고 한다.
플라톤은 유명한 선분의 ‘비유를 아래’로부터 설명하면, 그림자, 사물, 도형, 이데아로 네 단위 또는 네 가지 공통상태를 설정했다. 설명 상으로, 사물을 그림자를 통하여 인식하듯이, 이데아를 도형의 추론을 통해서 직관한다. 벩송에 비추어보면, 그림자를 추론하여 피라밑의 높이를 계산하고, 그 계산의 방식을 여러 기하학적 차원으로 추론하여 원리를 찾는다. 그런데 그 원리는 실재하는 그림자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 원리란 상징으로 귀결로서 이미 만들어진 것(tout fait)일 뿐이다. 만들어지고 있는(se faisant) 모든 것의 기원(archê)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 기원의 그림자를 플라톤은 ‘플라노메네 아이티아(방황하는 원인)’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휠레(질료)라고 불렀으며, 로마와 중세는 물질이라 번안하였고, 유물론이라는 관점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벩송은 이 기원이 흐름이라는 것이며, 실증적으로는 기억이며 생명이라 보았다. 개인에게 기억 현상과 생명종으로서 개체인 인간에게 생명 현상이다.
이 간단한 도식 또는 도표가 서양 철학사에서 시대마다, 철학자마다 변형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의 차이를 또는 분류를, 철학자마다 관점들을 나열하고 배치하는 것이 연구자들의 논문인 셈이다. 2천 5백년을 거치면서, 이데아(관념)를 중심으로 탐구하는 자들을 플라톤주의자라고 하고, 플라노멘 또는 휠레를 기원으로 탐구하는 자들을 유물론자라고 하는데, 흐름의 입장에서는 자연주의 또는 벩송주의가 될 것이다. 들뢰즈가 간단하게 두 개의 층위를 나누어 상층과 심층이라고 했다. 맑스는 정치경제학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라고 한다. 상층주의자와 심층주의자의 계통학이 우리나라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철학관점에서는, 관념론자와 유물론자라 부르는데, 벩송은 관념론과 경험론, 형상론과 실재론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분류학인지 계통학인지를 여기서 구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앵글로 색슨의 유물론이란 용어에는 문제가 있다. 원자론적 유물론이라고.
간단히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지성(이성: 이 용어 문제 많다)이 탐구하는 대상이 있다고 여기는 인식론(지식론, 에피스테메가 아니라)은 유물론의 근거를 원자와 빈것에 둔다는 것이다. 이 유물론은 불변하며 움직이지 않는 미세한 작은 단위(아톰)들이 결합 또는 조합하는 방식으로 세계의 사물들이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미세 단위의 결합은 마치 논리실증주의의 단어(원자)와 문장(분자)처럼 여기는 것과 같고, 구조주의에서 음소와 음절의 조합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 물질은 고정된 단위가 아니며 흐름이라는 생각으로, 앵글로색슨의 원자론적 입장과 언어구조주의 입장을 벗어나는 새로운 철학사를 전개하려고 노력한 이들이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이다. 후기구조주의를 후기근대성(포스트모더니즘)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의 특성은 물질의 차원이 흐름 또는 운동성, 강도성, 속도성이라는 것이다. 일단 플라톤에서 선분의 네 가지 비유가 서양철학사에서 우편향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물론 벩송은 상층주의자들이 세 가지 오류를 범했다고 한다. 첫째 질료 또는 자연이란 단위를 설정하여 하나의 통일성이라고 한 것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둘째 이런 통일성 또는 통일성에 따른 위계질서로서 세울 수 잇다는 것도 오류인데, 인간이 사유에서 언제 그런 지성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오류는 분명해진다. 인류사에서 구석기까지는 아니라도 신석기, 구리, 청동기에 이르기 까지 이데아와 같은 관념의 동일성과 불변성을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대의 관념 또는 이데아는 시대의 변곡점들 중의 한 형식일 뿐이다. 지구의 변화와 생명체의 진화에서 변곡점은 지층이든 생명체든 시기에 맞는 생산과 생성이 있어 왔다. 생명체의 시기들 마다, 자연의 자기 변형으로 생긴 새로운 형태를 진화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존재와 무 같은 것이 부동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질서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현존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이 천문학(점성학), 물리학, 화학(연금술),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에서 경험을 토대로 실증적 학문들이 제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야, 정지(부동)의 형이상학이 운동(흐름)의 형이상학으로 바뀐다. 그 변곡점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진화론이 있다. 지성의 발달에서 형상을 먼저 두고서 현상들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현상들의 발생에서 여러 기호들의 등장으로 사유 방식이 바뀌었다.
