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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 히즈키야
이사 36-39장
주님의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어제 첫 번째 강의에 이어서 이사야 예언자의 삶이 전체 역사의 흐름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유다의 두 임금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아하즈, 두 번째는 히즈키야입니다.
이 아하즈와 히즈키야를 역사 위에서 펼쳐놓고 본다면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가 생각할 때, 이집트를 탈출해서 모세와 함께 시나이에서 계약을 맺고 요르단 강 동편까지 옵니다. 그러고 요르단 강 동편에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요르단 강을 건너옵니다. 그러고 나서 땅을 정복하고 땅을 잘 나눈 후에 각지파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그러다가 그 각지파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판관을 보내주셔서 전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판관이기도 하고 예언자이기도 했던 사무엘의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이라는 임금을 임명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느님을 실망시키고, 하느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자, 사무엘이 다윗을 찾아 다윗에게 도유를 하고, 그 다윗이 왕국을 건립합니다.(주전 1000년경)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에 이스라엘은 많이 번창합니다만, 솔로몬이 죽고 나서 왕국이 둘로 나뉘게 됩니다.(930년경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서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587년에 남유다가 멸망합니다.
이 722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기에 아하즈 임금과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어제 전체적인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본다면,
이사야 예언자는 무엇보다도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하즈 임금에게 시리아와 에프라임 동맹의 눈치도 보지 말고, 아시리아에 기댈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공경하십시오! 하느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우리는 서 있을 수 있고, 우리는 굳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이야기하였지만,
아하즈는 그런 예언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을 "나는 이제 봉인하겠다."라는 봉인의 선언과 함께 이사야의 예언자로서의 활동에 첫 부분이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9,1절에서부터 보면 이사야 예언자가 아주 절망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이상적 임금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이사야서 9장 1절에서부터 9장 6절까지가 마무리되면서 이사야와 아하즈 사이에 있었던 그런 역사적인 상황이 종결됩니다.
이사야는 아하즈의 아들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이사 7,14)
'이제 젊은 여인 하나가 아들을 하나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이 부분을 의역(자유롭게 해석한다면)한다면,
'젊은 여인 하나가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태어나는 아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이 실현될 것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후에 마태오복음사가는 임의로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태어난 아기 예수가 이사야 예언의 실현이다.'라고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신약의 이야기는 여기로 끝내고요^^)
따라서 그 젊은 여인이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리고 그 아들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메시아(이상적인 임금) 일 수도 있겠다! 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이상적인 기대가 있었겠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데, 그 아들이 바로 히즈키야입니다.
히즈키야가 714년? 715년? 어떤 이들은 727년? 언제 임금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기록과 성서에 있는 기록을 비교해 보았을 때 적어도 725년~715년 사이, 신부님은 대충 720년경으로 생각하시고,
그때쯤에 히즈키야가 아하즈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유다의 역사 기록인 열왕기와 역대기는 모두 히즈키야를 매우 이상적인 임금으로 기억합니다.
임금이 된 히즈키야는 파스카 축제를 벌이고, 그 축제를 위해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초대하였다고 성서의 기록은 전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축제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에 위상을 높입니다.(2역대 30장 참조)
축제를 지내고 나서 히즈키야는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 신당과 제단을 없애 버리고 성전을 정화합니다.
히즈키야가 성전을 정화하면서 성전 안에 들어와 있던 구리뱀을 없애 버립니다. 그 구리뱀을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느후스탄이라고 불렀는데, 그 구리뱀이 오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할 때, 구리뱀을 보았던 사람들이 나았다.라는 구리뱀입니다.
사실상 오경의 역사 안에서, 야훼와 관련된 두 개의 신상이 있습니다.(금송아지와 구리뱀)
금송아지와 구리뱀인데,
금송아지는 일찍부터 배척받았고, 더군다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나뉘는 과정에서 북이스라엘을 독립시켰던 예로보암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북이스라엘의 북단에 단이라는 곳과 남쪽에 베텔이라는 곳에 성소를 만들고 그곳에 야훼의 상을 가져다 놓았는데, 그것이 금송아지였습니다.
오경의 탈출기에 역사 안에서도, 열왕기에 역사 안에서도 예로보암의 그 행위를 우상숭배로 비난합니다.
