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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0시-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발소리를 죽이려고 애를 쓰는 그 그림자들은 바닷가의 게들이 모래 속에 스며들 듯 빈자리를 찾아 좌선에 들어간다. 일부러 불을 꺼버린 도장 안에는 창문으로 쏟아지는 별빛으로 언뜻 산골짜기 같은 침묵을 준다. 그믐인데다가 초여름 비까지 내려 더욱 절벽 같은 적막도 준다.
그러나 밤 영시, 하루의 분기점에서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이나 되는 것같이 서두른다. 도장이 바로 방배동 역 네 거리에 있어서 근처의 카페 골목에서 밀려나온 취객들과 마지막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는 발빠른 발자국 소리들로 시끄럽다. 때때로 머릿골을 잡아당기는 차 바퀴의 급제동 소리는 끼이익-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부엌칼로 내려 긋는 소름이다.
신참들은 그런 핏빛 소리에 움찔거렸으나 고참들은 만성이 됐는지 아니면 이미 영혼이 진짜 지리산 산 중으로 찾아 들었는지 바위같이 앉아있을 뿐이다. 나는 소리없는 발자국 소리나 그림자의 흔들거림만 보아도 그들이 누구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눈 감고도 알 수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벽면이 거울같이 비치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제부터인가.
국선도 회원들이 밤 영시 이후에도 필요한 사람은 자유롭게 나와서 면벽 좌선에 참가하자고 해서 시작된 것이다. 하루의 고된 일과와 스트레스도 풀겸 자칫 나태해지는 심신을 가다듬자는 것이다. 이것이 침잠에 들면 삼매경에도 이르고 온갖 피로가 씻어진다. 잠을 실컷 잔 후같이, 한증탕을 드나들며 샤워를 하고 난 것같이 아주 개운한 것이다.
좌선이란 끊임없는 자기 학대같이 생각하기만 하는데 사실을 모든 번뇌로부터 일탈될수록 오히려 심신은 가벼워지고 가뿐해지는 것이다. 무거운 돌덩이를 머리에 이고 부처의 경지에 들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을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게 비울 수 있어야 더 높은 단계로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방배동 네거리는 속세일 수도 있고 백두산 꼭대기 천지연의 바윗돌 위일 수도 있다.
강경대 군에서부터 김기설 씨에게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젊은 죽음이 있어서일까. 하늘도 주룩주룩 눈물을 쏟았다. 광주의 망월동 묘역, 오늘은 강 군의 장례식이다.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실감이 이제 천천히 나타나는가 보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무엇인가 겨드랑이가 허전하게 느껴져서 뒤돌아 보면 어머니가 부재되어 있다. 강 군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모두가 짧은 이별이다.
왜 나는 장자 같은 신념을 아직도 지니지 못하는 것일까. 죽음은 잠깐 겉 옷을 한 번 벗는 것 뿐이다. 얼마 전에 서초동 구룡사에도 왔던 링 린포 체이마냥 인간은 환생하는 게 아닌가. 티벳이 달라이 라마가 환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08가지를 매스컴에서 검증한 것이다. 그래도 못 믿는 사람이 많고 1만 가지를 실험한들 부정하는 사람은 의심이 끝이 없다.
링 린포 체이의 전생이 달라이.라마이든 아니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또 환생이 되든 안 되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시가 공空이거늘. 나는 이런 혼란이 들 때쯤이면 화두를 잡는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 오는 것일까? 끊임없이 화두를 잡음으로써 스스로의 등뼈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또, 운동권 학생을 억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정당사 습격 사건에 관련된 대학생들이지요. 벌써 다섯 번째 공판이지만 아직도 나와 변호사의 공방은 끝이 안 보입니다. 물가고만 끝이 안 보이는게 아니라 우리의 법리도 끝없이 불타는 걸프만 같이 시커멓게만 보입니다.”
“그게 어디 양 검사 개인의 힘만으로 되는 겁니까. 공권력의 재판이지. 또 얼마나 외압이 심하겠습니까. 지난 4월 초파일, 불탄일에도 전경들의 몽둥이 찜질이 얼마나 심했습니까. 시위대와 분리한답시고 스님과 신자들의 연등행렬을 무자비하게 해산시켰으니까요.”
양 검사와 나는 등을 대고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계침은 자정을 넘어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좌선에 들던 일부 도반들도 돌아가고 기계충 걸린 머리통마냥 방안이 듬성듬성 비었다. 소리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그들은 사라졌다.
인간의 시작은 소리이듯이 역사의 시작도 소리이다. 그래서 성경 구절에도 ‘태초의 말씀이 있었느니라’한 것이 아니겠는가.
양 검사뿐이 아니라 어느 정도 경지에 들어간 도반끼리는 무언으로 대화를 나눈다. 말 없음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양 검사는 오늘의 재판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다. 삼십대 초반의 공안 검사인 그는 안암동 대학시절 운동권 출신이었고 상계동 철거민을 위한 빈민운동가였다. 그러나 그가 권력의 알사탕에 혓바닥이 녹아 남산에도 근무하는 등 검은 독수리마냥 날뛰었었다. 어떤 인연에선가, 송광사 혜봉 스님의 부도를 만나고부터는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두꺼비의 새끼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구렁이의 배가 팽창하여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 되는데, 그때서야 후회하고 구렁이는 두꺼비 일가족을 압사시키려고 용을 쓰고 모래밭에 뒹굴어 봐야 구렁이는 가죽만 벗겨질 뿐이다. 방구를 온몸으로 뀌어도 악착같은 두꺼비 일가족은 나오질 않는다.
그리하여 구렁이가 기진해 죽으면 두꺼비 할멈도 같이 정사 아닌 정사를 하고, 어머니와 구렁이 시체를 뜯어 먹고 두꺼비 새끼들은 힘차게 자란다. 착한 아기 우리 아기! 하면서 씩씩하게 자란다. 모성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목숨도 버리고 자기의 시체까지 뜯어 먹게하여 자식을 기르는 것이다.
돈오점수頓悟․漸修!!
깨달음이란 독사에게도 목을 축여 주는 물이 되어야 한다. 두꺼비와 같은 살신성인의 길이란 무엇인가. 전혀 타인의 독사에게도 자신의 혈육인 두꺼비에게도 도움이 되고 이로움이 되는 이타행利他行, 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도무지道無智! . 도가 무지하다. 도무지 무지하다며 백암 스승이 지어준 호가 아닌 별명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당최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손바닥의 바람! 한 접시 조차 그것이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이며, 바람 그 실체란 무엇인지도 도무지 확인이 안되는 것이다. 바람뿐이랴, 풀 한 포기조차 그 존재 이유와 방법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도道가 쉽다 함은, 하고자 하여 궁구하면 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도가 어렵다 함은, 모든 도반들이 궁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도가 가깝다 함은, 항상 그림자처럼 따르기 때문이요,
도가 멀다 함은, 스스로 밖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무릇 활구活句란, 오랜 통문通文하면 통문할수록 사구死句로 변하기 마련이다. 곰이 너무 영리하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고, 뱀이 너무 영리하면 나무 위로 올라감이로다. 저 기둥에 이슬 내릴 때를 기다려 너무 영리하지 않도록 하라!’
나는 가부좌를 한 채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름을 느꼈다. 그리고는 제트 소년 아톰같이 창 밖으로 날아 올라갔다. 상어가 바닷속을 마음대로 유영하듯 나는 우주 공간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 밤 영시만 넘으면 나는 이렇게 오대양 육대주를 마음내키는 대로 기웃거릴 수 있었다.
무중력 무시간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로마에서 아마존강 밀림까지도, 시베리아 북극에서 남 아프리가 희망봉까지 자유자재로 내려 앉았다가 올라갔다가 할 수 있었다. 내 껍데기 겉 옷인 육체는 방배동 도장에다 벗어 놓고 아주 가볍게 영(靈)만 비상하는 것이다.
이미 나는 내 몰골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이런 행동들이 어떤 현상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밤이면 나만의 이런 비밀을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없고 얘기해 보았자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안타까웠다. 아내에게 진지하게 말해 주었더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조금 경지에 들어선 도반에게 일러 주었더니 그건 정도가 아니고 사구로 흘러가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외면했다.
그래서 백암 선생이 나를 꾸짖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지난 겨울이었던가. 이상하고 감기 기운 같은 것이 있어서 일찍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꿈치를 한 번 떼는 데 바윗돌을 하나 옮겨놓는 것 같았다. 억지로 집에 들어와 밥 생각도 없어서 침대에 누웠는데 정신만 더욱 뚜렷해질 뿐 잠이 오지 않았다.
전에 없던 진동현상이 강렬하게 일었다. 다시 일어나 단전에 힘을 모았다. 그대로 천정을 뚫고 솟아오를 것 같은 기를 간신히 누르고 도장으로 돌아왔다. 눈보라가 흩날리는 겨울 한 복판인데도 몇몇 도반들은 난로 하나 없이 정진하고 있었다. 개 중에는 이마의 땀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기를 모으고 있기도 했다.