사회에서 상층이 심층, 즉 상부가 하부를 지도하고 명령하는 체제(un régime)에서, 하부의 활동과 갈래들이 문화를 창안하고 발명과 창조한다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어 보았다. 이점에서 상부와 하부 사이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표면의 양면성을 좀 더 깊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실과 사건에는 다의성이 있다고. 이런 관점에서 크게 보아, 형이상학적으로 자연을 이중성으로 보아왔던 점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자연이 인간의 대상 또는 객체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연이 자발성이며 자기 생산성이며, 자연이 주관성을 생성하며 주체화한다. 인간의 자연 즉 인간 본성이다. 다른 한편 직관도 양면성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부동의 이데아의 파악도 직관이며, 질료의 흐름과 함께 하는 것도 직관이다. 전자의 직관은 추론적 지성(이성, 로고스)이며 후자의 직관은 내재적 직관으로 누스에 가깝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방향일 것이다. 이데아로부터 질료로부터.
우리는 이런 사유 양태들의 변형을 도식으로 그려 볼 수 있다. 벩송은 말한다. 비유에 속지 말라고.
* 도식 1.
플라톤의 변형 -- 공동체 --- 제도상 영토화 -- 정치체
... 선의 이데아 ... 체제 .... 구체제, 교회 ... 극우 소수정당
..... 이데아들 ... 체계 ... 유일 과학 ... 국민의힘
..... 도형들/ 물체들 ... 기구(제도)/장치(단체) .. 인문/자연 과학 ... 민주당/정의당
..... 질료들 ... 다발 ..... 자연(문화) ... 노동, 생태
..... 흐름(무) ... 생성 .... 인민(자주화) ... 민중, 창발
이 내용을 전부 설명하자면 길지만, {마실에서 천사흘밤}에 곳곳에 흩어져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검색란에서 용어들을 입력하여 찾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보태야 할 것이다.
우선 중간으로 설정한 표면의 이중성에 대하여 말해보자. 물론 플라톤은 이런 이중성을 소피스트편에서 시뮬라크르(모방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했다. 두 가지 시뮬라크르가 있다고. 이데아를 본 딴 모방체와 무질서의 질료로부터 무작위로 나온 모방체라는 두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전자의 모방체는 이데아를 본뜬 모방체로서 좀 모자라지만 그래도 이데아를 지향하는 것으로 여겼고, 아테네 시민도 그와 같은 모방체로서 긍정적이다. 이에 반해 후자의 모방체는 기준도 없이 지멋대로 생긴 것으로 어쩌다 닮은 것으로 여겼고 부정적이며 소피스트들이라고 했다. 훨씬 시대를 지나서, 생물학의 진화론이 성립하고 나면, 어떤 모방체가 등장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생성하는 기나긴 시간(흐름)에서 서로 닮은 그리고 다른 변이를 만들면서 이어져(유전되어)온 모방체들이 있다. 이 모방체는 원본이 없지만 지금까지 있어온 것을 부정하지 않고 내포하고 있다. 이 모방체가 실재성이다. 원본을 본뜬 모방체가 허위 또는 망상이다. 플라톤주의에 대한 사고의 전도, 또는 전복이다.
나로서는 도형과 물체라는 두 용어에서, 잘 들여다보면 하나에 대한 두 가지 관점과 같아 보인다. 하나는 외적 형상에 대해 도형을 생각하고, 다른 하나는 형성에서 조합에 대한 설명과 닮았다. 전자에서 플라톤주의를 후자에서 데모크리토스주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내부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형상이 먼저이고 조합(조립)은 다음이라는 설명이 지배해 왔다. 그런데 물리학과 생물학이 단위(원자든 세포든)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조합(조립, 조작) 이전에, 물체든 생명체든 질료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tout fait)보다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또 실재적으로 생명체는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이런 생각은 근대성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데,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면, 현 생명체에서 이데아의 원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즉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논리는 생명의 논리에서 허구라는 것이다. 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전복의 논리로 보면, 현 생명체는 과거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새로운 것, 새로운 생성, 새로운 창조물이다. 변이의 과정이다.
벩송은 아버지의 아버지, 등등으로 올라가 아버지가 있음을 사고하는 지성이 먼저 있다는 것조차 논리적 악순환, 즉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라고 한다. 들뢰즈는 이런 아버지의 아버지를 만드는 것이 종교에서 그리고 정신분석학에서 행하는 가부장 체계(filiation)이고, 이를 근거로 구체제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물론 구체제를 뒤엎은 혁명은 프랑스혁명으로, 왕과 주교를 단두대에 보냈다. 그렇다고 체제가 무너지면 체계조차 무너지느냐 것은 아니었다.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편리와 공리인데, 이는 실용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고, 지성의 실용과 안전에 안주하는 일상화에 머문 것이다.
이성이라는 이상한 개념도 일상화에서 또는 일제잔재로서 허구적으로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성과 감성 위에 이성이라는 통일적 인식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철학사에서 이성이란 용어를 들여다보면, 이유 또는 근거인 경우가 더 많고, 인식능력으로서 이성이라는 개념은 독일철학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이성이 순수한 또는 기원적 근거와 이유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던가. 정신(l’esprit)과 심성(the mind)라는 일상적 용어가 철학적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유와 근거를 아는 어떤 힘 또는 권위가 있다고 여겼을까? 나로서는 상층의 종교적 권위과 국가적 권력의 견고한 결탁에서 원리와 기준이 무너지려하는 시기에, 무너지는 상층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 비판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기원과 이유를 잘 모르지만, 칸트는 도덕적 원리로서는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펼친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미루자.