반면에 모세가 만들었던 구리뱀은 성전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 같은데, 히즈키야 시대 바로 앞전 시대 사람들은 그 구리뱀을 하나의 신상처럼 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느후스탄, 구리뱀을 히즈키야는 성전으로부터 제거해 버렸다는 기록이 성경의 역사에서 보입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 산당과 제단을 없애 버렸다. 라고 열왕기는 전하는데 산당은? 산에 일정한 제단을 쌓아놓고 사람들이 제각기 그곳에 가서 자기가 섬기던 신들에게 미사를 바칠 수 있는 일종의 종교센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의 산당이라면 당연히 야훼 하느님을 위한 제사가 드려졌겠지만,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는 이방민족들도 살고 있었고, 그들은 산당에 가서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725년~719년 그 사이에 히즈키야가 유다의 임금이 되고 성전을 정화하고 또 많은 것들을 야훼 중심으로 만들어내는 종교 개혁을 하고 열왕기와 역대기에 역사가들은 그가 한 그런 정치적 선택을 참으로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서 히즈키야를 칭찬합니다. 따라서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칭찬받는 임금은 히즈키야와 요시야(히즈키야의 손자)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하즈의 시대는 슬라이드 화면에서 보시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입니다
- 첫 번째(734년~732년) 시리아-에프라임 동맹이 아하즈를 공격하였으나 아시리아의 티글랏- 필에세르에 의해 패퇴한 사건
- 두 번째(724년~722년) 북이스라엘의 호세아를 아시리아가 공격해서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함락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사건
→ 여기까지가 아하즈의 시기입니다.
그다음은 히즈키야의 시기인데, 임금이 된 지 얼마안 돼서 아시리아의 정권이 바뀝니다. 어제의 표를 참조하시고 구약 역사서(도움책 172쪽~173쪽)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사르곤 왕조의 마지막 임금, 669년에 임금이 된 아스나파르(아시리아의 이름으로는 아슈르바니팔이고, 에즈 4,10) 입니다.
722년에 사르곤이 임금이 되는데, 그의 세력이 조금 문제를 겪게 되고, 아시리아 보다 조금 남쪽에 있었던 바빌로니아가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고 아시리아의 힘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랬을 때 713년을 전후해서 이집트의 뒷받침을 받은 반아시리아적인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713년~711년 이 사르곤이 팔레스타인을 쳐들어오고 그 반란을 진압합니다. 이집트가 전체적인 것을 도와준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아시리아 시기에 이집트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집트에 대한 언급을 보면 720년경에, 요즘도 문제가 되는 가자 지역 반란을 이집트가 지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702년~701년에 가나안의 작은 나라들의 반란에 협조하는 모습들, 또 이사야서 36,6절을 보면 랍사케라는 아시리아의 장군(중요한 대신)이 히즈키야를 찾아와서 이집트를 '부러진 갈대 지팡이'라고 부르는데, 따라서 그 시기에 이집트는 대단한 국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713년~711년에 있었던 반란에 에돔과 모압이 굉장히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고, 그리고 추측하건대 히즈키야도 그 움직임에 동참했던 것 같고, 히즈키야는 반아시리아적인,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고 아시리아에 복종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성전을 개혁해 유다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 한 임금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반란을 실패하고 나서 다시 또 히즈키야는 반아시리아적인 움직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내용은, 히즈키야가 예루살렘에서 한 지도가 보입니다.
파란색 부분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만들었던 부분이고, 빨간색 부분은 솔로몬이 확장한 예루살렘, 그리고 점선으로 된 부분이 히즈키야가 확장한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처음 여부스 쪽에서부터 함락시켰을 때와 그리고 솔로몬이 확장하고 히즈키야가 더 크게 바꾸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아시리아로부터 독립을 해야 하니까 히즈키야가 여러 가지 전쟁준비를 합니다. 제일 중요한 전쟁준비는 성벽 밖에 있는 기혼샘으로부터 지하로 터널을 파서 성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게 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벽도 보강을 합니다.
기혼샘에서부터 성안으로 들어와서 실로암 못까지 수로를 지하로 파게 합니다. 그 지하 수로가 기혼샘에서 본래 터널에서 물을 길어서 먹는 방식에서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또 터널을 팠는데 그것을 히즈키야의 터널입니다. 다행히도 이 히즈키야의 터널이 고고학적으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이 터널을 보고 연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보게되면, 붉은색 부분이 다윗의 예루살렘에서 주황색 부분은 솔로몬이 확장한 예루살렘입니다. 노란색 부분은 히즈키야가 확장한 예루살렘, 파란색 부분이 하스모니아 왕조에 의해서 다시 확장된 모습입니다.
