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로비네(André Robinet, 1922-2016), PUF, (1966) 1977.
류종렬, 서광사, (1987) 수정본.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 1장 중세 철학 / 2장 근세 철학 / 3장 현대 철학 / 결론
1장 중세 철학
101, 샤를마뉴시대의 철학, 알퀭: 문화적 세계
102,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철학: 자연의 세계
103: 안셀무스의 지성의 인식: 지적인 인식
104: 이법의 뿌리: 영혼 - 빅토리아학파(신비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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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법의 뿌리 – 영혼:
위그 드 생 빅토르: 신비주의.]
문화적 세계, 자연적 세계, 지적 세계를 다룬 알퀭, 에리우게나, 안셀무스(1033-1109)등은 [인간의] 지성의 능력에 관해 주목했다. 위그(Hugues de Saint-Victor, 1096-1141)는 의식 속에 있는 이법의 깊은 뿌리에 관심을 갖는다.크리스트교 신앙의 성례(聖禮)(De sacramentis fidei chritianæ 1141 [Des sacrements de la foi chrétienne](미완성작) 교육론(Didascalicon ou Eruditio didascalica (vers 1135)(6권))이라는 짧은 글에서 그는 사유에 대해 밝힌다. 만일 인간의 영혼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면 어떻게 그 영혼이 그것을 그렇게 잘 이해할 수 있을까?영혼은 신 속에 점유하는 빛 때문에 가치가 있다.이 빛은 그의 창조자로부터 영혼에게로 온다. 그 빛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창조했던 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겠는가? (22)
일련의 번개 같은 무한한 방향으로, 위그의 철학은 우선 상식적인 정신에 나타나는 바의 것을 표현한다.그리고 모든 철학자는 상식적인 정신에 나타나는 그러한 것을 인정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도 그것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영혼은 자신이 육체의 운하를 통해서 “가시적인”인 것으로서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영혼은 스스로를 분간한다. 영혼은 자기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 보는 가시적인 모든 것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을 구별한다. 영혼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스스로 생각한다. 영혼은 보고 있는 자신과 자신이 전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한꺼번에 본다. 영혼이 본다는 사실로부터 영혼은 자신이 보여질 수 없음을 본다[안다]. 그러므로 영혼은 자신이 시각적으로 보지 못하는 볼 수 없는 사물들이 있음을 안다. 왜냐하면 영혼은 시각적으로 비시각적 존재를 보지 안호서도 이 비시가적인 존재를 스스로 보기 때문이다. 영혼은 육체와 다르게 파악한다. (23)
영혼이 현존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영혼은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혼은 자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는 동안에 있었던 것에 대하여 자주 회상한다.그러나 영혼이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자신이 현존할 때 자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자신 속에서 그리고 자신에 의해서 자신이 시초를 갖고 있고 또 존재성을 갖고 있음을 보기 때문에 영혼은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혼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영혼은 자기 존재의 시초와 실체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의심할 수 없다. 항상[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시작하게 하는 그는[신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추론은 그의 고유한 존재의 직접적 증거와 창조자와 그 존재를 원리를 동시에 발견한다. 그러나 신비주의가 철학을 완성한다. 즉 지적 작용은 신앙선언과 성무사무적 생활에 의하여 그 의미를 받아들인다. (23)
(2:12, 59N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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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알뀅/알쿠이누스(Alcuin, 730-804) 라틴어를 사용한 영국 신학자, 시인, 과학자. 영국서 태어나 프랑스 투르에서 죽었다. 샤를마뉴의 스승이자 자문이었다. [앙드레 로비에의 “프랑스 철학사”에서]
810 에리우게나(Jean Scot Érigène, Johannes Scotus Eriugena, 810경–877) 신부, 철학자, 번역가. / 아일랜드 신학자.(Irish theologian)
1033 안셀름/안셀무스(Anselme de Cantorbéry, 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 장한 박사(Doctor magnificus, « Docteur magnifique »), 이탈리아 카톨릭의 베네딕트 수도사. 독백론 (Monologion (« monologue »): 신학 시론. 대담(Proslogion, 1075). 아퀴나스에 이르러 베네딕트파에서 도미니크파가 주류로 떠오를 것이다.
1096 위그(Hugues de Saint-Victor, Hugo de Sancto Victore, 1096-1141) 독일 삭스지방 출생 파리에서 몰. 중세 철학자, 신학자, 신비작가. 저술이 많다. 크리스트교 신앙의 성례(聖禮)(De sacramentis fidei chritianæ 1141 [Des sacrements de la foi chrétienne](미완성작) 교육론(Didascalicon ou Eruditio didascalica (vers 1135)(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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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빅토르의 정규 참사회원(Les chanoines réguliers de Saint-Victor, en latin: Canonici Regulares Sancti Victoris), 파리 생-빅토르 수도원에 있는 수도회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규칙을 따른다. 중세의 지적 생활의 중요한 중심지였으나, 프랑스 대혁명에서 사라진다. 윌리엄 오브 샴포(William of Champeaux, 1070-1121)에 의해 설립, 여기 출신으로 학자를 12세기에 빅토르 학파(Victorines)라 불린다. 중세에 신학에 대해 새로운 전환을 마련한 학파들, 생-빅토르학파와 샤르트르 학파를 들 수 있다.
(2:34, 59NLH)
첫댓글 로비네는 빅토리아학파를 스콜라철학에 종속으로 보는 것 같다.
그 이유로
"영혼은 육체와 다르게 파악한다." 그 영혼은 신 속에 있으며
"영혼은 자기 존재의 시초와 실체를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 한다.
그럼에도 위그(Hugues de Saint-Victor, 1096-1141)는 의식 속에 있는 이법의 깊은 뿌리에 관심을 가졌다.
인본주의가 들어있지만, 그래도 의식의 자치 역량을 보았지 않았을까?
에밀 브레이어는
중세의 스콜라주의에 벗어나는 두 발상이 있다고 하고
하나는 빅토리아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샤르트르 학파이다.
물론 브레이어는 샤르트르 학파의 플라톤 읽기에 더 주목한다.
그럼에도 빅토리아학파들의 발상으로 파리의 학문이 다양성을 얻을 기회가 된다고 보았다.
그는 파리에서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의 등장을 주목했기 때문이리라
# 파리 생-빅토르 수도원 소속, 파리 빅토리아학파.
파리 생-빅토르 수도원은 파리의 생-쥬느비에브 언덕 기슭에 있는 마르세이 생-빅토르 수도원에 부속이라 한다[불교로 치면 말사(末寺)인 셈이다.
아벨라르는 청소년기에 샤르트르 학당에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파리 노트르담 학교에서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명되었다. 파리 노트르담 학교 교수는 기욤 드 샹포였다.
960 퓔베르(Fulbert de Chartres, 960-1028), 샤르트르 학파의 창설자. 그는 1006년에 샤르트르 성당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1070기욤 드 샹포(Guillaume de Champeaux, 1070경-1121) 파리 성당학교의 교수, 생-빅토르 수도원 창설자, 샤롱의 부주교, 아벨라르가 파리에 와서 샹포의 강의를 들었다.
1079 아벨라르(1079-1142), 어린시절 샤르트르(학파)에서 공부하고, 파리로 샹포의 제자.
1096 위그(Hugues de Saint-Victor, 1096-1141),
- 로비네는 아벨라르보다 위그를 먼저 서술했다. 철학사적 흐름에서 아벨라르가 같은 시대에 한해 더 오래 살았고,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다.(59O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