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3(주일) ◈ 눅 14: 15-24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의 잔치에 참여한다.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14: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주 해
1.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러 가셔서 안식일에 수종병 걸린 자를 고쳐주셨다.
1)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바리새인들을 보시고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11)”고 하셨다.
2) 그리고 “갚을 것이 없는 자를 섬기는 자가 부활 시에 복이 있다(14:14)”고 하셨다.
3)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크게 쓰임 받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자”요, 그는 갚을 것이 없는 자를 섬긴다.
2. 식사에 함께 참석한 사람 중 하나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하였다.
눅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 이 말은 옳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한 말이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2)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인지”를 비유로 말씀하신다.
3. 어떤 사람(하나님)이 잔치(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함께 먹기 위하여)를 준비하고 종들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였다.
1)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유를 들어서 초청을 거절한다.
눅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초청받은 사람 전부가 사양했다. 그 대표적인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신다.
4. 하나님의 나라로의 초대를 사양한 이유는 세상의 중요한 일들이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1) 첫째 사람은 밭을 사서 나가 보아야 함으로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고 했다.
2) 둘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야 하니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고 했다.
3) 셋째 사람은 장가 들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초청을 거절한다.
5. “그런 이유라면 잔치에 오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인정해 줄 사유인 것 같다.
1) 예수님은 이미, 경제와 가정을 우선순위에 두는 자는 제자로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25-33절).
2) 우리에게는 합당한 거절의 이유 같은데 “초청한 주인은 거절한 이들에게 분개”한다.
3) 그들은 거절한 이유의 정당함을 말했고, 거절하는 방법도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는 정중한 표현을 사용했다.
6. 초청한 주인이 거절한 이들을 비방하거나 처벌하는 내용은 없다.
1) 다만 하나님 나라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이 주인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한다.
눅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2) 장가가고, 밭을 사고,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3) 그러나 이 땅의 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하늘의 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7. 종들은 주인의 명대로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저는 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1) 처음에는 “초청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데려오라”고 하신다.
2) 둘 다 초청한 것이다. 다만 처음에 초청받는 사람들은 “초청에 응할지 거절할지를 선택하면 된다는 살진 마음”을 가진 자들이요, 가난한 자들과 장애자들은 “초청받으면 무조건 응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3)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자격은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청한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당연히 응한다. 그래서 종들이 “데려오면” 된다.
8.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자임을 아는 자들, 땅의 먼지로 만들어진 자임을 아는 자들, 자신의 약함으로 탄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주어진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들은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이다. 즉 자신을 낮추는 자들, 겸손한 자들이다.
9. 세상적 행복 때문에 감사하고 겸손해진다면 복이지만 “살진 마음”이 되면 영원한 저주가 되기도 한다.
1) 한편 세상적 어려움 때문에 “가난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한다면 복된 자들이다.
10. 본문에서 처음 초정을 받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경건한 유대인들로서 복음의 초청을 거절한다.
1) 반면 유대인들이 볼 때 죄인들과 이방인은 복음의 초청을 받아들인다.
2) 오늘날에도 마땅히 천국에 들어갈 자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높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음으로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간다.
11.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잔치에 참여했지만 아직도 자리가 남는다고 하자, 주인은 강권하여 남은 자리를 채우라고 한다.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1)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라는 말씀을 “강제로 or 무례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로 해석하는 오류가 많다.
2) 이 잔치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는 잔치다. 그러기에 손님이 적어도 잔치는 온전하다. 주인을 위하여, 잔치를 위하여 빈자리를 다 채울 이유는 전혀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잔치의 자리가 다 채워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은혜와 사랑과 구원을 받는 잔치를 베풀려고 한다.
12. 잔치에 합당한 자는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없어서 초청하면 무조건 참여하는 자,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다.
1) 그런데 주인은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더 넓혀 준다.
2) 즉 사랑으로 권면하고, 반복해서 초청하고, 그 잔치의 유익을 설명해 주면 “억지로라도” 잔치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자들까지 잔치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
3) 그러므로 “강권하여”는 복음을 거절해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전하면 “억지로라도, 겨우” 응하는 자들까지 데려다가 하나님의 집을 채우라는 주인의 사랑과 긍휼이다.
4) 우리 중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도 있지만, 이렇게 “억지로라도, 마치 주인에게 선심을 쓰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잔치에 오는 이들도 있다.