무거운 철갑을 벗어버리듯 나는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군용 점퍼를 벗고 털 자켓을 벗고 런닝 셔츠만 걸쳤다. 아래는 팬티만 입은 채이다. 그래도 땀이 엿가락같이 녹아 내렸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아니란 것을 이내 깨달았다. 기실 나는 윗대 도반들의 이러한 행각을 숨어서 보고 나도 언제나 무당 같은 진동현상이 오나, 언제나 도사같이 공중에 붕붕 뜨는 부유현상이 오나 하고 잠재적으로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산거사님은 아직 때도 안 되었는데 흉내부터 낸다고 꾸지람을 하셨던 것 같다. 정도를 걷지 않고 삿된 마음부터 갖는다고 호통을 치신 것이다. 그 뒤부터는 정말 욕심을 내지않고 정진을 했더니 진달래가 필 때쯤인가. 한밤중 머리 끝이 천정을 훑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선 채로 머리가 공중에 매달린 채 빙글빙글 돌았으니 얼마나 가관이었겠는가. 마음을 비운다는 게 이렇게 쉽고도 간단한 것이거늘 어렵게 생각하면 한이 없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도(道)가 쉽다는 것은 반드시 이처럼 성취되기 때문이다.
도통하기가 어려운 것은, 빨리 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기가 어려운 것이지 도통하는 그 자체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욕심을 표백시켰을 때, 기적 아닌 기적은 이미 도착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더욱 사심을 버리고 잡념을 솎아버리고 또 버렸다.
라일락 향기에 골치가 아프다 했더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 우주 유영을 하게 되자, 그 재미에 미쳐서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이다. 낙하산 줄이 끊어지듯 급강하하여 나는 관악산 너럭 바위에 그대로 떨어진 것이다. 청산이 대노하신 것이다. 등어리에 부딪힌 것이 바위가 아니었기 망정이지 잘못했다간 척추를 다쳐 꼬추도 안 섰을 뻔했다. 그러나 그건 ‘뻔했던’ 것이 아니라 청산은 처음부터 다치지 않게끔 잔가지 많은 소나무 위로 떨어뜨려 준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청학동으로 날았다.
‘유체이탈’이다. 혼백의 우주유영을 하는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매스컴에 청학동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미 무학대사가 청학동결에 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천부경이 발굴되고 삼일신고가 햇빛을 보게 된 것은 다 시운에 따라서 나타나게 된 것일까?
우주의 중심이 똑바로 서고, 그 중심 기운이 모이는 곳이 바로 한국이요, 단전에 해당하는 곳이 한반도인 것이다. 그것은 주역에도 암시되어 있다. 3천 년대의 우주 기운, 설사 아니라고 해도 역시 기분은 째질 듯이 좋은 것이다. 홍익대사!
섬진강을 끼고 들어간 하동 하구에 용의 어금니 같은 곳에 명당이 있었다. 혹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리고도 하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산세라고도 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 입구에서 농부에게 청학동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도무지인가? 자네를 기다렸네. 먼길에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먼저 저 개울에 내려가 등목을 하게나.”
나는 깜짝 놀랐다. 생판 처음 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니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오지투체로 그 농부 앞에 큰절을 올렸다. 그는 농부가 아니라 바로 도사요, 홍익대사였다. 머리는 허옇게 은빛을 빛내고 있었고 얼굴은 잘 익은 진영 감마냥 싱싱했다. 곡괭이를 쥔 팔뚝이 근육으로 힘차게 보였다.
“아, 이게 바로 유체이탈 시작이구나?”
나는 구름 속인지, 당나라 현종의 마누라가 목욕했다는 양귀비 선녀탕인지 황홀경에 빠져 목욕했다. 폭포 아래에 서니 어금니가 시리도록 시원했고, 비누가 없는데도 온몸 구석구석이 페이퍼로 닦아내듯 말끔한 쇄신감이다. 나는 물기를 대충 훔치고 홍익대사 뒤를 따라갔다. 골짜기인지, 굴 속인지 더듬어 들어 가노라니 색동옷 입은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았다.
“이봐 도무지, 여기가 바로 첫 동네이네. 최근에 하늘에 들어온 사람들이지.”
나는 귀신에 홀렸나 하고 내 머리털을 위로 잡아당겨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 홍익대사의 다리를 짐짓 꼬집어 보았다. 그러자 홍익대사는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자네는 비몽사몽이겠지. 이곳에 더러 세속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대개는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기절하는 친구도 있지. 그러나 이게 또 하나의 현실인 걸 어떡하나? 이곳은 지상과 천상의 경계선쯤 되는 곳이야. 별게 아니지. 더 올라 갈수록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볼 수 있을 걸세.”
“대사님은 아직 지상에 살아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영혼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지상이고 천상이고 결국 하나의 세상이야. 사는 것이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또 하나의 삶의 형태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듯이 생과 사는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라네. 가만있자, 자네도 한번 기절해 보고 싶은가?”
어느덧 대사는 내 머리칼을 쥐고 붕 떠서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았다. 학이 소나무 가지에 앉듯이 대사는 사뿐히 내렸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가마를 불러 세웠다. 풍채가 은은한 젊은이가 내렸다. 그는 대사를 보자마자 땅에 엎드려 큰 절을 했다.
“아니, 미륵님께서 어떻게 예까지 오셨습니까.”
나는 또 한 번 놀랬다. 아니 홍익대사가 미륵불이라니? 점점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서안의 용마병총으로 가는 길이야. 자네의 옛 친구가 왔길래 자네 가마를 쫓아왔지. 지리산에서 오는 길이야.”
“아 그러시군요. 제가 세상을 떠난 지도 한 십 년이 된 것 같은데 누구시지요?”
하고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정말 기절하지 않으면 뻗기라도 해야할 지경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의 내 친구였다. 한 때는 머리를 삭도로 싹 밀어 부치고 한라산 꼭대기로 도망도 치곤 하던 안암동 소크라테스였다. 그러면서도 호주가였고 천하의 오입장이였다. 자기가 무슨 제2의 원효라면서 철학 교수와 끝없는 논쟁도 하면서 물고 늘어지던 막역한 친구가 아니던가.
“아니 청산거사의 꼬붕이 어쩐 일이야. 자네도 여기 올 때가 되었나부지?”
“무슨 끔직한 소리를 그렇게 하나? 잠깐 외도를 하다가 홍익대사님을 뵈온 것뿐이야.”
“아니 어쨌든 반갑네그랴. 자네랑 같이 원서동 도둑놈 촌을 밤이면 담을 넘어 도둑질 하던 추억이 떠오르는군. 그때 고관대작의 장농을 털기만 하면 얼마나 많은 금은 패물이 쏟아지던가.
1991년 8월 9일 남북한 유엔 가입이 안보리에서 확정되었다고 뉴욕의 현장이 떠들썩하다. 천지의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남한의 노태우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각기 TV회견 하는 모습이 보였다. 넓은 지구촌에서 치고박고 하는 것이 가소롭게 보였다.
더구나 무한대의 우주에서 내려다 보니 인간만사가 너무나 유치하게 보였다. 홍익대사가 가리켜 보이는 손가락 끝에는 위성사진이 찍어보이는 첨단 전자망원경마냥 지구 곳곳의 현실이 대형 거울에 그대로 생생하게 보였다. 걸프만 쪽을 보니, 수만 명의 부상군인들을 위로하는 이라크의 카이젤 수염, 후세인이 핵무기로 다시 한번 미국의 스텔스를 공격해 보고 싶다는 원한이 그의 갈빗대에 찍혀져 보였다.
홍익대사는 누구의 가슴이든 마음대로 들여다보았다. 21세기의 세계사상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러시아 공화국의 옐친과 팔씨름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의 부인 라이샤는 지구본을 뺑뺑 돌려가면 아무래도 일본과 독일이 다음 세대에 위협적 존재라며 그의 남편에게 조언해 줄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다.
라이샤는 일 주일 후, 옐친의 마누라와 함께 붉은 광장의 굼 백화점에 한국의 콩나물을 같이 사러갈 궁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미의 갈비뼈에 살짝 찍혀 나왔다. 아마 일 주일 후면 한국의 무공해 콩나물 재배업이 모스크바 TV화면에 비쳐질 것이고, 라이샤가 직접 콩나물 요리를 하는 법을 양념으로 보여줄 것이다. 극심한 식량난을 타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말이다.
“소헌왕후는 벌써 여러 번 세상에 태어났다네. 네덜란드의 농부의 아내로도 환생되었다가 딸만 다섯을 낳았지. 그리고 다시 남아공 투투족 족장의 마누라가 되었고, 에쿠아도르 섬 처녀로도 세상에 나왔댔어. 다시 백두산에서 안암동 소크라테스의 마누라가 되기까지 열댓 번은 환생했다네, …… 아깝게도 아직도 해탈을 못하고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거야.”
“홍익대사님도 해탈을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녜요. 대사님도 인간세계에 환생해 있으니 말예요.”
“이 사람아, 나는 환생한 게 아니라, 자재(自在)하는 거야, 마음 먹은대로 실재해 보이는 것 뿐이야.”
“고대 그리스 시대 진짜 소크라테스의 마누라를 한 번 보아줄까. 아마 기절할꺼야.”
“아니 아니, 대사님 괜찮아요. 지금 서안의 용마병총까지 가려면 아직도 멀었잖아요.”