고고학적으로 예루살렘의 옛 히즈키야의 성벽의 모습에서, 전쟁을 대비해 성벽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왼쪽의 모습이 히즈키야 터널의 모습, 오른쪽은 실로암 못의 모습인데, 요즘에 고고학적으로 이곳이 실로암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또 다른 장소도 발견이 되었습니다.
히즈키야의 터널을 파는데 한편은 기혼샘에서 팠고, 다른 한 편의 일꾼들은 실로암못 쪽에서 파고,
양쪽에서 파다가 가운데서 만나기로 했는데, 한번 빗나갑니다. 그래서 다시 시도를 해서 터널이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 비문을 남겼습니다.
고대 히브리어로 그들이 수로를 어떻게 팠고 어떻게 공사를 했고, 한번 수로가 빗나간 내용과 소리를 질러 서로를 찾아서 결국 만나게 되었다는 실롬암 비문의 내용.
전통적으로 우리가 실로암못이라고 알고 있었던 곳은 A부분인데(성지에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B부분을 고고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실로암못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히즈키야 터널에 관한 자료 중에 기혼샘이 있고, 예루살렘 주민들이 충분히 쓸 수 있을 만큼 시간당 약 40ml 정도의 물이 뿜어져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기혼샘으로부터 히즈키야가 터널이 보이고 그 터널이 진행되다가 만나는 곳과 잘못 만난 곳도 있었습니다. 두 터널이 만나는 장소에 비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박물관에 옮겼습니다.
히즈키야는 성벽도 보강을 하고 샘도 뚫어내면서 수송전을 준비했던 임금으로 기억.
그 히즈키야의 시대(705년)에 사르곤이 죽고 권력에 공백이 생기면서 산헤립(사르곤의 아들)이 임금이 되는데, 그러면서 히즈키야는 유다가 독립을 해야겠고, 더 이상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집트도 미약하나마 반아시리아적인 움직임을 도왔습니다.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지역, 지중해 연안지역에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반아시리아적인 반란의 조짐이 시작되었고 아시리아 제국이 무거운 조공을 바치도록 한 것이 원인이 되어, 히즈키야는 이런 반란을 전체적으로 주도했고 아시리아의 남쪽에 위치한 바빌론도 반아시리아 동맹에 참여했고 그 바빌론의 임금이 므로닥 발아단, 성경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반아시리아적인 움직임이 있자, 산헤립은 자신의 힘을 추스른 다음에 전체적인 지역을 원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시돈과 그 주변 지역, 암몬, 모압, 에돔이 차례로 아시리아에 굴복하고 그 반란은 실패합니다. 그리고 산헤립의 칼날은 유다를 향하고, 701년 산헤립은 페니키아의 해안 지역을 따라 군대를 이끌고 내려옵니다.(그들의 이동 경로가, 해안 경로로 내려온 군대는 라키스를 점령하고, 내륙적으로 내려온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는데) 이때 산헤립이 정복한 유다의 도시는 46개, 점령한 후에 산헤립의 포로가 되거나 추방된 사람들이 거의 20만 명에 가깝다고 아시리아의 기록은 전합니다.
산헤립은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 자신의 전승 기록을 새겨 넣었는데(워낙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
뗄? 라키스(지금은 벌판만 보이고)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폐허들, 그리고 그 내부에 산헤립의 승전에 관한 벽화들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유다의 도시 50개 가까이를 정복한 자신들의 혁혁한 승리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또 산헤립의 프리즘이라고 불리는 고고학적인 발견물, 그것을 글로 기록하였는데 산헤립이 정복한 도시가 46개가 나오고 그 도시 중에 예루살렘은 없습니다. (아시리아 기록, 성경에도, 산헤립의 기록에도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다는 데에 의견을 일치)
이사야 36장 1절
1 히즈키야 임금 제 십사 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
2 아시리아 임금은 라키스에서 랍 사케에게 많은 병력을 주어, 예루살렘으로 히즈키야 임금에게 보냈다. 그는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곁에 주둔하였다.
라키스라는 지역이 위에 지역과 동일, 랍사케는 산헤립의 장군 혹은 대신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사야가 아하즈를 만나러 갈 때도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위저수지 수로 곁(권력자들이 가게 되는 중요한 곳:오늘날 우리식으로는 광화문?)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사야 36장과 39장에서는 반복되어 나옵니다.
3 그러자 힐키야의 아들 엘야킴 궁내 대신과 세브나 서기관과 아삽의 아들 요아 역사 기록관이 그에게 마주 나갔다.
