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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입학식이 취소되었고, 수업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보라는 창 안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부셔서 눈을 떴다. 이 시간에 잠을 깨다니 꿈처럼 믿기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교문을 통과해야 할 시간에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다. 나른하게 이불속을 뒹굴고 싶은 욕망을 떨치며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려온 교복은 옷장 속에서 주인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다. 보라는 옷장에서 교복을 꺼내 코를 대고 새 옷의 상큼한 냄새를 맡는다. 흰 블라우스와 푸른 바탕에 노랑과 분홍의 선이 서로 교차 직조된 투피스 교복이다. 보라의 얼굴에 진달래꽃 같은 볼우물이 살짝 파인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엄마가 보라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우리 보라. 교복이 정말 잘 어울리네. 엄마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걸.”
“그러게 말야. 난 교복이 체질인가 봐. 중학교 교복도 참 맘에 들었었는데. 국제고라서 그런지 교복이 정말 세련됐지? 오늘은 교복을 입고 가야겠어. 그러고 보니 할머니에게 처음 보여주는 거네.”
거울 앞에서 교복을 입은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한껏 들뜬 보라의 몸짓은 아침 새의 날갯짓처럼 가볍고 발랄하다.
“그런데 그 봉사활동은 그만두면 안돼? 요즘 코로나 때문에 요양시설 가는 것도 안 좋은데 다른 거 하는 게 어떠니? 엄마가 알아볼게.”
“안돼. 엄마. 난 봉사 활동하려고 연희 할머니 만나는 거 아니잖아. 그냥 갈게. 할머니가 얼마나 사신다고.”
“아이고. 넌 참 유별나기도 하다. 다른 애들은 노인네 보기 싫다고 등 떠밀어도 안 간다는데.”
“그거야 내가 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렇지. 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나도 안 가. 연희 할머니는 꼭 우리 할머니 같다고.”
“알았다. 마스크 잘 쓰고. 병실 나와서 손 잘 닦고.”
“네. 걱정 마요.”
아파트를 나오니 아직은 쌀쌀하다. 코트를 입지 않은 게 살짝 후회되었지만, 코트를 입는다면 애써 입은 교복의 멋을 누가 알 것인가. 봄꽃들이 찬바람에 살랑이듯 예쁜 교복을 안으로 숨겨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나풀나풀 걷는다.
이른 시간인데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서 줄을 서 있다.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 호수 공원을 행했다. 요양원까지 버스로 10분, 걸어서 30분이다. 보라는 비가 많이 내리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을 빼면 걷기를 택한다.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햇살도 느낀다. 마른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 노란 꽃망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작고 여린 꽃잎은 어떤 힘이 있길래 저 두터운 껍질을 깨고 나올까. 누렇게 떠 있는 풀잎 사이로 강아지 눈물 같은 보라색 꽃망울들이 돋아나고 있다. 돌아가는 겨울의 뒷모습과 앞서오는 봄의 싱그러움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공원을 걸어 나오자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풍긴다.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이가 모두 빠져서 음식을 씹지 못해도 붕어빵을 좋아했던 두 볼이 푹 꺼진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붕어빵을 한 봉지 사 들고, 편의점에서 두유도 한 상자 산다. 요양원 앞 목련 나무에는 흰 꽃봉오리가 햇살 아래 꽃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긴 복도를 지나 연희 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간다. 할머니의 방은 맨 끝에 있다. 할아버지나 낯선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곳에 할머니는 혼자 누워있다. 할머니는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싫어한다. 어린 소녀의 방문만을 허락한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할머니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낮은 노래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구요. 요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 에에헤 에에혀 어여라난다 듸여라 허송세월을 말어라.'
사방이 새하얀 방, 흰 침대 위에 누운 할머니의 얼굴은 박꽃처럼 희다. 백지처럼 흰 세월이었던가. 할머니의 나이 이제 94세, 백 세를 바라보고 있다. 백 년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할머니의 노래는 오늘따라 더 애가 타게 들린다. 굽은 손가락들이 파르르 떨며 공중에서 너울거린다. 지그시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힘없이 흐른다.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다니. 보라는 할머니의 떨리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석탄 백탄이 타서 연기가 펄펄 나는데 할머니의 가슴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
“할머니. 또 그 노래 부르네.”
“응. 보라 왔구나.”
