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석: 히브리서 강해 (90)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 히12:15-17
16절에서 음행하는 자와 망령된 자에 대한 경종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경종은 어느 시대의 교회이건 늘 거울로 삼아 성도들의 생활에 범하기 쉬운 이 종류의 죄를 멀리 하고 자기를 비 신앙적인 더러움에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1. 음행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성경에서는 구약이건 신약이건 음행하는 자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엄히 경종하며 경계하고 있습니다. 음행이란 성적인 부도덕을 의미합니다. 음행이란 단어는 간음이란 말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간음은 법적인 문제에 국한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음행이란 말은 모든 부도덕한 성적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음행에 관하여 혹독하리 만치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까?
음행은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모든 부도덕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음행하는 생활을 계속하고는 거룩한 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음행이란 범죄 중에서도 가장 부끄럽고 은밀한 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 앞에서 감추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도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스스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가 음행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달콤한 맛을 주며 육체적 쾌락을 주기 때문에 그 일을 벗어버리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음행은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가정의 순결을 파괴하기 때문에 가정에 파탄이 오게 되고 부부간의 사랑에 금이 가게 되고 이런 현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온 사회가 음란 화되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이런 현상을 드러내 놓고 있으며 사탄은 성도들의 가정에까지 이런 미끼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음행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부부간의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늘 사랑 안에서 부부 생활이 원만히 이뤄져야 하며 그 자녀들에게 가정의 순결과 부부간의 사랑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성적 유혹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그런 유혹에서 이기려면 늘 자제하는 힘을 길러야 하며 경건 생활에 힘쓰도록 말씀을 묵상하며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행 죄가 무서운 것은 유혹을 좀처럼 물리치기 어려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처럼 그 자리에서 재빨리 빠져 나올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음행은 그 범하는 자에게 있어서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회개가 어려운 것입니다.
2.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를 두려워하라
다음에 히브리서 기자는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한 그릇 식물을 위해 판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중대한 비유적 교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하나님의 백성된 명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장자의 명분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많은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에게만 주신 특권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만한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이 영광스러운 반열에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장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예정한 자만이 장자로서의 특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는 말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장자의 그 귀한 명분을 귀히 여길 줄 몰랐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원, 곧 하나님의 백성된 이 특권을 귀히 여길 줄 모른다면 에서처럼 망령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에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물질이었습니다. 배가 고픈 에서에게 당장 자기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장자의 명분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동생 야곱의 계략에 넘어가 팥죽 한 그릇에 그것을 팔아먹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장에 자기에게 어떤 물질적 유익이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쉽사리 말씀을 버리고 물질을 취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러 지고 행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일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못하는 사람, 물질 때문에, 어떤 육신적인 긴요한 일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일 따위는 지금 우리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결론 : 17절에서 이르시기를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번 버린바 되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크게 경종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자만하는 자리에 이르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망령된 행실로 인하여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버림받을 것이란 두려운 경종을 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