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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지옥문과 승강기문>의 줄거리:
구원의 문, 천국의 문은 우리가 압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지옥의 문은 어디 있습니까? 숨겨져 있습니까? 최후심판 때까지 가 봐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천국문처럼 그렇게 아주 명확하게 지옥의 문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것도 천국의 문이 단 하나인 것과는 다르게 도처에 산재해 있습니다. 오늘 그 지옥문의 정체를 밝혀 봅니다.
지옥문과 승강기문
(눅21:5-38)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지옥문과 승강기문>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지옥문과 승강기문’
여러분!
천국의 문은 우리가 분명히 압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사건 그 현장이 천국의 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우리의 죽음으로 고백할 때, 십자가사건은 내 마음속에서 나의 사건으로 재현됩니다.
그러면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마음이 천국을 향하게 되고 하나님과 천국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천국의 문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옥의 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옥의 문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그때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옥의 문은 이 세상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다고 그러면, 미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미술사 속에서 결코 잊혀 져서는 안 될 걸작 중에 하나, ‘지옥의 문’이라고 하는 청동으로 주조된 조각물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을 지은 로댕이 조각한 지옥문이라고 하는 조각이 있어요.
높이가 무려 645cm 너비가 400cm, 그 앞뒤의 폭이 무려 1m 가까이 되는 거대한 주조물입니다.
그런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지옥의 문’에 속해 있는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조물이다 보니까 프랑스 정부에서 주조하는 틀을 갖고 있으면서 여러 나라의 요청에 따라 (아마 팔았겠지요?) 만들어서 ‘지옥의 문’이 일곱 군데에 있습니다.
파리에 있고, 스위스 취리히에 있고, 그리고 미국에 두 군데, 필라델피아와 스탠포드 대학교에 있고, 또 일본의 도쿄와 시즈오카 현의 현립미술관 안에 있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서울의 로댕갤러리에 지옥의 문이 원형 그대로 있습니다.
이렇게 지옥의 문이 일곱 군데에 있습니까?
아니죠.
지옥의 문은 도처에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살아가시면서 분명히 지옥의 문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 지옥의 문과 승강기문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승강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옥의 문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단서를 찾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승강기문에서 지옥의 문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온다는 것이에요.
2007년에 수원에서 아직 추운 2월에 청년 둘이 이층에 있는 어느 호프집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왔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습니다.
승강기문이 닫힌 채로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 두 청년이 술이 취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 엘리베이터의 문을 기대고 있다가 그 문이 이탈하면서 승강기 통로에서 지하로 떨어지면서 한 청년이 그 자리에서 숨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죽은 청년의 어머니가 그 건물의 관리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1심에서 관리회사에 50%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2심에서 1심의 판정이 번복됩니다.
엘리베이터의 바깥문에 ‘기대지 마시오!’ 그리고 ‘손대지 마시오!’라는 우리 모두의 아파트 승강기마다 붙어있는 경고문이 있었는가를 확인한 뒤에는, 관리실에서 그 승강기문에 기대어 있는 것까지도 관리할 수는 없는 것이고, 승강기문 자체가 이탈을 했지만 제조과정에서 안전상태가 기준치에 만족될 수 있었던 거라면 관리회사의 책임은 없다.
‘전적으로 기댄 이 청년의 잘못이다’라고 번복이 되고, 대법원 판결에서는 그 2심의 판결을 확정 지었습니다.
자, 본문은 종말론에 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종말의 때가 언제냐고 물을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 때를 이야기하시지 않고, 종말에 대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얘기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그러니까 종말이 어느 때 오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나는 그 종말이 어떻게 험하고 무섭고 두렵게 임하든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것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도 계속 그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다.
종말이 언제 어떻게 무섭고 두렵게 오더라도 상관없을 수 있게끔 마음가짐을 갖고 있으라는 말씀을 해주시고, 그래서 이 종말의 모든 징조가 2천 년 동안 계속 오고 있는 겁니다.
그 얘기는 2천 년 동안 종말의 징조,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여 싸우고 기근과 지진, 이 모든 것이 없었던 적이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난다, 이상 기후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지구온난화라든지 빙하가 녹아서 해안선이 점점 육지 쪽으로 밀려들어온다든지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다 종말에 그 모든 것들을 다 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계속해서 그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의 피하라는 얘기는 종말에서 나타나는 두려운 현상을 피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지옥의 문을 피하라는 얘깁니다.
지옥의 문을 피하고, 36절의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해라!’
예수님 재림하실 때 지옥의 문을 피하도록 기도하라는 얘깁니다.
자, 종말의 의미가 지옥의 문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지옥의 문을 찾아들어가 봅니다.
승강기문을 보면서 지옥의 문을 찾아봅니다.