유다의 히즈키야가 이런 사람들을 파견.
그러자 랍 사케가 굉장히 긴 연설을 하는데, 신부님 눈에 뜨이는 부분은?
이사 36,10
10 그리고 내가 주님의 분부도 없이 이 땅을 멸망시키려고 올라왔겠느냐?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저 땅으로 공격해 올라가서 그곳을 멸망시켜라.' 하고 분부하셨다.
36,10절의 말은 랍 사케가 하는 이야기인데, 우리말 성경은 주님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자면,
내가 야훼의 명령도 없이 이 땅을 올라왔겠느냐? 야훼가 나에게 '저 땅으로 공격해 올라가서 그곳을 멸망시켜라.' 하고 분부하셨다.
랍 사케는 주님을 믿는 사람도 아닌데 정치가다운 수사를 통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이사 36,14절을 보면 랍 사케의 이 말이 거짓임이 드러납니다.
14 '너희는 히즈키야에게 속지 마라. 그자는 너희를 구해내지 못한다.
15 히즈키야가 '주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해 내신다. 이 도성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희가 주님을 신뢰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여라.
18 히즈키야가 '주님께서 우리를 구해 내신다.' 하면서, 너희를 부추기는 일이 없게 하여라. 뭇 민족의 신들 가운데 누가 제 나라를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해 낸 적이 있더냐?
아시리아 임금의 무력이 뭇 민족의 신들의 권능을 압도한다는 것이고, 야훼가 너희를 구하신다는 히즈키야의 말에 너희는 속지 마라고 랍 사케가 말합니다.
그러자 히즈키야는 사람들을 이사야에게 보내어 하느님의 뜻을 묻고, 이사야 예언자는 대답합니다.
이사 37,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시리아 임금의 종들이 나를 모욕한 그 말을 듣고 종들이 나를 모욕한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마라.
7 보라, 내가 영 하나를 그에게 내려보내면, 그는 뜬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자기 나라에서 칼에 맞아 쓰러지게 하겠다.' "
여기서 말한 "그"가 랍 사케를 말하는지 산헤립을 말하는지 애매합니다. 아무튼 랍 사케도 산헤립도 돌아갑니다.
역사적인 결과를 편집자는 확인하고
8 랍 사케는 돌아가서 리브나를 공격하는 아시리아 임금을 만났다. 그는 임금이 라키스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첫 번째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다시 쳐내려 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합니다.
이사 37,10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본질적으로 앞에서 랍 사케가 한 말과 동일합니다. 이때는 히즈키야가 이사야 예언자에게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데, 이사야가 먼저 히즈키야에게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히즈키야는 그런 아시리아 임금의 말에 기도를 합니다. 히즈키야는 기도하고 이사야 예언자는 기도의 말씀에 응답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히즈키야에게 전합니다.
21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나에게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26절부터는 그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을 향해서 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26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내가 오래전에 그것을 결정하고
옛날에 그것을 계획하여
이제 실행에 옮겼음을,
그래서 네가 요새 성읍들을 파괴시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로 만들 수 있었다.
29 네가 나에게 격노하고
너의 소란이 내 귀에까지 올라왔으니
나는 네 코에 나의 갈고리를 꿰고
네 입술에 나의 재갈을 물려
네가 왔던 그 길로
너를 되돌아가게 하리라.
31절부터는 단지 아시리아에 관한 이사야 예언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메시아니즘에 관련된 이사야 예언이 등장
37,31 유다 집안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다시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리라.
야훼 쪄바웉(היוה צבאות )의 킨아(קנאה),열정이 그것을 이룬다. 하느님이 갖고 있는 열정
살아남은 생존자들, 이사야의 첫째 아들이 스아르 야숩이었는데,
- 스아르(שאר): 남은 자들
- 야숩(יאספו):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이사야 예언자의 아들이 이름이 이미 하나의 예언이 됩니다.
33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4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5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자의 메시아니즘 출발점은 나탄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졌던 야훼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는 축복이다. 너의 후손들 가운데 누가 잘못하면 벌을 주겠지만 너희 집안을 없애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너희 집안에서 이상적인 임금 메시아가 나올 것이다. 야훼 하느님의 축복, 이것이 메시아니즘의 근간이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결론은?
