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어만은 왜 예수가 '인간에서 신으로' 후대에 추대됐다고 생각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에 대한 신약의 내용을 역사학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결과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었음을 분명하게 확증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신'이 아니었다고 결론 짓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바트 어만이 예수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 본 내용을 추적합니다.
바트 어만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 30년경에 죽었으며 이는 모든 역사학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사실임을 확언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 5~7년 후에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에 의해 그가 '부활'했다는 전승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고린도 전서 15장이 그 증거라고 한다. 다음은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게 보낸 서한이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예수의 동생)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
20년 후, 바을은 예수를 '신적 존재'로 묘사하며(빌립보 2장), 예수 사후 40년 후에 마가복음이 등장하고, 50년 후에는 마태와 누가복음이, 60~70년 후에는 요한복음이 등장하며 .... 그 과정에서 예수의 기원은 부활 --> 세례(침례) --> 탄생 --> 태초로 예수의 신성을 향해 점점 당겨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신'으로 공식 선포된다. 그리고 381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됐고 이후 1600년 간 기독교 신앙의 언어를 결정했다.
이것이 바트 어만이 예수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그러면 어만이 예수를 순수 인간으로 바라 본 관점을 따라가 본다.
예수는 자신을 어떻게 보았나?
먼저, 신약 성경을 처음으로 쓴 바울은 왜 예수의 생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극적인 전환을 겪게되며 (갈라디아서 1장),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베드로를 만나 15일을 함께 했고, 에수의 동생인 야고보도 만난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동고동락한 가장 측근이고, 야고보는 예수와 함께 자란 동생이다.
그럼에도 바울의 편지에는 예수의 공생애 동안 예수가 가르친 내용은 인용되지 않는다. 이는 바울의 "의도적 선택" 때문이다. 바울이 예수에 대해 전하려던 핵심은
십자가(형주)와 부활이다. (고린도 전서 2:2)
1. 그러나 역사적 예수는 어떠 했을까?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다. 마가복음에는 "곧"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곧"은 희랍어 '에우테오스'로서 "즉시, 곧바로"라는 뜻이다.
` 예수가 세례(침례)를 받고 '곧' 광야로 나갔다"
` "광야에서 나와서 '곧' 회당으로 들어갔다"
` "회당에서 나와서 '곧' 시몬의 집으로 들어갔다"
마가의 예수는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향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한다. 그런데 마가의 예수가 향하고 만난 사람들은 바울의 관점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 회당에서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
` 손이 마른 사람
` 열두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
` 죽은 야이로의 딸
` 귀신들린 거라사 사람 ......
이들은 1세기 유대 사회의 주류에서 가장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로서, 정결법 상 부정한 사람,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는
` 유대 사회의 규칙을 어기면서
` 안식일을 지키란 율법을 어기면서
`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안된다는 규정을 어기면서
이들 규정을 목숨처럼 지키던 바리새인들과 충돌하며 만난다. 그 충돌은 격렬했다. 그래서 예수 공생애 초기에 예수를 죽이려는 모의가 나타난다. 예수가 기존의 질서를 뒤 흔드는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울이 언급하지 않은 예수가 복음서 안에 생생히 살아 있다. 그래서 어만은 질문한다.
"부활과 십자가(형주)의 예수인가? 아니면 쉼없이 움직이며 주변부 사람을 만나는 갈릴리 예언자인가? 어느 쪽이 더 역사적 예수에 가까운가?"
그리곤 이렇게 답을 내린다.
"역사적 방법론으로 볼 때, 이른 시기의 문서와 더 여러 개의 독립적인 자료에서 동시에 확인되는 것이 더 역사적일 확율이 높다."
2. 후대에 쓰여진 요한복음에서의 예수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이 말은 역사적 예수가 한 말일까? 역사학자들이 사용하는 기준이 있는데,
` 더 이른 문서에 있는가?
` 서로 독립적인 여러 자료에서 동시에 확인되는가?
` 당시 역사적 맥락과 맞아 떨어지는가?
이 기준에서 보면, 요한복음에 있는 자기선언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말은 역사적 신뢰도에서 가장 취약한 층위에 있다. 요한복음이라는 단 하나의 자료에만 나오기 때문인데, 가장 나중에 쓰인 문서인 요한복음에 만 있다.
반면, 마가복음에서의 예수는
` 자신을 인자(人子)라 부르고
` 선한이는 하느님 한분 뿐이라고 말하고
`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다
이 쪽이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더 신뢰할 만한 층위에 있다. 즉
` 더 이른 문서(마가복음)에 있고
` 여러 자료에서 독립적으로 확인되고
` 1세기 유대 묵시 문학의 맥락과 잘 맞아 떨어진다.
3. 어만의 결론으로 들어가자!
"갈릴리의 역사적 예수는 아마도 자신을 하느님의 신적 존재로 선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유대사회의 묵시 예언자로 자신을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를 신으로 만든 것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예수 이후의 공동체, 부활 경험을 중심으로 모인 그 공동체의 신학적 씨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만은 이 불편한 분기점에서 그의 독실한 신앙을 잃었습니다. 역사학자의 방법론은 하나의 답을 가리켰고, 그는 그 답을 따라 갔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지점과 맞닥뜨리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자신들이 바라본 예수는 신 즉 창조주이신 야훼 하느님과 동등한 삼위일체의 신이었는데, 바트 어만의 역사학적 관점으로 본 예수는 이 사실에 치명타를 안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주제 즉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는 또 하나의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바울'입니다. 현재 기독교는 '바울이 바라본 예수'라는 관점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다음 장은 그래서 바울에 대한 바트 어만의 시각입니다.
이 내용이 끝나면, 바트 어만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에 대한 답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예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매우 명료하게 다가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https://youtu.be/yCXlBszbo2o?si=bGwe4fEOQX_cc1Vq
수십개의 바트 어만의 자료 중에서 이 유투브가 대체로 정리가 잘 되어서 올립니다. 이 유투브를 제작한 분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