상층에서 아래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사고방식이 있고, 자연에서 스스로 생성하고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사유하는 양식이 있다. 후자에서 푸꼬는 주체라고 하지 않고, 주체화과정(subjectivation)하여, 생명(삶)의 새로운 가능성의 창안으로 사유한다고 한다. 심층으로부터 발생적이고 생장적인 사유의 과정을 동일하게 되풀이하는 반복이 아니라, 여러 다발들이 자기 방식으로 반복들을 하면서도, 이와 다른 다발들에 영향과 연관 속에서 공감하며 공명하며 새로운 반복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들뢰즈가 플라톤에서 빌려와 플라톤주의의 시뮬라크르의 전복을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도식 1에서 논리의 방향을 두 가지, 즉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두 가지 방향을 생각해보자. 소크라테스의 다양성을 이어받은 플라톤은 양쪽을 사유했다고 하자. 그리고 서양철학사는 상층에서 심층으로 접근해가는 2천 5백년의 역사이다. 들뢰즈 표현으로 자료로서 언어학적인 기원으로 기원전 587년 경에 있었다고 하더라고, 기껏해야 2천 6백년의 역사이다. 이 역사의 전복이 들뢰즈/가타리의 것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서양철학사 과정에서 곳곳에 있어왔다는 것이다.
플로티노스, 루소, 스피노자 등을 말하기보다, 불교와 연관이 있는 니체가 더 흥미롭다. 들뢰즈는 니체의 사유에서,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그리스인들 사유와는 다른 전형을 보았다. 삶은 상층의 사고의 습득과 지배가 아니라, 심층의 발현과 창안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사유의 전복을 실행하고 있는가? 상층은 모습을 바꾸며 여전하다. 지금의 지배 체제는 국가체제라기보다 자본체제이며, 미국제국의 것이다. 제국은 여전히 상층의 명령에 의해 악을 규정하고, 따르지 않는 쪽을 배제한다. - 배려한다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 플라톤주의자들이 이데아를 원본과 기준으로하고, 다른 극을 무, 결핍, 결함, 악 등으로 설정하여 만들어온 역사였다. 니체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며 생명론자이다. 그 허무에서 상층 저항이라기보다, 상층과 연관없이 허무의 권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 허무라고 규정했던 것이 생명이다. 그 생명 활동이라는 권능의 존속과 생성, 창발을 들여다본 것이 들뢰즈의 니체였다. 왜 불교인가? 삶의 과정은 깨달음의 과정이며, 깨달음은 이루어진 것이 몸에서 드러나고 행해진다. 몸이 사라지면 열반에 든다. 무지의 무(생명)에서 출발하는 진솔한 불교는 이런 과정을 숨쉬기에서부터 신체와 생리 등으로 과정을 겪어 간다. 산중에서 벽을 쳐다보는 것은 어쩌면 조주 선사의 후예일 수 있다.
명상과 삶은 방향이 다르다. 어디에 위치하느냐는 삶의 과정에서, 다발들의 각 모습을 개인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생명의 끈을 달고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다발들 중의 하나로서 다른 다발들과 연대와 연합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상층의 위계(la filiation)와 달리 동맹(l’alliance)이라 한다. 생성 중인 개인들은 서툴고 미숙하지만 사악하지 않다. 상층의 완전자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음에도, 이를 빗댄 자들이 상층을 빌미로 말 안듣는 하부의 인민들을 배제해야할 악으로 또는 식민지의 노예나 짐승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강산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여 근래 120여년을 거쳐 왔다. 지난 70여년 간을 우리는 서구의 산업화 270여년 과정을 시뮬라크르 하느라, 생성하는 인민 또는 창안하는 대중이 있다는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그 영토 속에서 흐름은 있어왔고, 게다가 저항과 항쟁의 분출선과 용출선을 경험했다. 경험의 총체에 대한 지각과 감화에서는 관념과 개념의 체제와 체계와는 전혀 다른 활동성이 있다. 지각에는 기억을 통한 공감이, 감화에는 감응과 감동을 통한 공명이 있고, 현재도 흐르고 있다. 그 다수의 인민에서 분출선이든 탈주선이든 그 흐름이 소수로 보인 것은, 현실의 각질에 균열을 내고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이 소수였기 때문이지, 흐름의 거대함과 강도는 상층에 비해 수적으로는 절대 다수이다. 이점에서 다양체가 권능이며, 루소가 말하듯이 인민은 자기의 권리를 양도하지 않으면서 일반의지로서 자유를 행사할 수 권능이 내재해 있다. 그 인민은 주체화 형성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고, 이 과정의 노력이 불교의 보살행이다. 그래서 칸트가 원인과 근거에 대한 무지를 넘어서는 데, 그래도 상층으로서 규범과 같은 것을 설정하여 도덕 형이상학이라 했다. 그런데 니체는 권능의 발현으로 발생적 도덕을 설파하면서, 아마도 불교 경전의 아함경과 법구경을 들여다보았으리라.
