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의 두 번째 본당으로, 1900년 6월 12일 정의군의 한논(大畓, 현 서귀포시 好近洞)에서 설립되었으며, 1902년 7월경에 홍로(烘爐, 현 서귀포시 西烘洞)로 이전되었다가 1937년 8월 15일에 서귀면 서귀리(현 서귀포시 송산동)로 다시 이전되었다. 이어 1958년에 모슬포 본당, 1970년에 서귀포 복자 본당, 1973년에 성산포 본당, 1988년에 효돈 본당을 분리함으로써 현재의 관할 구역을 갖게 되었다
♧중문성당
서귀포 본당의 사목 관할 구역이던 중문 지역에는 1955년에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1956년 8월 15일에는 공소 경당을 마련하고 그 이름을 ‘하늘의 문 공소’로 명명되었다. 이 공소는 1970년 11월 9일에 서귀포 중앙 본당이 분리 신설되면서 새 본당 소속으로 변경되었다가 1988년 2월 10일 중문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예래 공소 지역이 본당 관할로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순례자의 모습들
☞아침 07시 주님수난성지주일 미사를 시작함.
☞ 어제 순례자인 방승욱 율리아노 형제님이 신흥리 앞바다 갯마을이란 횟집을 개인적으로 아는 곳이여서 그곳에서 한보따리 얻어 요로케 맛있는 누룽지탕을 끓였습니다. 여기서 누룽지탕을 먹게 될 줄이야~~속이 든든했슴다~!!!
☞9시 40분 서귀포 성당 도착~ 10시 미사, 신자들이 미사준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2013년 가톨릭 미술 공모전 참가 작품으로 기나긴 박해속에서도 신앙을 이어온 신앙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기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며 피로써 순교한 선조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품임. 125개의 칼날로 이루어졌으며 칼날 위에선 순교자들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함. 순교자 125명의 얼굴입니다
☞초가지붕을 잇는 '새(띠)'가 많이 생산된다 하여 '새섬'이라 불리는 곳에서 찰칵! 전설에는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이곳으로 날아와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 새섬으로 가기위한 새연교(2009년가설)위에서~순례인지 관광인지 정체성이 살짝 의심 받을 정도로 밝은 얼굴들~!!! 제가 보기엔 너무나 고달픈 순례길임에도 영성으로 이겨내며 밝은 표정을 유지하는 멋쟁이 순례자들입니다.
☞외돌개 앞에서~~ 외돌개는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되어 용암지대에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돌기둥이 홀로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주변 해안은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절벽과 동굴이 절경을 이룹니다.
☞속골(올레7코스중간쯤에 있음)정자에는 바람이 너무 불어 기냥 바닥에서 먹기로~~이제서야 순례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남들 보기에도 고생스러워 보이고~~ㅋㅋㅋ 싸온 밥과 김치,김,멸치볶음, 건오징어무침~~ 환상의 밥상입니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신부님께서도 서서 드십니다~~
☞육적으로 채웠으니 영적으로 채우기 위해 홧팅!!!
☞접니다~~어찌해야 할까요 저 배를~임신 8개월인데 제가 무리하게 순례를 왔나 봅니다. 실은 5개월 정도였는데 1주일만에 더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걷는데도 밥을 두그릇, 어떨땐 두 그릇 반, 매번 간식을 먹다보니~~요로케 육적으로 순례길을 헤메고 있습니다.
☞물질하는 해녀들~!!!
☞오후 2시 30분 강정바닷가 우체국 정자에서~~
☞제 2P부터 현재 6P 까지 1P수료 선배님이 한번도 빠짐없이 후배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이곳으로 오메기떡을 보내주신답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신부님의 덕담과 순례자들의 이야기 꽃이 오메기떡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순례자 이원필 펠릭스 형제님입니다. 박식한 지식으로 권위를 갖고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분이십니다. 일주일이 지나 잘 안통하자 소통 방법을 바꿔 개그로써 후배 순례자들과 소통하며 웃음을 선사하십니다. 아래 글씨를 직접 서까래(지붕의뼈대)에 의자 2개를 올려놓고 목숨걸고 써 주셨습니다. 명필입니다. 도보 1일차 원조주먹밥 주인공이기도 하십니다.
