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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권리도 체면도 내려놓고[창13:8-13]
오늘은 권리도 체면도 다 내려놓고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를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다 함께 한 수 가르침을 받게 되길 소원합니다.
지난번에 우리는 다툼의 이유들이라고 하는 제목을 통하여 삼촌 아브람과 조카 롯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재물
그 재물의 많은 부분을 어디서 얻은 것이라 했습니까? 애굽에서
우리도 역시 돈을 벌기 위하여서는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행복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대우가 좀 못해도요. 월급이 좀 부족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군위 아동 센타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도 다 그런 은혜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물 말고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또 말씀하고 있죠.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시작 때 읽은 말씀 중에 있죠.
창 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람은 다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 합니까?
우리는 무엇이라 합니까? 한 골육이라. 한 골육이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요?
뼈가 같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가까운 곳에 계시는 은퇴 목사님 신씨 성을 가지신 분이 계시죠?
요즘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말씀 중에 자기 집안은 뼈가 다른 집안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평산 신씨 그래서 제가 그 본관까지 잊지 않습니다.
조상은 신숭겸 후삼국 태봉이라고 하는 후고구려의 궁예의 신하였지만 그의 폭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다가 팔공산에서 있었던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포위를 당한 왕을 구하기 위해 대신 왕의 옷을 입고 싸우다 전사한 고려의 명장 중 명장이고 제가 또 좋아하는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뼈가 다른 집안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뼈가 다른 집안들은 싸우지 말아야 합니까?
뼈가 다른 집안이 아니라 같은 식구끼리는 싸우지 말아야 하죠.
아브람의 하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네와 나는 같은 집안이 아닌가 그러니 서로 싸우지 말도록 하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한 가족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안에서
육신의 형제들은 부모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집안들은 조상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 피로 가족이 되었습니까?
정말 그리스도의 피로 가족이 된 거 맞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해도 되나요?
그런 말씀 보셨습니까?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피로 형제와 자매가 된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피
그러니 육신적인 혈통보다 더 나은 혈통입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정 장로님이 잘 하여서 라고 말씀들을 왜 잘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가족이 되었으니 주님의 본을 따라 가족을 섬기시느라고 잘 하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성도님들 부담 가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더 자주 모여야 합니까?
성경에도 보니 날마다 모이고 날마다 떡을 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자주 모이고 자주 식사 같이 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렇게 하는데 나는 못해서 그런 생각들 하시지 말고요.
형편이 되고 환경이 되면 하시고 안 되면 못하시고 그러기 때문에 마음을 그렇게 쓰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못하시는 분들 예수님께서 더 마음을 짠하게 가지십니다.
장유에서 저희들 집에서는 참 많이 북적 거렸습니다.
안식일 마다 거의 북적 거렸습니다.
그러니 안식일 지나면 우리 집사람이 넘 지치게 되고 해서 일 좀 하지 않는 곳에 가려고 하다가 이곳에는 우리 정 집사님이 계시기 때문에 와도 일이 좀 없을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전 같으면 저희들 집에 성도님을 몇 차례 초대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의 피로 형제자매된 골육끼리 싸우면 되나요 안 되나요?
싸우면 부끄러운 일인가요? 자랑 스런 일인가요?
남 보기가 어떨까요?
혹 가다 우리 교단에서 일어나는 풍문을 들을 때 참 마음이 아픈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군위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다툼이 없는 교회로 성장하길 소원합니다.
다툼이 있었던 아브람의 집안도 안으로나 박으로나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도 할 수만 있으면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되겠죠?
그래서 아브람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무슨 조치를 취합니까? 그 다음 말씀입니다.
창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네 앞에 온 땅이 있으니 네가 먼저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싸우면서 한 집에 사는 것 보다 떨어져 있으면 싸우지는 않을테니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앞에 있는 땅을 선택해라 네가 우하면 나는 죄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겠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롯의 누구 입니까?
삼촌이죠? 그러니 당연히 먼저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런데도 그런 권리를 다 포기하고 그 선택권을 조카에게 넘겨 주는 아브람의 모습 아름다운 모본입니까?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과일이 나오면 줄은 앞에 서되 과일을 고를 때 가장 못한 것을 고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좋은 본입니까?
저는 그전에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음식을 골라 먹을 때 가장 못한 것부터 먹음으로 항상 못한 것을 먹고
어떤 사람은 고를 때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먹음으로 항상 가장 좋은 것을 먹는다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접하고 나서는 저희들 집에서 무엇을 먹을 때 먹는 방식을 다르게 하였습니다.
과일도 박스 중에서 제일 좋은 놈부터 골라 먹고요
호두도 제일 좋은 놈부터 골라 먹습니다.
그러니 먹을 때마다 항상 제일 좋은 것을 먹게 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교회서 먹을 때도 눈에 어떤 것이 먼저 들어올까요?
제일 좋은 놈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렇게 먹었습니다.
그러다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제 자신이 부끄럽던지요.