나는 진짜 기절하면 이 좋은 선계(仙界) 구경에서 방배동 도장으로 떨어질까 봐 거절했다. 아니 애걸했다.
등소평이 수영하는 모습이 보이고, 김일성이 청뚜成都체육대학 부속병원에서 목 뒷덜미 수술하는 장면도 언뜻 보였다. 그는 수술할수록 더욱 큰 혹이 된다고 의사들에게 화풀이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크렘린 궁 바로 위 구름 속에서 바둑을 두고 있던, 스탈린과 히틀러가 무릎을 치며 웃었다.
“짜아식, 많이 컸단 말야. 다 내가 가르쳐 줬지. 그런데 녀석은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어. 나는 3천만 명 정도 학살했는데 인구비례로 보면 김일성이 더 잔인하게 백성들을 죽인 셈이야.”
“나야 유태인 6백만 죽인 정도 가지고 옥황상제는 유황기름에 튀기는데, 자네는 내 실적의 5배나 되는데 늑대 우릿간에 집어 넣는 정도 아냐, 상제도 뇌물 먹은 모양이야, 이거 하늘나라에서도 불공평하다구.”
“이 사람아 나는 위대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불가피하게 반대파들은 숙청한 거지만, 자네는 매독 환자 아냐? 최면술을 걸어서 국민들을 현혹시켜 게르만 유일주의를 실현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악질성으로 상제가 가중처벌 법을 쓴거야. 최소한 이 스탈린은 나 혼자만 호의호식 하자고 독재를 한 게 아니란 말씀이야.”
“이게 누구보고 손가락질이야, 2차 대전이 누구 때문에 일어난 건데, 이걸 그냥, 평양 박치기로 박아버릴까 보다.”
“어쭈, 김일성이? 누구 편인데, 너 함부로 주둥아리를 떠벌려?”
그 때 이순신 장군의 긴 칼이 녀석들의 바둑판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포도청 대장들이 스탈린과 히틀러를 다시 영구 감옥소로 끌고가 각기 유황 온천장과 늑대 우릿간으로 집어넣었다. 곧이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홍익대사는 지옥의 아수라장을 보여줄까 하고 돌아오던 길을 뒤로 다시 날았다. 나는 안 따라가겠다고 발버둥쳤다.
흔히들 지상에서 말하는 유황기름 속에서 헤엄치는 숱한 독재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거기에는 알렉산더-나폴레옹-징기스칸 등에서부터 최근의 챠우세수쿠까지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대량 학살한 주범들이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고통 속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출신으로는 이성계, 수양대군, 이완용 등이 수용되어 있었다.
홍익대사는 낄낄 웃더니, 한 바퀴 돌아서 진시황 능을 지나 용마병총 현관 앞에 사뿐히 내려섰다. 당시 남자 병사들의 모습이 지하에서 우뚝 서 있었다. 젋은 장병에서부터 늙은 장병들까지 그들의 희노애락이 전쟁터로 진행해 가는 모습 그대로를 그렸다. 유황온천 깜이렷다.
맨 앞줄의 장군모습에 나는 기절했다. 홍익대사가 옆구리를 간지럽혀서 잠깐 깨어난 나는 다시 까무라쳤다. 중앙의 그 장군은 바로 내 얼굴이 아닌가. 내가 다시 정신이 든 것은 방배동 도장에 해가 뜨고도 한참이었다. 다행히 일요일이어서 새벽 수련생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널부러져 잠꼬대 하고 있는 관장의 모습을 수련생들이 보았다면 얼마나 실망했을 것인가.
“당신, 요즘 웬 꿈을 그렇게 꾸세요.”
찬 냉수를 한 주전자 꿀떡 마시고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사무실 냉장고 옆에 붙여둔 지리산 청학동 그림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듯 붙어 있었다. 분명히 꿈은 아닌 것이 정신이 말똥말똥 하고 단전호흡의 삼매에 빠져있는 나 아닌 나의 모습이 비쳐 보였기 때문이다. 청학동 그림 속의 홍익대사님도 다시 뛰쳐나올 것같이 손을 내젓고 있었다.
4
나는 나의 시체를 이윽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명한 두개골과 눈두덩과 콧두덩 부분이 시커멓게 뚫려 있었다. 저 해골이 바로 나란 말인가. 그것은 캄보디아 대학살 영화 ‘킬링필드’에 나오는 해골 쓰레기더미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또 의과 대학 병원에 진열되어 있는 해골 박제품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해골만 보아서는 사실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된다.
그 해골 위에 입혀진 평소의 옷과 이름을 보아야 그 주인공이 누구란 걸 알 수 있었다. 의사는 어깨 뼈 부분과 정강이 뼈 부분에 대해서도 긴 젓가락 같은 것을 엑스레이 사진 위로 짚어가면서 설명했다.
“이 부분이 매우 애매한 부분이데요 아직은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교통사고란 것이 당장에는 모르고 후유증이 심한 것이 통례입니다.”
젊은의사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저 사진의 해골이 바로 나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월요일 묵연스님의 설법이 있다고 해서 나는 도장의 수련이 끝나자 급히 차를 몰았다. 늦지 않게 지름길로 달린다는 것이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신갈고속도로 입구 삼거리였다. 밤도 늦고 해서 일단 길을 물어가려고 차를 길가에 붙여 놓고 행길을 건너려는데 무엇이 뒤에서 쿵!하고 부딪혔다. 그리고 나는 공중을 한 바퀴 기분좋게 돌아서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얼른 모가지를 흔들어 보았다. 모가지는 붙어 있었다. 두 팔을 흔들었다. 그리고 두 다리도 멀쩡하다.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하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몇 명이서 나를 부축하려고 했다.
나는 뿌리치고 혼자 일어섰다. 아직은 내가 이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되는데에? 아직도 벌려 놓은 일이 있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죽는 순간까지 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변에 차들이 여러 대가 서 있었고 모두들 차창 밖으로 근심 반 호기심 반으로 내다 보고들 있다가 내가 절뚝거리며 걸어 나가자 흐이그, 또 한 번 초상 치를 뻔했구먼 하고, 제각기 차를 몰고 사라졌다.
내 뒷다리를 받아 공중으로 뜨게 했던 운전수는 얼굴이 하얘져서 나를 자꾸 차에 태우려고 했다. 어디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괜찮다며 그냥 가려고 했다. 그때서야 정신이 조금 들어서 보니 신발 한 짝이 없다. 주변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깨에 통증이 있어서 손을 대어보니 핏물이 묻어 나왔다.
다시 아래 정갱이뼈 부분도 양복이 타원형으로 갈려 나가고 그 부분에도 피가 배여 나왔다. 머리가 얼얼해서 만져보니 머리 위쪽이 곤봉으로 한 번 얻어맞은 것 마냥 부어올랐다. 건너편 숲 속에선가 그 운전사가 구두 한 짝을 찾아 왔다. 그는 초조해 하면서 다시 병원으로 가지고 했으나, 나는 묵연 스님의 설법이 듣고 싶어서 그냥 괜찮다며 다시 차를 몰고 안양으로 나왔다.
뱅뱅 돌아 현장에 왔을 때는 이미 파장 후였다. 마누라에게도 숨기려고 했으나 그 운전사가 밤늦게 확인 전화를 해오는 통에 들통이 나버렸다. 심장이 약한 마누라가 알면 또 쓰러질 것 같아 와이셔츠도 둘둘말아 책상 밑으로 밀어넣고, 바지도 슬쩍 아무렇지도 않게 접어 두었으나 세수를 할 때 피가 보였나 보다.
“어머 여기 왜 이렇게 살점이 벗겨졌어요?”
“음 별 것 아니야, 오늘 본부팀과 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다구.”
“정말이라니까. 돌멩이에 걸려 한 바퀴 구른 거야. 신경 쓰지 말라구. 여기 거제 소독이나 좀 해주라고.”
“아냐, 아빠는 또 깡패하고 한바탕 붙은 모양이야. 아빠 쌈 잘해?”
둘째 딸년까지 나와서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 끝나려고 했는데 그 운전사가 차를 몰고 잘 들어갔냐면서 내일 꼭 병원에 가보고 그 결과를 자기에게 알려 달라며 전화통으로 떠드는 통에 곁에 있던 마누라가 자초지종 캐물어 발각이 되어버렸다.
이튿날 까지도 억지로 참아 보려고 했으나 몸이 붓고 말을 듣지 않았다. 딴 데 보다 머리가 붓는 것이 신경 쓰였다. 마누라가 등을 밀어대는 통에 할 수 없이 병원에 가서 몇 가지 신경 외과적 진찰과 함께 방사선과에 가서 앞으로 옆으로 뒤로 사진을 찍었다.
일 주일 만에 그 결과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나도 죽으면 앞으로 저런 뼈다귀만 땅 속에 남을 것이고, 거기서 또 어느 만큼 지나면 그 뼈다귀도 스러져 없어질 것이 아닌가. 생사란 무엇인가.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란. 백암스님의 청청한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삼계의 번뇌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아서 그 속에 있으면 열과 연기 때문에 허우적거릴 뿐이다. 윤회를 면하려면 부처를 찾는 길밖에 없다. 부처란 바로 이 마음인데 어찌 이 마음을 놔두고 먼 데서 찾으려 하는가.’