‘기대지 마세요, 손대지 마세요!’라고 써 붙여 있는 승강기문, 거기에 기댔다가 추락해서 죽은 이 청년의 이야기.
이렇게 일어난 사건이 해마다 백여 건이 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종말의 의미.
마음은 중간에 있습니다.
마음을 기준으로 바깥세상이 있고 안쪽세상이 있습니다.
바깥세상은 몸이 있고 몸으로 이 인간세상을 접하게 되고, 안쪽에는 승천하신 주님께서 가계신 천국이 있고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승강기문에 기대지 말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이 바깥세상 쪽으로 마음이 기대게 됩니다.
바깥세상 쪽으로 마음을 기대고 있을 때, 종말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승강기문이 이탈하는 것처럼, 그 승강기문을 기대고 있던 문이 추락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이 인간이 살고 있는 몸으로 접하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든 무엇이든 간에 기대고 있는 게 있습니까? 그게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뭐냐 하면 피하라는 얘기에요.
왜냐하면 그것은 이탈하게 되는 엘리베이터문과 같으니까 그것을 기대고 있지 말라는 얘깁니다.
이 지구도, 해와 달도, 영원히 붙박이로 견고하게 그곳에 있을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지구 위에 있는 그 무엇이라도 그 누구라도 기대어 있다가는 승강기문이 이탈하는 것처럼, 종말이 돼서 이탈해버릴 테니까 의지하고 기대고 있다가는 반드시 추락하게 될 것이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에요.
승강기문이 그렇잖습니까?
20층 건물이라고 하면 각층마다 승강기 타는 곳에 바깥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승강기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그 통로는 그냥 뻥 뚫린 구멍입니다.
그런데 20층에 살던 어떤 할아버지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승강기를 타려고 움직이다가 아직 승강기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깥문을 들이받으면서 바깥문이 이탈해가지고 전동휠체어와 함께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승강기라는 게 그런 것이에요.
그런데 종말론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뭐냐?
이 마음의 바깥세상에 그 어떤 것이라도 기대고 있다가는 종말이 오면 기대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질 텐데, 지구도 사라지고 태양도 사라지고 별도 사라질 텐데, 이 지구 위에서 에덴을 꿈꾼다든지 신천지가 말하는 것처럼 이 몸이 영원히 산다든지, 지구 위에서 낙원이 이뤄진다든지 이런 것은 없습니다.
다 이단이 하는 말이에요.
결국 지구 위에서 기대고 있다가는 종말이 와서 그것이 다 없어질 때는 승강기문이 이탈하면서 아래로 떨어져 추락하는 것처럼, 지옥문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문이 어디냐 하면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것, 그게 바로 지옥문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가족이라도 내가 기대고 있으면 지옥의 문이 되고, 사업에 내가 기대고 있으면 그것이 지옥의 문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기댄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승강기문에 기대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승강기문을 보면서 우리가 지옥의 문을 찾는 겁니다.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것이 지옥의 문입니다, 왜냐하면 종말이 오면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것, 그것은 다 없어질 것이니까, 기대고 있는 자는 반드시 추락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게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그러면 기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음은 어차피 비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댄다는 것은 그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얘기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싶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기쁨의 이유 슬픔의 이유, 이게 내가 기대고 있는 겁니다.
또, 내 마음이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기대고 있는 겁니다.
얼굴이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아가씨가 손이 무척이나 예뻐요.
손 모델로 나와도 될 정도로 손이 예뻐요, 여기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게 기대는 겁니다.
나이가 50이 되고 60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부가 팽팽해요, 늙지를 않았어요, 여기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게 바로 기대는 겁니다.
사업이 잘돼서 기쁩니다, 이게 바로 기대는 겁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을 기대고 있지요?
그래서 이 손이 예쁜 아가씨가 70세까지 살면서 평생 손에 자부심을 갖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부활했을 때 그 손이 없습니다.
기댔던 손이 없습니다.
기대던 남편이 없습니다.
기대던 가족이 없고, 내가 기대던 사업이 없습니다.
기대던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었다면 아래로 추락하게 돼있습니다.
왜?
승강기문이 이탈하는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이 우주의 별들이 다 녹아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 있던 모든 게 다 사라지니까…
마치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신 것처럼 말씀으로 유에서 무로 만들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는, 그것을 초월하는 차원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때 인자 앞에 설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마음으로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을 기대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기대고 있던 것들이 없어짐과 동시에 기댔으니까 쓰러질 것이고 떨어질 것이고, 떨어져 도달하는 곳이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문은 오늘도 내가 살면서 내 마음에 기쁨과 슬픔과 걱정과 염려의 이유가 되는 것들, 오늘도 내 마음에 자부심과 자랑의 이유가 되는 것들, 그것이 없으면 창피한 것들, 그것이 없으면 굴욕을 느낄 것들, 그게 바로 기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내가 기대고 있는 동안에 지옥의 문입니다.
