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우 바이오그라피2-35)
[에피소드131]
그 해 가을에 해마다 직원들의 실무능력 향상을 위해서 실시하는 실무고시가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커닝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데 커닝을 한 결과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책임자 수출입분야에서 전국 1등을 한 것이다. 지점장이 직원들 앞에서 상을 주면서 나를 극구 칭찬했는데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때부터 지점장은 나를 “프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로 그렇게 불렀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그 때 시험 감독으로 온 Y라는 과장이 있었는데 그는 행동이 독특한 사람이었다. 체구가 컸는데 성질이 사나웠고 어떤 때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가는 타입이었다. 한번은 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었다. 그는 범칙금딱지를 피하기 위해 단속경찰관에게 가계수표를 끊어주고 사건을 모면했다. 그 후 가계수표를 받은 경찰에 의해서 수표가 교환이 되어 돌아오자, 그는 분실신고를 내고 수표를 부도 처리 하였다. 수표가 뇌물이라는 약점을 이용한 비열한 방법이었다. 물론 경찰관은 뒤가 켕기는 일인지라 수표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Y과장은 그 후에도, 직원을 폭행하는 등 은행원으로서 비상규적(非常規的)인 행동을 거듭하다가 결국 지점장이 되지 못하고 은행을 퇴직했다. 퇴직하고 나서 그는 사업차 베트남에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객사하고 말았다. 성경말씀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가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한 사람만 더 언급하고자 한다. 대학에 같이 다녔던 H라는 동문이 있었다. H는 소문에 의하면, 학교 다닐 때 정보기관의 끄나풀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는 졸업 후 정보기관에 들어갔다. 그는 정보에 대한 본연의 업무보다 권력을 이용한 축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심지어 돈을 뜯어내기 위해 모교의 재단 사무에까지 관여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조기 퇴직했다. 그동안 그는 권력을 이용해서 돈은 제법 벌었지만 당뇨병에 걸려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뇨합병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문상 오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선행한 것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에피소드132]
내가 근무하는 지점에 예전에 H라는 과장이 있었다. 그는 과장이 될 때까지 총각으로 지냈다. 그는 어느 날 남몰래 휘하의 여직원을 좋아하게 되었다. 직장상사와 여직원과의 소설 같은 로맨스였다. 사랑에 눈이 멀어 그가 제대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는 마침내 그 여직원과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보면 나는 왠지 따뜻해지고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마치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마 H과장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에피소드133]
결혼 1년 만에 드디어 딸이 태어났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자녀에 대한 큰 사랑을 세상의 부모들에게 주셨다. 나는 갓 태어난 귀여운 첫 딸을 보며 어버이로서 한없는 사랑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신생아실 유리창에 비친 아이의 얼굴은 마치 천사의 모습 같았다. 나는 아이가 한 달 되었을 때 대구 제일교회의 이상근목사에게 가서 아이를 포대기에 싼 채 하나님의 축복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소형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런데 야간 도로연수를 하는 동안 죽을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야간에 차선 변경을 하려고 변경할 차로에 접근하는 차가 있는지 백미러로 살펴보았다. 마침 백미러에 차량의 불빛이 없어 대각선으로 서서히 진입하려고 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옆으로 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만약 대각선으로 서서히 진입하려 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차선 변경을 했다면 다가온 차와 강하게 충돌했을 것이었다. 원인은 차선을 변경하려고 차가 방향전환을 하는 순간 백미러에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것을 몰랐다. 사각지대가 생기는 그 짧은 순간에 조금 전 백미러에 포착되지 않았던 차가 자동차의 주행속도로 인해 순식간에 접근해 온 것이다.