“할머니가 좋아하는 붕어빵 사 왔어요. 하나 드셔봐요.”
“붕어빵? 붕어빵이 머여?”
“할머니. 붕어빵 몰라요? 붕어처럼 생긴 빵인데…”
할머니는 붕어빵을 코에 가져가서 냄새를 킁킁 맡는다. 그리고는 입술에 대고 입을 맞춘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우물우물 씹으며 희게 웃는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커다란 눈이 더 커 보인다. 움푹 파인 두 볼이 붕어빵을 씹는 동안 볼록거린다.
“고놈 참 맛나네. 붕어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맛난 거 첨 먹어.”
“할머니도 참 재밌게 말하네.”
보라는 두유 팩에 빨대를 꽂아 할머니의 입술에 갖다 대며 방긋 웃는다. 할머니는 두유 한 모금을 마시며 말한다.
“아, 달다. 아. 요놈도 맛나다.”
“할머니. 두유가 그렇게 맛나요?”
“응. 요걸 먹으면 엄마 젖을 먹는 거 같아. 우리 엄마 젖은 정말 달았는데.”
“할머니는 참 좋겠다. 엄마 젖도 먹어 봤으니. 난 엄마 젖을 한 번도 못 먹었어요.”
“아니. 왜. 그럼. 뭘 먹었어?”
“우리 엄마는 출산휴가가 두 달뿐이라서. 젖 떼기 힘들다고 처음부터 소젖을 먹였대요. 나 너무 불쌍하지요.”
“세상에나. 가여워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못된 엄마가 다 있을까. 엄마 젖을 못 먹어서 우리 보라가 이렇게 말랐구나. 아이 불쌍도 해라.”
“할머니. 근데 왜 맨날 그 노래만 불러요? 너무 슬퍼요.”
보라는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서 어깨를 흔들며 보라의 팔을 뿌리쳤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싫어. 난 누가 내 몸을 건드는 게 제일 싫어. 싫다고 했잔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깊게 움찔거리며 소리쳤다.
“미안해. 할머니. 내가 잠깐 잊었어.”
보라는 어쩔 줄을 몰라서 불안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머니는 누군가 목을 조이기라도 하는 듯 마른기침을 뱉으며 두 손으로 야윈 목을 감쌌다. 몸을 웅크리고 보라를 쳐다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호랑이 앞에 물려간 짐승처럼 공포에 질린 표정이다. 보라는 할머니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를 만지게 된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습관적으로 할머니의 몸을 만졌는데 또 그 몹쓸 일이 떠올랐나 보다.
할머니는 여전히 어깨를 못 펴고 고개를 숙인채 중얼거렸다.
“무서워유. 안 그럴게유. 잘못했어유.”
“할머니. 할머니 잘못한 거 없잖아. 이제 여긴 그놈들 없어. 무서워하지 마.”
보라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괜찮다고 계속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바상. 나. 집에 좀 보내주세유. 우리 엄마가 나를 을매나 기다리고 있을 텐디. 나 집에 안 가면 우리 엄마는 죽어유. 엄마 주사 놔주러 가야해유. 지발 나 좀 보내주세유.”
연희 할머니는 다시 소녀가 되었다. 보라의 손을 잡고 집에 가야 한다며 애원을 했다. 최근 들어 섬망 증상이 심해졌다는 소리를 요양보호사님에게서 들은 터였다. 보라는 할머니를 다시 그 무서운 시간으로 떠밀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몸서리를 치며 무서워하는 그 시간을 지우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 시간의 기억들은 할머니의 온몸에 새겨져 있었고, 그 몸속을 흐르는 붉은 피가 멈추지 않는 한, 목울대를 넘나드는 푸른 호흡이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라는 걸 알기에 가슴이 아팠다. 보라는 공포에 질린 할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래. 할머니. 걱정하지 마. 집에 잘 데려다줄게.’
*
연희는 바느질하는 엄마 곁에 앉아서 바늘귀에 실을 꿰고 있다. 엄마는 연희의 해진 저고리 팔꿈치에 무명천을 대고 시침질을 하다가 실의 매듭을 짓고는 연희에게 바늘을 넘겼다. 실 끝에 침을 바르고 바늘귀에 실을 집어넣다가 잘 안 들어가서 애태우는 엄마를 보면서 연희는 얼른 손을 내밀곤 했다. 연희는 오늘따라 바늘귀에 실이 잘 안 들어간다. 엄마에게 월사금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까. 아까부터 가슴을 졸였기 때문에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연희야. 배고프쟈. 손이 다 떨리네. 엄마가 얼른 고구마 빼때기 삶아 줄게. 요거 하나만 더 마치고.”