다음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 이전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8개월 사이의 과정에서 심층의 생성과 상층의 지배라는 두 방향에서, 각각에는 어떠한 기구와 장치들이 움직이게 될 지는 아직은 모른다. 코로나의 창궐로 생태계의 변화로 인하여 방향의 전환이 스며들어, 이번 과정에서 새로운 장(위상)을 인민이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으로 보인다.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 평화라는 용어에 공감과 공명을 이루어나갈, 들뢰즈 표현으로, 전쟁기계의 활동이 솟아날 것이다. 전쟁(la guerre)이 아니라, 사유투쟁(la lutte)과 생태전투(le combat)를 통하여 표면의 각질에 균열을 내고 용출선을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1년 반이나 지난 전환기에서, 긴 것 같지만 짧은 이 과정에서, 다발들 중에서 장치들의 연대와 연합을 통하여 구체제를 벗어나게 하는 표면을 형성하기를 바란다.
이런 과정에서 도식상의 자리(위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화와 전복은 회오리처럼 상승하며 확장된다. 도식으로 그리기 어려워서, 도식 1에 빗대어 그려본다.
* 도표 2
.. *** 숭미파, 부일파 000)
.. - 상층 ** 교회종파, 마) --- 전광훈
... * 산업화 수혜자 라) 진중권
... 국민의 힘
... .. --- 표면/안밖 민주당/정의당 다) 유시민
... 노동당 조국
... * 노동과 여성 - 나) 홍세화 --- 송기인
.. - 심층 ** 통일과 생태 가) 박노자(불교 친화적)
.. *** 탈주선들 111)
다)의 양면성은 현 정국에서 보면, 대통령 문재인이 안밖으로 좌(나)로 밀려나 종북으로 몰리는 것 같지만, 대통령의 직무상으로 중간을 취하는 것이고, 대통령보다 상층 편에 기운 사람들이 많이 비판하고 있어서, 좌파로 몰아붙이니 심층으로 몰린 것으로 보일 뿐, 여전히 표면의 겉면이다.
간단하게 보면 라)에 속하는 대선 후보자들로는 윤석열과 최재형이 있고, 같은 부류에서 다른 한편 대선후보자들로는 홍준표와 유승민 정도일 것이다. 상층주의자들은 시대의 허구를 드러낼 뿐일 것이다. 현 집권 정당으로 다)인데, 다)의 민주당은 기본적인 성격상으로 표면의 밖이다. 즉 우파이다. 좋게 말해서 중도우파이다. 다)에서 정치적 성향은 나중에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극우파에 속하는 언론과 검찰 권력에 대해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서 겉면과 안면으로 구불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경향으로 보아, 다)의 양면성에서 이재명은 겉면에 속하고 정세균과 추미애는 경계에 머물고, 이낙연은 안면으로 세분화해 볼 수 있다. 물론 각 후보자들이 치장을 걷어내고 내용물을 드러낼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즉 정식으로 각 당에서 대선 후보자가 정해지면 어떤 모습일 것인가는, 내가보기에, 이 세분화에서 공감과 공명하는 집단들에 의해서 새로이 (경계)페라스가 그어질 것이다. 결선투표제가 있어야 분명한 경계선을 볼 수 있을 것인데...
도표는 불완전하지만 한때 진보진영으로 여겼던 이들의 위상도 표현해 볼 수 있다. 이들은 각자가 서서히 자기 위치를 드러낸다. 그들 각각의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리라. 진중권은 이미 라)쪽에 포섭된 글을 쓰고 있고, 유시민은 민주당 내에서 안면(좌파)으로 몰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겉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홍세화는 노동당 소속이기도 하지만, 전쟁기계처럼 인민 속에 흐르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국인으로 귀화한 박노자는 심층적인 면을 더 많이 제시했고, 게다 불교 친화적인 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구별하다가 보니,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1919년에 독립선언의 두 종류가 있었다. 대한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이다. 대한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에 만주 길림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며, 민족의 최초의 독립 선언서이다. 2·8 독립선언과 3·1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3·1독립선언서[조선독립선언서]는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 역사교과서에는 왜 전자에 대해 거의 말이 없었던가. -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선현들의 과정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쪽은 일본을 통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다. 다른 쪽은 새로운 국가의 정립을 위해 시대의 카이로스를 보아야 한다고 했을 것 같다. 전자에서는 러시아를 이긴 일본과 앵글로 색슨계의 과학과 철학의 수용에 빠져있는 반면에, 후자에서 새로운 전기로서 러시아 혁명과 혁명의 기원인 프랑스 혁명을 알아야 한다는 쪽일 것이다. 이들 사이의 간격은 아직도 쪼개진(fendre) 채 남아있다.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진 문물의 습득과 개조라는 측면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와 러시아처럼 새로운 정체와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쪽이 있다. 이런 차히에서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한쪽은 전통의 중국이며, 다른 한쪽은 새로운 중국인데, 이들이 접하는 방식에 따라 독립운동의 차이는 드러날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을 들여다본 것은 이규성의 중국현대철학사론 획득과 상실의 역사(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06 30)에서 볼 수 있다.