“선생님 아무 염려 마시고 그냥 가십시오. 정 이상이 생기면 언제고 다시 오십시오.”
“의사 선생님, 정말 아무 일 없습니까? 정말 정말입니까, 차에 한번 받히면 다들 절단 난다고 하는데요?”
마누라는 근심 반, 안심 반으로 재차 의사의 다짐을 받으려고 애썼다.
“네에 그렇지요.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뭐가 부러져도 부러졌겠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기적이십니다. 그렇게 가볍게 다쳤으니까요.”
“제 남편은 소위 말하는 도사 …… 아니, 선생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카톨릭 신자인 마누라는 도사라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고 아예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엉겁결에 도사라는 말이 튀어 나오려고 한 걸로 보아서 요새는 어느 만큼 몸으로 인정하게 되었나 보다. 마누라도 여자 회원의 단전 호흡을 지도하느라 이젠 웬 만큼 경지에 올라섰다.
천주교다 해서 기공을 미신같이 본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계의 문제를 다루는 의식이나 접근 방법이 다르므로 우선 일치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감과 경계심 같은 것이다. 결국 산 꼭대기에 이르면 다 같은 이치이다. 육신은 헛 것이어서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만.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육체는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고 마침내 바람으로 흩어져 버리지만 한 마음은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자기의 마음이 참 부처인 줄을 모르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을 모른다. 부처를 찾으려고 하면서도 자기 마음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자꾸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고승들의 언행이나 어려운 경전 해석에만 매달려 있다.
‘부처를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공연한 헛수고일 뿐이다. 참 깨달음을 찾으려면 자기 자신을 찾고 침잠할 일이다. 백암 스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음 안에서 계속 소리쳤다.
“여보 어제도 경찰서에서 호출이 왔어요. 큰애 때문이예요. 이번에는 광주로 도망가서 원양 어선 타려다 아슬아슬하게 잡혔대요.”
집으로 돌아 오는 택시 안에서 마누라가 혼잣 소리로 중얼대었다. 내 검진 결과가 안심이 되자 큰 아들 녀석의 일이 또 버티고 있었다.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이제는 해방이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며느리의 역할까지 연약한 몸으로 그 일을 해내었던 것이다.
남편이란 게 반은 실업자인데다가 맨날 구름 잡는 얘기만 하지, 아들 녀석 하나 있는 것이 엉뚱하게 속을 썩히니까, 마누라로서도 복장이 터질 게다. 그렇게 순하고 착하던 녀석이 중학교 3학년에 오르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새로운 친구들이 좁은 연립 주택에 드나든다 싶더니 어느 날, 밤중에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뒷산 근처에서 불량 학생들이 집단으로 본드를 마시며 여학생을 납치했다가 순찰 방범에게 걸린 것이다. 우다닥 튀었다가 한 놈이 걸려서 동료들 모두가 떼들려 잡혀왔다. 기막힐 노릇이다. 단 하나 믿었던 아들인데, 아내는 자기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다행히 녀석이 잽싸게 옥상으로 튀어서 그날 밤엔 끌려가진 않았지만, 결국 내 손으로 잡아서 경찰에 넘겼다. 초장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 놓지 못하면 어렵다. 불쌍하다고 머뭇거리다간 일이 더 켜져 버리는 게 고만한 십대들의 범죄 심리이다. 금년은 정말 아홉수가 들어서 그런지 사고의 연속이다.
지난달에는 경부선 고속도로, 서울 서초동 입구에서 우회전해 빠져 나오는데 뒤차가 내 차를 받아서 또 한 번 하늘로 날았었다. 붕! 떠서 중앙선 분리대를 받고 섰으니까 말이다. 뒷머리만 얼얼하고 별로 다친 곳은 없다. 오히려 내 차를 받은 뒷차가 그 충격으로 뒤집어져서 운전수가 기절했다.
곧이어 달려온 고속도로 순찰대에 의해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녀석도 팔뚝만 좀 찢겨지고 별로 다치진 않아 다행이었다. 나중에 경찰조사에서 왜 받았느냐고 하니까 그 녀석은 깜빡 졸았다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졸면서 운전하다니? 옆으로 뒤집어 진 차에서 쏟아져 나온 화투장을 보니, 녀석은 그 전날 밤새도록 고스톱을 치다가 운전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황천길을 본의 아니게 갈 뻔했다. 내 차는 약 3백만원의 견적이 나왔고 녀석의 차는 폐차 처분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염병할 1991년이 빨리 지나가든지 해야지 차가 안 받히나, 사람이 안 받히나 두 번씩이나 공중에 띄우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부처님이 보우하사 약간 겁만 주고 끝내 주니 얼마나 다행하냐. 어머니의 점대로 수명이 길긴 긴 모양이다. 긴 것이 아니라 질기다고 할까.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골골하고 병약하던 소년이어서 금방 죽을 것 같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아들 딸 잘 낳고 사니 말이다. 아니 그건 어쩌면 백암 스님 덕분인지 모른다.
기공 훈련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시니까 말이다. 차에 받힐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단전에 기를 모았기 때문에 몸이 가볍게 떨어졌을 것이다. 평소의 수련이 위급 상황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방어를 해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큰 삶은 백암 스님이 깨우쳐주셨다.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명제에 있어서 스님은 ‘밖에서 찾지 말라’ 하고 늘 경각심을 일깨워 주셨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을 살펴보니 두루두루 여래의 덕과 지혜를 갖추었다.’ 고 하셨다. 남은 일은 모두들 자기 몸 속에 가지고 있는 법성을 찾아서 성불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 몸안에 불성이 있는데도 다만 보지 못할 뿐이다. 이 몸은 땅, 물, 불, 바람 네 가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육체가 죽으면 이 네 가지로 화하는 것이요, 오직 정신만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눈이 보고 있으므로 세상은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눈이 눈을 볼 수 없음으로 사람들은 눈이 없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자기가 참 부처인 줄 알면 그 다음에 차근차근히 닦아가야 한다. 깨닫고 나서도 닦지 않으면 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규봉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얼음의 연못이 모두 물인줄 알지만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 깨달았지만 법력에 따라 닦아야만 참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얼음이 녹아서 흘러야만 그 물을 마실 수 있으며 망상이 다 그쳐야만 신통광명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지눌(知訥) 스님이 진작에 말씀하신 것으로 이것이 바로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란 것이다. 깨달음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갖 나무토막에 불과한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 바로 돈오와 점수인 것이다. 갓난 아기가 성장하여 세상물정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랜 정성과 애정이 필요하겠는가. 이러한 깨달음의 순서를 지키지 아니한다면 네모난 막대기로 동그란 구멍을 맞추려고 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로 곧바로 서초 경찰서로 가서 아들을 인수해왔다. 아직은 중학생 신분이고 직접적인 주동은 다른 학생이어서 훈방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거 인물 좋고 머리 좋은 놈이 왜 그렇게 부모 속을 썩히나? 이런 곳에는 다시 들어오는 것이 아니야. 이눔아!”
형사 계장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일렀다. 녀석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요새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부잣집 아이들이 더 극성입니다. 공부는 따라가지 못하지, 주변은 맨 자극적인 분위기이지요. 한창 예민한 얘네들이 쉽게 빠져 들 수밖에 없지요. 이번 사건은 미수에 그쳐서 다행이지만 지금 십대들 사건은 끔찍해요. 자기 친구를 시켜서 자기 집을 털어 오게도 하니까요 마약을 피우는 놈들이 어디 제 정신이겠어요? 아이들 간수 잘 하십시오. 어서, 가세요.”
나는 나만 부처가 되겠다고 집안을 돌보지 않은 게 아닌가. 자책이 앞선다. 그래서 대처승들은 선도를 닦는데 이런 가족 문제 때문에 더 많은 고통을 당한 것 같다. 나는 며칠 후 오랜만에 가족들을 데리고 남산에 올라갔다. 엎어지면 코 닿는 데인데도 대학 시절에 한 번 가보고는 못 가보았다.
그날 참 많이 얘기해 보았다. 큰 녀석 하고 마누라 하고 말이다. 이런 모임을 왜 나는 자주 갖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극락이란 바로 이 세상이 극락이 아닌가.
5
백두산 소나무 아래에서 재미있는 경기가 벌어졌다. 나는 다시 ‘유체분리’ 공법에 들어갔다. 동양권의 각 민족을 대표하는 무술 겨루기가 벌어진 것이다. 관전자들 가운데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관운장도 보이고 시저와 부르터스도 박수치는 모습이 보였으나, 장비가 보이지 않아 홍익대사의 옆구리를 찔러 은근히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미 또다시 환생하여 아프리카 희망봉, 밀림 속의 투투족 추장의 막내로 태어나느라고 세간으로 나갔다고 귀뜸해 주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2관왕이었던 플라톤이나, 복싱의 금메달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곧 올 것이란다. 그러나 여기 백두산 천지 수면 위에 나타난 경기는 진짜 이곳의 모습이 아니고, 브라질의 아마존강 원류 근방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란다.
