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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예수님의 팬과 그리스도인>의 줄거리:
교인 중에는 예수님의 팬과 그리스도인이 섞여 있습니다. 본문 속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팬이었습니다. 팬은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죽을지언정 함께 할 것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착각입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등을 돌릴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팬이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참그리스도인이 될까요?
예수님의 팬과 그리스도인
(마26:31~35)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의 팬과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팬과 그리스도인’
1980년12월8일 날 미국의 맨해튼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 다코타 아파트 앞에서 한 사람이 총에 맞아 죽습니다, 그 죽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존 레논입니다.
다코타 아파트는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유명인사가 사는 최고급 아파트이고, 당시 죽을 때에 존 레논의 재산이 2억5천만 불 정도 되었다고 추정을 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지요. 그리고 부인 일본인 오노요코라고 하는 여자와 함께 자녀를 낳고 아주 행복하게 살 무렵이었습니다.
총에 맞아 죽어요. 왜 총에 맞아 죽느냐 하면, 이 존 레논이 비틀즈의 핵심 멤버 아닙니까?
근데 비틀즈가 해체된 뒤에 혼자 활동을 하다가 활동이 중단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에 5년간의 공백기를 중단하고 재기하면서 낸 앨범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더블 판타지’라고 하는 제목의 앨범입니다.
그 앨범에 실린 노래 중에 제일 유명한 노래가 ‘스타팅 오버’ ‘다시 시작해’라고 하는 그런 노래인데, 이 노래는 11월1일 날 차트에 진입하기 시작해서 존 레논이 12월8일 날 죽는데, 그 뒤로 5주 연속 1위를 하고 22주 동안 미국, 이 대중가요 차트에 머물러 있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더블 판타지’라고 하는 앨범을 낸 뒤에, 많은 팬들이 존 레논이 살고 있는 다코타 아파트로 ‘더블 판타지’ 앨범을 사 들고 모였습니다.
근데 존 레논이 바빴던지 하여간 무슨 이유가 있던지, 그 팬들의 손에 들고 있는 더블 판타지 앨범에 사인을 해 주지 못하고 그리고 차에 올라서 떠납니다.
그리고 돌아 왔을 때 숨어 지키고 있던 사진사, 마이클 체프먼이라고 하는 팬에게 총에 맞아서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맙니다.
마이클 체프먼은 사진사였어요, 사진사.
그런데 이 비틀즈, 특히 존 레논의 광팬이었습니다.
너무너무 반가웠지요, 5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더블 판타지라고 하는 앨범이 나왔으니까, 이 체프먼에게는 너무너무 기쁘고 반가운 앨범이었습니다.
기쁜 마음에 사인을 받기 위해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 존 레논을 봤는데 존 레논이 사인을 해주지 않고 떠나버립니다.
여기에서 꼭지가 돌아 버린 거예요, 그야말로 시쳇말로 뚜껑이 열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렬하게 좋아했던 존 레논을 자기 손으로 40살의 생애를 마치게끔 총으로 쏴서 죽이고 맙니다.
이게 팬의 한계에요.
팬이라는 건 뭐냐?
연예인이 내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내 마음에 든다.
이게 한계면, ‘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이점이 한계라는 겁니다.
교인 중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팬이 있어요. 예수님의 광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광팬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내 마음에 맞는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굉장히 좋아합니다.
예수처럼 좋은 분이 어디 있냐고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반드시 예수님을 총으로 쏴 죽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언제나 잠재해 있고 도사려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이 바로 그 모습이었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예고하십니다, ‘너희가 오늘 밤 나를 다 등지고 버리고 배반하고 도망가리라’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죽을지언정 주와 함께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죽을지언정 예수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모든 제자가 다 베드로의 말에 ‘저도요. 저도요, 저도요’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을지언정 주와 함께 하겠나이다’라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호언장담에 대해선 대꾸도 안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제자들이 당신을 버릴 것을 예고하시면서 뒤이어 하신 말씀이 ‘내가 죽은 뒤에 부활해서 갈릴리에 너희보다 먼저 가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도 제자들은 몰랐던 거예요, 그 당시.
갈릴리에 먼저 가 있겠다고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도저히 알 수도 없었고, 자기들이 예수님을 버릴 거라고 하는 예수님의 예고에 대해서 깜작 놀라면서 자기들도 믿지 않았어요.
자기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버릴 것이라고, 재판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예수님을 버릴 것이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요.