1859년 이래로 서구도 그때서야 방향의 전환 그리고 학문의 전복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역학과 전자기학에 이어서, 1859년에 비유클리드 기하학, 진화론, 인류학회, 언어학회 등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해에 서학이 아니라 동학이라는 기운이 솟았다. 용출선을 밀고 나갈 여러 다양한 분야가 아직 미비했을 뿐이다.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불행하게도 구체제의 중국과 제국주의 하수인인 일본이 우리의 자주성을 표면에서 심층으로 주저 앉혔다. 흐름은 매끈한 공간을 타고 번진다. 1910년 늑약을 기점으로 더 멀리 흘러갈 수밖에 없었을까, 그 전쟁기계들은 파를 어떻게 일으켰을까,에 대한 진솔한 회상을 할 기회가 없이, 세계대전과 남북전쟁을 겪어야만 했다. 남녁에는 앵글로색슨 사상이 지배하여 파란안경을 쓴 세상되었고, 그 사고 방식에서 나온 공통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반성과 성찰은 추억들 사이에서 세분화하여 미미하게 흐른 흔적을 되찾아, 기억의 권능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은 총체적 자료에 대한 검토와 다발의 갈래들 사이의 연결을, 한걸음 더 나아가 자발성과 자주성의 뿌리에까지 사유하는 것이다. 그 사유의 과정은, 인격에서 제2의 탄생인 18세에서 전환 또는 전복적 사유를 이룰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와 플라톤의 젊음의 결합.
철학만이 아니다. 정치계도 변화를 겪는다. 우리나라도 18세 이후에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등교육을 마치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진 것으로 여긴다.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리듯이, 그럼에도 점수(漸修) 또 점수의 과정을 거쳐서, 무엇인가 되기의 성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25세에 집행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갖는 것은 과정에 대한 노력의 방향을 설정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반성과 성찰을 넘어서 사유의 확장을 필요로 한다.
철학에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형이상학, 인식론, 인간론, 사회론이다. 형이상학에서 존재와 현존, 공간과 시간, 행복과 자유, 신성과 종교성, 인식론에서 논리, 물리, 생물, 심리, 인간론에서 무의식과 의식, 감성과 지성, 관념과 개념, 추억과 기억, 사회론에서 권력과 권위, 투쟁과 폭력, 노동과 자본, 체제와 제도, 제국과 노마드.
이 네 가지 분류는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에서 네 등분과 전혀 달라 보이지만, 삶의 총체적 과정과 각 분야에서 노력의 질과 강도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전복된 사유에서, 형이상학과 인식론이 심층의 두 선분이고, 인간론과 사회론이 상층의 두 선분으로 보면,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를 거꾸로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네 가지의 분류와 내용에 대해서는 프랑스고교철학에서 다루고 있고, 아직도 그들은 내용에 대해 개편과 확장을 하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완전과 절대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성과 성찰을 통한 사유에서 완전히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섯살 꼬마에게 전설과 같은 범(밤)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과 자유를 심어 놓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마실에서 천사흘밤}의 “왜 철학을 배우고 익히려 하는가!”에서도 볼 수 있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고등교육을 마치고도, 경계 없는 영역 ‘바깥’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형이상학에서 인식론으로, 인간론에서 사회론으로 회오리처럼 퍼지며 확장될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다양하게 부딪히기도 하고 결속하기도 하는 우여곡절이 있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너도 나도 누구나 이 세상을 뜬다는 것이고, 그 많은 과정에서 올림픽 선수가 다년간 몸만들기를 하여, 누구보다도 실력을 잘 보여주듯이, 리좀의 형성에도 노력과 과정은 필수적이고 또한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창조하면서 사유과정을 겪는다. 그 솟아나는 사유에서 자유라는 자발성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항상 또는 살아가는 내내 당연히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력은 계속된다.
삶의 터전에서, 생명체의 지구 또는 토지에서 자발성과 자주성을 갖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과정으로서 있었고, 그 과정 중에서 카이로스가 있었고 또한 있을 것이다. 평화통일영세 중립코리아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권능과 더불어 노력과 실행이 카이로스를 창안해 줄 것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이는 표면의 양면성에서 안과 밖에서 함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카이로스. 지난 세대와 다음 세대(어제-이제-아제) 사이의 줄탁동시는 소크라테스의 지혜와 플라톤의 젊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70여년의 과정에서 각 학문들이 제자리를 찾아내고, 다음세대가 표면의 균열을 뚫고 분출하는 시기. 한반도와 8천만의 줄탁동시, 카이로스가 고원을 형성을 할 것이다.
