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8:1-8, 항상 기도하되 낙망하지 말라. 26.1.11, 박홍섭 목사
지금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통치권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임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나라를 허락받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교훈하셨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그 나라의 영광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비유가 어떤 내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비유를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귀찮게 하고 번거롭게 하여 마침내 자신의 원한을 이룬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귀찮게 여길 정도까지 끈질기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내어야 함을 가르치는 비유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의 목적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 비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열심히 끈질기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자”와 “항상 기도하되 낙망하지 말자”는 많이 다릅니다.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항상 기도합니까? 주님은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강청하는 과부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어느 도시에 한 과부가 삽니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원수 때문에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는 현실입니다.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습니다. 과부는 성경에서 고아와 더불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철저한 남성 중심의 유대 사회에서 남편이 없고 돌보아줄 아들이 없는 과부의 힘겨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직 그 도시의 재판관만이 그녀의 억울함과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재판관을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합니다. 3절 보십시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그러나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며 의로운 판결에도 관심이 없는 불의하고 악한 재판관이어서 그녀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매일 재판관을 찾아가서 호소하고 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비록 불의하고 악한 재판관이라도 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과부와 성도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부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듯이 신자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여러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하나님께 하소연하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상 기도합니다. 항상 기도하는데 억울함이 즉시 해결되지 않아서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그런 현실을 아십니다. 그래서 이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 비유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데 방점이 있지 않습니다. 6-7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물며’라고 불의한 재판관과 의롭고 신실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매어 달려서 기도하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그런 기도는 기독교 말고 다른 곳에서도 차고 넘치지 않습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뜨겁게 매달리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됩니다. 재판관이 악하고 불의하지 않다면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계속 찾아갈 필요도 없이 바로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 재판관은 계속 거절하다가 귀찮아서 들어주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귀찮아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재판장 아니십니다. 의로운 재판장이며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어떤 분은 이 본문을 설교하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않고 있냐면서 하나님을 귀찮게 하는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고 적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괴롭히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시니 기도로 하나님을 더 많이 괴롭히고 귀찮게 해서 우리의 기도에 꼭 응답하실 수밖에 없도록 하자고 도전했습니다. 무슨 의도의 권면이고 도전인지는 알겠는데 주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와는 다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유 속의 과부와 현실의 교회는 이 땅에서 처지가 비슷합니다. 과부는 남편이 없습니다. 교회도 신랑이신 예수님이 잠시 하늘로 올라가 계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신랑이 없는 과부와 같습니다. 물론 성령님이 계시지만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는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처럼 밤낮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가 과부처럼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까?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의해서가 아닙니다. 왜 기도하는데 낙심되는 현실이 많습니까? 신랑 되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억울한 일과 원통한 일을 허락하실 때는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장 우리의 억울함과 문제와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당신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셔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자꾸 찾아오니까 귀찮고 괴로워서 간청을 들어주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 우리가 더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지각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하는 자리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의와 진리와 생명을 소망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소망이 우리 안에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롬 5:3-4을 보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환난과 인내와 연단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우리의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주신 분입니다. 선하고 의로우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허락하실 때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약 1:2-4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지금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들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 자리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일을 당하여 기도하다가 즉시 응답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항상 기도하되 그분의 의도대로 다시 오실 주님을 설렘으로 기다리는 주의 신부로 다듬어지고 빚어져야 합니다.
비유의 결론은 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속히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시고는 그러나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십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충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과 충돌이 아닙니다. 참으로 가슴 시리고 아련한 결론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원한을 아십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당하는 억울함과 아픔을 아십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문제와 원한을 통해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는 시늉만 내어도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스탠바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련하고 연약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욕심을 걸어놓고 이루어질 때까지 부르짖는 믿음은 많지만, 항상 기도하되 낙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안타깝고 간절한 주님의 부탁이 담긴 결론입니다. “얘들아, 내가 반드시 다시 온다. 그때까지 내가 너희들을 붙들고 인도하고 지키고 돌보고 있다. 고난의 길을 허락하여 내 백성으로 빚어내고 참된 소망을 품고 사는 자들로 만들어가고 있다. 제발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원한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신실한 하나님 아버지가 택한 너희들의 그 정당한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 그러니 믿어라. 나를 믿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어라. 인내로 너희 영혼이 얻어지기까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라. 술 취함과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로 너희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깨어서 준비하라.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로 지혜와 경건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구비되어 가라. 내가 온다. 다시 온다. 반드시 온다! 믿음을 가져라”
이 권면에 우리가 응답하면 좋겠습니다.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빨리 응답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믿음으로 주의 길을 가겠습니다. 주님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인내와 연단 가운데 소망을 품겠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설렘으로 기다릴 수 있도록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마다 주의 뜻이 깨달아지게 하시고, 우리의 지각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은혜를 주옵소서. 기쁨으로 주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