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책꾸러미
책 속에 담긴 장애를 헤아려 보다
이연호 춘천지회
함께 사는 사회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의 시작은 타인의 상황을 헤아려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죠. 나 자신도 이해받길 원하고 때론 버거운 일상에 남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더구나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들을 생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의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타인을 조금 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헤아려 보자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책 속에 담긴 ‘장애’ 이야기를 통해 나의 장애 감수성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내가 바라보는 장애에 대한 시선은 어떤 것인지, 또한 알고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혹시 동정과 연민의 감정으로만 장애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서툴지만 책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장애를 헤아려 보려 합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글|사계절|2018
주인공 수지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을 소리 대신 공간으로 이해하며 느끼죠. 자신의 집을 영혼의 지도라고 생각하는 수지에게는 살고 있는 공간이 또 다른 세계가 됩니다. 수지에게는 엄마와 할머니, 고모가 있습니다. 엄마는 수지의 청각장애를 자신이 모두 받아안겠다는 듯 말이 없고 슬픈 얼굴과 그림자 같은 존재로 살아가죠.
그에 반해 유쾌하면서도 자기애가 강한 할머니는 수지를 잘 이해해 주는 존재입니다. 수지는 듣지 못하는 것을 불편해하지도, 장애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수지에게 수화 대신 구화법을 배우게 하고 집을 판 돈으로 인공 와우 수술도 받게 합니다. 하지만 수지가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두 수지가 세상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한 일이라는 이유로 결정한 일입니다.
하지만 수술 후 소리를 듣게 된 수지는 오히려 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지는 혼란스러움과 인공와우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던 중 수지는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나는 엄마로 인해 혼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외로움을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한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으며 새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인공 와우 수술을 위해 검사를 하던 중 수지는 자신이 아기 때 열병으로 청각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왜 자기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분한 감정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너 마음 편하라고’, ‘우릴 원망할까 봐’, ‘사실대로 말한다고 듣게 되는 것도 아니잖냐.’라는 말만 듣게 되지요. 수지는 어른들이 자신의 판단과 대처에 대해 비난받을까 봐 해 온 거짓말을 원망합니다. 정작 수지에게 필요한 것은 잘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존중받는다고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자폐 아들과 아빠의 작은 승리》
이봉 루아 글, 그림|김현아 옮김|한울림스페셜|2018
자폐 아들과 아빠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자폐 진단은 전문가가 내리지만 내 아이는 내가 키우겠다는 신념을 갖고 시도해 온 도전과 작은 승리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일러스트 작가인 본인의 경험이 담겨 있는 그래픽 노블입니다.
작가는 스스로 제일 어려웠던 것이 자신의 상상 속에만 있는 허상의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책 속에서 이렇게 고백하죠.
하지만 쉽지 않다. 아이에게 특별히 바라는 게 없다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멋진 사내아이를 꿈꾼다. (37쪽)
“올리비에, 넌 세상에서 가장…멋…진 나의 아들이야. 널 누구와도 절대 바꾸지 않을 거야.” 나는 이 짧은 몇 마디를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41쪽)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일 것입니다. 책 속에는 아빠가 아들을 위해 자폐에 대해 공부하고 아들을 관찰하며 일상을 지내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새로움을 낯설어하는 아이에게 매일 방 구조를 바꿔 준다든지, 욕조 속의 먼지를 보고 놀라는 아이에게 먼지를 말끔하게 없애라는 전문가의 조언 대신 먼지의 존재를 알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든지, 아이가 혼자만의 세상에 머물지 않게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바깥 활동도 자주 하는 모습 등이 그것입니다.