평화통일영세중립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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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파일 {프랑스2020정당들} 참조.
# 프랑스 정당들 : 프랑스 위키피디아 2020 05
극우파, 급진 우파 - 19 정당 분파들
우파 - 12 정당 분파들
중도파 - 18 정당 분파들
좌파 - 20 정당 분파들
급진좌파, 극좌파 - 14 정당 분파들
# 정당 당수 또는 지도자들을 아래 정리해야 하는데, 시간 나는 대로 덧붙이기로 하고 .. ... (53PKH) 좌로부터 우로...
[급진좌파, 극좌파] * Gauche radicale et extrême gauche
1910 메트롱(Jean Maitron, 1910-1987) 프랑스 역사가, 아나키스트 운동사 전공, 프랑스 공산당, L'anarchisme, ici et là, hier et aujourd'hui, 1973
1914 코르네(David Korner, 가명 Barta (dit aussi M. Gauthier, A. Mathieu, Albert), 1914-1976)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 루마니아 유태계 가계.
1926 랑디니(Léon Landini, 1926-) 프랑스 정치가, 레지스탕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계. 맑스레닌주의자..
1944 뒤떼이(Jean-Pierre Duteuil, 1944-) 프랑스 아나키스트 운동가, 편집자. 녹색당의 꼰-방디(Daniel Cohn-Bendit, 1945-)와 가깝다.
1953 아기똥(Christophe Aguiton, 1953-) 프랑스 사회학자, 조합운동가, 정치운동가.
1950 쉬바르디(Gérard Schivardi, 1950-) 프랑스 정치가. 국제 공산주의에 참여.
1951 멜랑숑(Jean-Luc Mélenchon, 1951-) 프랑스 정치가. 프랑스 사회당(PS)에서 2009년에 분파(Parti de gauche: PG)로, 2016년에 프랑스 불복종 분파(La France insoumise FI ou LFI)로 창설.
1966 셰네 (Vincent Cheynet, 1966-), 기자. 2003년 신문 Décroissance 창설자.
1969 루셀(Fabien Roussel, 1969-) 기자, 프랑스 정치가,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1973 부뗄자(Houria Bouteldja, 1973-) 알제리 태생, 프랑스-알제리 여성 정치 운동가. 반인종주의자.
1974 부장스노(Olivier Besancenot, 1974-) 프랑스 극좌 정치가. 낭떼르 대학출신, 우체부.
1980 메스트르(Abel Mestre, 1980-) 프랑스 기자. 프랑스 공산당지지. 극좌파 인성자유주의에 관심.
[좌파] * Gauche
1939 슈벤망(Jean-Pierre Chevènement, 1939-) 프랑스 고급공무원, 정치가.
1941 슈미나드(Jacques Cheminade, 1941-) 프랑스 아르헨티나 이중국적, 정치가, 수필가.
1946 위(Robert Hue, 1946-) 프랑스 정치가
1951 게리니(Jean-Noël Guérini, 1951-) 프랑스 정치가.
1951 르빠쥬(Corinne Lepage, 1951-) 프랑스 여성정치가, 변호사. 환경보호 주장.
1951 리엔만(Marie-Noëlle Lienemann, 1951-) 프랑스 여성 정치가. 사회당원
1951 슈피겔 (Joseph Spiegel, 1951-) 프랑스 정치가. 사회당원 그리고 공론장(Place publique)당.
1964 라루뛰루(Pierre Larrouturou, 1964-) 프랑스 정치가. fondateur du parti Nouvelle Donne.
1964 생-앙드레 (Stéphane Saint-André, 1964-) 프랑스 정치가.
1967 아몽(Benoît Hamon, 1967-) 프랑스 정치가. 청년 사회당 당수 출신
1968 포르(Olivier Faure, 1968-) 프랑스 정치가, 현 사회당 제1서기
1971 까롱(Aymeric Caron, 1971-) 텔레비전 라디오 기자. 작가, 프랑스 정치가. 생명체를 위한 생태혁명당(en 2018)
1973 모렐(Emmanuel Maurel, 1973-) 프랑스 정치가, 좌파 공화 사회주의자. 옛 사회당원
1973 바또(Delphine Batho, 1973-) 프랑스 여성 정치가. 학생조합 지도자 출신. 현 생태세대.
1974 누비앙(Claire Nouvian, 1974-) 프랑스 여성 생태운동가. 기자, 영화 감독.
1976 라크르와(Guillaume Lacroix, 1976-) 프랑스 정치가.
1976 로지에르(Virginie Rozière, 1976-) 프랑스 여성 정치가. 2014유럽의원.
1979 글뤽스만(Raphaël Glucksmann, 1979-) 프랑스 수필가, 정치가. 프랑스 유럽의원.