이사야 편집자가 본 사건은,
36 그런 다음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
37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38 그런데 그가 그의 신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드리고 있을 때,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르에체르가 그를 칼로 쳐 죽이고는 아라랏 땅으로 도망쳤다. 그의 아들 에사르 하똔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이게 조금 문제가 되는게? 이것이 정말 역사적인 사실인가? 주님이 천사가 나와서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쳐 죽였다고? 그래서 어떤 주석학자들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아시리아군 진영에서 역병이 돈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2열왕 18,14-16에서 히즈키야가 라키스로 가서 산헤립에게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는 라키스가 함락되는 것을 보면서 히즈키야가 산헤립에게 항복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시리아 군에 역병이 돌았거나.....그런데 아시리아 기록을 보면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데 왜 정복하지 못했는지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열왕기에 기록, 이사야에 기록, 역대기에 기록을 보아도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서 서로 정보들이 엇갈립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이야기하지만 요즘에는 대충 두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 히즈키야가 조공을 바치면서 무마했다.
- 아시리아 진영에 역병이 돌았다로 !
또 하나의 문제는
38절에 보이는 산헤립에 죽음에 관해서 나오는데 아시리아 역사기록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아시리아 역사에서 산헤립이 죽은 것은 상당히 후대인 680년, 약 20년 정도가 지나서 죽고 에사르 하똔이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그를 칼로 쳐 죽였다는 것이 아시리아 역사기록에서 발견되지 않는데...고대 근동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이 기록은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로 생각합니다.
아무튼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 아시리아의 엄청난 무력이 유다 전체를 휩쓸었는데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을 이사야 예언자는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라는 것입니다. 아하즈 임금 때는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했는데 이루어졌고, 또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것처럼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았기에..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사야 예언자가 예고한 메시아 예언도 언젠가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거기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좋았을 텐데, 이제 조금은 우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사 38장을 보면 히즈키야가 발병을 합니다. 그가 심한 병에 걸리자, 이사야는 히즈키야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히즈키야는 기도를 합니다. '제가 하느님을 위해서 한 일이 많은데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러자 하느님께서 목숨을 15년 더 살게끔 연장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해시계를 뒤로 돌리게 하는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 여기까지가 38장의 첫 번째 부분의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의 이야기는 히즈키야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이사야가 무화과 과자를 통해서 히즈키야 병을 고쳐주고 38,22에서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질문을 합니다.
"내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다는 표징은 무엇이오?" 그리고 38장이 끝나버립니다. 이상한 결말입니다.
따라서 이사야서 38장만 연구하는 학자는 히즈키야의 발병과 이사야 도움으로 히즈키야가 죽지 않게 되는 내용이 두 가지 전승이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2열왕 20장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논리적이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집니다.(2열왕 20,8-11)
2열왕 20장
8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시어 내가 사흘 안에 주님의 집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그 표징이 무엇이오?"
9 이사야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주시는 표징입니다. 곧 주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그대로 이루신다는 표징입니다. 그림자가 열 칸 앞으로 나가기를 원하십니까? 열 칸 뒤로 나가기를 원하십니까?
10 그러자 히즈키야가 대답하였다. "그림자가 열 칸 앞으로 길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오. 그러니 열 칸 뒤로 돌아가게 해 주시오."
11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께 청하니, 주님께서 아하즈의 해시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열 칸 뒤로 돌아가게 하셨다.
따라서 2열왕 20장의 흐름은 매끈합니다. 여기서 주석가들의 판단이 있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서 38장과 2열왕 20장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오래된 전승이고 어떤 것이 더 나중에 나온 전승일까? 일반적으로 논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 것이 오래된 전승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서 38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었고, 결국 2열왕 20장은 더 후대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인 이사야 39장
이사 39,1 그때에 발아단의 아들인 바빌론 임금 므로닥 발아단이, 히즈키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편지와 예물을 보냈다.
2 히즈키야는 그들을 반가이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자기의 보물 창고와 은과 금, 향료와 고급 기름, 병기고 전체와 창고 안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다.
이것은 오늘날 생각해 볼 때, 히즈키야가 왜 그랬지? 하는 모습으로, 자신이 갖고 모든 것을 공개해 버리고, 일반적인 국가관의 교류의 모습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서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므로닥 발아단이 산헤립에게 죽는데(701년 사건 전에) 그리고 결국 689년 바빌론을 공격해서 초토화시키는데, 이사야서 38장에 있는 사건이 39장의 사건보다 더 역사적으로 앞에 있어야 하는데, 순서적으로 보면 더 뒤에 있는 모습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해서 이사야서 36장~39장을 편집자들과 열왕기와 역대기를 편집자들이 시대나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비평가들은 말합니다.
