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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예수께서 한 사람을 고치시다(막 1:40-45; 눅 5:12-16)
다음은 마태가 보도하는 첫 번째 병 고침이다. 예수의 병 고침에 대한 종합어는 4:23-24에 나왔다. 병 고침은 예수의 가르침 및 선포와 더불어 그의 전도 활동의 일부분이다(9:35).
8:5-13예수께서 한 로마 장교의 하인을 고치시다(눅 7:1-10)
모든 군대는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이는 권위를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한 로마 장교가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고, 따라서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다.
8:18-22예수를 따르고 싶어하는 자(눅 9:57-62)
짤막한 이 단락은, 예수의 추종자가 되는 것이 결단과 동시에 예수와 운명을 나눌 마음 자세를 갖기를 요구한다는 것을 말하는 첫 서술이다(16:24-25).
8:28-34예수께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막 5:1-20; 눅 8:26-39)
다음은 귀신 축출에 관한 첫 번째 보도이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드러남으로써 사탄의 세력이 무너짐을 보여준다(12:28).
9:1-8예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다(막 2:1-12; 눅 5:17-26)
이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는 사실은, 악령이 육체적으로 영향을 끼쳐 온전하며 활동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용서함(죄사함)이 육체적이며 정신적으로 완벽한 건강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9:14-17금식에 관한 논쟁(막 2:18-22; 눅 5:33-39)
금식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전통에 따른 또 다른 종교 관행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수의 무리와 세례자 요한의 무리 사이에 놓인 차이점을 보여준다.
9:35-38예수께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다
이 단락은 예수의 활동을 요약한 진술이다. 4:23-24; 막 1:39; 눅 4:44와 유사하다.
출처: 굿 뉴스 스터디바이블 단락요약
8:1-4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다스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의 권위 있는 선포 속에서(5-7장) 그리고 예수의 권능적인 행위 속에서 시작된다. 마태는 이제 8-9장에서 예수의 이 권능적 행위에 대하여 보도한다. 나병환자의 치유 기적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 전수된 것이다(막1:40-45와 해설 참조). 그러나 마태가 이 이야기를 기적사화의 맨 처음에 두게 된 것은 4절 때문에 그렇게 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록 자료('안내' 참조)에서는 산상설교에 곧바로 이어서 이방인 백부장의 이야기가 뒤따라 나온다(<누가복음>에 기술된 순서가 그러하다. 눅6:47-49[평지설교의 결미] 다음에 7:1-10[백부장 이야기]이 이어짐). 예수의 권능적 행동은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예수는 율법을 폐하는 분이 아니라 완성하는 분이다(4 하반절. 5:17 참조). 예수는 자기가 우선 그리고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심을 받은 것으로 알고 계신다(10:5-6; 15:24 참조).
8:5-13 가버나움 (4:13과 해설 참조)은 빌립이 다스리던 지역의 경계선에 가까이 놓여 있었다(눅3:1 참조). 헤롯 안티파스(헤롯*2)는 여기에 비유대인 군인들로 구성된 수비대를 주둔시켜 두었다. 이 백부장 은 결코 유대인이 아니다(10절 참조). 7절은 또한 의문문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꼭 내가 가서 그를 낫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감으로써 부정*하게 된다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그러나 백부장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전권을 높이 평가했다(8-9절). 이러한 귀한 평가와 거기에 대한 신뢰를 예수는 믿음 (10절)이라 부르신다. 믿음이 이렇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에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에 가로놓인 분리의 벽은 순간적으로 이미 극복되며 치유와 구원이 그 비유대인에게도 역시 수여된다(10,13절).
특히 마태의 눈에 이 사건은 계획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는 이방 민족들에게 주는 예수의 약속을 덧붙인다(11-12절. <누가복음>에서는 이 말씀이 다른 곳에 나타난다. 눅13:28-29 참조). 이방 민족들에 대한 예수의 이 약속은 이스라엘에게는 경고의 말씀으로 작용한다. 마태는 2:1-12과 3:9에서 시작하여 21:37-44; 22:1-9를 거쳐서 28:18-20에 이르는 의미상 선을 구축한다. 11-12절(' 많은 사람이 올 것이다 ')의 배경에 대해서는 사2:2-3; 25:6-8; 60:3-4; 렘3:17; 슥8:20-22 참조. 이를 갊 에 대해서는 13:42 해설을 보라.