그래서 집에서는 제일 좋은 것부터 골라 먹드래도 교회 오면 제일 못한 놈부터 골라 먹자 그렇게 생각하고 앞자리에 서면 가장 눈에 띄는 덜 좋은 놈을 골라잡습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이 골라 줍니다. 장로님 이거 드시라고요.
그럼 저는, 저는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해도 어떤 분은 막무가내로 올려줍니다.
여기서 혹시 제가 그러 드래도 성도님들은 그렇게 하시지 말길 바랍니다.
저도 아브람의 겸손을 연습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도 같이 양보를 해야 재미가 좀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양보를 하면 상대방은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면 기분이 어떻습디까? 여러분들은 그런 경험 해 보시지 않으셨나요?
지금 누가 그런 경우를 당하고 있습니까? 아브람이
누구 에게서요? 조카에게서.
조카도 그냥 조카입니까?
할아버지 집에서 분가 해 나올 때 막내 삼촌을 따라서 나이차이가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처럼 또는 형님처럼 그렇게 믿고 따랐는데 삼촌이 그렇게 제의를 해 오면 대접삼아서라도 삼촌이 먼저 선택을 하셔요. 저는 그 다음 하죠,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람과 롯의 이야기 그 다음은 무슨 내용이 있을까요?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눈을 들어 라고 하죠. 이거 무슨 말입니까?
눈은 어떨 때 떠집니까? 그리고 어떨 때 감겨 집니까?
나에게 어떤 결정적인 유익이 있을 때 그 때 눈이 떠질까요? 감겨질까요?
우리 교회 마당에 고급 생필품들과 가전제품들 잔뜩 모와 놓고 여러분들 원하시는 대로 가져 가셔요 라고 하면 눈이 감겨 질까요? 떠질까요?
우리 성도님들 그런 일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다 하여도 눈을 감는 아브람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눈을 들어서 보면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보이게 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롯은 눈을 들어 어디를 보았습니까?
요단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성경은 무엇과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의 동산 같고 또 무엇과 같았다고 합니까?
애굽과 같았다....애굽은 언제 보았습니까?
삼촌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이미 그곳에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애굽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애굽 땅과 같았더라는 말씀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시나요?
죄는 다 무엇으로 포장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되어 있고요.
그럼 복은 무엇으로 포장되어 있을까요? 저주와 같은 것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롯의 선택은 무엇을 따라서 무엇을 선택한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엇을 선택할 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선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 따라도 선택하지 말길 바랍니다.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람의 보기에 바른 길도 어떤 길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사망의 길일 수 있다.
만약 롯이 선택권을 아브람에게 드렸다면 아브람은 어디를 선택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요단들에 자리 잡고 롯이 동편으로 오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롯은 요단들을 에덴동산같이 보았고요.
아브람은 죄악의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로 보았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먼저 선택을 하였으면 요단들에 장막을 치고 롯으로 하여금 소돔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을 것인데 아브람은 그것까지 다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선택 우선권을 받은 롯은 요단을 선택하였고 아브람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 13:11-13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 이었더라”
아브람은 가나안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라는 말씀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브람이 있는 곳도 평지라는 말인가요? 골짝이라는 말인가요?
가나안도 평지가 있는 곳이 있겠지만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에 갈 때에 가나안은 대부분 골짜기같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토지들은 대부분 천수답으로 알고 있고요.
비가 와야 농사가 잘되는 그런 곳 말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평지에서 짓기가 좋습니까?
골짜기에서 짓는 것이 좋을까요?
천수답에 농사지으시는 분들과 저수지아래서 농사지으시는 분들 어떤 분들이 더 기도하게 될까요?
천수답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농사가 되는 땅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하나님안에 살아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그런 골짝으로 들어가고 롯은 이제 에덴동산과 같이 보였던 요단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기록들을 보면 롯과 아브람의 결국을 알 수가 있는 내용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아브람의 기록은 이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신앙생활에 변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롯의 모습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창 13:12-13
“.....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 이었더라”
평지 성읍들에 머물러 살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어디가까이 갔다고 합니까?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여러분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서 있으면 앉고 싶고요. 앉으면 뭐하고 싶다고 합니까?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편하면 더 편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속담이죠.
삼촌과 함께 있을 때는 믿음의 생활을 잘 하였는데 삼촌과 헤어지고 나니까 무슨 생활이 그리웠다는 것인가요?
지긋지긋한 천막생활 접고 싶은 마음이 겉으로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어디에 들어가서 살았던 모습을 보셨습니까?
소돔에 살고 있는 롯을 천사들이 방문했을 때 천막이었나요? 주택이었나요?
우리 성도님들 마음으로라도 하늘만 사모하게 되길 바랍니다.
지난번에 우리 함께 들으셨지 않습니까?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인데 더 나은 본향으로 그런 생각들을 차단하였다.
그러나 롯은 그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삼촌을 따라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몸과 함께 마음도 세상을 떠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만 사모하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위해 안락을 버리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우리가 버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비록 불편함이 있어도 아브람은 제단을 쌓았을 때 참 행복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주님 안에서의 행복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 오실 때까지 그 행복가운데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