그런데 어떻게 인공위성 화상회의 마냥 실제같이 입체적으로 보이느냐고 하니까.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지구상 어느 곳에 있는 일이든 도사들이 불러 내면 아무 강이든 바닥이든 비쳐 보일 수 있단다. 몽골족 대표가 먼저 일어나 시범을 보였다. 두 명이 양쪽 끝에 서더니 서로를 부르는 그들의 민요를 주술같이 외었다.
한 녀석이 말갈귀를 잡고 공중으로 솟았다. 이집트의 피라밋 만큼한 높이의 나무 위를 뛰어내렸다. 뛰어오를 때는 멀리 참새같이 보일 만큼 새까맣게 솟았다. 그 뒤를 따라 또 한 녀석이 뛰어오르는데 역시 말을 탄 채 몇 개의 나무들을 뛰어넘었다. 아니 숫제 나무 꼭대기를 사뿐사뿐 타고 날았다.
“아니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말까지 데리고 저런 재주를 부리다니?”
“저런 것 쯤이야 쿵푸에서 조금 나온 경지일 뿐이지요.”
곁에 있던 티벳 대표가 내 속을 꿰뚫고 있었던지 나에게 큰소리로 한마디 지껄이고는 붕! 솟아 올라서는 시베리아 상공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등을 타고 내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태평양 상공을 날아 만주 하늘로 날아가는 겨울 철새의 모가지를 틀어쥐고 홍익대사 앞으로 종이 비행기 내려앉듯 가볍게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빠 기러기를 타고 내려왔는지 그 뒤로 새카맣게 기러기 떼들이 몰려와 우리들 머리 위를 돌았다. 무당같은 옷을 입은 티벳 대표가 두 손을 다시 높이 쳐들자 기러기는 다시 북쪽으로 치솟았다. 그가 공중에 여덟 8자를 그리자, 아빠 기러기는 그대로 따라서 8자로 비행했으며 9자 모양을 그리면 또 그대로 몸짓을 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대단한 기공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해탈했다 해도 홍익대사는 저런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터번에 구렛나루 수염을 한뎅거리며 인도 대표가 흰 이빨을 내밀며 비웃었다. 그쯤 가지고 무얼 그러느냐는 뜻이렷다. 그는 아리비안 담요를 타듯 두 손을 높이 들더니 저 아래 만주 벌판으로 날았다.
그가 날아가는 곳으로 카메라 앵글이 따라 가듯 천지의 물 위로 환하게 비쳐 보였다. 그 옛날 일본놈들이 가설한 만주 철도를 따라가더니 지나가는 열차를 검지 손가락 끝으로 세웠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열차가 이유 없이 정차되자 기관사가 재빨리 뛰어내리고 승객들도 다가가 무슨 일인가 하고 철로 주변으로 내려섰다.
기관사와 조수들이 망치를 들고 열차 앞부분을 아무리 뒤져도 이상이 없자, 열차에 다시 올랐다. 한 십 분쯤 달릴 때, 인도 대표는 다시 세웠다. 손님과 기관사가 다시 뛰어 내렸다. 언덕길 바로 앞에서 서자 정전이 된 듯 꼼짝을 하지 않았다. 기어를 아무리 세게 넣어도 발통이 구르지 않았다. 그가 다시 새끼 손가락으로 열차의 뒤꽁무니를 가볍게 밀자 열차는 금방 고개를 넘었다.
“열차 하나 마음대로 조종한다 해서 뭐 그리 대숩니까?”
“이 사람이 기모노 하나 입었다고 억시리 목에 힘줄 세우누만 그랴. 당신은 뭐 별수가 있을라구요? 이래뵈두 난, 88년 서울 올림픽 육상 부문에서 4관왕입니다. 1백 미터, 장애물 경기, 높이 뛰기, 원반 던지기를 내가 다 먹었으니까요.”
“나는 5종 철인 경기에서 전 미 대회에서 2번, 전 유럽 대회에서 4번 우승한 사람이오. 해마다 서울 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전 한국 차력술 대회에서두 5번이나 우승한 사람이오. 최고수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기네스북에도 열 차례나 올라갔답니다. 당신은 신문도 안 보는구먼. 사진도 났었는데.”
키가 짜리 몽땅뚱땅한 일본 대표가 코를 한 번 힝 풀더니 인도 대표의 콧잔등에 눈도끼를 한 번 찍고 나갔다. 둘러선 관중들이 일본 토종인 그의 거드름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작년의 세계 무술 경연 대회에서도 그는 시커먼 불알이 다 보이는 전통 기모노를 입고 나와서 인도 대표와 한 수 차이로 등외로 밀려 났었던 것이다.
“몽골 대표나 티벳 대표가 말이나 기러기를 가지고 재주를 부리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동물들의 기보다는 인간의 기가 얼마든지 우월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의 기는 수련할수록 무한대로 자연을 지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 대표가 보여준 기관차의 조종은 사실 어려운 것이지요. 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무생물의 기계를 다룬다는 것은 상당한 경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일본 대표가 씨근덕거리며 나가자, 플라톤이 홍익대사 옆으로 다가와 은근히 말을 걸었다. 그러나 홍익대사는 미소만 띄울 뿐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옆의 관운장이 황소 같은 얼굴로 플라톤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일갈했다.
“이 사람아, 기가 고도로 발달하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다 요리할 수 있는 거야. 물론 기가 조금이라도 통하면 자석같은 인력이 있어서 쉽게 되겠지만 무생물에도 나름대로의 에너지는 다 있는 거야. 길거리에 널려져 있는 돌멩이 하나에도 다 에너지가 있지. 못이 벽에 박혀 있는 것은 그냥 박혀 있는 게 아니야, 하나의 에너지에 의해서 박혀 있는 것이라네.”
“그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우주 자체가 실은 무생물의 큰 덩어리 아닙니까? 먼지 한 알갱이에서 태양에 이르기까지 무생물의 운행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운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산소는 무서운 생명력을 줍니다. 지구의 모든 물질에 산소가 없는 게 있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손에 늘 들려져 있은 콤파스를 빙글빙글 돌리며 참견했다. 그의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콤파스가 이제는 한낱 무용지물이란 시위로 그는 콤파스를 보란듯이 돌리고 다녔다. 그의 수학과 철학적 사고는 모두 콤파스로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싸인 - 코사인을 거듭하면서 고도의 미적분까지 추적해 보니 그 이상 무한대의 기하학은 풀 수가 없었다. 3차원을 뛰어 넘어 4차원까지는 억지로 증명해 낼 수 있었지만 5차원, 더구나 생과 사의 문제는 수학이나 물리학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란 걸 알았다. 결국 최후의 학문적 결론은 콤파스의 한계라는 걸 안 것 뿐이다.
수학과 존재의 한계, 우주와 생명의 한계를 안 것으로 끝났다. 그의 고뇌가 환희로 바뀐 것은 반야심경을 접하고 부터이다. 더욱 기절한 것은 <화엄경>에 이미 자기가 골방에서 그토록 연구한 무한대-고등 수학에 대한 결론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헛수고만 한 셈이다.
서양철학을 접어놓고, 다시 제2의 눈을 뜨게 된 것은 동양철학이었다. 동양에 관한 신비와 논리에 일찌감치 감탄한 사람이 그 뒤에도 줄을 이었다. 헤르만 헷세, 헤겔, 토인비 등 세계적 석학들이 인도의 신비가 신비만이 아니라는 걸 터득한 것이다. ‘공즉시색-색즉시공’ 이란 오묘한 진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릎을 친 것이다.
어디선가 비행기 프로펠라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머리 위를 올려다 보니 흰바탕에 빨간 점이 섬뜩하게 보이는 일본 국기를 앞세우고 중국의 쌍발 여객기가 급강하 해왔다. 모두들 혼비백산하며 도망쳤으나, 홍익대사는 뒤짐쥔 채 웃고 있었다. 일본 대표는 비행기 조종석 위에 앉아서 그 국기를 더욱 크게 흔들며 다시 급상승해 올라 갔다.
그러더니 뒤이어 초음속 747 미국의 보잉기를 타고 다시 오는가 싶더니 그 뒤로 한국의 칼, 소련의 소비엣, 북한의 민항기까지 줄줄이 꿰어서 백두산 상공을 날았다. 비행기 쇼하듯 그는 맨 앞의 비행기 머리 위에 올라 타고 자유자재로 곡예를 했다. 모두들 목뼈가 부러지도록 올려다 보았다.
그 시간대에 알라스카 근방을 지나는 비행기를 전부 유도해 온 모양이다. 유도한다고 해서 따라올 비행기들이 아니고 그의 기에 의해서 함몰되어 끌려온 것이다. 각 비행기마다 비상등이 깜빡이고 차창 밖으로 승객들이 소동을 벌이는 게 빤히 들여다 보였다.
제2의 칼KAL 격추 사건이나 공중납치 중인 줄 알 게다. 일본대표가 홍익대사 앞으로 톡! 뛰어내리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는 그가 뒤돌아서 손바닥을 펴 보이자 그 때서야 각 비행기들은 마술에서 풀린듯 제 항로를 찾아 알라스카 쪽으로 사라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독일 대표가 일본 대표의 앞가슴을 밀며 조용히 말했다. 이번 대회는 연례적으로 동양권만의 대회인데 독일이나 미국, 프랑스들은 참관인 자격으로 끼어든 것이다. 서양권 민족들은 참가를 시켜줘 봐야 이러한 정신세계의 문제에선 한 수 아래이기 때문에 대적이 안 된다.