나는 내가 이처럼 죽을 뻔했던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각별하신 보호하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탐험가 리빙스턴은 “하늘의 사명이 있는 사람은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 사명을 이 땅에서 실현할 때까지는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는 요즘처럼 차가 흔하지 않았다. 차에 아기를 싣고 아내와 같이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한 번은 대구에 오신 어머니와 같이 차를 타고 친할머니 묘소에 갔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라서 묘소의 위치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찾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할머니 무덤을 발견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 묘소”라는 글이 쓰여 있는 비석 일부가 흙 속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대구에는 수입고기가 없었다. 전부가 국산 한우였고 값도 싸고 맛이 참 좋았다. 서울에서 아기를 보러 내려오신 어머니와 여동생, 아내, 아기와 같이 그 당시 대구에서 경관이 제일 좋다는 파크호텔 인공폭포 밑에서 어스름 저녁에 한우숯불갈비를 실컷 구워 먹었다. 그때의 따뜻했던 순간들이 추억의 파노라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에피소드134]
대구지점에서 예전에 근무했던 직원 중에서 L이라는 차장이 있었다. 그는 서울의 가족과 떨어져 있는 동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인근 술집 마담(은행출신)과 교제했다. 그런데 계속 만나다 보니 깊은 관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L차장이 서울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서울로 가기 전에 어느 날 지점 영업장에 마담이 나타났다. 그런데 갑자기 마담이 L차장을 향해서 삿대질하며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업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녀의 주장은 그동안 자기와 관계를 했던 화대(花代)를 내라는 것이었다. L차장은 그동안 그녀와 공짜로 관계를 가져왔다. 직장에서 큰 망신을 당한 L차장은 기겁을 하고 당시 상당한 금액의 화대를 지급해야만 했다. 세상에 공짜란 절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에피소드135]
합천 해인사로 가는 길에 율곡면 기리가 있다. 그 곳이 고향인 친구가 있었다. 기리는 주위의 높은 산들과 들을 가로질러 황강이 흐르고 있는 벽촌마을이다. 친구 부친이 세상을 떠나 문상을 하러 그곳으로 갔었다. 친구 집으로 가는 산언덕 위에 헬기장이 갖추어져 있는 마치 왕릉 같은 규모의 호화 무덤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당시 현직 전대통령의 부모님 산소였다.
그런데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산소를 아무리 잘 꾸며도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을 받은 후 변변찮은 동굴 무덤에 안치 된지 3일 만에 부활했듯이 인간도 죽으면 사후세계로 부활하기 때문에 썩어 없어질 시신이 보관된 무덤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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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 중 오래된 허름한 친구의 고향 집에서 변의를 느껴 재래식 화장실에 갔었다. 그런데 화장실 바닥의 똥이 차올라 있어서 변을 누자마자 쌓여 있는 화장실의 똥 무더기와 맞붙어 버리는 희한한 현상을 경험했다.
그렇게 벽촌의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지만 그친구는 꿈을 가지고 노력한 끝에 서울의 명문 Y대학을 졸업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좋은 실례(實例)였다.
그 친구와 같은 고향 마을에서 자라났던 J라는 친구가 있었다. J도 가난한 집안 때문에 대학 다닐 때 많은 고생을 했다. 입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는 미래 외교관의 꿈이 있었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항상 타임 잡지를 가지고 다녔다. 가난했던 J는 4년 동안 항상 같은 양복을 입고 다녔던 단벌 신사였다. 넥타이도 붉은색 넥타이 하나 밖에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절에까지 가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실패하고 대신 M 방송국에 입사했다.
J가 대학을 졸업할 때 졸업을 축하해 주기 위해 그의 부친이 갓을 쓰고 조선시대의 복장인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학교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모습은 당시 시대의 첨단을 걷고 있던 세련된 학교인 Y대학의 이미지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분은 졸업식장을 못 찾아서 돌아다니시다가 마침 나에게 와서 J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다. 마치 서울역에 와서 김서방을 찾는 격이었다. 마침 내가 J를 알고 있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부친을 J에게로 잘 안내해 드렸다.