연희의 등을 토닥이며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유. 엄니. 배 안고파유.”
연희는 햇빛이 쏟아지는 마루로 나와앉았다. 봄이 왔는지 앞산이 푸릇하게 다가왔다. 뒤란의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푸릇해졌다.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에도 여린 풀잎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감나무 위에 까치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서 연희를 바라보고 깍깍 울고 있다. 두 마리의 까치를 보자 아버지랑 오빠가 생각났다. 연희는 까치에게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냐고 묻는다. 뭐 좋은 소식이 있을 리가 있나. 연희는 물끄러미 까치를 보면서 혼자 답한다.
이렇게 하늘이 맑고, 햇살이 따사로운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겨울이 가면 달래 냉이라도 캐고, 진달래 꽃잎이라도 따먹고, 앞 개울에 나가 앉아 빨래도 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봄이 왔으니 좋은 일이 많아진다. 연희는 깡마른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서 햇살이 눈 부셔서 눈을 찡그렸다. 바느질을 마쳤는지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와 연희 곁에 앉았다. 밤새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잔 엄마의 얼굴이 햇빛 아래에서 더 까칠해 보였다. 연희도 잠을 못 자기는 마찬가지다. 뱃구레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를 엄마에게 들킬까 봐 자꾸 몸을 뒤척인 탓이다. 연희는 일어나서 엄마의 어깨를 주물렀다.
“아이고. 시원햐. 우리 연희 손은 누굴 닮아서 요리도 야무진겨. 아이고. 참말로 좋구만.”
엄마는 어깨를 더듬어 연희의 손을 어루만졌다.
“누굴 닮아유. 엄니 딸이니 엄니 닮았쥬.”
연희는 고개를 숙여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려. 그려. 우리 연희는 내 딸이니깨. 당연히 날 닮았재. 엄니는 고구마 빼때기 삶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나도 같이 만들래.”
연희는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넣는 걸 보고 연희는 장작을 가져왔다. 그새 장작불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엄마는 부지깽이로 장작을 뒤채며 빨갛게 타오르는 불을 살폈다.
“엄니. 나도 귀순이처럼 돈 벌러 갈까? 귀순이는 동팔 아재한티서 50엔이나 받았댜. 글씨 간호원이 부족혀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는디 돈까지 준다잔혀. 귀순 엄니는 좋겠어.”
“니 시방 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는겨. 엄니 죽는 꼴 보고 싶어 환장한겨? 귀순 엄니야 좋은지 우짠지 모르겠지만 엄니는 하나도 안 좋으니깨. 다시는 그딴 소리 하지 말어.”
“아니. 그리 화만 낼 게 아니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게지유.”
“생각은 그딴 데 하는 게 아녀. 핵교 가서 공부할 때나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려. 동팔이가 어떤 놈이냐. 일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배부르게 살 수 있게 맨글어 준다고, 니 아부지를 꾀어서 뒷골 논이랑 밭을 죄다 팔아먹고 우리 집을 쫄딱 망하게 한 위인 아닌감. 그것도 모질라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잘난 위인 아니냐고. 그게 어디 인간이여.”
“엄니. 아부지야 돈 벌어서 오겠쥬. 걱정마유. 이제 전쟁도 곧 끝날티고, 오빠도 살아서 돌아올 거구만유. 감나무에 까치 두 마리가 며칠째 집을 짓고 있는 뽄새를 보아하니 곧 좋은 소식이 당도할 거구만유.”
“그리만 되면야 오죽이나 좋을꼬. 니 오빠가 니 하나 지키겄다고 학도병으로 끌려갔는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르고 내 속이 다 썩어문드러졌구만. 금인지 석탄인지에 눈이 멀어 오지 않는 니 아부지도 그렇고. 인자 내는 굶어죽더라도 연희 니만은 아무데도 안 보낸다. 아니 못 보낸다. 다신 그딴 소리 하지 말그라.”