캠핑장에서 낯선 소리에 놀란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빠는 아이의 무의식에 호소하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말합니다. “지나갈 거야…. 지나갈 거야….”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마법처럼 아이의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아빠는 기쁨과 행복함을 느낍니다. 이 장면은 자폐 아들과 아빠가 겪는 일상에서의 도전, 그리고 작은 승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지의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느낌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최고의 방법은 서로 마주보기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합니다.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
김학중 시|창비교육|2020
저시력 장애인이란 말이 지금보다 더 낯설었던 시절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시집을 만났습니다.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잠수함이 길을 찾는 방법은 음파탐지기를 이용해서라고 합니다. 여기 수중 음파를 듣는 병사 소나수가 있습니다. 음파탐지기를 이용해 길을 찾는 잠수함의 소나수처럼 자신의 길을 찾는 ‘포기를 모르는’ 주인공이 시집 속에 서 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에서부터 졸업까지의 시간 동안 주인공이 겪고 느꼈던 어려움과 불편하면서도 때론 고마웠던 만남들이 시로 담겨 있습니다. 〈입학식〉에는 새로 적응해야 할 학교의 계단 수를 확인하며 건물과 친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담담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유 낙하〉는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도 길을 걸을 때 생각지 못한 턱을 만나 발목을 삐거나 크게는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각장애를 지닌 분들에게는 이런 얕은 턱이 얼마나 큰 벽으로 느껴질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소박한 소원〉에는 자신이 앓고 있는 뇌전증에 대해 숨김없이 말하고, 약을 먹는 시간에 편안하게 보건실에 가고 싶은 친구 진솔이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녹음 도서 3〉에는 복지관에서 빌린 녹음 도서 테이프를 듣던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함께 준비한 교과서 녹음 테이프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읽으며 ‘더불어, 함께’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녹음하는 거 쉽지 않더라,라는 소미
녹음하다 보니 나도 자연히 공부가 되더라,라는 석이
최종편집은 진솔이가 했어,라는 연서
내가 녹음한 건 영어라 네가 알아들을지 모르겠다,라는 진솔
녹음 도서를 듣는 저녁
친구들의 목소리가 책으로 와 주었다.
- 〈녹음 도서 3〉 중에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시를 읽으며 장애로 인해 불편한 시선과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곁에서 굳건히 삶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엄마, 그리고 같은 저시력 장애를 갖고 있는 동생, 친구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플로랑스와 레옹》
시몽 불르리스 글|델피 코테라크루아 그림|박선주 옮김|불의여우|2019
표지의 두 남녀는 빨간색에 흰색 줄무늬가 그려진 빨대를 들고 있습니다. 여자는 눈에, 남자는 입에 빨대를 대고 있죠.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플로랑스와 레옹입니다.
그들의 만남은 수영 강습 시간에 맞춰 바삐 길을 걷던 플로랑스가 지팡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시작됩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미처 못 보고 그만…” 미안함을 표현하는 플로랑스에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저도 제대로 못 본 걸요. 제 눈이 좀 많이 안 좋아서요.”라고 지팡이의 주인인 레옹은 대답합니다. 전부 흰색에 끝부분만 빨간색으로 된 지팡이를 보고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고민한 플로랑스는 “저는 사실 폐가 안 좋아요!”라며 자신의 비밀 하나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서로 도우며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몇 시간 후 카페에서 마주 앉아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어떻게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릴 때는 어땠는지, 나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지 등 사소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조금은 가까워진 듯합니다. 자신은 마치 동그란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레옹의 이야기에 플로랑스는 빨대를 이용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레옹의 장애를 느껴 봅니다. 반대로 레옹은 제자리 뛰기를 한 후 빨대 구멍으로 숨을 쉬어 보면서 폐가 좋지 않은 플로랑스의 장애를 느껴 봅니다. 플로랑스와 레옹에게 이 작은 빨대 하나는 서로를 이어 주는 큰 다리와 같습니다. 플로랑스가 내어 준 팔을 잡고 함께 걷는 레옹. 이 둘의 뒷모습에 설렘과 진심이 느껴집니다.
《물이 되는 꿈》
루시드 폴 글|이수지 그림|청어람아이|2020
‘물,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주문을 거는 듯 그림책은 시작됩니다. 아코디언 그림책으로 만들어져 있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길게 펼쳐지는 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이 어디까지, 어떻게 변화하면서 이어질 수 있는지가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담겨 있어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그 파란 그림들을 따라 나도 함께 물이 되는 듯 편안해집니다. 그림 속에는 물을 따라 함께 유영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물결을 따라 강과 바다를 넘나드는 아이의 모습이 점점 물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처음에는 구명조끼 등 안전장치들의 도움을 받아 물속으로 들어가지만 곧 물과 하나가 된 듯 자유로워 보입니다. 그림책 마지막 장을 덮을쯤 아이는 안전장치들을 벗고 물 위에 편안히 떠 있습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걸까요? 아니면 옆에서 아이를 받쳐 주는 어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처음과 마지막 아이의 표정이 달라진 건 저만 느낀 감상일까요? 무엇이 아이를 편안하게 했는지 계속 책장을 넘기며 살펴보게 만듭니다.
이 책의 글은 노래로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후 노랫말의 ‘물’에서 수중 재활원을 떠올린 작가가 그곳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그려 완성된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노래와 함께 책을 펼쳐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