J가 방송국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고향 마을에 내려갔다. 마을에서는 J가 굉장한 출세를 한 것처럼 생각해서인지 난리가 났었다.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J가 고향에서 휴가를 다 보내고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을 때 였다. 그는 고향어른들의 뜨거운 기대와 환대 때문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체면이 구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무리해서 서울까지 택시를 대절했다. 그런데 서울로 올라오다가 시골 운전사의 운전 부주의로, 대전 인터체인지에서 차가 뒤집히는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사고 후 어느 날 내가 신촌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의 등을 쳤다. 뒤를 돌아보니 J가 예술가들이 쓰는 모자를 머리에 쓰고 서 있었다.
J의 뒤를 따라 막걸릿집에 가서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궁금해서 모자를 벗겨 보았다. 모자를 벗은 이마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J는 교통사고로 인해 두부(頭部)에 손상이 갔던 것이었다.
J는 그 후에 결혼했는데, 그 결혼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배우자는 명문 E여대 약대를 나온 재원이었다. 배우자의 집안에서는 J와의 결혼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J의 집안이 너무 한미(寒微)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J는 장래 처남 될 사람하고 동생의 결혼문제로, 도큐호텔 앞 도로에 뒹굴면서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혼이 여자 집안의 반대로 성사가 되지 않자, J는 결혼식을 생략한 채 사실혼에 들어갔다. 아직도 처가에서는 J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딸과도 아직 상종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 후에 약사인 그의 아내가 약국을 경영하였다. J는 퇴근하고 난 후에는 아내를 도와 교대로 약을 팔았다. 어느 날 감기 환자가 와서 감기약을 청구했다. J가 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J는 감기약을 준다는 것이 잘못하여 손님에게 소화제를 주었다. 하루가 지난 후에 그 손님이 약국에 와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어제 주는 약을 먹었더니 “머리는 계속 아픈데 대신 배가 고파온다는” 것이었다. J는 그 말을 듣고 “요즘 감기약은 부작용 없이 근본치료를 해 주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절묘한 대답을 하였다. 그러면서 “감기는 밥상 위에서 물러난다는” 옛말까지 인용했다.
방송국 초창기에 프로듀스였던 J는 가끔 일요일 숙직을 했는데 주말의 영화를 상영해주는 일을 맡았다. 영화를 송출하기 위해서는 4개의 릴을 순서대로 돌려야 했다. 그 때 상영한 영화는 서부영화였다. 릴이 1234로, 순서가 영어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J는 전 날 과음하기도 했지만, 영화상영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그 일을 경비하는 직원에게 맡기고 그는 대신 숙직실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는 데, 난리 블루스가 났다. J의 담당 부장이 J를 불렀다. J가 부장 앞으로 불려 가는 데 직원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J는 혹시 내 얼굴에 뭐가 묻지 않았는지 얼굴을 만져볼 정도로 영문을 몰랐다. 부장이 인상을 쓰면서 J에게 “J피디 방송국 계속 다니고 싶어! 그만두고 싶어! ”하며 호통을 쳤다. 이유인즉 어제 상영한 영화를 경비직원이 순서를 잘못 돌렸다. 영어로 “원 투 스리 포”로 쓰여 있는 릴을 “원투 포 스리”로 돌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영화의 끝 장면이 악한이 주인공의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었는데 “포 스리”로 돌리는 바람에 죽은 악한이 금방 다시 살아났던 것이었다.
그러자 납득이 도저히 안 간 전국의 시청자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빗발치게 걸어왔던 것이었다. 내용상으로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다시 살아나 돌아다녔으니 시청자들이 깜짝 놀라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약국을 하는 아내와 구두쇠인 J는 재산을 착실히 모아 이제는 미래를 위한 상가건물도 한 채 마련했다. 그리고 J는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해 직원들이 선망하는 주미 뉴욕 특파원으로도 근무했다. 그러나 J는 어릴 때 가난하게 자라난 환경과 그로 인한 오랜 생활습관 때문에 요즘도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검소하게 산다. 내가 은행에서 퇴직했을 때 J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정말로 잘 그만두었다. 나는 자네가 은행에 있는 동안 혹시 대형 금융 사고나 치지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염려를 하지 않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이 말은 나에게 던지는 가장 J다운 농담이었다.
(강광우 자서전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