이사야서 내용으로 돌아가서 그런 것들을 다 보여주었다고 하자, 예언자가 히즈키야에게 찾아와 누가 왔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히즈키야의 대답을 듣고 예언자가 히즈키야 임금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39,5 "만군의 주님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야훼 쪄바웉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6 '보라, 네 궁궐 안에 있는 모든 것과 네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쌓아 온 것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져, 하나도 남지 않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주님이 말한다.
7 너에게서 태어날 아들들 가운데 더러는 끌려가서 바빌론 왕궁의 내시가 될 것이다."
굉장히 엄중한 저주의 말씀이고, 앞에서 아하즈에게도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이사야는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여기서도 아들들에 관한 무서운 예언자의 말에
8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지당하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그대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지당하오."는 마치 다윗 임금이 나탄이 꾸짖자,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겸손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편집자는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는 내용에서 히즈키야도 이사야가 생각한 이상적인 임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하즈는 아시리아에 기대어 유다의 안녕을 도모한 임금이었고, 히즈키야도 아시리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유다를 강한 나라로 키우려고 했지만, 바빌론과 주변 나라들과 엮이면서 외세를 규합해서 아시리아에 맞서려는 정치적인 시도를 했던, 이사야 예언자가 기대했던 하느님께 기대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사야서 36장~39장의 예언자 삶의 서술 안에서 그는 얼마나 불행했을까? 그는 자신의 전체 인생을 걸고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는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데 자신의 모든 인생을 내던졌는데 권력을 갖고 있는 아하즈나 히즈키야 임금들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세속적인 방법과 지혜로 위기를 극복해 가려는 모습을 보고서 예언자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오늘날에도 이사야 예언자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 나라 안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인데, 우리는 가끔 세속적인 지혜로 그것을 넘어가려고 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그것을 넘어가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불행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얼마 전에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요즘에는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신부님이 중고등학교 때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면 신라가 당나라에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요즘 그것을 정말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하신다는 말에 동의하셨다는, 계속해서 외세를 빌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지도자들의 모습들은 결국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길이다. 정말로 그가 교회의 지도자든 국가의 지도자든 지도자라면,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그 모습!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진 나라나 민족의 모습은 많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라가 사라질 때는 안에서부터 무너지더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도, 우리가 혹시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힘이 돼줄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는 좋은 흐름이 우리 사회 안에서 만들어지는데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신부님은 이사야서 36장~39장의 내용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요시야의 이야기이고, 그렇다면 히즈키야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요시야부터 치드키야까지!
결국 외세의 힘을 빌어서 유다의 독립을 지키고, 더 강한 나라로 만들려는 임금들의 노력이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표에서 우찌야 다음에 아하즈, 히즈키야 그다음에 므나쎄라는 임금이 나오는데, 므나쎄는 히즈키야와는 다르게 친아시리아적인 정책을 폈고 그러면서 그 당시 유다는 세속적으로 영토도 넓고 강한 나라가 됩니다. 그리고 므나쎄는 종교적인 혼합주의자 자였기 때문에 아시리아와의 교류도 힘들어하지 않고 조공도 많이 바치고 성전 안에 아시리아 신상도 모시고 유다를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군사적으로는 센 나라로 만듭니다.
그 므나쎄를 열왕기와 역대기의 임금들은 최악의 임금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므나쎄가 죽고 암몬이 짧게 왕위를 계승하고 므나쎄의 손자인 요시야가 임금이 됩니다.
요시야가 임금이 되고 나서,
성전을 다시 보수하기 위해 자신의 서기관에게 성전의 많은 재물들을 가지고 성전을 보수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조사를 하게 합니다.(2열왕 22장)
2열왕 22장
8 힐키야 대사제가 사판 서기관에게, "내가 주님의 성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하였소." 하고 말하면서, 그 책을 사판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고 나서 서기관은 임금에게 갑니다. 그리고 임금에게 보고합니다.
9 "임금님의 신하들이 주님의 집에 있는 돈을 쏟아 내어, 주님의 집 공사 책임자들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서기관이 임금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힐키야 사제가 저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하면서, 임금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11 그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임금은 자기 옷을 찢었다.
이게 오늘날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율법서가 신명기이고 신명기 중에 신명기(12장~26장) 법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요시야는 신명기 개혁을 일으킵니다.
임금이 사제, 대신관들에게 명령합니다.