연희는 새벽마다 엄마가 장독대에 물을 올려놓고 절을 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빠가 전쟁터로 끌려가고 나서 엄마는 누워서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가 아픈 것도 못 먹은 것보다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진 탓이다. 엄마의 동생인 동팔 아재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기미년에 만세 운동까지 한 독립운동가였다. 아재가 마을 아이들을 모아 놓고 ‘아동 십진가’를 가르쳐줄 때만 해도 엄마는 아재를 자랑스러워했었다.
‘일, 일본 놈은 간교하여 이, 이상타 생각했는데 삼, 삼천리를 약탈하다 사, 사실이 발각되어 오, 오조약에 떨어지니 륙, 대륙 반도 이천만이 분통 친다 칠, 칠조약 맺은 놈들 팔, 팔도강산 다 넘기니 구, 국수 왜놈에 또 오적이다. 십, 십 년을 하루 같이 독립투쟁 일어난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린 연희가 들어도 똑부러지게 맞는 말이었다. 연희는 처음에 외삼촌이 만든 노래인 줄 알았다. 나중에 외삼촌으로부터 독림운동을 하시는 훌륭한 어른이 무지한 민족을 가르치려고 만든 노래라는 걸 들었지만, 그래도 외삼촌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독립투쟁을 노래하던 외삼촌이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는 건 더 수치스럽다고 엄마는 늘 말해왔다.
“동팔이 하는 말은 금송아지를 가져온다고 해도 똥파리로 알아들을 거구먼.”
“엄니. 나도 동팔 아재는 안믿는디 말여. 근데 그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구먼. 슨상님이 그랬어. 간호 핵교 가면 월사금 같은 거 안내도 공부 시켜준댜. 간호 핵교 나오면 아픈 사람들 치료해주고, 나중에 도시에 가서 일도 할 수 있다고. 슨상님이 설마 나쁜 거 하라고 시키겠슈? 이렇게 해진 옷만 입고, 배곯아가면서 엄마 바늘귀나 꽂아주느니 병원에서 하얀 옷 입고, 아픈 사람들 팔에 주삿바늘 꽂는 일 해보고 싶어. 돈 많이 벌어서 울 엄니 하얀 쌀밥 먹게 해줄 겨. 응? 엄니.”
연희는 엄마의 앙상한 팔에 주삿바늘을 꽂는 흉내를 내면서 방긋 웃었다.
“그 말이 참말일까. 내는 믿어지지 않어. 우째 돈도 안 받고 큰 공부를 시켜준다냐. 시뻘건 거짓부렁이지. 일본놈이 하는 짓은 그 속을 알 순 없는겨. 암만 슨상님 말씀이라도 이젠 믿을 수가 없어. 우리 연희를 보내고 내가 어찌 살긋냐. 이게 다 동팔인지 똥파린지 니 외삼촌한테 속은 니 아부지 탓이여. 세상에 공꺼가 어디 있는 줄 아냐. 공꺼를 바라면 다 피를 흘리는 벱이여. 광산인지 금광인지에 홀려 땅 다 팔아서 집을 나가 소식도 없으니. 정처 없는 양반 같으니라구. 어디 가서 귀신이 되었는지. 아이구 억장이 무너지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구요. 요 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 에에헤 에에혀 어여라난다 듸여라 허송세월을 말아라.”
*
딱 너처럼 고운 나이였어. 나도 복숭아꽃처럼 이쁠 때가 있었어. 난 엄마 말을 듣지 않고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집을 나왔지. 동팔 아재는 엄마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켜놓고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어. 아마 아재도 내가 그렇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안 했을 거야. 알고도 보냈다고는 생각하기 싫어. 엄마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생각 안 했어. 나는 어린 맘에도 어쨌거나 먹고 살려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간호학교는 실낱같은 희망이었지. 그 희망은 금방 깨져버렸어. 내가 일본에 가서 간호학교에 가게 되리란 것은 거짓임에 드러나고 있었지.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고 했는데 짐짝처럼 트럭에 실렸어. 트럭에는 예닐곱의 여자애들이 있었고, 몇 군데를 더 거치면서 스무 명이 넘게 되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애들은 불안해했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도 들렸지. 난 울지 않았어. 언제 어디서든 버텨낼 거라고 다짐했어. 트럭은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부산을 가는데 며칠이나 걸리진 않을 거란 생각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차갑던지 온몸에 한기가 들었지. 고향에도 봄이 오고 있었으니, 부산은 더 따뜻한 곳인 줄 알았으니까 입은 옷도 얇은 봄옷이었거든. 두 손을 호호 불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어. 아니나 다를까. 트럭에서 내린 곳은 압록강을 건너고 목단강을 건너 만주 땅이었어.