이게 바로 종말론의 의미라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기대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0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않았는데, 종말의 징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전쟁과 기근, 해일 전염병이라든지 이런 모든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내 개인적으로 봐도, 실패가 있고, 병이 들고, 암에 걸리고, 집안에도 그런 일들이 계속 있는 거예요.
이 모든 역사적이고 국제적이고 국내적이고 개인적인 모든 환란과 모든 실패와 모든 불안한 요소들의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기대지 마라!”
이 세상에서 어느 것도 기대지 마라!
나라가 안정되었다고 나라의 안정에 기대고 있느냐? 기대지 말아라.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갔다고 사업에 기대고 있느냐? 기대지 말라는 겁니다.
일본의 전자회사가 10년 전, 아니 5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추락할 줄은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예측 못 했습니다.
일본의 전자회사들이 다 난리가 났어요, bankrupt 그리고 적자에, Sony가 지금 7분기 째 적자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온 세상을 다 Sony가 뒤덮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삼성? LG? 언제까지 될까요?
악담을 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 진리를.
이 세상에 마음에 기쁨과 이유가 될 만큼 견고한 것, 내가 기대어서서 손대고 붙잡고 있어도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 종말에 임할 모든 현상들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기대지 말아야 되요.
자식도 기대지 말고, 아내도 남편도 기대지 말고, 돈도 사업도 기대지 말고, 학벌도 기대지 말고, 손이 예쁘다고 자랑하지 말고, 하여간 이 땅에 있는 건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36절,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라!’
어떻게 피합니까?
돈 많이 벌어서 마음에 기쁨이 생길 때, 얼른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돈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 겁니다.
돈이 안 벌렸다고 슬픔이 생길 때, 얼른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돈이 없다고 슬퍼하지도 않는 겁니다.
내 자식이 이번에 대학교에 멋지게 들어갔다고 기뻐하려고 할 때 십자가에서 죽는 겁니다.
자식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 자식의 실패에 기대지 않는 겁니다.
자식이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슬퍼하려고 할 때, 얼른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슬퍼하지도 않는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늘 기억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청년들이 술을 먹었기 때문에 승강기문에 기대고 있다가 죽었어요.
34절에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인해서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해요.
술 취해서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자식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한다든지 사업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한다든지 이 세상의 일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것은 마음이 둔하여 진 거예요, 그게 바로 죄고.
마음이 둔해지지 않았다면 이 세상 것이 마음에 기쁨과 슬픔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목석처럼 살라는 말이냐?
누가 목석처럼 살래요?
십자가에서 이 세상 모든 기댈 만한 것에 내 마음에 기쁨과 슬픔의 이유가 되고, 자랑과 자부의 이유가 될 만한 모든 것들에 대해 죽습니다, 기대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하늘 쪽을 향하게 되고 하늘을 기대게 됩니다.
하늘을 기대고 하나님을 기대게 될 때, 하늘에서 오는 기쁨과 하늘에서 오는 그 만족과 행복은, 이 땅에서 기대서 그 기댄 것으로부터 얻게 되는 어떤 기쁨과 행복과 만족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쁨과 행복이고 만족이라는 겁니다.
절대 기쁨과 행복을 반감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서 죽으라는 얘기는, 이 세상에 기대지 말라는 얘기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는 여러분의 기쁨을 반감시키자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기쁨을 진짜 기쁨으로 바꿔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대지 마세요!
어떤 것에도 기대지 마세요.
주님의 십자가로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죽을 때, 하늘 기쁨이 주어지고, 기쁨을 가지고 하늘을 만나요.
하나님을 기대서 생기는 기쁨으로 아내를 상대하고 자식을 상대하고 사업을 상대하세요.
왜 사업을 기댑니까, 왜 자식을 기댑니까? 왜 자식으로부터 기쁨을 얻기를 원해요?
하늘로부터 기쁨을 얻고 하늘을 기댄 채로 살아갈 때, 이 세상 마음 바깥쪽에서 무슨 난리가 나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말이 어느 때 오느냐는 문제 될 게 없는 거예요, 내 마음이 이 세상을 기대지 않고, 이 안쪽을 기대고 있는 한.
이 세상에 내가 기대는 모든 것은 승강기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바로 종말론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기대지 마시고, 손대지 마십시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 한번 해보게 해주시옵소서.
내 마음이 이 바깥쪽 세상에서 기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십자가를 통하여 죽으며 떨어져 나오게 하시고, 오직 내 마음이 안쪽에 있는 천국 쪽으로 기울어져 기대어 삶을 통하여 천국에서 오는 기쁨으로 이 세상에서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복된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십자가 생활화만이 종말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
이것만이 깨어서 기도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