13 "가서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을 두고,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주님께 문의하여 주시오.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하여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거슬러 타오르는 주님의 진노가 크오."
그래서 그들이 훌다라는 여성 예언자에게 갑니다. 훌다에게 가서 여기에 대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자, 훌다가 대답합니다.
15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나에게 보낸 사람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16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유다 임금이 읽은 책에 쓰여 있는 말 그대로, 이제 내가 이곳과 이곳 주민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17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향을 피워, 자기들 손으로 저지른 그 모든 짓으로 나의 화를 돋우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진노가 이곳을 거슬러 타오를 터인데, 그 진노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훌다 예언자는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다 예언자는 요시야 임금에 대해 예언합니다.
18 여러분을 보낸 유다 임금님께 이 말도 전하십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들은 말씀에 관한 것이다.
19 이곳과 이곳 주민들이 황폐해지고 저주를 받으리라고 내가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유순해져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 또 네 옷을 찢고 내 앞에서 통곡하였다. 그래서 나도 네 말을 잘 들어주었다. 주님의 말이다.
20 그리하여 내가 너를 네 조상들 곁으로 불러들일 때, 너는 평화로이 네 무덤에 묻히고, 내가 이곳에 내릴 모든 재앙을 네 눈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을 임금에게 전하였다.
이것이 열왕기 저자가 가져야 했던 딜레마 중에 하나인데요, 요시야가 의로운 임금이었다면 유다를 강건하게 만들고 오래오래 살았어야 하는데 요시야는 굉장히 이른 나이에 이집트와의 전투에서 죽고 맙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해서,
요시야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 죽은 것이 야훼의 축복이었다.
2열왕 22,20 "내가 이곳에 내릴 재앙을 네 눈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야훼의 축복으로 요시야의 이른 죽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2열왕 23장
1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원로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임금은 자신이 발견한 신명기, 율법서를 모든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읽어줍니다.
3 그런 다음에 임금은 기둥 곁에 서서,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법령과 규정을 지켜(신명 6장), 그 책에 쓰여 있는 계약의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이 계약에 동의하였다.
마치 시나위 산에서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은 듯한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훌다 예언자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계속해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을 계속합니다.
24 요시야는 또 유다 땅에서 눈에 뜨이는 대로 점쟁이와 영매와 수호신들과 우상들과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을 치워 버렸다. 이렇게 하여 요시야는 힐키야 사제가 주님의 집에서 발견한 책에 쓰여 있는 율법의 말씀을 실현시켰다.
25 요시야처럼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온 임금은, 그 앞에도 없었고 그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26 그러나 므나쎄가 주님의 분노를 몹시 돋우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유다를 거슬러 타오르는 커다란 분노의 열기를 거두지 않으셨다.
27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처럼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겠다. 내가 선택한 이 도성 예루살렘도, 나의 이름이 여기에 있으리라고 말한 이 집도 내버리겠다."
하느님께서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처럼 남유다도 멸망하게 하겠다. 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므나쎄의 죄는 하느님을 화나게 했다는 것을 열왕기의 저자는 신학적인 해석을 이곳에 덧붙이고 있습니다.
탈출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십계명이 있습니다. 신명기 5장 9절에는
9 "주 너희 하느님은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10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 까지 자애를 베푼다.
신명기 신관입니다. 여기서 왜 삼대 사대에까지 갚는다는 말씀을 하셨을까? 왜냐면 므나쎄부터 삼대 사대가 넘어가면서 유다가 멸망합니다. 따라서 유다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이 므나쎄의 죄악이라고 신명기의 저자들은 이런 식으로 행간에서 얘기합니다. 조상들의 죄악을 삼대 사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므나쎄가 하느님을 화나게 하였기에 결국 유다와 예루살렘이 망했다.
요시야는 열왕기의 기록과 역대기의 기록을 보면 그다음에 역시 바빌론과 힘을 합쳐서 반아시리아적인 움직임을 벌이면서 유다를 독립된 나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집트 임금 네코가 바빌론이 점점 힘을 키우자, 아시리아와 연합해서 오히려 바빌론을 제압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아시리아 쪽으로 오는데, 이집트에서 아시리아로 가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려고 하는데 바빌론과 연합한 요시야는 이집트군을 막기 위해 그들과 전쟁을 하여 요시야가 죽습니다.
