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erine of Aragon (1485-1536) m. 1509 - 1533 ( 결혼기간 )
Divorced (이혼)
아라곤과 카스틸랴 왕국의 공주였던 캐서린
그녀는 헨리의 형 아서와 결혼하지만 왕자는 결혼 5개월만에 요절합니다
그때 캐서린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어요
시아버지인 헨리 7세는 어린 며느리를 고국에 돌려보내지도 않으면서 홀대했고,
헨리왕자는 외국에서 온 공주님에서 형수에서 다시 과부가 된 캐서린을 11살부터 알게 됩니다
그리고 헨리가 부왕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헨리 8세로 즉위한 그 해
18세의 헨리와 24세의 캐서린은 결혼합니다
그녀가 아라곤의 공주였기 때문에 정략 결혼을 한 것이었지만
그후로 20년 이상 헨리와 캐서린은 무난한 결혼생활을 해요
헨리가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중년의 초조함에 휩싸이기 전까지...
캐서린이 40대 중반을 넘어 그녀에게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하기 어렵기 전까지...
20여년의 결혼을 종교적으로 법적으로 무효로 하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인이 있을까요?
더구나 경건한 카톨릭이라면요
결혼무효를 받아들이면 그녀의 딸 메리는 공주가 아닌 사생아가 됩니다
그녀는 헨리의 요구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죠.
하지만 결국 이혼당했을 때 캐더린은 48세, 헨리는 42세였죠
그녀는 그 3년 후 병으로 죽지만
그로부터 채 넉달이 지나지 않아 앤 불린 역시 처형당해요
그리고, 캐서린의 소망대로 그녀와 헨리 8세 사이의 딸 메리공주는 훗날
영국의 여왕 메리1세가 됩니다.
Anne Boleyn (1507?~1536.5.19 ) 1533 - 1536 ( 결혼기간 )
Executed (처형됨)
앤 불린이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1500년 설부터 1507년 설까지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그녀는 캐서린왕비의 시녀로 눈은 아름답지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는데
헨리는 그녀의 도도한 매력에 빠져듭니다
왕비에게서 왕자를 얻지 못하자
헨리는 왕비와 이혼하고, 앤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수와 결혼했었다는 것을 이유로 결혼무효를 주장하지만 교황청은 받아들이지 않죠
헨리는 앤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과 관계를 끊고
이것이 영국 국교회의 탄생입니다
앤 불린은 1533년 1월 헨리와 결혼하고 1533년 가을 엘리자베스 공주가 태어납니다
왕자가 아닌 공주의 출생은 헨리를 실망시켰고,
다음해에는 유산, 그리고 1936년1월 앤이 왕자를 사산하자,
헨리의 애정은 싸늘하게 식습니다
앤에게서도 아들을 얻지 못할것 같다고 생각한 헨리는 그로부터 넉달이 지나지 않아
1936년 5월 앤 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합니다
그게 앤 불린을 < 천일의 앤 >으로 불리우게 한 3년간의 결혼생활의 결말이었죠
왕비 캐서린이 헨리에게 이혼당하고 3년만에 병으로 죽은 것이 1536년 1월
앤 불린이 3년의 파란많은 결혼생활끝에
간통의 누명을 쓰고 처형된 것은 그로부터 넉달 후인 1536년 5월이었어요
Jane Seymour (1509 - 1537 )
m. 1536 - 1537 (결혼기간)
Died
앤 불린의 시녀였던 제인 세이모어
역시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 여인이었다고 하는데
헨리 8세는 그녀에게 홀딱 반했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앤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합니다.
앤 불린에 대한 열정만큼 제인 세이모어에 대한 사랑도 뜨거웠고
앤이 캐서린의 가슴을 찢었듯, 앤의 가슴도 제인 세이모어에 의해 상처받았죠.
헨리가 아내인 앤 불린을 처형한 것이 1536년 5월 19일이었고
제인 세이모어와 결혼한 것은 5월 30일이었어요
그녀는 1537년 첫 아내 캐서린도 두번째 아내 앤도 낳지 못한
헨리가 그토록 열망하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지만
난산으로 인해 에드워드를 낳은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납니다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왕자가 바로 에드워드랍니다.
물론 에드워드에게 그런 모험을 겪게한 건 마크트웨인님의 창작이지만요
에드워드는 10살에 왕이 되지만 16살에 요절하죠.
Anne of Cleves (1515-1557 ) m. 1540 Jan. - July (결혼기간 )
Divorced
독일 클리브스의 지방의 공주입니다.
화가인 한스 홀베인이 그려온 저 위의 초상화를 보고 한눈에 OK한 헨리.