조선말을 더듬거리는 어떤 아줌마가 우리를 세워놓고 번호를 매겼어.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11명이었고, 제법 처녀티가 나는 여자 어른이 9명이었어. 난 15번이었어. 일본어로는 ‘쥬고방’이야. 난 그 소리가 죽어 보라는 소리로 들려서 나를 부를 때마다 죽는 줄 알았어. 그 아줌마는 자기를 ‘쵸우바’라고 말하고, ‘마오 오바상’이라고 부르라고 했어. 나중에 그들의 말을 알게 된 후 소름이 끼쳤지. ‘마오’는 마왕이란 말이었어. 얼마나 악독한 곳에 왔는지 그 악마 같은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알았어.
마오는 우리에게 일본 여자들이 입는 옷을 입히고, 캄캄한 방 안에 집어넣었지. 방안엔 작은 이불 한 장만 달랑 있었어. 불안하기도 했지만 잠깐 기대도 했지. 나는 혹시나 여기가 일본인가. 일본도 추운 곳이 있을 테니까. 이곳이 간호학교이길 빌며 첫날 밤을 보냈어. 그런데 다음 날 아침부터 일본 군인들이 날마다 찾아왔어. 강제로 그 짓을 했어. 처음에는 모르고 당했는데 알고는 당할 수가 없었어. 물어뜯고, 소리치고, 온몸을 비틀며 손도 못 건들게 했어.
정말이지 죽을 만큼 싫었어. 군인들은 말을 안 들으니 때리고 발로 걷어찼어. 그곳에서 쥬고방은 기피 대상이었지. 덕분에 며칠은 당하지 않아도 됐는데, 그래도 일부러 나를 찾아오는 것들이 있었어. 어느 날 힘이 센 놈들 몇 명이 같이 들어왔지.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서 바닥에 눕혔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지. 시러유. 왜 이래유. 무서워유. 난 소리치다가 결국 내 혀를 깨물었어. 그들은 나를 ‘기타나이 조센징’ 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나갔지.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나지도 않고, 밥을 먹지도 않았어.
마오의 방에 끌려갔어. 마오는 평소처럼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았어.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여기 왜 왔냐고 물었어. 난 간호 공부를 하려고 왔다고 했지. 간호 공부는 왜 하려고 하느냐고 묻길래 아픈 사람도 낫게 해주고, 나중에 고향에 계신 엄마의 병을 고쳐주고 싶다고 했지. 그랬더니 마오가 간호 공부는 좋은 일이라고 했어.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거니까. 그러면서 너도 지금 그 일을 하는 거라고 했어. 전쟁터에서 총칼을 들고 싸우는 군인들이 얼마나 무섭겠냐면서 내가 그들의 마음을 보살피고 힘을 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어. 그들은 다치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다고 소리를 질렀지. 게다가 그들은 나를 아프게 한다고 했지. 마오는 겉에서 보이는 상처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더 나쁜 거라고 말했어. 그리고 군인들의 마음을 위안해 주는 내가 총 맞은 군인을 치료해주는 간호보다 더 훌륭한 일이라고 했어.
내가 아무리 어려도 그 말은 너무나 바보 같은 말이지. 뻔뻔스러운 말을 웃으면서 말하는 마오가 정말 악마 같았어.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난 울음을 참으면서 말했어. 난 이제부터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집으로 가겠다고 했지. 그랬더니 마오는 내가 일을 안 하면 고향에 계신 엄마를 데려오겠다고 했어. 나는 이미 여기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100엔의 돈을 받았고,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차비와 여기서 먹고 자고 한 비용을 모두 갚아야 한다고 했어. 그 돈을 엄마에게 받아내던지, 없으면 엄마를 데려오는 수밖에 없다는 거야. 난 너무 두려웠어.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 악마 같은 마오가 정말 엄마를 끌고 올까 봐 겁이 났어. 그럴 수는 없었어. 내가 당하는 고통을 엄마에게 지울 수는 없었어.