8:14-1714-16절은 <마가복음>에도 비슷하게 되어 있다(막1:29-34와 해설 참조). 마태에 있어서는 예수는 사52:13-53:12의 고난의 종에 관한 예언을 그의 수난(20:28; 26:28; 행8:32-33; 벧전2:22-25 참조)에서 비로소 성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병든 사람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받아들이시는 곳에서 이미 성취하신다는 것이다('성취인용문'에 대해서는 '안내'를 보라).
8:18-22예수와 그 제자들은 종종 무리가 몰려드는 혼잡을 피하려고 한다(18절. 13:36; 14:13,22-23 참조). 이에 걸맞게 다음 단락에서는 따름* 이라는 주제를 문제 삼는다. 따름의 주제는 특히 제자단(그리고 나중에는 교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제자 집단의 바깥에 서 있던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존경받는 신분과 안정된 삶을 누리는 사람이다( 서기관* =율법학자). 이 사람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했을 때 그에게 확실하게 알려준 것은 그가 고향도 없고 보호막도 없는 처지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가련한 처지는 이 세상에서 인자* 에게 씌워진 운명인 것이다(19-20절). 또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이미 제자 집단에 속한 인물이다(21절). 그는 예수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이 사람에게 예수는 떠나는 것을 거절하신다. 이러한 거절은 모든 경건과 예절과 심지어 율법*에 저촉되는 처사이다(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일 은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선행으로 간주되었다. 토비1:20-21; 2:3-7 참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출20:12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의무이다. 제사장과 하나님께 바친 사람에게만 예외가 허용될 따름이다. 레21:11; 민6:6-7 참조). 그 제자는 이제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예수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선포를 통하여 이 세상에 선사하실 그 '삶'을 철저하게 증언해야 한다(구약 성경의 예언자들도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증언해야 했다. 렘16:5-7; 겔24:15-24).
8:23-27이 이야기는 이미 18절에서부터 시작한다(막4:35 참조). 마태는 두 장면(즉 18절 장면과 23-27절 장면) 사이에 19-22절을 삽입했다. 이렇게 하여 마태는 이 풍랑 기적을 '따름' 주제의 빛에 비추어서 바라본다(23절; 막4:36 참조). 배 는 마태에게 있어서 교회의 의미 상징이 되며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작은 믿음' 안에서(막4:40에는 '믿음이 없음'으로 표시되었다) 좌초당할 위협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거듭해서 오직 예수의 임재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 구출을 받게 된다. 마태는 예수가 따르라고 부르신 사람들을 위협하는 특별한 위험은 '작은 믿음' 속에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6:30과 관련구절 참조).
8:28-34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는 더 장황하게 기술되어 있다(막5:1-20과 해설 참조). 가다라 는 게네사렛 호수(=갈릴리 호수)에서 동남쪽으로 10km쯤 떨어진 도시이다(지도2, 라4).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막5:20 다음의 해설 참조). 특이한 것은 마태는 귀신들린 사람이 둘이었다고 하는 점이다(28절. 20:30; 막10:46; 마9:27 참조). 무덤 은 도시 바깥에 암벽에 구멍을 파서 만든 것이다. 무덤은 귀신들이 즐겨 거주하는 장소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누가 무덤에서 밤을 샌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미친 짓으로 간주되었다. 귀신적 세력의 지배는 최후의 심판 날에 끝장이 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 때가 이르기 전에 (29절) 지금 이미 예수가 그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러한 언급의 배경에는 아마 예수의 능력이 오순절 이전에는(28:18-20 참조) 아직 본격적으로 이방 지역에 미쳐서는 안 된다는 사상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15:24 참조).