☞강정천 다리입니다.
☞아스팔트 도로길을 발바닥이 터지도록 걷다. 오후 5시 30분 중문성당에 도착.
☞중문리 집단 학살 터 중 가장 침혹한 학살극이 벌어진 곳이 중문리 '신사터'이다(현중문성당). 신사터는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 중문천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주민 34명을 비롯하여 강정리 주민 6명, 대포리 주민 1명, 도순리 주민 2명, 상예리 주민 2명, 상천리 주민 5명, 색달리 주민 17명, 하예리 주민 2명, 하원리 주민 1명, 회수리 주민 1명 등 총 71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12월 17일 중문리 주민 20여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80대 노인에서부터 2살 난 아기에 이르기까지 무참히 희생되었는데 일가족이 함께 집단 총살되는 비극이 많았다. 또 다른 동족상잔의 비극입니다. 위령들을 위해 기도드리며 더이상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순례를 마치고 6시 30분 중문에 있는 백종원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본'음식점에 가서 갈비탕 먹었습니다. 양도 많고 서비스도 좋고 맛도 일품입니다. 상차림전에 오늘의 묵상 나눔도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매번 저희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애써주십니다.
순례자들 모두의 마음을 모아 감사드립니다.
~~ㅋㅋ 제가 저녁 식사시간만 되면 망각증상이 일어나 사진 찍는걸 까먹습니다. 정말 멋진 곳에서 먹었는데~~너무 아쉬워요~
▣ 순례자 참여마당
| | (금영진 베로니카 자매님) 도보순례 중반에 서서히 몸이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칠일째,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빛바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돌담, 이름모를 들꽃과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꽃밭,. 하느님 작품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하루입니다. 바위길, 흙길, 잔디길, 자갈길, 시멘트길, 아스팔트길, 꽃길, 산책길,..오르락 내리락하며 우리 인생길 닮아 현재(이순간)을 충실히 살아가야함도 알았습니다. 서귀포, 중문성당은 아다하지만 주님수난성지주일에 교우들의 열심한 모습도 느꼈습니다. 얼떨결에 중문성당 신부님과의 악수도 하고~~같은길을 함께 했지만 다른 묵상나눔도 많은걸 배우고 내일은 또 어떤 순례길이 펼쳐질지 기대하면서~~제육!제육!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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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효진 안나 자매님) 아름다운 순례길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설레임으로 시작된 여정이 2~3일 지날무렵, 히말라야 등반에라도 나선듯 두려움이 스멀거렸고 어느덧 7일째 영적 깨어남의 기쁨에 젖어든다. 중문성당 가는길, 제주도 강풍을 맞으며 한참을 걷다 사춘기 무렵 일부러 비를 흠뻑 맞고 돌아다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자연과 얼마나 스킨쉽을 했던가.....흠뻑맞은 강풍으로 촉촉해지고 밝아진 마음은 나도 모르게 흥얼이게 했다. '찬미하여라. 오 나의 영혼아! 찬미하여라. 거룩한 주이름' 절뚝이며 주님께 한걸음 또 한걸음.....은총의 순례길, 감사합니다.!!! |
▣ 하루를 마무리하며
늦은 시간이다. 아니 너무 이른 새벽시간이다. 이곳 숙소는 큰방 하나에 자매님, 형제님, 신부님 이렇게 세곳으로 칸막이가 되어있다. 우리 순례자들 밤새 잠안자고 노래 연습을 하신다. 형제님들은 퇴너, 자매님들은 소프라노, 신부님은 솔로~~!!! 제목은 코골이다.