허나 그녀가 영국에 도착했을때 헨리의 환상을 깨져버립니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를
직접 맞이하러 나갔다가 실물을 마주한 순간 헨리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도망쳤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1월에 결혼을 하였으나 말상에 영어도 한마디 못하며 무뚝뚝하고 재미도 없는
그녀에게 헨리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해 7월에 이혼을 합니다. ㄷㄷㄷ 결혼한지 6개월만에;
그녀는 처음에는 이혼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첫번째왕비인 캐서린이 이혼을 반대하다 비참한 생을
끝낸걸 생각했고 또한 이혼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놀림감으로 살 자신이 없었기에
영국에 영원히 지내도 좋다는 허가와 영토, 재물을 받는 조건으로 이혼에 응하게 됩니다.
헨리는 그런 그녀를 왕의 부인이 아닌 왕의 누이로 인정했으며 ; 마땅한 대접을 합니다 .
그 후의 왕비들과도 사이좋게 지냈고 왕가의 결혼식 때는 가장 상석에 앉은 대우를 누렸다고 하죠.
Kathryn Howard (1520 - 1542) m. 1540 - 1542 (결혼기간 )
Executed (처형)
클레브스의 앤과 헨리가 이혼한 것은 1540년 7월, 캐서린 하워드와 재혼한 것도 1540년 7월
헨리 8세가 얼마나 격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지
또한 캐서린에게 얼마나 매혹되었는지 느껴지네요
19살의 어린나이로 헨리와 결혼한 캐서린 하워드는
29세나 연상이었던 헨리에게 무척 사랑받지만,
캐서린은 시종이나 악사, 조카등 여러 남자들과의 불륜을 거듭했고,
결혼전의 문란했던 관계까지 드러나면서
1541년 11월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1542년 2월 22살의 어린나이로 참수형을 당합니다
그녀의 과거를 알기 전만해도 왕은 그녀를 보석처럼 아꼈다고 해요
사랑했던 어린 아내의 문란한 행실은 왕에게는 치욕이자 커다란 상처였죠.
앤 불린에게 간통의 누명을 씌웠던 죄값이었을까요.
Katherine Parr (1512 - 1548 ) m. 1543 - 1547 (결혼기간 )
Widowed
1543 년 7월 31세로 헨리의 여섯번째 아내가 된 캐서린 파 ( 그녀의 나이 역시 여러 설이 있어요 )
캐서린은 헨리와의 결혼이 초혼은 아니었어요
1529년에 어린나이에 첫 남편을 잃고
두번째 남편역시 헨리와 재혼하기 전해인 1542년에 잃은
두 번의 결혼에서 두 번 과부가 되었던 여인이었죠
그녀는 헨리의 건강을 세심하게 챙기고
헨리의 아이들도 따뜻하게 돌보는 편안한 휴식같은 아내였다고 해요
1547년 1월 헨리 8세가 죽은 후 캐서린 파는
제인 세이모어의 남동생과 결혼합니다
왜 하필이면 제인 세이모어의 남동생일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헨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왕자가 바로 제인 세이모어의 아들
에드워드는 겨우 10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구요
에드워드왕자가 5살일 때 왕비가 되어 왕자를 돌봐온 캐서린 파와
에드워드의 외삼촌 토마스 세이모어의 결혼은
어린 왕 에드워드 6세 에게도 도움이 되는 결혼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혼 다음해인 1548년 8월 캐서린 파는 토마스 세이모어의 딸을 낳고
난산으로 인해 그로부터 채 며칠이 지나지 않은 1548년 9월 세상을 떠납니다
Henry VIII (1491~ 1547.1.28 ) 재위 1509∼1547
여섯 아내중 둘이나 처형해서
무시무시한 동화 푸른 수염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헨리 8세
하지만 아내들과 토마스 모어. 토마스 크롬웰 등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것에 비하면
위대한 군주이고자 했고, 국민들에게는 폭정을 가하지 않았기에
인기가 나쁘지는 않다고 하네요
중년이후 몸집이 불었을 때의 초상화만 보시고 실망하신 분들도 많으신데
18세로 왕위에 오른 헨리 8세는 젊은 시절엔 매력있는
청년왕으로 유럽의 패션리더였어요.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수십년을 산 아내와 이혼하고, 교황청과 적이 되면서 앤 불린과 재혼하고,
힘들게 결혼한 앤 불린을 처형하고 다시 제인 세이모어와 결혼을 거듭했어요
그렇게 열망하고, 어렵게 얻은 아들 에드워드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는 성공하지만
병약했던 에드워드 6세 (재위 1547 - 1553)는 왕이 된지 6년만에
16살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영국의 왕위는 에드워드의 사후 첫 왕비 캐서린의 딸 메리공주에게 가게 되죠
그녀가 바로 Bloody Mary (피의 메리)로 불리는 메리 1세 (재위 1553 - 1558)
그리고 메리여왕 역시 재위 5년만에 죽게 되자
25세의 나이로 영국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딸 엘리자베스 공주였어요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그녀가 바로 엘리자베스 1세 (재위 1558∼1603) 여왕입니다
헨리는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을 결코 원하지 않았었지만
영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로 꼽히게 된 것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딸, 그것도 그가 한 때 뜨겁게 사랑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간통의 누명을 씌워 처형했던 여인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였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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