처음엔 그곳이 만주인지도 몰랐었지. 지옥 같은 3년을 보내고, 해방되고 나서야 알게 됐지. 목단강 부근에 살던 조선족 부부가 며칠간 보살펴 주었어.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지.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그분들 덕에 물어물어 집까지 잘 찾아왔어. 꿈길에서 날마다 찾아갔던 그 길을 하염없이 걸었어. 목단강을 건너고 압록강을 건너고, 풀뿌리를 캐 먹고,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오로지 엄마 품속에 안겨 실컷 울고 싶어서 쉬지 않고 달려갔어.
엄마는 거지꼴을 한 나를 끌어안았지. 목이 메어서 말도 못 하고 소리도 없이 울기만 했어. 학도병에 끌려간 오빠와 금을 캐러 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어. 엄마랑 둘이서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았어. 혹시나 늦게라도 아버지와 오빠가 돌아올까 봐. 우리 모녀는 난리 통에도 피난도 안 가고 살아남았고, 엄마랑 모질게 살았어. 엄마 곁에서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어. 배고픔도 나를 바라보는 멸시의 눈길도 엄마가 있어서 참을 수 있었어. 눈보라 치는 밤에 대나무 울음소리, 언 강이 깨지는 소리, 옥수수밭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엄마의 노랫소리에 다 묻혀버렸지.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구요.
무슨 목숨이 이다지도 질긴지 빨리 엄마에게 가야 하는데….
*
컴퓨터 저편에서 선생님이 의자에 앉아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왁자지껄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선생님을 궁금해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생략되었다. 선생님은 입학을 축하한다는 짧은 인사와 더불어 코로나가 지나가면 교실에서 웃는 얼굴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처음 경험하는 일들로 당황스럽고, 조금씩 불편하고, 점점 괴로워지고, 때로는 이 불편한 상황에 분노가 폭발하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이건 지혜를 모으면 겪고 지날 수 있는 전염병이니까 힘들더라도 서로를 위해서 내가 조금 더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정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연대의 마음을 역사에서 배우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먼저 시를 한 편 소개할게요.”
무서운 시간/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선생님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마치 무서운 시간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시간 여행자 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하늘이 없는 하늘 아래에서 누군가 내려와 옥죄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잠시 눈을 감아 보라고 했다.
“이 시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각자 마음속으로 무서운 시간을 생각하면서 시인의 시간으로 들어가 볼까요.”
시인이 처한 상황은 어떤 걸까? 가랑잎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부르는 것,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부르는 것,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냐고 묻기만 한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말라고 말한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화자가 말한 무서운 시간은 무서운 공간이기도 할 테지요? 무서운 공간 속에 처한 무서운 시간은 시대를 말하는 걸 테지요? 그 시대에 무서웠던 그 시간과 공간에 처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러분이 그 시간의 공간 속으로 돌아가 보세요.”
시인이 처했던 시간은 일제강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박의 시간이다. 그의 마지막 공간은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 햇살도 바람도 하나 없는 감방이다. 봄이 오고 있는 밖에는 가랑잎이 푸르러 움트고 있을 터인데 시인은 겨우 호흡만이 붙어 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내 호흡이 남아 있다고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그를 부르는 것은 누구일까?
“그 무서운 시간을 견디며, 시대의 그늘을 살다간 우리의 선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참 맑은 하늘이네요. 그 무서운 시간에도 하늘은 맑건만 시인의 한 몸 둘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생각을 하는 인물이었을까요?”
보라는 창밖으로 펼쳐진 파란 하늘과 새들의 노래를 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누리고 있다. 불행이라고는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불편뿐, 지금껏 누리지 못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에 못 가고, 친구들과 마음껏 놀지 못하고, 마스크를 쓰는 답답함을 견뎌야 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짜증이 났다. 이렇게 한없이 약하고, 이기적인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 시대, 그 무서운 시간 속의 나.