나는 순례여정중이다. 나의 순례는 도보가 아니라 매일 사진과 글을 올려야 하는, 팔자에도 없는 소명인거 같다. 순례오기 3주전 등갈비가 골절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거의 순례는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였지만 그래도 3주면 뼈는 붙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지내던중, 출발 10일전 신부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제주도 순례길에 사진과 글을 담당하라는 말씀이셨다. 갈지 못갈지도 모르는 깜깜하고 답답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글까지 쓰라는 말씀에 순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하지만 신부님 말씀에 이러쿵 저러쿵 변명과 거부를 한다는 것이 예의가 아닌것 같아 '예'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건 뭐지', 마치 한번도 가지않은 밤길을 혼자 가야할 때처럼 막막하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출발 5일전 아직도 등쪽에 통증이 있고 잠자리도 한쪽으로 자야하는 현실적으로 갈수가 없는 상황이였다. 주변에선 그런다. 나 한테 미쳤다고, 그리고 안나한테도 말한다. 안말린다고...신부님께 못간다고 전화를 드려야 되지 않나? 다른 분들한테 민폐일텐데...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속에 전화를 걸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운명적인 순례길! 그런데 기적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은 복대를 풀렀고 다른 순례자들과 똑같이 걷고 있다.( 의사쌤은 3주간 더 하라고 했지만) 도저히 걸을 수 없으면 중간에라도 귀가하던지 아니면 신부님 차량을 이용할 생각이였는데 이 모든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그런데 문제는 걷는건 그런대로 하겠는데 이렇게 매일 글을 올려야 하는건 또 다른 고통이였다. 새벽 2시, 3시는 기본이다. 무슨 종군 기자가 기사쓰는것도 아니고...이런 경험 너무 생소하고 낯설다. 힘들기도 하다. 내가 왜 이걸하고 있나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하루하루 잘도 하고 있다. ㅋㅋㅋㅋㅋ 도보 이틀째는 코피나고~~아! 이게 순례길이구나 주님께서는 나에게 도보를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호두껍데기처럼 단단하게 굳어있는 나의 영성을 이렇게 깨시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이 걷는것도, 사진을 찍는것도, 글을 쓰는것도 싫지가 않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은총과 축복을 주실거라는 확신이 서기 때문이다. '소명은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이다'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다시 한번 나를 위로한다.
첫댓글 왜 신부님께서 제육 작가가 되라 하셨는지 신부님의 영적 선택에 놀랍습니다. 기수마다
작가가 되신 분들이 힘들게 느끼면서도 해내는 영광의 고된 작업 덕분에 생생하게 제주도보순례의 은총을 함께 할 수 있어 매일 기다려져요. 몸도 기적처럼 나으시고 힘드신 만큼 순례의 은총을 듬뿍 받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글 속에도 은총이 듬뿍 묻어나네요.
오늘도 모두 힘내시고 영육간에 기쁘고 즐거운 순례길 되시길 기도드려요.~~^^
넉넉하신 형제님 불펀하신 몸으로 순례길을 걸으시느라 글을 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짐 중에 가장 무거운 짐은 두려움 같습니다.
은총도 넉넉하게 받으신걸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잘 따라 가고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힘내십시오.
화이팅 ^^
현장감 있는 글을 써주시는 형제님, 반갑습니다. 사진으로 뵙고 인사드립니다.~ 꾸벅 125명의 피의 순교성인으로
이루어진 십자고상은 마음을 찡하게 하네요.
우리 후손들이 그분들의 피땀이 헛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어느새 순례길을 반을 지나셨네요. 대댠하십니다.
아마 주님께서 선봉에서 이끄실겁니다. 6P 순례자들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화이팅하십시오.
그렇게 힘들게 순례의 길에 참석을 하셨네요.
그럼에도 맡은 소임 무리없이 잘 해내시는 것 보니 대단하십니다.
쉽게 이루어지는 일보다 힘들게 해낸 일들이 뒷 날에는 더 이야기거리도 되고,
이뤄냈다는 기쁨도 클 것입니다.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그런지,
모르시는 분들에게도 정이 가고~ 오랜지기처럼 느껴지네요.
혹시 마법을 걸어놓으셨나요?^^*
신부님 모습 오랜만에 뵙네요..
주님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격려해 주심에 힘이 됩니다~~순례자들 마무리 잘 할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시는 그이상의
생생한 현장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ㅋ
기적도 체험하셨을듯 ㅋ
완쾌하시고 영육간의
크나큰 은총도 다 받아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