13. 사랑의 주인이지만 모두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떡을 먹는 것을 아니라고 하신다.
1) 처음 초청을 거절한 이들은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다.
14.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자기를 낮추는 자들”임을 알 수 있고, 초청은 받으나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자들”임을 알 수 있다.
1)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좋은 일로 인하여 주인의 잔치 초청에 시큰둥해진 사람들은 마음이 살진 사람들이며 스스로 자신을 높이며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사람들이다.
2) 광야 길로 인함이던지, 사랑의 권면이던지 자신을 낮춘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한다. 즉 자신을 낮춘 자들을 하나님이 높여 주신다.
◈ 나의 묵상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다.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도 우리는 세상의 안경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성경을 보기에 보아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바리새인인지는 모른다.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주제파악을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비판적으로 관찰하지만 자신이 그 바리새인임은 모른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말씀대로 산다고 자부했고, 자신들은 말씀대로 살면서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율법 교사)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가르쳤고, 백성들은 그들을 대단하게 보았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고, 성경을 잘 알고,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거절하고 있음도 알지 못한다. 그 경건이 지옥을 가도록 할 줄 감히 상상이라고 했겠는가? 지금도 그 헌신과 열정, 깨달음과 효력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고 있는 줄을 모른다.
반면, 가난하고, 장애자여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이들이 천국의 앞자리에 있다. 당시, 장애자들은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장애는 몸의 장애와 함께 영적인 장애라고 여겼다. 그런데 영적인 장애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주님은 이렇게나 많이 겸손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하나님만 자랑하는 자가 하늘의 잔치를 누린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보고 들어도 나는 여전히 많이 연구하고, 깨닫고,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숫자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영적인 기쁨을 누리고, 사역은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치고, 보란듯한 목회와 가정과 건강이 있었다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은 내가 광야 길을 통해 낮아지고 말씀으로 사는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스스로 선택하라고 할 때, 바닷길을 버리고 광야 길을 선택할 자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를 아는 하나님은 홍해를 건넌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그래서 주인의 잔치에 데려오는 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주님이 왜 나를 광야 길로 인도하셨을까를 나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그 낮아짐이 왜 그리 중요한지, 그 광야가 어떻게 낮아지게 하는지, 그 광야와 만나와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성막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광야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듣기 원한다. 모세의 미디안 광야처럼 보내길 원한다.
내가 나를 모르니, 내가 잘 가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까? 그래서 주님의 긍휼과 성령님의 가르침을 구한다. 말씀으로 나를 벌거벗겨, 나의 실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상한 마음을 받으시는 주님께로 나아간다. 자랑할 것이 없을수록 품어주시는 주님, 약한 자를 부르시는 주님, 부족한 자를 사랑하시는 그 십자가로 나아간다. 그 사랑이 내 영혼의 깊은 곳, 어릴 적 갈망까지 채워주시길 기도하며, 그 사랑을 영혼 깊은 곳까지 받아들인다. 그 영원한 사랑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 마음을 채우고 치유한다. 그 사랑 안에서 자유함을 배운다. 평안과 안식을 배운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자유한 곳, 하나님의 나라다.
◈ 묵상 기도
주님, 어릴 적 형성되지 않은 애착관계와 관계에 대한 갈망에 목마른 제가 제 안에 있음을 봅니다. 관계를 위하여 돈을 모았고, 공부를 했고, 참았고, 억압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제 마음을 저도 모르고, 이 마음을 치료할 길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주님,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이 저를 아시오니, 저를 만지시고, 비천한 자를 치료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자존심과 상함과 분노를 버리고,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으로 빚어 주십시오. 약함이 강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신앙적 억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제 마음으로 보는 말씀,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과 마음 눈으로 보는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고, 저의 저됨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저를 모르오니, 주님이 저의 저됨을 알게 하시고, 말씀으로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여 주십시오. 끝자리에 앉는 가난한 마음, 자기를 낮추는 자, 숫자에서 해방된 자, 감사한 마음이 되게 빚어 주십시오. 주님, 장례는 마쳤지만 장재석 집사님의 빈자리가 있는 곳마다 주님이 도우시고 채워 주십시오. 또한 한필수 집사 어머니의 영과 마음과 귀를 열어 복음을 믿고, 주님의 구원과 사랑을 만나게 하여 주셔서,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일의 예배와 섬김과 나눔 가운데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