1980 베유(Julien Bayou, 1980-) 프랑스 정치가, 비영리단체 운동가. 유럽생태녹색당, 어머니가 마오주의자. 1977 포르셰(Thomas Porcher, 1977-) 프랑스 경제학자.
1983 루께(Maxime Rouquet, 1983-) 해적당. 2009년 후보자.
[중도파] * Centre
1940 까바다(Jean-Marie Cavada, 1940-) 기자출신, 프랑스 정치가, 유럽의원역임 (Génération citoyens, GC) 창당.
1944 아르뛰(Jean Arthuis, 1944-) 프랑스 정치가, 중앙동맹당(l'Alliance centriste)창당.
1949 왜슈터(Antoine Waechter, 1949-) 프랑스 정치가 1994 독립생태운동(Mouvement écologiste indépendant, MEI) 창설자. 유럽의원.
1950 복켈(Jean-Marie Bockel, 1950-) 프랑스 정치가. 상원의원(Haut-Rhin)
1951 바이루(François Bayrou, 1951-) 프랑스 정치인, 수필가. 고전문학으로 교수자격 통과, 가톨릭신자. 2007대선후보.
1954 마르세이유(Hervé Marseille, 1954-) 프랑스 정치인, 라가르드와 친함
1955 라살(Jean Lassalle, 1955-) 프랑스 정치가, 의원.
1958 고베르나토리(Jean-Marc Governatori, 1958-) 프랑스 정치가, 사업가.
1961 모랭(Hervé Morin, 1961-) 프랑스 정치가, 2007 중심당(Les Centristes: LC) 창당.
1963 폴리오(Philippe Folliot, 1963-) 프랑스 정치가, 의원(Tarn), 현 중앙동맹당(l'Alliance centriste) 당수
1963 뻬르(Denis Payre, 1963-) 프랑스 사업가, 2013년 “우리는 시민들당”(Nous Citoyens: NC) 창당-현 당수 제르몽(Alexia Germont. s.d.)
1967 라가르드(Jean-Christophe Lagarde, 1967-) 프랑스 정치가, 시장, 국회의원 역임. 2007바이루 대선후보지지
1973 뤼지(François de Rugy / François Goullet de Rugy, 1973-) 프랑스 정치가. 장관역임
1977 마크롱(Emmanuel Macron, 1977-) 현 프랑스 대통령
1982 게리니(Stanislas Guerini, 1982-) 프랑스 정치가, 사회당원 경력, 할배 때 파시즘을 피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민,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Kahn)과 친함.
또르트라(Nathalie Tortrat, s.d. 신생태민주당(Nouvelle Écologie démocrate NED)
르부셰(Jacques Leboucher, s.d.) 자연동물인간운동(Mouvement hommes animaux nature, MHAN),
제르니공(Yves Gernigon, s.d.), 프랑스 정치가, 2011년 창당: 유럽연맹당(Parti fédéraliste européen, PFE) (53PLE)
[우파] * Droite
1935 구스따(André Goustat, 1935-)프랑스 정치가. 사냥 낚시 전통 고수(Le Mouvement de la ruralité, LMR). 현 당수 쀠잘롱(Eddie Puyjalon, 1959-)
1949 마노벨리(Bernard Manovelli, 1949–1995) 프랑스 법률가, 정치가. 1993년 토끼풀당(Le Trèfle)창당. 현 리뻬르(Albert Lapeyre, s.d.)
1953 빌빵(Dominique de Villepin, 1953-) 프랑스 정치가, 변호사, 작가. République solidaire (RS)
1957 아슬리놀라(François Asselineau 1957-) 프랑스 고급공무원, 정치가.
1959 쟈콥(Christian Jacob, 1959-) 프랑스 정치가. 농업 개발자. 농업협동조합운동가. 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UMP)에서 Les Républicains (LR)으로.
1960 아들린(Yves-Marie Adeline Soret de Boisbrunet, Yves-Marie Adeline, 1960-) 작가, 움악하자. 왕당파 운동(Alliance royale AR).
1961 미게(Nicolas Miguet 1961-) 프랑스 정치가, 기자. Rassemblement des contribuables français (RCF) (53PLH)
1962 프로망땅(Jean-Christophe Fromantin, 1962-) 프랑스 기업인, 정치가. Territoires en mouvement (TEM)
1963 쁘와송(Jean-Frédéric Poisson, 1963-) 프랑스 정치가. 당수(Parti chrétien-démocrate: PCD).
1964 노르뜨(Bruno North 1964-) 프랑스 정치가 (Le Centre national des indépendants et paysans: CNI ou CNIP)
1967 뻬크레스(Valérie Pécresse, 1967-) 프랑스 여성정치가, 재선의원. Soyons libres (SL),
1974 리에스터(Franck Riester, 1974-)프랑스 정치가. 마크롱(Emmanuel Macron, 1977-)지지.
