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암에 친구를 빼앗겼습니다.
2009년 12월 31일 친구가 죽었다는 비보가 날라 왔습니다. 광주대학교 교수
로 재직했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고교 3년 때 저와 함께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제적을 당한 동지와 같은 친구입니다.
5년 전에 위암 진단을 받은 뒤 바로 수술을 하여 무척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었
는데 최근 3개월 전 몸이 약간 이상이 있어 병원에 갔었는데 암 재발 진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화순 전대병원에 입원하여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
을 듣고 문병을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문병은 가지 못하고 죽음
의 소식만을 듣고 만 것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습니다. 특히나 투병 중
인 친구에게 문병도 가지 못한 죄스러움에 더욱 목이 메었습니다.
죽어버린 친구를 만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만은 만사를 제치고 눈길을
달려 화순 전대병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친구는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
교를 다니고 있는 딸만 셋을 두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딸 셋이서 빈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차마 똑바로 분향의 예를 차릴 수가 없어 분향재배를 하
는 둥 마는 둥 하고 조문객들이 모여 있는 술상으로 왔습니다. 고교동창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 같이 제적을 당했던 성석이, 수일이,
그리고 해갑이, 태연이, 영돈이랑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들 서로 인
사말은 커녕 엉거주춤 눈빛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인사를 건냈습니다.
고교 3학년 1975년 4월 유신반대 시위를 하고 학교를 쫓겨났던 시련을 겪은
이후 처음으로 우리들이 다함께 겪는 시련의 아픈 모습들이었습니다. 5년 전
에 조대병원에서 직접 위암 수술의 집도를 했던 조대 의대 교수 영돈이는 완
전히 넋이 나간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는 3개월 전 재차 병원에 입원을 하였을 때는 암이 온 몸에 퍼져있었고 암
의 진행 속도가 엄청 빨라 마지막으로는 골수암이 죽음으로 가게 했다고 합니
다. 암이 재발한 것이죠. 재발한 암이 무섭고 위험하다고 하던데 그게 딱 맞는
말이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왁자지껄했을 분향소 분위기가 서로 말을 아끼는 듯 조용했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을 술 마시기도 무척 조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 인생무상에 관한 이야기, 암에 관한 이야기며 병원에
대한 이야기 등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고 갔습니다. 그동안 오랫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는 이제는 오늘처럼 친구가 죽든지 우리가 죽든지
해야만 만날 수 있겠다며 그동안 만남이 소원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하였습니
다.
별로 할 말이 없어 친구들의 이야기를 쭉 듣고 있으려니 꼭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앉아 있던 영돈이가 암수술에 대한 누구
의 이야기 뒷 끝에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 요지는 이랬습니다.
“이제 암도 많은 정복이 이루어졌다. 어떠한 암도 초기에 발견 시는 항암요법
이나 수술 등으로 많이 완치를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져가는 실정이다. 주로 자기와 같은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는데 외과 의
사 지망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를 가는데 그 중
에서도 더욱 우수한 친구들은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을 지원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 상위 0%는 대머리 머리 심어주는 일이나
남의 여드름 짜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을 낳고 고치는 생명과는 전혀 무관한 돈벌이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무슨 의학이 발전을 하고 암이 정복될 수 있을
지 정말 한심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수한 문과생들은 고시 등을 통해 권력
을 지향하고 우수한 이과생들은 남의 성형을 통한 돈벌이를 지향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으니 정말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지 성질이 났습니다.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오히려 화가 더 치밀어 올랐습니다. 세상 욕이라
도 실컷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니 놈들이 다 그 곳을 지향하면 아름
다운 시는 누가 쓰고 죽어가는 사람은 누가 살리느냐고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들가냐고 말입니다.
|
첫댓글 세상 욕하고 싶은 마음에 동감합니다.
여기서의 '세상'이란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만연한 세상을 가리키겠지요.
사회 정의니 양심이니 인간애 등은 무한경재의 발굽 아래 짓눌리고, 이익 추구 만이 절대선인 것처럼 황폐화된 그런 세상 말입니다.
내가 전원 생활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월출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