소련은 오랫동안 심령과학에 대해서 연구를 해오고 있고 또, 상당한 임상 결과도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적 한계 안에 있을 뿐이다. 몸으로 실감하는 기(氣)가 아니어서 역시 한계일 수밖에 없다.
유리겔라 같은 경우는 좀 특수한 경우 일이지만 그것도 특수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점지에 의해서 신통력을 간접적으로 수련시켜 준 것이다. 히말라야 산 속에 들어가 요기들과 몇 년간 생활하면 기초적인 신통력은 누구나 전수 받을 수가 있다. 독일의 그 대표라기보다 참관인은 정중하게 그러나 냉혹하게 말했다.
“홍익대사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가서 원자로 속의 핵 솥단지를 들고 올 수 있습니다.
“진짜라면 일본 대표 보다 앞수인데요.”
이라크 대표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이 휘둥그레 졌다. 홍익대사도 같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만 띄울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나는 홍익대사의 그런 점이 때때로 불만이었다. 흑이면 흑, 백이면 백, 대답이나 태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림자같이,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것이다.
독일 대표는 히틀러가 하듯이 오른손을 치켜 들고 하앗! 하더니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는 동북쪽으로 날았다. 이내 그의 전투복 모습이 없어졌는가 싶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힘겨루기로 이제 지구는 절단 났다고 땅을 치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의 표독성은 일본과 더불어 세계적이지 않은가. 세계를 두 번씩이나 물말아 먹으려고 제 1~2차 대전을 일으킨 민족들이 아닌가. 그가 어디서 기공 훈련을 비밀리에 해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눈빛의 에너지로 보아 일본 대표보다 능히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느꼈다.
인도와 티벳 대표가 곧 그의 뒤를 따라 공중으로 날았다. 독일 대표를 도로 체포해 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인도와 티벳 대표가 맥없이 땅에 떨어지고 뒤이어 독일 대표가 소용돌이 치며 머리부터 바위 위에 곤두박질 쳤다. 중국 대표가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숲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장풍에 걸려 거미줄에 모기 새끼 달라 붙듯 잡혀서 떨어진 것이다.
“그딴 재주로 다시 한 번 손바닥을 폈다간 신벌이 내릴 것이다.”
임금 ‘왕(王)’자를 가슴에 새긴 청색 도복의 우랄산 기공사가 나직이 말했다. 실제 독일 대표가 체르노빌에 간다고 해도 그의 에너지가 방사능을 꿰뚫을 만큼은 되지 못한다. 방사능을 제압할 만한 고급 기공사는 우랄 알타이 산맥 전부를 뒤져 봐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물론 홍익대사도 가능하지만 그 세계에서는 서열이 한참 뒤진다고 한다. 석가나 예수 그리고 공자나 마호멧이 한 수 위이지만 그 위에 또 서열이 있단다. 백두산의 단군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라 명명 되는 윗자리가 또 있다는 것이다.
“어디 나하고 한 번 겨뤄 보겠나? 간단한 걸로 말이야.”
새털 같은 구름 한점 발밑에 깔고 내려온 어느 도포 자락이 노래하듯 말했다. 모두들 올려다 보니 신라 화랑도 같은 흰 도포 자락을 잠자리 같이 휘날리며 젊은 청년이 중국 대표 앞에 섰다. 나는 다시 한번 기절하도록 놀랬다. 바로 안암동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용마병총에 갈 때 잠깐 만났던 친구다.
중국 대표가 두 손을 번쩍 들자 안암동 친구는 넓은 도포 자락으로 한 번 공중을 휘둘렀다. 쨍쨍하던 하늘에 갑자기 비구름이 몰리며 번개가 쳤다. 우랄산 기공사는 자기의 장풍에 자기가 말려 공중으로 붕! 뜨더니 떨어졌다. 전기에 감전돼 부르르 떨며 팍 풀어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서서 천둥을 막고 돌덩이 같은 우박을 내리게 했다. 이번에는 안암동이 눈사람같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런 이변들이 전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어서 각 대표들은 눈을 부라리며 천지의 조화를 확인하려 들었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눈을 만져보기도 하고 머리 위의 빗방울을 혓바닥으로 핥아보기도 했다. 다만, 홍익대사가 서 있는 곳만 여전히 찬란한 태양이 그대로 비치고 있을 따름이다.
이들의 조화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눈사람이 다시 붕 뜨더니 태풍을 몰아왔다. 우랄산이 돌풍에 휘말리며 나무 꼭대기에 매여졌다. 줄이 없는데도 밧줄에 묶인 모습같이 결박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 하나의 돌멩이로 변하여 땅 위로 풀썩 떨어졌다. 안암동의 굳어진 얼굴에선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가 다시 다른 자세를 취하자 홍익대사가 “그만들 해두어라!” 하고 손을 내젓자 돌멩이에서 다시 우랄산이 일어섰다. 그는 머리를 크게 흔들더니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다.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었지? 하며 세수하듯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댔다. 긴 낮잠을 푹 자고 난 표정이다.
눈이 둥그레 있던 대표들이 우랄산의 행동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박수를 치며 떠들자 우랄산은 그 때서야 겸언쩍게 일어나 홍익대사 앞에 가서 큰 절로 예를 하고 물러섰다. 우랄산에게로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안암동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많이 수련했는 걸, 그러나 순발력이 좀 약했어. 변신하면서 이미 다음 변신을 준비해야 하니까 말야.”
“예, 형님 말이 맞습니다. 아까 나무 꼭대기에서 돌멩이가 되어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그런 걸 느꼈습니다. 역시 형님은 늘 나보다 한 수 앞서는군요.”
두 사람이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나에게로 다가 왔다. 나는 그 때까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애 아들 녀석이 속을 썩힌다면서?”
“아, 그런 사소한 일 쯤이야, 뭘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나?”
“그거야 마음 먹으면 거울을 들여다 보듯 지구 곳곳의 일을 알 수 있다네. 이봐, 여기 이게 지금 미국 청문회야, 토마스 대법원 판사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심리를 하고 있는 중이지. 여기 법대 여 교수는 지금 질투하고 있는거야. 흑인인 주제에 백인 여자를 마누라로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인종적인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이지.”
“왜 자기같은 흑인과 결혼하지 않느냐는 게, 이 여 교수의 속마음이야. 그러나 지금 이 여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성적인 농담으로 자기를 계속 괴롭혔다고 말이야. 세상 사람들은 그 속마음을 모르고 신문 기사만 믿고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다 알고 있어. 언제쯤 이 여자가 토마스를 다시 찾아가 사과할 것이라는 것까지도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내가 다시 심야 수련에 들어간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교통하고 문제니, 아들 녀석 본드 문제니, 하는 것이 어느 만큼 해결되자 다시 용맹정진에 들어간 것이다. 안암동 친구는 내 손바닥을 들여다 보더니 뭐가 짚이는지 눈을 감고 앉아 보라는 것이다.
“아, 맞았어. 자네의 전생은 징기스칸이었어. 그리고 그 전에는 고선지로 태어났고, 가만 있자, 또 그 전에는 무엇인가 보자아.”
“아니 잠깐.”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징기스칸이라, 내가 유라시아 접경 알프스 산맥까지 원정을 갔던 고선지 장군이라 좀 헷갈린다. 홍익대사는 용마병총 앞의 맨 첫 번째 총대장이 바로 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맞았어. 진시황 때는 자네가 몽골 지역을 통치하던 지역 사령관이었어!” 안암동은 내 속 마음을 꿰뚫어 보듯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나의 후생은 또 뭣인가? 내가 다음 세상에 다시 뭘로 태어날 것 같애?”
“그거야 현생에서의 자네 업보대로 대응이 되겠지”
“아니 내 전생에 대해서 그렇게 훤히 아는 사람이 후생도 들여다 볼 게 아닌가.”
“그건 또 다르지 자네의 인과응보에 따르는 것이야. 사주팔자에 따른 운명이란 것도 있지만 그것은 자네의 자유의지로 개척하기 나름이야.”
거기 있던 관중들은 점심 식사하기가 바빴다. 식사라야 생식이어서 솔잎이나 풀꽃 열매 또는 은단 같은 풀씨 같은 것들이다. 초콜릿 먹듯 야금야금 잘근거리는 게 도사들 식사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 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것으로 끝이다.
안암동은 다시 뉴욕의 총회 현장을 보여주었다. 남북한 유엔 가입 현장의 긴장된 분위기가 나왔다. 남-북한 외교부 담당자들은 혹시나 하고 초조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5대국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총회에 부쳐 인준받는 요식 행위이다. 여타 국가 대표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신문을 보는 등 무슨 영화관에 앉은 기분들이다.