마치 마이클 체프먼이 존 레논을 자기 손으로 총으로 쏴 죽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날 아침에 더블 판타지를 들고 다코타 아파트 앞에서 존 레논을 기다릴 때만해도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팬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상대방 연예인이 내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 연예인을 증오하고 배반하고 죽일 수 있는 잠재력이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상태가 3년 동안 예수님을 쫓아 다녔지만, 기적의 예수님 능력의 예수님 통찰력의 예수님, 이 예수님의 광팬들이었지 집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따라다닐 만큼 광팬들이었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이겁니다.
이게 제자의 한계이기도 해요.
제자란 누구냐? 나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스승을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여기에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누구냐?
그리스도 마음에 맞아야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인데 제자는 그럴 준비가 돼있지 않아요.
내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스승의 능력과 지식과 통찰을 필요로 하는 자이지요.
자! 도대체 이렇게 팬으로 머물러 있어야 되는 그 이유가 뭘까요, 여러분?
그리고 주님께서 갈릴리로 다시 가신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 부활해서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은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만난 곳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뒤에 고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에 갈릴리에 먼저 가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갈릴리라는 장소가 그 공간적 의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만남을 새롭게 시작하시겠다고 하는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팬으로 쫓아다니던 제자들과의 만남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시려는 것이지요.
제자들의 본질이 팬이에요.
예수님이 좋은 것은 예수님이 갖고 있는 무엇이 좋아서 그것으로 나를 채우고 나를 완성하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팬 이상이 아닌 거예요.
근데 팬이었던 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서 3년 동안 끌고 다니셨는데, 이제 부활하신 뒤에 갈릴리로 다시 가시는 이유는 만남과 관계를 새로 시작하시겠다는 얘깁니다.
만남과 관계를 새로 시작해서 그 새로 시작하는 관계는 팬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관계를 시작하겠다는 얘기에요, 다시 시작하겠다는 얘기에요.
교회가 이 점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교인들이 다 예수님의 팬이에요, 팬.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열렬하게 좋아합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등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발로 뻥 차게 될 수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자기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게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앞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교리로 완전히 박제화 돼가지고, 그냥 내게 구원을 주시는 사건이라고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지금 현재 내 사건으로 부딪쳐 오고 있지 않기 때문에 팬으로서 머물고 있어도 그 팬이 예수님을 부인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얼마든지 예수님을 죽이고 배반하고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자들로 교회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근데 교회가 이점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명확하게 살펴보질 않는 겁니다.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예수님의 팬으로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합니다.
그건 믿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믿는다고 그렇게 말해 두자고요.
그런데 그 관계가 반드시 갈릴리로 예수님께서 가서 다시 시작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시작해야 되는 것처럼, 다시 관계가 거듭나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관계가.
예수님 만나자마자 거듭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이걸 놓쳐버리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갈릴리로 다시 가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거쳐야 될 과정이 뭡니까?
이제 이 예고가 끝난 뒤에 겟세마네로 가십니다.
겟세마네 기도가 끝나고 땀에서 피가 나도록 기도를 하신 뒤에 잡히십니다.
그리고 공회에 넘기시고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으로 내려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뒤에 갈릴리로 갑니다.
갈릴리는 제자들과 그리스도인으로서 관계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택하신 장소입니다.
그 갈릴리까지 가시는데 겟세마네와 체포와 재판과 고난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무덤에 묻히심과 그리고 부활하심의 과정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러시는 걸까요?
제자들, 팬으로 쫓아다니던 제자들과의 관계를 그리스도인으로서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갈릴리까지 다시 가시는데,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주님께서는 거쳐야 되고 수치와 굴욕을 당하셨어야만 되느냐 이 얘기입니다.
제거하시기 위해서.
뭘 제거해요? 팬으로서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갖고 있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십니다.
자! 장애물이 뭐지요?
내 마음이 있어요, 내 마음이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좋아하는 그 예수님과 내 마음 사이에는 무엇이 끼어있냐 하면, 마음이 먼저 내 몸에 달라붙습니다.
몸에 달라붙어서 내 몸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부모와의 관계가 맺어집니다.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애가 형성되고 내 인생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내 직장으로 나갑니다, 내 몸을 가지고.
그래서 직장이라든지 내 인생의 계획과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 인생을 꽃피우려고 합니다.
이렇게 내 인생이 내 마음과 예수님사이에 가득가득한 내용을 담은 채 도사리고 지켜서 있습니다.