“여러분 나이의 소년 소녀들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부모님의 사랑과 가족의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하고픈 것만 하면서 살아온 여러분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비극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어린 소녀들, 위안부 피해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16분이 생존해 계십니다. 물론 아직 세상에 나서지 못하고 숨어계신 할머니들도 계십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날까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보라는 중학교 한국사 시간에 들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어느 날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 검정 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들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절망적인 사진이었다. 선생님은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만큼이나 그 시대를 살아간 백성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현장학습으로 수요일 집회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연희 할머니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할머니는 건강했었다. 90세가 된 할머니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한지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거리다가 병신되면 못 가보리’ 갑오년에 일제 침략에 맞서 동학농민전쟁을 일으켜 싸웠으나, 을미년에 전봉준이 처형되고, 왕비가 사형당했으며, 병신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갔다. 근대화로 의식이 깨인 민중은 노도처럼 일어나 일제에 맞섰지만, 지식층들은 을미적 을미적 노래만 하다가 병신이 됐다고 풍자하는 노래다. 묘하게도 그해에는 백 년 전 민중처럼 시민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었다.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만화 전시회를 온라인으로 하고 있어요. 각자 전시 영상을 보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입장이 되어 보거나, 할머니들을 기리는 시를 한 편씩 제출하길 바랍니다.”
수업이 끝나고 보라는 한국만화박물관에 접속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만화 영상 ‘열여섯 살이었지’에 대한 안내가 떴다. 게시판을 클릭하자 작가들이 올린 영상들이 여럿 있었다. 조심스럽게 하나씩 영상들을 보았다.
‘그 길을 따라나서지 말았어야 했어.’
‘열여섯 살에 낯선 남자에게 납치당해 중국 연길에 끌려가 지옥 같은 3년을 보냈다.’
‘돌아오지 못할 길이란 걸 그때는 몰랐지. 영영 생이별이 될 거란 걸 꿈에도 몰랐어.’
‘아이고 어무이 나 억울해서 못 죽소, 내 나이 열세 살에 감자 캐다 끌려갔소. 만주다 상해다 만신창이 되어서 끌려다녔소. 죽어도 나는 예서 눈을 감지 못할 테요. 두 눈 부릅뜨고서 오리발 닛뽄도가 누굴 또 베는지 똑똑히 볼라오.’
소녀들은 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풀이었다. 세월이 지나서 자신들의 상처를 꺼내 세상에 보여주고, 바람으로 살아온 모진 목숨을 이야기했다. 소녀들을 짓밟은 그들은 이제라도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속죄해야 한다. 우리라고 잘못이 없음인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매국노보다 나중에 변절한 사람을 더 용서할 수 없는 거처럼 한마을에 살던 이웃 아저씨에게 속아 위안부가 되었던 소녀들, 힘이 없어서 지켜주지 못한 소녀들에게 누군가는 나서서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소녀들이 돌아왔을 때 손잡아주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고 멸시했던 이웃과 친척들 때문에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게시판에는 다녀간 사람들이 한 줄씩 메모를 남겼다. ‘진실의 반대말은 허위가 아닌 망각이다. 잊지 말아야 반복되지 않는다.’ 누군가 적어놓은 글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보라는 자신도 무슨 말을 남기고 싶어 고민하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할머니가 당신을 용서할 수 있는 날이.’라고 적었다.
*
무서운 시간에도 시인은 시를 썼다. 시대를 남기고 삶을 기록했다. 주어진 시간을 마주하고 허투루 죽지 않았다. 산다고 다 사는 건 아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목숨 때문에 처한 공간을 바꾸지 않았다. 그 무서운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살아낸 공간은 모두 달랐다. 살기 위해 누군가는 쉽게 자신을 내주었고, 타인의 삶마저 허물어뜨렸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 앞에 타인의 삶을 두었다.
연희 할머니는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였지만 소리 없는 저항을 했다. 자신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감내하면서 울지 않고 노래했다. 울분을 드러내지 않고 연꽃의 기도처럼 노래를 불렀다. 더러운 물속에 뿌리를 내려 향기로운 꽃을 피워냈다.