그 뒤로 노태우 남한 대통령과 연형묵 북한 총리가 축하 연설을 하는 장면도 보여 주었다. 이 현장은 이미 지난 것이었지만 안암동이 마음만 먹으면 현재는 물론이지만 과거의 사건까지도 영화 필름마냥 재현해 보이는 것이다. 지상에서는 고성능 컴퓨터로 재현하지만 천상에는 시간과 공간이 자유자재로 조종이 되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왜 안 왔느냐고 묻고 싶겠지? 안암동이 내 속을 꿰뚫어 보며 중국 현장을 보여 줄까? 하며 다시 염력을 외우자 나는 손을 내저으며 그만 일어서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른 홍익대사에게로 뛰어가 오늘 밤은 이만하고 물러가겠다고 읍하면서 아뢰었다. ‘으음! 벌써 날이 밝았나?’ 하면서 홍익대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안암동 소크라테스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뜻밖이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찾아내듯 홍익대사님을 불러내 만나는 방법은 이제 쉽다. 대 도사님을 불러낸다는 것이 말에 어폐가 있지만 말하자면 나의 경지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선도 도장만 운영해 가지고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작년 여름부터 부업으로 보험 대리점을 개설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 감사라는 것이 까다롭다. 무슨 영수증 하나를 발급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둔 것까지 컴퓨터로 잡아내어 닥달을 하는데는 아연할 뿐이다. 대리점이라고 해야 책상 하나와 전화 한 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도장이란 곳이 도깨비 호박씨나락 까먹는 곳이어서 어쩌다가 신문에 건강이 어떻고, 40대 남자의 죽음이 어떻고 하면 연득없이 손님이 몰려서 좁은 도장이 콩나물 시루마냥 차기도 하지만, 여름이 되거나 연휴가 닥치면 수세식 변소의 물빠지듯 시원하게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그 동안 이 도장을 거쳐 나간 회원이 수천 명에 이르지만 현재 회원으로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50명도 채 안된다. 말하자면 어느 만큼 기공의 효과를 보았고 노력하고 있는 도반들이다. 회원들 가운데는 나보다 더 열성적인 사람도 있다. 도장에 못 나오면 집에서라도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꼭꼭 단전호흡을 한단다.
나야 담배도 피우고 술도 사이다 마시듯 벌컥대는 대주가이지만 모 대학 교수인 그 회원은 술도 약간씩 하고 담배는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청결파다. 회원들이 대개 교수나 한의사 또는 판․검사 등 소위 지식 계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신 노동자들이어서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국선도가 즉각적인 효과를 보여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들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건강기공협회>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정식으로 등록도 하고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 혼란되어 있는 기공 관련 단체들을 앞으로 통합해 나가고 각 기공법들의 장단점을 비교 검토하여 그 특장점만 살린 한국의 독특한 기공법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다.
그리고 임상이나 체험으로만 좋다고 할 뿐,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논리가 없으므로 앞으로 국민건강기공협회에서 세미나 및 논문 발표 등으로 한국기공의 우수성을 확인해 나가자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의 고급 기공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기로 제 1차 목표를 세웠다.
하쌍전 교수는 세계기공협회 부회장이기도 하지만 무한武漢 체육대학 기공학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 그의 뇌 속에 태극권이 나타났다 하여 중국에서는 대단한 권위로 인정받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다시 도장으로 가서 심야 수련에 들어갈까 어쩔까 하며 건성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김 법사님이세요? 큰일 났습니다. 백암 스님 사모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러면서도 홍승동 씨의 목소리는 전혀 큰일난 것 같지 않은 명랑한 소리이다. 복권에라도 당첨된 즐거운 목소리이다. 백암 거사 마누라가 어서 돌아가시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 참 싱겁긴… 하면서 나는 옷을 주워 입었다.
“여보 어떡하죠? 저도 따라갈까요? 그 집에는 아무도 없고 사모님 혼자라면서요? 슬하에 자녀가 없다는 게 이럴 때 허전할 거예요. 비가 몹시 오는데 우산이나 가지고 가세요.”
“당신이 옛날 도반들에게 빨리 전화를 해줘. 난 먼저 가서 준비를 좀 해야 할테니까. 그 때 도반들이란 게 대개 산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얼마나 연락이 닿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장례를 치르려면 쉽지는 않을 거야.”
“아니 여보, 다시 전화가 왔어요. 홍 선생님이세요.”
“아니, 법사님 어딘지 알고 계시는 거예요?”
하는 소리에 참, 사모님이 몇 년 전에 이사를 갔다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번뜻 스쳤다. 순간적으로 스승님에게 얼마나 불효했던 것인가 하는 후회가 뒤통수를 쳤다. 나에게 존재의 눈을 띄워 준 백암 거사님이 운명을 달리하실 때에도 임종을 못해 매우 자괴스러웠는데 그 사모님 또한 임종에 임해서야 찾아 뵙게 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손바닥에 못질하고 싶은 심경이다.
홍승동 씨가 가르쳐 준 대로 정릉 골짜기를 찾아갔더니 이미 하차대 씨이며 구암 거사님 등이 와 있었다. 사모님 영전에 향불을 피우고 무릎을 꿇었다. 얼마 전에 저승으로 가신 어머님의 얼굴과 겹쳐서 나타났다.
윤회를 면하려면 부처를 찾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부처란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먼 데서 찾으랴. 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신은 헛 것이어서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만,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온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흙이 되고 불이 되고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항상 신령스러워서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모르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 모르고 있다.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
고승이나 성인들만 찾고 불경이나 대장경만 천번 백번 암송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 헛수고일 뿐이다. 불경이나 고승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라는 상징적인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불상은 더욱 자기 자신을 침잠하라는 표정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지 않고 거기에다 절만 수 백번 한들 무슨 의미가 더 될 것인가.
“사모님께서 살아 생전에 자주 다니시던 조계사의 선학원에다 평소의 전 재산을 헌납하신 모양입니다. 아마 얼마간의 부동산 등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아, 그랬군요. 지금 이렇게 오막살이 같은 곳에서 사시면서 재산을 아껴 두셨군요. 역시 사모님다운 행동이십니다.”
한 선생님이 밤하늘에 시퍼런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리며 말을 걸어 왔다. 지금 목어를 두드리는 스님이 아마 선학원 스님인 것 같다. 낙엽을 적시며 흘러 내리는 밤배가 정릉 골짜기를 더욱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홍 선생도 나타났다.
“다음 주 쯤에 원주 치악산에 가볼까요? 거기 소쩍새 마을에 장애자들을 모아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스님이 있답니다. 일영 스님이라고 불고 방송국에서도 소개된 분인데 상당한 기공술을 가졌답니다. 그래서 기치료로 벙어리도 낫게 해준다는 소문입니다.”
6
우리는 중국의 기공법인 선밀공을 진지하게 전수 받고 있었다.
무한 체육대학 하쌍전 교수의 초청이 내년으로 지연되어 회원들이 다소 낭패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터에 연변에 있는, 우리 교포인 김호정 선생을 모시게 되었다. 막상 수련에 들어가 보니 상당한 기공법이어서 모두들 감탄했다. 동작과 방법은 간단하지만 우리가 이제까지 배워 오던 어떤 기공보다도 한 차원 높은 기공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 교수의 초청을 위해서 두 번씩이나 교육부와 안기부에 연장 신청을 내느라고 힘이 들었는데 중국의 중앙 정부에서 허가가 안 나왔다는 회신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이어서인지 교수의 해외 출장 문제와 같은 사소한 일까지도 북경에 가서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해당 학교 학장의 권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대학에까지 중앙당 정치 위원이 파견되어 있으니 얼마나 불안한 생활이겠는가. 5공시절 우리 나라도 각급 정부 기관의 조정관이란 이름으로 안기부 직원들이 파견되어 얼마나 전전긍긍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사람을 감시하고 미행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김호정 선생은 연변 지역의 문화 예술 분야에서 촉망받는 시인이다. 일제강점기 할아버지가 항일 운동을 하던 후예 이어서인지 민족의식이 강렬하면서도 통일 문제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어로 시를 써서 북경의 중앙 문단에도 진출해 있는 그는 한국의 위상과 조선족의 예술성을 구체적으로 중국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북경에는 조남일 장군도 진출해 있다. 중국 군부의 수뇌부에 속하는 군사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조 장군의 말 한마디에 따라서 중국군대가 출동하게도 되는 막강한 위치에 존재해 있기도 하다. 어쩌면 김호정 선생이 중국 선밀공(禪密功)을 한국에 최초로 전파한 달마대사일지도 모른다. 6가지 공법 가운데 이번에 두 가지를 배우기로 했다.
축기공과 혜공인데 축기공은 기초적인 공법이고 혜공은 가장 높은 단계의 공법이다. 그러나 6개 공법이 다 독립적인 형태로 되어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이 하던 공법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절에서 스님네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전해 내려왔다고 했다. 주로 척추를 다스리는 운동으로서 미골에서 대추까지 위 아래로 기를 운용시키는 것이다. 척추는 우리 몸을 지탱시켜 주는 기둥이 아닌가,
온 몸의 기능은 척추의 역할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백회와 혜중의 밀처를 푸는 마음이 또한 중요한 것인데 이것은 선밀공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세 군데의 요소를 편안하게 풀고 원활하게 돌려야만 선밀공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김 선생님은 이 공법을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일차 수련이 끝나고 우리는 도장에 삥 둘러 앉았다. 비밀한 선밀공의 비의에 대해서 확인하려는 도반들의 눈매가 빛을 냈다. 자그마한 키에 차돌 같이 생긴 김호정 선생은 하나 하나 우리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중국에서는 각종 기공법이 대단히 많습니다. 홍콩을 통해서 전 세계에 알려진 소림사 무술기공도 그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 중국 전역의 산 속에는 소림사 권법 이상의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잘 나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것 뿐입니다. 티벳 기공은 상당한 경지에 있습니다. 우리의 선밀공도 도교와 밀교적인 것이 융합된 것이지요. 저는 선밀공의 최고 도사인 유한문(兪漢文)의 문하에서 수련했습니다.