이집트 임금 느코와 요시야가 전쟁을 벌였던 곳은 므기또인데, 이곳은 고대 근동에서 굉장히 많은 전쟁과 전투가 벌여졌던 곳이고 나중에 이 므기또에 있는 곳이 산악지역인데, 산을 지칭하는 히브리어가 '하르(הר)׳이고
하르 므기또, 므기또의 산이 전쟁과 전투? 어떤 종말론적인 표상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묵시록에서 보면 그 하르 므기또에서 세상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는 대목 때문에,
하르 므기또(הר מגדון 히브리어)가 그리스말, 라틴말, 영어로 넘어오면서 아르맛 겟똔, 아마게돈이 됩니다.( 그 기원이 되는 전투는 요시야가 이집트 군을 막아서다 죽은 전투- 어원적인 기원)
그렇게 요시야가 죽은 후, 아들 여호아하즈가 임금이 되는데 석 달만에 승리한 이집트가 못마땅하게 여긴 여호아하즈를 붙잡아 가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이었던 여호야킴이 11년정도 임금으로 활동을 합니다. 그는 우선 친이집트적인 임금이었다가, 힘을 키운 바빌론을 보고 친바빌론이었다가, 또 다시 바빌론의 힘이 기울자 반바빌론적인 임금이 되었는데 605년에 바빌론이 유다를 쳐내려 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미 첫번째 유배가 일어나고, 여호야킴이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여호야킨이 유다의 임금이 되는데 역시 바빌론이 여호야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바빌론으로 잡아가면서 2차 유배가 일어납니다.(597년입니다)
이것은 바빌론 연대기에도 기록된 사건입니다.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인 치드키야(여호야킨의 삼촌)가 임금이 되어 11년 정도 유다를 다스렸고 친바빌론적인 임금이었다가, 또 다시 반바빌론적인 임금으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그때 느부갓네살이 쳐내려오고 587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고 느부갓네살에게 붙잡힙니다.
성경에서 자신의 두 아들이 자신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두 눈을 뽑힌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세 번째 유배가 있습니다.
열왕기에서 나오지는 않는데 예레미야서 52장을 보면, 582년경에도 또 한 번의 유배를 갑니다.
- 구약 성경 안에서 유배의 시기는 605년- 597년- 587년- 582년
이렇게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시기에도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인데,
아하즈와 히즈키야 시대의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는다는 예언을 했고 그 예언이 실현되었습니다. 반면에 요시야부터 마지막 치드키야 시기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사야의 예언을 흉내 내고 있던 거짓 예언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은 망하고 유다는 멸망할 것이다. 그것이 야훼 하느님의 심판이다.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역사학자들과 예레미야 예언자는 한 가지, 유다의 멸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명기 이전에 있었던 유다의 다신적인 신관으로 유다의 멸망을 본다면, 거기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은,
유다의 하느님이었던 야훼가 전쟁에서 바빌론의 하느님이었던 마르둑에게 지면서 유다의 멸망,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역사학파와 예레미야 예언자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신명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굉장히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하느님 야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따라서 바빌론의 마르둑이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무엇이냐? 우리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지 않자,
"므나쎄의 시기에 너희가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나는 너희를 용서하지 못하고 너희는 멸망할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질 것이다."라는 훌다의 예언대로 이것은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은 우리 하느님이 마르둑에게 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느님을 떠나자, 하느님이 우리를 심판하신 사건이다.
유다의 멸망과 함께 신명기 학파와 예레미야 예언자는 신관의 전환을 통해서 그 멸망을 해석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 안에서 유일신관이 중심에 자리 잡게 됩니다.
주전 약 730년부터 시작해서 아하즈와 히즈키야, 요시야 그리고 마지막 치드키야에 이르기까지 남유다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임마누엘,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고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하느님 백성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만, 그 예언자들의 기대는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예레미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했기에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많이 받았던 비련의 예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신명기 역사학파와 예레미야 예언자의 해석에 기반해서 자신들의 신앙과 야훼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지켜내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메시아니즘을 바탕으로, 또 예레미야 예언자가 이루어낸 극적인 유일신관을 통한 그들이 지켜낸 야훼 신앙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의미를 지니게 되고 오늘의 교회는 그 신학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세상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예언자들이 겪었던 힘든 역사의 현장, 그들이 지켜낸 하느님 신앙이 어떻게 꽃피게 되었는지 커다란 역사의 맥락 위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에서 어떤 선택을 해나가는가? 가 하느님의 역사 안에서 간단하고 손쉽게 여겨서는 안 되고, 지금 우리들이 이루고 있는 교회의 하루하루 삶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에 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다음 강의를 기다리며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