그렇게 내 인생을 내 마음이 먼저 가 닿은 상태에서 내 인생 저 너머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나 사이에 끼어있는 내 인생이 너무 귀하고 좋아서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그 인생을 잘 꾸릴 수 있는데 예수님이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이게 팬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갖고 있는데, 인생을 잘 꽃피워야 되는 내 마음에 예수님이 든다 이겁니다. 이게 팬이에요, 이게 좋아하는 겁니다.
그럼 예수님의 겟세마네 과정부터 시작해서 갈릴리까지 도달하시는데 이 과정들은 왜 필요한 겁니까?
내 마음과 예수님 사이에 내 몸을 포함하여 내 인생 전체라는 것을 다 제거해 버리는 과정이 겟세마네서부터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시는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이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의 팬이었던 자들이 예수님의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를 받는 거예요.
모든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팬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는 겟세마네서부터 갈릴리에 도달하시기까지의 예수님의 과정을 모든 교인이 통과하도록 인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팬들이 예수님의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부활절 이전에 고난주간 말고는, 그리고 그저 내가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에 붙여서 하는 것 말고는 하지를 않는 거예요.
분명히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얘기해요, ‘날마다 죽는다’
왜 날마다 죽습니까?
날마다 예수님의 팬의 과정에서 팬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자들이 날마다 겟세마네를 통과하고 주님과 함께 그리고 수난과 굴욕을 통과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고 무덤에 묻히는 과정을 통과하고 부활해서 갈릴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과 다시 시작하는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채로, 않은 채로 예수님의 팬으로만 살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까 말씀 드린 이 더블 판타지라고 하는 존 레논의 생애 마지막 앨범 속에 수록된 곡이 ‘다시 시작해’ 였어요 ‘Starting over’ 라고 하는 노래에요, 이 노래가 제일 유명한 노래인데 이 노래의 가사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당신과 함께 해온 내 인생은 매우 값진 것이었지요’
제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과 함께해온 인생이 매우 값지지요.
그런데 그대로는 안돼요.
그래서 이 가사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왜 우리는 다시 시작하지 못하나요, 사랑의 나래를 펴고 자유롭게 날아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시작해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시작해요, 그대여 이게 바로 인생이랍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 시작해요’, 처음 만난 곳이 갈릴리였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자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요.
자식 때문에 예수님을 찾았다 그러면, 자식이라는 공간에서 자식이라는 장소에서 다시 시작해요.
어떻게 시작합니까?
십자가에서 자식에 대해 죽어서 내 마음으로부터 예수님과의 사이에 끼여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는 겁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어떤 장소였습니까?
자기 인생의 비전과 꿈을 예수님을 통해 발견했던 장소입니다.
‘이 땅 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내 인생을 꽃피울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쫓아다니면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러한 비전과 꿈을 발견한 장소가 갈릴리였습니다.
그 갈릴리로 다시 돌아가서 십자가의 과정이 나의 죽음의 과정으로 이해되면서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죽고 꿈과 비전과 소원에 대해서 완전히 죽은 뒤에, 내 마음과 예수님 사이에는 내 몸조차도 없어지고 -왜냐하면 이 땅 위에서 내 몸을 통해 인생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내 몸조차도 사라지고, 예수님과 내 마음이 십자가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로 합치되었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이들은 사도로 바뀐 겁니다.
사도가 뭡니까?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사도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이 땅으로 내려와 사는 것이고 이제는 예수님 마음에 드는 일만을 위해서 목숨을 걸며 사는 자들이, 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했던 겁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상태를 보세요. 목사님들, 여러분의 상태를 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예수님의 팬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팬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뭡니까?
마음과 예수님 사이에 내 몸부터 시작해서 몸을 근거로 하는 내 인생이 가득 차 있으면, 아직도 예수님 마음으로 붙잡기 이전에 이 세상에 대한 소원이 살아있으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팬이고 예수님의 팬인 한 언제든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총으로 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비(非)그리스도인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겟세마네로부터 갈릴리에 도착하시기까지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 가야 됩니다.
예수님과 똑같이 연합해서 그 과정을 통과함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리고 참 예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져서 이 세상을 사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의 신앙의 역사가 예수님의 팬의 역사였습니다.
마이클 체프먼이 존 레논을 죽이듯이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겟세마네로부터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날마다 날마다 통과함을 통하여 예수님의 팬이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어서 하루를 살 수 있는 은혜가 반복되어 일어날 수 있게, 경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