9:1-8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에 더 자세하게 기술된다(막2:1-12와 해설 참조). 본 동네 (=그의 동네)는 가버나움을 가리킨다(4:13 해설을 보라). 마태가 하나님이 이런 권세를 주신 사람들 (원문에는 복수형임)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끝마무리를 지을 때에(8절), 마태가 동시에 염두에 둔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6절의 인자* 가 그의 전권을 행사하는(28:18-20 참조) 위탁, 즉 그의 전권으로 죄를 용서하며(16:19; 18:18 참조) 병든 사람들을 고치는 위탁을 주신 제자들이다. 이 전권은 교회에 계속 살아 있다.
9:9-13이 이야기는 마가에도 역시 전승되어 있다(막2:13-17과 해설 참조). 마태에서는 13절에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노라 (호6:6)는 인용문이 삽입되어 있다. 이것은 12:7에 다시 한 번 인용된다. 예수의 행태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태도에 견주어 보아서 모든 경건한 자들이 긴급하게 해야 할 과제는 긍휼 을 행하는 것이다(5:7 참조). 여기서 제사 라는 낱말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의적 제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율법 준수와 제의적 정결* 의식에 바탕을 둔 모든 경건 실천을 가리킨다(23:23 참조). - 고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여기에 등장하는 마태 라는 사람이(10:3 참조. 막2:14에는 '레위'라고 되어 있음) 이 복음서의 저자라고 한다('안내' 참조).
9:14-17이 단락도 역시 마가에 전승되어 있다(막2:18-22와 해설 참조). 마태는 17절에서 둘이 다 (즉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보전되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새 부대도 필요하다. 새 부대도 역시 보존되어야 한다! - 금식에 대해서는 6:16-18과 해설 참조.
9:18-26막5:21-43의 이중 기적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마태복음>에서보다 훨씬 길게 기술되어 있다. <마태복음>에는 <마가복음>에서보다 야이로의 믿음이 유난히 부각된다. 이는 18절에 그 아이가 벌써 죽었다 고 말하고 시작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 여인은 예수의 겉옷 가 , 즉 옷술*에 손을 댄다(20절). 마태는 옷술에 손을 대기만 하는 것도 그러한 기적을 일으키리라(막5:29-30 참조)고 생각하는 오해를 막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치유가 그 여인의 믿음의 힘과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밝힌다(22절).
9:27-34이 두 이야기는 예수의 권능적 행위를 보도하는 큰 단원(8:1-9:34)을 마무리 짓는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예수가 다윗* 의 자손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최초로 알려지며 그렇게 불리어진다(1:1; 12:23; 15:22; 20:30-31; 21:9,15 참조). 여기서 믿음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8:10,13; 9:2,22 참조). 두 번째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무리 가 이스라엘 을 위한 예수의 의미를 인식하며 말로 표현한다(33절. 15:31 참조). 동시에 유대의 지도자들의 노골적 반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34절. 9:3,11 참조). - 이 마지막 두 가지 치유와 더불어 8:1-9:34의 대단원에 보도된 것은 예수가 11:4-5에서 언급하신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한다.
9:35-38예수의 가르침(5-7장)과 예수의 행하심(8-9장)이 계획적으로 소개된 다음에 이 단락은 제자들의 파송을 다루는 큰 단원(10장)을 여는 서막을 형성한다. 이 서막은 4:23-5:1에 제시된 것과 같다(특히 35절에 대해서 4:23 참조). - 36절에 대해서는 막6:34와 해설 참조. 추수 는 구약 성경에서 볼 때 오히려 최후심판에 대한 상징인데(사17:5; 27:12; 욜3:13; 신약에서는 마3:12; 13:30,39; 계14:15 참조), 여기서는 심판의 도래와 이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에 앞서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일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되었다. 즉 그것은 구원 공동체로 모으는 것을 상징한다(막1:17; 요4:35와 해설 참조).
출처: 해설 관주 독일어성서공회판 본문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