[급진우파, 극우파] * Extrême droite et droite radicale
1928 르 펜(Jean-Marie Le Pen, 1928-) 카톨릭. 프랑스 정치가. 극우의 대표. 첫결혼 Pierrette Lalanne (1960-1987), 둘째 결혼Jany Paschos (depuis 1991) / 그의 첫째 딸, 마린 르 펜(Marine Le Pen, 1968-)
1942 비알(Pierre Vial, 1942-) 대학인, 프랑스 극우 정치가. Terre et Peuple
1943 봉빠르(Jacques Bompard, 1943-) 프랑스 정치가, 오랑쥬 시장과 하원의원 역임. 치과의학박사.
1946 까뮈(Renaud Camus, 1946-) 프랑스 작가, 정치운동가. 1970년대 사회당원이었으나, 2000년 반유대주의로 고발당했다.
1949 레깽(Henry de Lesquen, 1949-) 고급공무원, 프랑스 정치가. 프랑스 라디오 원장.
1949 메르레(Bruno Mégret, 1949-) 프랑스 고급공무원, 정치가.
1956 꾸또(Paul-Marie Coûteaux, 1956-) 프랑스 고위공무원, 수필가, 정치가. 공법학 석사, 박사과정에서 국제관계 공부. 유럽의원 엮임.
1957 랑(Carl Lang, 1957-) 프랑스 정치가. Front national (FN)운동에 관여했다.
1961 뒤뽕-떼냥(Nicolas Dupont-Aignan, 1961-) 프랑스 정치가. 법학학사와 경영학 공부.
1965 우쉬끄(Karim Ouchikh, 1965-) 프랑스 변호사, 정치가. 알제리 가정 출신 1960년이래 프랑스 국적.
1968 마린 르 펜(Marion Anne Perrine Le Pen, dite Marine Le Pen, 1968-) 프랑스 여성 정치가. 철학 시험에서 4점(une note de 4/20), 그 다음 통과 후에 법학공부. (부: Jean-Marie Le Pen, 1928-; 모: Pierrette Lalanne, 1935-)
1970 에스까다(Alain Escada, 1970-) 벨기에 극우파 운동가. 전통카톨릭.
1971 로베르(Fabrice Robert, 1971-) 프랑스 정치운동가. 역사로 석사학위
1981 필리뽀(Florian Philippot, 1981-) 프랑스 고위직 공무원, 정치가. 파리 상업고등교육학교 출신. 바칼로레아에서 정치학(Sciences Po)을 통과했으니 오랄에서 실패했다.
1989 보끌랭(Vincent Vauclin, 1989-) 프랑스 정치운동가, 수필가. 프랑스 극우파, ‘프랑스분파당(Dissidence française, DF)’
강드랭(Clément Gandelin, s.d.) Génération identitaire (GI)
시몽(Jean-François Simon, s.d.) 1983sus Parti nationaliste français (PNF) 창당.
샤세(Thibaut de Chassey, s.d.) 프랑스 정치 활동가.
***
1950 오브리(Martine Aubry, née Delors 1950-) 파리태생, 사회당(PS), 릴 시장(2020-2026)
1955 위르믹(Pierre Hurmic, 1955-) 좌파 녹색 생태(EELV: Europe Écologie Les Verts)당, 보르도 시장(2020-2026)
1959 안 이달고(Anne Hidalgo, 1959-), 스페인 산 페르난도 태생, 릴 3대학에서 노동 사회학 석사. 박사과정 마침. 프랑스의 정치인, 현 파리 시장(2016-2020:재선).
1966 까스타네르(Christophe Castaner, 1966-) 프랑스 정치가. 엑상프로방스 법학부, 사회당, 내무부장관(2018, 10월)
1975 발로(Boris Vallaud, 1975-) 레바논 베이루트 출생, 프랑스 고급공무원 정치가. 사회당 대변인 엮임, 2017년 하원의원.
1977 발로-벨카셈(Najat Vallaud-Belkacem, née Najat Belkacem, 1977-) 모로코 태생, 프랑스-모로코인(franco-marocaine), 여성정치가. 사회당원, 여성부장관, 여성청소년부 장관, 교육부장관,
1978 페이앙(Benoît Payan, 1978) 마르세이유 태생, 프랑스 사회당 정치가. 마르세이유 시장(2020-2026)
1979 느디아예(Sibeth Ndiaye, 1979-), 세네갈 출생, 2016 프랑스 국적, 프랑스 여성정치가.
1992 까멜리아 조르다나(Camélia Jordana Riad-Aliouane, dite Camélia Jordana, 1992-) 툴롱태생, 프랑스 가수, 배우. 할배가 알제리에서온 이민자.
2020 La République en marche (LREM) Emmanuel Macron(1977-) en 2016, Stanislas Guerini(1982-). 우파와 동맹(Rouen, Tours, Angers, Strasbourg, Lyon, Bordeaux, Clermont-Ferrand, Toulouse, Nice.)
(첨: 9:04, 54S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