보라는 연희 할머니가 살아온 내력을 남기고 싶었다. 할머니를 만나서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면회를 신청했다. 요양원에서는 코로나 여파로 요양원 방문은 비대면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비대면이 뭐지? 대면이면 보는 것이고, 비대면이면 못 본다는 건데 어떻게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요양원 출입구에서 벨을 눌렀다. 복지사 언니가 면회실로 안내했다. 면회실에서 체온을 재고, 출입명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입하고 있으려니까 휠체어를 탄 연희 할머니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휠체어는 면회실 문 앞에서 멈췄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요양보호사님이 출입문 옆 인터폰을 들었다. 보라를 향해 인터폰을 들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 인터폰으로 할머니와 이야기하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아, 비대면이 이런 거구나. 그래. 이건 대면이 아니지. 할머니 손을 잡지도 못하고 할머니의 숨결도 느낄 수 없는걸. 보라는 손을 흔들며 웃었다. 할머니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소리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오래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답답했다. 유리창 건너로 손을 뻗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싶다. 보라는 손바닥을 펴서 유리창에 갖다 댔다. 할머니도 손을 펴서 유리창에 댔다. 다시 갇혀버린 삶을 살아야 하는 할머니가 너무 가엽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저곳에서 외롭지 않게 잘 버텨주셔야 할 텐데.
“할머니. 소원이 뭐예요?”
“소원은 무슨. 그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다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편히 눈 감고 싶어.”
“그래. 할머니. 내가 할머니 소원 기억할게. 할머니 소원 이루어줄게. 그러니까 할머니 힘을 내요.”
“그럼. 보라는 용기 있는 아이니까 할 수 있어. 꼭 그렇게 해줘. 부탁이야.”
“알았어. 할머니. 난 용기 있는 아이야. 그리고 할머니처럼 당당한 어른이 될거야. 할머니.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
“다시 한번 여자로 태어날 거야. 좋은 남자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보라처럼 예쁜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어.”
연희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띠며 수줍게 웃었다. 온통 가시밭길을 살아온 삶과는 거리가 먼 맑은 웃음이었다. 면회가 끝나자 할머니의 휠체어가 천천히 돌아섰다. 동그란 할머니의 백발이 흰 꽃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았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린 연꽃처럼 향기로운 웃음꽃이 유리창 너머로 번졌다.
연꽃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줍게 봄을 맞이하던
열여섯 소녀는
풀잎처럼 여린 꿈을 안고
만주로 날아갔네
봄도 오지 않는 그곳에서 기다리는 건
가슴을 할퀴는 승냥이들의 울음뿐
돌아갈 길 없는 첩첩산중
언 강을 떠도는 바람처럼 살았네
흰옷 입은 천사가 되어
어머니 곁으로 가는 꿈길마다
목단강을 건너고 압록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들을 달려 울던 날들
까닭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짓밟힌 소녀의 가슴에
아픔을 견디고 끝끝내 살아나서
어머니 품속에 피운 눈물 꽃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삶을 앗아간 자리에
꿈들은 피어나서
희디흰 소녀가 되어 노래하네
사라지지 않는 소녀여
지지 않는 꽃이여
가슴 속 이야기로 피어나라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노래하라
1926년생 나연희 할머니 삶의 내력, 2020년 열여섯 연보라가 쓰다.
첫댓글 보라가 더 크면 해야 할 일이 있겠군요.
박근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한일 위안부 합의> 에 발목 잡힌 일본군 성노예자 인권.
2015년 12월 밀실에서 이뤄진 이 합의를 무력화시키고 할머니들의 명예를 되찾아주는 일이죠.
오랜만에 뒤를 돌아다 볼 수 있는 소설 잘 읽었어요.
말 그대로 최종적 불가역적 인물이 박근혜와 그 정부입니다.
당사자들은 제쳐두고 그런 쓸데없는 황당무계한 짓을 저지르다니...
그러고 보니 정말 무서운 시간이었네요ㆍ그 시대를 생각하면 무섭다는 생각보단 억울하단 생각을 먼저 하는데ㆍ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ㆍ그것부터 이해하는 것이 먼저군요ㆍ시간은 없고 모두 돌아가시기전에 우리가 뭔가를 해야하는데요ᆢᆢ연보라가 당시 만주일본군의 손녀였으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ㆍ
보라의 말처럼 그들이 할머니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위안부 관련 자료를 잘 모았군요. 일본통 역량도 돋보이구요. 연희 할머니가 무서운 시간에서 비로소 벗어나길 소망할 뿐입니다. 의미있는 소설 잘 읽었습니다.
작년에 서두를 써놓고 글이 나가질 않아서 마무리를 이제야 했네요.
이런 글이라도 자꾸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치유가 될 수 없는 상처지요. 삶을 송두리째 밟힌 할머니들이니까요.
이제 정말 얼마남지 않았는데, 저들은 점점 뻔뻔스러워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