“일본에도 지금 기공술이 대단히 보급되어 있다던데 중국의 기공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홍승동 씨의 질문에 이어 김상용 피부과 의사가 급한듯이 물었다.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좌중의 도반들은 그의 입술에 집중되어 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매우 신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 올림픽 이후 연변의 조선족 동포들이 끊임없이 들어 왔고 한국에서도 백두산 관광 등을 겸하여 연변 등지로 드나들었지만, 그것은 일부에 한정된 정보들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기공이 일반 사람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85년도부터이지요. 모든 것을 과학적인 입장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다분히 비과학적인 기공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에서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천년을 내려온 조상 대대로의 기공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지요.”
그는 한참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계속했다.
“또 그 효력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은 전 인민들이 아침 저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중국의 각 성(省)마다 대표적인 공법을 선정하여 전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배우게끔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전 국민들의 건강이 날로 향상되고 있으며, 운동선수들에게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어 88년 서울올림픽이나 90년 아시안게임에서 탁월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요.”
“아, 역시 정신력이란 무섭지요. 더구나 정신집중을 하는 단전호흡 기공술은 대단한 겁니다. 그러나, 서양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를 못하지요.”
“정신력을 우선으로 하는 기공법이 오히려 과학적이란 것을 북경에 있는 청화대학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로 증명되어 발표되었습니다. 청화대학이라면 공과대학으로서 중국의 MIT라고 할 정도로 막강한 과학자들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지요. 지금 일본에서는 중국의 각종 기공법을 그들의 첨단 기자재를 동원하여 찍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본 전역에 보급하고 있지요. 일본놈들은 베껴 먹는데 천재들이 아닙니까?”
“중국의 최고 기공사들은 누가 있습니까?”
“누가 최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엄신(嚴新)이 최고수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둘째 손가락 하나만으로 땅을 짚고서 거꾸로 물구나무 서서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며칠을 거꾸로 있으라고 해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할 수 있답니다.”
“... 85년도인가에는 산불이 크게 났댔지요. 엄청난 불이라 소방서의 힘만으로는 안 되어서 군 병력 까지 동원했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산불은 더욱 번져나가고 해서 정부에서는 당황했지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했지만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정부에서는 엄신을 불러서 꺼 보라고 했습니다.”
“... 처음에는 주저하던 엄신이 국가적 운명이 걸린 산불이고 해서 각오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옷을 홀랑 벗고 며칠 밤낮으로 기공을 모아 비를 내리게 했지요. 조금씩 내리던 비가 한밤중에는 천둥 번개가 칠 정도로 폭우로 쏟아졌습니다. 중국의 전 인민들이 밖으로 나와 밤새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그 때부터 북경 중앙 정부에서도 기공을 인정하고 기공사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하여 지금은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있지요.”
“어떻게 비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기공술을 했으니까 김 선생님은 그 신비를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소련에서는 인공적인 화학 약품을 하늘에 대량살포하여 인공적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그것은 간단하지요. 당시 시베리아 벌판에 떠돌던 구름을 엄신이 자기의 기력으로 끌고 와서 중국의 천산 부근에다 비를 집중적으로 내리게 한 것이니까요. 소련에선 인공적으로 비를 만든 것이지만 엄신은 비를 끌어 온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연의 조화에 따라 자연물의 이동을 기력에 의해 움직이게 한 것뿐입니다. 그뿐이 아니고 그는 대 홍수가 난 것도 기력으로 비를 그치게도 했으니까요. 그것도 간단히 구름을 다른 곳으로 쫒아 버리면 되는 것이니까요. 전혀 자연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엄신은 어느 정도의 수련을 했습니까?”
“이제 나이가 한 55세 정도 되었으니까 공력으로 치면 그렇게 많은 햇구를 산에서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집중력이겠지요. 이 가운데 있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수련을 받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뛰어나게 공력을 보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세조차도 안 돌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정성의 차이입니다. 집에 가서도 정성스럽게 훈련을 반복한 사람은 이튿날 반드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나 기는 다 있지만 그것을 얼마만큼 집중적으로 다스리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 가운데 누가 괴나리 봇짐 하나만 딱 둘러 메고 산에 들어가 십년 이상 정성껏 기공술을 연마하면 엄신 이상의 공력도 나올 수 있습니다. 초능력이란 사실 초능력이 아니지요. 우리의 두뇌 세포는 겨우 1할도 쓰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을 기공으로 2할 3할 쓸수록 초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김호정 선생은 평안도 사투리를 쓰면서 힘 있게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동북 3성에 퍼져 있는 약 1백만의 조선족들의 사투리가 제각각이란다.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 등에 집단적으로 모여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자기 할아버지가 살았던 고향 사투리대로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등의 사투리가 2세 3세로 그대로 모방 전습되고 있단다.
선밀공의 기초 기공법인 축기공(築氣功)에는 4가지 공법이 있었다. 용동- 파동- 우동의 연동인데 특히 연동은 또 위의 3동작을 연속적으로 하는 재미있는 동작이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고전 무용 동작 같았다. 선밀공의 연속 동작을 보면 무대 위에서 우리나라 아리랑을 추는 듯한 착각이다.
또 그렇게 손가락 끝이 유연하게 돌아가야만 몸 속의 기가 충분히 움직인다는 것이다. 동작이 끊어지거나 직각으로 움직이는 타 기공과 다른 점이 이것이다. 실제로 몸 속에 기가 돌기 시작하자 나의 양 날개가 정말 기러기 날개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요가를 오랫동안 수련하여 축기가 상당하게 되어있는 안산 요가교실원장인 이상현 선생은 첫날부터 유연하게 돌아가 김 선생이 그러한 모범을 시범시켜 주었다. 수벽치기를 배우는 등 전통문화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뛰어 다니는 박정미 선생은 아예 앞에 세워서 조교 노릇을 시켰다.
“이것도 인연이지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본인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하등 쓸데없는 무당의 짓같이 보일 뿐이니까요. 돼지에게 보석을 던져 주어 봐야 돼지는 그 가치를 모릅니다. 이번 수련 기간에도 결국 얼마나 남게 되었습니까. 그래서 역사는 항상 소수가 끌어 가는 것이지요. 부처와 만나려면 전생에 3천번의 어떤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국에는 아직까지 서양체육에 찌들어 있다. 전통 체육과 전통문화가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리고 미 군정을 거치면서 서양의 문물이 새로운 강제력을 가지고 이 나라 문화를 압제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거의 한 세기 가까이 단절되고 왜곡 변형되어 왔다.
아직도 지리산 태백산 등에 우리 나라의 전통 법통을 잇는 도사들이 적잖게 산지되어 있다. 아직 세상에 나올 때가 아니고 산에서 내려올 계제가 안 되어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시운이 한국으로 돌아 오게 돼 있어서 그들이 가까운 시일 안에 내려 오리라는 조짐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내가 이따금 만나는 홍익대사도 그러한 도사들 가운데 한 분이다. 엄신이나 요한문 등과는 또 다른 공법과 기력을 그들은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누구것이 더 우월하다거나 힘겨루기와 같은 경쟁의식보다는 이제 막다른 길에 접어든 지구의 종말, 우주의 비극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고르비의 탈냉전화는 세계 평화를 위한 전야제는 되었지만, 세는 아직도 각종 분쟁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쉬지 않고 있으며 핵 위협은 아직도 전전긍긍케 하는 불안 요소로서 상존해 있다. 소련 내의 각 공화국들은 독립과 이탈에다가 지금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식량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주의 전황이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무엇을 보여 주었는가. 또 다른 사회주의 귀족과 더 많은 불안을 낳았을 뿐이다.
이제 세계는 아놀드․토인비가 유언했듯이 동양 정신이 최종적으로 지구를 구제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그리고 가장 우주적인 우리의 정신 밖에는 없다. 무기경쟁 이념경쟁은 이제 끝났다. 유엔이 할 일은 식량 문제와 환경 문제이다. 과학의 문제는 이제 가전제품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기업은 컴퓨터 단말기로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이제는 누가 누구를 먹느냐 먹히우냐는 끝났다. 예를 들어, 일본이 다시 자위대를 앞세워 다시 제 3차 대전의 꿈을 키운다면 간단히 멸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의 첨단 기술이 어떻고 하지만, 어느 구석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핵탄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가 숙제이지 누가 이길 것이냐 하는 문제는 지구가 멸망 당하고 난 뒤에나 결판날 일이다. 우리는 김호정 선생을 그 숙소인 홍대 앞으로 보내고 다시 다방으로 들어가 밤 늦도록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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